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권태욱 Jan 13. 2019

PORTO. 3

포르투 21일, 살아보는 여행의 기록

어김없이 시작된 아침. 벌써 일기가 3일째를 향해가고 있다. 매일 쓰자고 결심한 건 아닌데, 하루에 하나씩 작은 성취를 이루어보는 것도 좋겠단 생각이 들었다. 3주나 이 곳에서 머무르게 됐으니 시간 여유도 있고. 급하게 움직일 필요가 없다. 정해놓은 것을 오늘 못했으면 내일 하면 되고, 오늘 정말 좋았던 걸 내일 또 볼 수 있다는게 참 좋다. 여행 기간이 길면 마음가짐이 달라지는구나.


분명 시차적응을 잘 했다고 생각했는데, 밤 11시되면 졸리고 이르면 아침 6시되면 눈이 번쩍 떠진다. 한국시간으로 바꿔보면 아침 7시에 잠들어서 오후 4시쯤 일어나는 패턴. 언제쯤 포르투에서 푹 늦잠 자고 일어나서 눈 뜨면 해가 떠있는 걸 볼 수 있을까. 지금 쓰고 있는 일기도 사실 어제 밤에 너무 피곤해서 자고 일어나서 아침 일찍 새벽에 쓰는 것. 하루 지난 일기를 쓰고 있습니다.





전 날 밤에 저녁을 많이 먹어서 아침 조식 때 요거트가 먹고 싶었다. 속을 비우고 싶었거든. 냉장고에 있는 플레인 요거트를 꺼내서 뜯었는데 한국의 그것과는 모양도 식감도 달랐다. 껍데기를 뜯었는데 요거트가 아래, 투명한 물이 위에. 두 겹의 레이어가 나있었다. 조그만 덩어리도 져있길래 상한건가 싶어서 유통기한을 살펴봤다. 다행히 상한건 아니었다. 덩어리의 식감이 너무 이상해서 잼이랑 시리얼을 엄청 섞어먹었다. 좀 나았다. 요거트 좋아하는데 이건 따로 마트에서 사먹는걸로.





방에서 조식을 먹기 시작했다. 어제보다 햇빛이 조금 더 좋은 아침이다. 베이지색 바지에 주름이 많이져서 조제 어머님께 다리미를 빌려달라고 했다. 그랬더니 기꺼이 자기가 옷을 다려주겠다며 please, por favor. 옷을 두고 가라고 했다. 전날엔 살짝 우울했는데, 아침부터 기분이 확 좋아졌다. 후기에서 다들 극찬하던 것 처럼 여긴 정말 역대급 에어비앤비가 맞았다. 빨래도 건조까지 다 해주시고, 설거지도 뺏아가신다 흑흑. 물론 숙소의 물리적인 단점이 몇 가지 있지만 그게 아무렇지 않게 느껴진다. 참 신기하다. 포르투에서의 좋은 기억은 숙소에서 많이 가져가게 될 것 같은 느낌.


여러분, 여깁니다.


누이 좋고 매부 좋고. 저의 추천인 코드입니다. 사랑해요.




볼 때 마다 기분 좋아지는 포르투 로고 타입
멍멍이


내일은 주말이니까, 와인샵에서 포트와인을 사둬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어제는 시내까지 지하철타고 다녔는데 아무래도 밋밋한 느낌이 들었다. 목적지까지 걷다가 우연히 발견하는 풍경들이 좋을 때가 훨씬 많았는데. 그래서 오늘은 와인샵까지 걸어갔다. 아니나 다를까 지하철 탔으면 못봤을 풍경들을 많이 만났다. 어제 밤 유명한 관광 스팟 히베리아 광장에서 동루이스 다리 보는 것 보다 훨씬 행복하고 좋았다. 별거 없어보이는데 그냥 이런 평범하고 소박한 풍경들을 보면 마음이 벅차오른다.





매번 가던 큰 길로 가려다가, 일부러 골목으로 들어가봤다. 근데 망원동 스멜나는 가게들이 하나 둘씩 보이더니 점점 더 가보니까 아예 그냥 여긴 망원동이었다. 사진을 몇 개 안찍어둬서 아쉽. 숙소에서 10분만 걸어가면 망원동이 있다니! 나 망원동에서 살고 싶었는데. 여기도 매번 가던 길로만 갔다면 아마 못봤을 모습일 것이야.




가는 길에 #당신의포르투갈은어떤가요 에서 만난 조그만 소품샵에 들렀다. 이쁘고 귀여운 것들 짱짱 많고, 느긋하게 흘러나오는 재즈 음악이 참 좋았다. 비누케이스로 쓸만한 조그만 양동이가 눈에 들어왔고 6유로에 샀다. 비누케이스 엄청 필요했는데, 딱이었다. 안사면 계속 생각날 것 같아서 사버림.


PATCH Lifestyle Concept Store

Rua do Rosário 193, 4050-124 Porto





소품샵을 나와서 다시 와인샵 가는 길. 작은 갤러리들이랑 편집샵들이 있었고 점점 더 기분이 좋아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만난 행복한 플리마켓. 광장에서는 기분 좋은 음악이 흘러나오고 있었고 햇빛이 이쁘게 내려앉았다. 사람들은 의자에 앉아서 음악 들으면서 햇빛을 즐기고 있었다. 이런 풍경들을 보는게 너무 신나서 계속 웃음이 났다. 나는 이런걸 참 좋아하는구나.





