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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태욱 Jan 11. 2019

PORTO. 1

포르투 21일, 살아보는 여행의 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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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시 30분, 포르투 공항에 도착했다. KLM을 타고 왔는데 타야하는 두 개의 항공편 모두 티켓에 적힌 도착 예정 시각보다 30분이나 일찍 도착했다. 딜레이도 없고, 심지어 인천-암스테르담 구간은 이-착륙 때를 제외하곤 안전벨트 사인이 한 번도 안켜질정도로 쾌적하고 안전한 비행이었다. 다만 비행시간이 너무 길어서 지겨워 죽을 뻔. 밤 비행기라 중간 중간 잘 수 있어서 그나마 다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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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리스네 집에 도착했는데, 조제 어머님이 계셨다. 영어를 하시지 못했지만, 몸짓 발짓으로 엄청 최선을 다해서 집에 대해 설명해주셨다. 에어비앤비 다니면서 이렇게 정성스럽게 하나하나 다 챙겨주는 호스트는 처음이었다. 방도 꽤나 큰 사이즈고, 웬만하게 필요한 것들은 모두 구비되어있다. 3주간 살 집에 내 짐들을 풀었다. 그리고 2시쯤되어서 밖으로 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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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 근처 동네가 너무 좋다. 내가 딱 생각했던 그런 모습이다. 조용하고, 한국인 없고, 그 나라에서 사는 사람들의 모습을 구경할 수 있는 곳. 한국으로 따지면 삼각지, 공덕 같은 느낌이 들었다. 상벤투역까지 20분 25분 정도 걸었다. 포르투는 사이즈가 아주 귀엽다. 속초에서 뚜벅이 여행하던 기억이 떠올랐다. 그 정도 사이즈인 것 같다. 지도를 열심히 보지 않아도, 이리저리 걷다보면 중심부까지 쉽게 도착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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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 더 애정을 갖고 이 도시를 살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도시 브랜딩의 좋은 사례로 유명한 포르투. 사이니지들이 너무나도 깔끔하고 이쁘게 잘 정돈되어 있었다. 특히 포르투 로고타입의 뚱빵한 서체와 뒤에 찍인 마침표가 귀여웠다. 여기에 꽂혀버렸다. 볼 때 마다 그냥 기분이 좋았고 사진을 계속 찍었다. 다음엔 요것들만 모아서 글 써야지. 결론적으로 내 포르투의 첫인상은 귀엽다는 말로 표현될 수 있겠다. 도시도 귀여웠고, 도시를 표상하고 있는 브랜드 이미지도 귀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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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심 관광지, 상벤투역에 가까워질수록 어디선가 많이 본 모습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명동으로 들어가는 것 같은 기분이었다.  동시에 관광지 근처에 숙소를 안잡길 정말 잘했다는 생각을 했다. 현지인보단, 외국인들이 훨씬 많아보였고 마음이 짜게 식어가기 시작했다. 그런 상태에서 동루이스 다리를 만났다. 숨이 멎을 정도로 좋진 않았고 멀리서 보는 것 보단 가까이서 봤을 때가 더 좋았다. 밤에 또 가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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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벤투역 근처의 맥도날드에서 CBO (치킨-베이컨-어니언) 버거를 먹었다. 난 버거 덕후니까. 세트가 8500원이다. 한국보다 훨씬 비싸다. 포르투갈 물가 싸다는 얘길 많이 들었는데, 아직까지 체감상 그렇게 저렴한지는 잘 모르겠다. 타 서유럽국가 대비 저렴한건 맞는 것 같고 동유럽보단 확실히 비싼 것 같다. 한국이랑 비슷한 정도? 마음 놓고 편하게 돈 쓸 생각하고 왔는데, 자꾸 남은 예산을 의식하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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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벤투역 내부에서 인상적이었던 것은 천장 벽쪽의 유리창. 노란색 햇빛이 노란 유리창을 뚫고 들어가 노란색 타일에 묻었다. 가까이서 계속 지켜봤다. 어떻게 노란 타일을 붙일 생각을 했을까? 이 그림을 미리 예상했던걸까. 사진이 다 뭉개져서 잘 안보이는게 넘나리 아쉽다. 미러리스 갖고 가봐야겠다.






역사가 오래된 도착 예정 안내판. 얼마나 많은 사람과 마주했을까. 그리고 그 뒤에 세워진 현대식 전광판. 두 개가 같이 오버랩되는 그림도 흥미로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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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리퍼가 사고 싶었다. 집 근처 쇼핑센터와 슈퍼마켓을 샅샅히 두 시간동안 샅샅히 뒤졌지만 끝내 찾을 수 없었다. 슬펐다. 기분이 안좋았다. 너무 많이 걸어서 허리가 아팠고, 슈퍼마켓에서 슈퍼복 한 병 사서 집으로 들어왔다. 뒤늦게 피로가 엄청나게 몰려왔고 침대에서 뻗어버렸다. 그런데 자면서 이 숙소의 치명적인 단점 하나를 발견했다. 숙소는 아파트 1층에 있는데, 내 방이 1층 출입문 현관 복도와 맞닿아있다. 그래서 누군가가 복도로 들어가면 그 소리가 모두 다 내 방에 들린다. 한 때 벽간소음으로 한국에서 고통 받은적이 있어서 소음이 굉장히 예민한데, 3주나 머물러야할 숙소에서 이런 문제가 생겨서 갑자기 엄청나게 우울해졌다. 돈 버리고 다른 숙소로 넘어가버릴까 싶은 생각도 들었다. 퇴근시간이 되면서 더 시끄러워졌다 흑흑. 자다 깨다를 반복했고 엘리스 집엔 아무도 없었다. 엄청 우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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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 열 시 반이 넘어서 엘리스가 도착했고, 처음으로 인사를 나눴다. 게스트가 아니라 이제부터 친구고, 가족이다. 내 집처럼 편하게 지내란 얘길 들었다. 그리고 실제로도 집에 있는 모든 공용 공간과 물건들을 내 집처럼 쓸 수 있게 해주었다. 그리고 엘리스는 테이블에 앉아 두 시간이 넘도록 포르투에 대한 모든 것들을 알려주었다. 관광지-로컬 맛집-와인, 와이너리-여행 중 비상 시 대처 방법까지. 처음 도착했을 때의 엘리스 어머님도 엄청나게 친절하셨는데, 감동 2연타. 어떻게 이런 호스트가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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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 열 두 시 반. 내 방으로 돌아왔다. 이제 다들 자는 시간인지 복도는 조용했다. 엘리스가 너무나도 사랑으로 케어해줘서, 그냥 시끄러울 땐 이어플러그 끼면 되지. 라고 편하게 생각하게 됐다. 이렇게 된 것도 결국 내 손으로, 내 선택에 의해서 일어난 것이니 너무 스트레스 받지 않기로 했다. 행복하러 온 여행이니까. 좋은 것들만 생각하기도 부족한 시간들인데 말이야. 정말 푹신하고 아늑한 침대에서, 포르투갈에서의 첫 날 밤을 맞이했다.





1월 10일 (목) - 40,079원 지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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