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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태욱 Feb 03. 2019

VANVES.3

내겐 너무 친해지기 어려운 도시, 파리


오늘 아침에 에어비앤비 호스트에게 혼이 났다.


호스트: Kay, You didn't turn off the light last night.

나: Oh i didn't know that. I am so sorry.

호스트: You should be careful.
(정색하면서) How could you do that?

나: (이 때부터 약간 당황함) I'm really really sorry.
let me be careful and keep that in mind. so sorry

호스트: (대답 없음)

(정적)


기분이 이상했다. 분명히 나 여기 돈 내고 머무르고 있는데 혼이 나다니. 40만원이나 냈는데? 당연히 내가 잘못한게 맞지만, 고의로 그런 것도 아니었고 다음부턴 절대 절대 안그러겠다고 진심으로 미안함을 전했는데 대꾸도 안해주다니. 아침부터 기분이 너무 안좋았다. 이렇게 예민할거면 애초에 에어비앤비를 오픈하면 안되는거 아닌가 싶은 생각부터 시작해서 포르투 에어비앤비 호스트 엘리스가 너무 그리웠고 갑자기 파리에 대한 정이 뚝 떨어지려고 했다.


프랑스는 아직까지 나에게 좀 어려운 나라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이 나라 문화에 대해서 조금 더 알아봐야겠단 생각이 들었다고 어제 일기에 썼는데 오늘은 그 이유를 좀 알 것 같다. 음식 먹는 예절부터 시작해서 기본적인 국민성, 사소한 에티켓들까지 우리 나라랑 미세하게 다른 점들이 꽤 많고 그게 계속 나랑 부딪히고 있었던 것.

그래서 오늘은 컨디션 조절도 할 겸, 좀 일찍 들어와서 프랑스 문화에 대해서 이것 저것 알아보기 시작했고 새롭게 몇 가지 사실들을 알게됐다. (출처는 유튜브, 구글링. 틀린 정보일 수도 있다.)



1. 손님은 왕이 아니다.
2. Bonjour, merci, sil vous plait 은 항상 입에 붙이고 다녀야한다.
3. 어릴 때 부터 예절교육을 꽤나 엄하게 받는 편이고, 그래서 예절 지키는 걸 중요시한다.
4. 다른 집에 초대 받은 상황에서 먹으라고 차려준 음식을 절대 남기지 말기.
5. 뭔가 잘못된 게 있으면 상대방에게 말하는 걸 주저하지 않는다.
6. 대부분 영어를 하지만 잘 쓰지 않는 이유가 불어에 대한 우월의식이 있어서 그렇다기 보단, 본인이 영어를 잘 하지 못한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라고 한다.
7. 메트로역에서는 무조건 오른쪽으로 걸어다니세요.
8. 문 열 때 뒷 사람 따라오면 문을 꼭 잡아주세요.


몇 가지 포인트들을 보면서 오늘 아침 호스트의 태도가 조금씩 이해되기 시작했다. 생각해보니까 집에 도착한 첫 날 호스트가 나한테 스프 꺼내줬는데 입맞에 안맞아서 남기고 버렸던 것도 생각보다 더 많이 무례한 행동이었다. 나한테 입맞에 맞냐고 물어봐서 예의상 good이라고 얘기했는데 양이 꽤 많았고 도저히 다 못먹을 것 같아서 그냥 남겨버렸다. 어쩐지 이거 어떻게하면 되냐고 물어봤을 때 호스트 표정이 별로 좋지가 않더라. 그냥 입맞에 맞냐고 물어봤을 때 눈치보지말고 No 라고 얘기했으면 더 나았을까.


