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병아리 마케터의 삶을 돌아봅니다.
그냥 흘려보내면 아까우니까 막 써 내려간 2018년의 회고록. 그래서 모든 맥락이 친절하게 설명되어 있지 않습니다.
1. 뜬구름 잡는 소리, 이제는 덜 하겠다.
- 내가 꿈꿨던 것들이 실제 필드에서 어떤 그림으로 펼쳐지는지 보았다. 신기했지만 좌절스럽기도 했고, 동시에 더 도전해보고 싶기도 했다.
- 퍼포먼스 마케팅에 대한 막연한 관심. 마케팅팀에서 하는 일들의 큰 제목 정도는 알게 되었다. 더 깊게는 아직도 잘 모르겠다. 조금 더 욕심내서 러닝 커브를 기울였더라면 어땠을까 싶다.
- 호기심 많은 내가 그동안 떠돌아다니며 줍줍했던 다양한 필드의 잡지식들이 얼마만큼의 깊이를 가지고 있었는지 알게 됐다. 그리 깊지는 않았다는 게 확실하다. 결국 내가 갖고 있는 것 중에 가장 뾰족한 것이 겉으로 드러나게 되더라. 그래서 영화를 전공한 나는, 회사 내에서 자연스레 영상을 다루는 사람으로 포지셔닝되었다.
- 예전과 조금 달라진 점이 있다면, 영상 다루는 역량을 바라보는 시각이 조금 달라졌다는 것. 새로운 맥락 위에 기존의 내 강점을 접목시켜서, 어떻게 나만의 니치한 포지션으로 만들어낼 것인지를 고민하게 되었다는 것. 영화과 졸업해서 프로덕션 PD로 일하는 것 말고도. 또 다른 길이 있겠구나 라는 걸 느꼈다. 영역을 더 쪼개고 쪼개다 보면 결국 나만 할 수 있는 일이 생길 것 같다는 희망이 생겼다!
- 결론적으로 지금 내가 가장 잘하는 걸 더 잘하게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을 했고(영화 공부 버리지 말자), 하고 싶고 관심이 가는 것에 대한 공부(조형에 대한 이해, 타이포그래피 그리고 프로덕트 디자인)를 더 깊고 치열하게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 사진 찍고 영상 만드는 건 이미 어느 정도 궤도에 올랐고, 조금 더 파보면 본업으로 삼고 싶은 프로덕트 디자인에 확실히 힘을 실어줄 수 있지 않을까. 어쩌면 두 개의 합이 내 커리어의 정체성을 세워줄 수도 있을 것 같다는 생각. 물론 어떤 구체적인 형태가 될진 아직도 잘 모르겠지만. 프로덕트에 그래픽이 들어가야 하는 상황에서, 사진/영상 베이스가 새로운 가능성을 만들어낼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상상.
- 프로덕트 디자인을 하려면 매체에 대한 이해를 하는 건 기본 중에 기본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이것도 사실 굉장히 뜬구름 잡는 레벨이었다는 걸 알게 됐다. 실제로 프로덕트 디자이너분들이 어떻게 일하는지 어깨너머로 구경하면서 많은 자극을 받았다. 사실 좌절도 많이 했다. 과연 내가 이렇게까지 할 수 있을까. 디자이너 인싸 모임이 있는 것 같았고, 내가 거기 들 수 있을까 하는 두려움도 생겼다.
- 퇴사 전 벤이 알려준 형태 규칙에 대한 이야기는 앞으로의 시안 작업에 엄청난 영향을 주게 될 것 같다. (스케치 켜서 시안 작업을 할 때마다 매 번 해소되지 않던 답답한 지점 => 실제로 프로덕트가 어떻게 만들어지고, working 하는지는 염두에 두지 않고 자꾸 껍데기. 그림만 그리고 있는 느낌) 이 부분을 벤이 아주 시원하게 긁어주셨다.
2. 내가 어떤 사람인지 알아가는 시간.
- 11개월 동안 내 삶의 큰 화두. 회사 생활은 내가 어떤 사람인지를 알 수 있는 계기를 만들어주었다. 애써서 나 답지 않은 모습을 보이려 애썼던 적이 있었는데, 결국 원래의 내 모습으로 돌아오더라. 사람은 쉽게 변하지 않는다. 나는 원래 이런 사람이고, 나는 나다우면 된다는 생각이 더욱 확고해졌다. 왜냐면 한 사람이 모든 걸 다 가질 수 없기 때문이다. 나는 부족한 부분도 있지만, 분명 확실하게 괜찮은 부분도 있다. 그러니 더욱 나다워지면 된다. (물론 상황에 따라 애를 써야 할 때도 있다. 하지만 내 중심은 알고 애를 쓰면, 적어도 흔들려서 무너지는 일은 없지 않을까.)
3. 일은 같이하는 것이에요.
- 뭐든 혼자 하는 것에 익숙했다. 인턴 입사 전, 프리랜서로 일할 땐 대개의 많은 상황에서 혼자 모든 걸 해내야 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내 능력은 무한대가 아니다. 그런데 내 앞에 떨어진 일을 잘 해내지 못하면 내가 너무 부족하고 못나보였다.