와인샵 도착. 호탕한 삼촌형님이 와인 고르는걸 도와줬다. 영어도 잘 하시고 친절하다. 테이스팅이 가능하다는 얘길 듣고 왔는데, 작은병 사서 그런지 테이스팅은 못했다. 화이트/레트 포트와인 작은 사이즈로 한 병씩 구매! 중심부 관광지에 있는 와인샵보다 2-3유로는 더 싼 가격에 샀다.


Garrafeira do Carmo

R. do Carmo 17, 4050-064 Porto





깔끔하고 자극적이지 않은 홈메이드 푸드를 파는 가게. 여기도 편안하고 친절하게 서빙해주신다. 포르투 현지의 젊은 친구들이 많이 찾는 가게 같았다. 한국스러운 메뉴들이 있어서 재밌었다. 김치브라운라이스랑 구기자차. 김치브라운라이스랑 이것 저것 마실 것들을 주문했다. 살짝 짰는데 건강한 음식을 먹는 모순적인 기분이 들었다. 아마 쌀이 현미같은 느낌이 나서 그런게 아닐까 싶다. 밥 먹고 롱블랙 아이스 한 잔 마셨고, 전 날 일기를 쓰고 나왔다.


Época Porto

Rua do Rosário 22, 4050-522 Porto





집 가서 사온 와인 마시면서 쉬다가, 동 루이스 다리 건너 수도원 꼭대기에서 야경 봐야겠단 생각이 들었다. 카메라 챙겨서 두 시간만에 다시 집에서 나옴





미친. 노을이 나를 감싸는 것 같았다. 엄청나게 큰 스크린 앞에 앉아 있는 기분. 매직 아워 때 엄청나게 많은 가지 수의 그라데이션을 만났다. 가만히 앉아서 야경 불빛 위에 얹힌 하늘 구경했다. 사진은 별 의미가 없는 것 같아서 많이 찍진 않았다. 너무 강렬해서 눈으로만 담아둬도 충분해보였다.


iradouro da Serra do Pilar

Largo Aviz, 4430-999 Vila Nova de Gaia





털래털래 집으로 걸어가는 길. 걷다가 문득 언제쯤이면 구글 맵에서 해방될 수 있을까 싶은 생각이 들었다. 아직까지 포르투의 지리가 내 손 안에 잡히지 않는 느낌이다. 지난 유럽 여행 때를 생각해보면, 거리가 익숙해져서 구글 맵을 안켜고 다녀도 될 즈음부터 슬슬 재밌어지기 시작했다. 중요한건 그 때 쯤 되면 짧은 여행 일정에, 이미 다른 나라로 움직여야해서 항상 아쉬웠다. 길이 익숙해져서 지도를 안보고 다닐 때 쯤이면 더 많은걸 보게 되고 마음이 좀 더 편해질까. 지도를 내려놓자.





그냥 집에 들어가기 좀 이른 시간이기도 하고, 아쉬워서 문어샐러드 맛집이라는 곳을 찾아갔다. 포르투 식당들은 음료의 온도를 기가막히게 잘 맞추는 것 같다. 어제 먹었던 맥주와 샹그리아도. 오늘 먹은 맥주도 기가 막히게 맛있는 온도였다. 문어는 처음엔 살짝 딱딱한 듯 하더니, 계속 씹을수록 쫄깃쫠깃한 식감을 느낄 수 있었다. 요런게 맛있는 문어일까. 싶은 생각을 함. 홀에서 서빙하는 누나인지 친구인지 모르겠지만 엄청 쾌활하고 활기차있었다. 자기가 하고 있는 일을 엄청 즐기고 있는 것 같아보였다. 그래서 나도 덩달아 기분이 좋아졌다.


Taxca

Rua da Picaria 26, 4050-477 Porto




내일은 일요일이니까, 마트에서 장 보고 들어가야겠단 생각이 들었다. 오늘은 베를린에서 많이 봤던 LIDL에 가보기로 했다. 마트에 뭐가 어디에있는지 아직 낯설어서 장보는데 시간이 엄청 많이 걸린다. 몇 개 사지도 않았는데 40분 정도 걸린 것 같다. 우리나라라면 홈플러스나 이마트가면 내가 찾는 모든게 다 있는데, 여긴 그런 느낌이 아니다. 가게마다 파는 물건들의 분업화가 잘 되어 있는 느낌..? 좀 불편하고 답답하긴하다. 그린와인이랑 샐러드야채, 과자랑 견과류 등등을 사서 집으로 들어갔다.


Lidl

R.Agramonte 33, r.m.f.soares 179-307, 4150-335 Porto




간단한 포르투갈말을 알아두면 여행이 더 재밌어질 것 같아서 살짝 공부하다가 잤다. 넘나리 피곤해서 눈 감으면 바로 잠든다.



끗.




1월 12일(토) 59,926원 지출


이전 02화 PORTO. 2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