내 마음은 그런게 전혀 아닌데 이런 미세한 타이밍의 차이가 갈등을 낳고 있는 것 같아 속상하고 마음이 아프다. 호스트가 항상 머무르고 있는 개인실 에어비앤비를 굳이 선택한 것도, 호스트랑 조금 더 많은 얘기를 나누고 정서적으로 교류하고 싶은 마음 때문이었는데 속상해 속상해. 호스트는 그냥 그 때 그렇게 얘기하고 털어버렸을 수도 있겠다 싶은데 그냥 자꾸 내 마음이 불편하다. 내가 먼저 호스트한테 찾아가든 왓츠앱으로 말을 꺼내든 이야기를 시작해봐야겠다. 친하게 지내고 싶은데.






그래서 지금부터 3일차 파리 여행 일기


1. 프랑스 맥날 비싸고 노맛



인스타 스토리에 올렸더니, 맥날은 노맛이니 FIVE GUYS를 가라고 (파리를 사랑하는) 동생에게 또 혼 났다.




2. 아침에 기분이 안좋았지만 털어내자.



호스트한테 혼나고 기분이 안좋은 상태로 오르세 미술관에 갔는데, 미술관 앞에서 처음보는 사람끼리 갑자기 버스킹하는거 보고 기분이 확 좋아졌다. 확실히 포르투보다 버스킹 퀄리티가 평균적으로 높다. 아직 몇 번 못보긴 했는데 어 구린데? 싶은게 별로 없었다. 포르투에선 어중간하게 구린 것들이 좀 많았는데. 차갑고 도도하지만 매력적이라는 이 도시의 첫인상이 이런데서 왔던게 아닐까.





그리고 오르세 입장 후에 확 피곤해졌다가 공원에서 노는 애기들 구경하면서 힘이 났다. 그냥 애기랑 강아지 고양이 보면 사르르 녹아버리는건 부정할 수 없는 나의 종족적 특성인가보다. 드디어 파리에서 처음으로 필카 사진도 몇 장 찍었다. 멋진 유적지 박물관 보는 것도 좋긴한데, 그냥 그 나라 사람들 어떻게 사는지 구경하는게 훨씬 더 마음에 와닿고 즐겁다.


내가 좋아하는 여행의 모습이 점점 더 뚜렷하게 드러나고 있다. 아직까지 나에게 파리는 조금 더 불호에 가까운데 어쩌면 포르투와 파리, 정반대의 성격을 가진 두 도시를 연달아 방문했기 때문에 그래서 더 명확하고 빠르게 내 마음의 방향을 알아차린 걸수도 있겠다. 어쨌거나 나는 크고 화려한 것 보단 작고 사소하면서 소박한 것들을 만나는걸 좋아하는게 맞다. (사실 오늘 그냥 미친척하고 포르투로 다시 넘어갈까 싶은 생각도 잠깐했지만, OUT이 파리라는 사실을 깨닫고 포기했다. 그만큼 포르투가 너무 좋았다.)





시무룩했다가, 존맛탱 쌀국수를 먹고 기분이 좀 나아짐.





밥 먹고 나왔는데 드디어 오늘 처음 파란 하늘을 만남




노란 조끼 시위 때문에 6정거장 정도 무정차해서 어쩔 수 없이 조금 돌아가게 됐다. 가는 길에 만난 레고샵. 애기들 천국이었고 레고 너무 많아서 약간 업됨. 나는 알맹이 조그만 레고보다 큰 걸 좋아함.





진짜 말도 안되게 허름한 집 앞 빵집에서 산 80센트짜리 바게트인데, 어이없게 엄청 부드럽고 맛있어서 계속 뜯어먹었다. 겉바속촉의 정석. 파리에서 제일 오래됐다는 빵집에서 크로아상, 에끌레어, 마카롱도 사왔는데 이 세상 맛이 아니다. 내가 먹어본 마카롱 중에 제일 맛났고 크로아상도 완전 겉바속촉에 쫀득하기까지 했다. 여운이 남는 맛이다 정말. 별로 관심도 없는 궁전같은데 가지 말고 빵집 투어를 해봐야겠단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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