매거진 영화

휴먼 (Human, 2015)

영화와 척을 진 디자이너 지망생의 영화 리뷰

by 권태욱

택시를 타면 먼저 말을 거는 기사님들이 있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털어놓기 시작한다. 그럼 나는 내 생각과는 상관없이 고개를 끄덕끄덕하며, 맞장구를 쳐 준다. 나는 다른 사람들을 관찰하는 것을 좋아한다. 그리고 그 사람들이 살아가는 방식에 대한 이야기를 듣는 것을 좋아한다. 이 영화는 전 세계의 여러 사람들과 함께 얼굴을 마주하고 삶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는 듯한 경험을 하게 해 준다. 다양한 삶의 모습들이 한 권의 살아있는 책으로 엮여 있는 느낌이랄까.


여러 가지 측면에서 인터뷰 중심의 내 다큐 작업에 참고할 만한 부분들이 많았다. 구성은 참 심플하다. 하늘에서 사람들을 내려다보는 이미지와 여러 사람들의 입을 통해 전해지는 삶의 이야기, 인터뷰. 딱 두 가지다. 지금까지 작업을 진행시키면서 과연 ‘인터뷰를 메인 디쉬로 만들어낼 수 있을까?’에 대한 의문이 계속 따랐다. 이 작업을 보면서 많은 힘을 얻었다. 흔히 생각하기에 지루하고 재미없는 인터뷰라는 재료를 어떻게 잘 요리하느냐에 따라 만들어지는 결과물은 천차만별일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인터뷰의 핵심은 결국 ‘진정성’으로 귀결된다. 진실과 본질은 어떠한 수식어로도 채울 수 없는 그 만의 고유한 힘을 갖고 있다. 이 것이 바로 이미지보다 wording이 중요한 이유.


인터뷰의 고질적인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서 스타일에 굉장히 신경을 많이 쓴 게 느껴진다. 인터뷰이의 모공까지 보일 정도로 생생한 인터뷰 촬영, 그리고 인터뷰이들은 카메라를 정면으로 바라본다. 마치 대화를 나누고 있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인터뷰이의 background를 고려한 현장음 삽입, 한 폭의 그림을 보는 듯한 항공 촬영 푸티지들. 항공 촬영본들은 끊임없이 쏟아져 나오는 이야기들에 잠시 호흡을 가다듬을 수 있도록, 잠깐의 여유를 만들어낸다.


수 십 년을 땅만 밟고 살다가 굉장히 오랜만에 비행기에 다시 올랐을 때, 하늘 위에서 내가 발 딛고 있던 땅을 내려다보며 내가 살고 있는 세상이 참 좁다는 느낌을 받은 적이 있다. 저렇게 좁은 땅에서 정말 아등바등하며 살았었구나. 높은 고도에서 사람들의 삶을 내려다보는 이미지를 인터뷰 중간에 배치한 감독의 의도를 느낄 수 있었다. 삶에 치여 살다 보면 쉽게 접할 수 있는 그림은 아니다. 대리만족하는 기분이 들었다. 다큐멘터리의 또 다른 의미, 그저 평범하게 살면서 포착하기 어려운 것들을 다큐멘터리를 통해 대신 경험할 수 있다는 점이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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