회사에 와보니까 같이 힘을 합칠 사람들이 있었다. 그래서 같이 해보니까, 훨씬 수월하다. 된다. 역시 하나보단 둘이, 둘보단 셋넷이 낫다. 각자의 부족한 점들을 서로가 채워주면서, 일이 완성되가는 경험을 해보니까. 힘이 생기더라. 그리고 믿게 됐다. 안 되는 일도, 같이 힘을 합치면 될 수 있겠구나.라는 걸.
4. 월급은 중요하다.
- 귀여운 월급을 받으면서, 마음 놓고 신나게 탕진잼 할 수 있는 시간이었다. 소비의 스펙트럼이 넓어졌고, 학교 다닐 땐 없었던 더 나은 삶을 경험했다. 내가 몰랐던 좋은 것들이 세상에 참 많다는 걸 알게 됐다. 그래서 내 삶에서 돈이라는 게 꽤나 더 중요해졌고, 행복하기 위해서는 부족함 없이 벌어야겠다는 생각이 더욱 확고해졌다.
- 이 기회에 내 마음 가는 대로 이것저것 해보면서, 솔직한 내 마음의 방향을 관찰해보려 했다. 그리고 그것들을 나름대로 열심히 기록했다. 이 기록들을 나중에 펼쳐보면, 내가 어떤 사람인지 발견할 수 있는 좋은 재료가 될 것 같다. 당장 좋아하는 음악, 좋아하는 음식이 무엇인지. 어떻게 스트레스를 푸는지와 같은 질문에 편하게 대답할 수 있게 된 것부터 많이 달라졌다.
그래서 2019년 To-do는요?
A. 어떤 포지션으로 나아가게 될 것인가? 를 러프하게 그려보자.
내가 가진 강점을 잘 섞은, 나 같은 디자이너의 모습은?
웹 모바일 매체에 대한 이해는 항상 기반이 되어야 한다.
조형에 대한 공부.
사진과 영상에 대한 공부
그리고 비즈니스에 대한 감각. 어쩌면 비즈니스라는 건, 일이 되게 만드는 것. 사람을 잘 다루는 게 꽤나 큰 부분을 차지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열심히 더 노력해야겠지만, 아직까지도 현란한 그래픽 만들어내는 건 잘 모르겠다.
B. 모작 많이 하기.
- 타이포그래피에 대한 깊은 관심, 그리고 사고하는 모양이 수렴적인 쪽에 가깝다면 프로덕트 디자이너에 도전해볼 만하다는 조언을 받았다. 모든 디바이스에서 일관되게 의도한 설계 형태를 구현해내는 것. 매체에 대한 빠삭한 이해부터 시작이다. 그럼 지금 이 상태에서, 어떻게 개발에 대한 공부를 가성비 좋게 해낼 것인가. 에 대한 물음이 남아요.
- 작년엔 백지부터 하드 코딩해서 아웃풋을 냈으니까, 이번엔 프레임웍 혹은 서드파티 서비스들을 이용해서 조금 더 멋지고 그럴듯한 웹사이트를 만들어보자. 백지부터 작업할 땐 프론트-백엔드에 대한 아주 넓고 얕은 수준의 이해를 할 수 있었지만, 최종 아웃풋은 역량의 한계에 부딪혀서 결국 제대로 내지 못했다. 서드파티 서비스의 힘을 빌어 조금 더 완성도 높은 개인 웹사이트 v2를 제작해보자. 프레임웍,서드파티를 쓰면서 부딪히는 한계들이 생겨날 것이고, 이 지점에서도 배울 것들이 쏟아져 나올 거란 생각.
C. 내 퍼스널 컬러에 이름을 붙여주자.
2017년 초에 명함을 만들면서 정한 내 퍼스널 컬러는 2019년 1월이 된 이 시점까지도 꾸준히 잘 사용됐다. 웹사이트, 명함, 카톡, 브런치 커버까지. 내가 좋아하는 책에서 이런 말을 했다. 브랜딩은 약속이고, 꾸준함이다. 아웃풋의 퀄리티를 떠나 지금까지 꾸준하게 잘 써오고 있단 것만으로도 잘한 일이다. 그러니까 올해는 꼭, 내 퍼스널 컬러에 이름을 붙여서 내 브랜드에 더 힘을 실어주자.
D. 조금 더 자신감을 가져도 될 것 같아.
난 나 자신을 너무 과소평가하는 경향이 있다. 부족함을 느끼는건 항상 나를 앞으로 나아가게 하는 원동력이 되주었지만, 그게 나를 쭈구리로 만들 정도까지 깊어질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생각해보면 대학 이후로 내가 꿈꿔오고 설계했던 커리어 패스 그대로 모든 일들이 잘 이루어졌다. 당장 이번 인턴 경쟁률이 350:1이었잖아. 지금까지 잘 해왔고, 앞으로도 잘할 거니까 기죽지 말자.
대책 없이 이리저리 찍어만 두었던 커리어 패스의 점들이 조금씩 수렴해나가는 느낌도 든다. 인턴을 하고 난 후의 가장 크고 또렷한 수확이다.
고생했고, 앞으로도 고생할 거지만 행복하자.
태욱이 화이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