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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ideways May 22. 2019

평화의 시대, 웰컴 문(Moon)! 굿바이 처칠!

지금 한반도에는 전쟁의 귀재가 아니라 협상가가 필요하다



윈스턴 처칠 (사진=Wikimedia Commons)

세계 최고의 지도자를 꼽으라면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인물이 있다. 바로 윈스턴 처칠(Winston L.S. Churchill)이다. 그는 2차 세계대전 시기 영국 총리를 지냈다. 1939년 9월 1일, 나치 독일이 폴란드를 침공하자 영국과 프랑스가 독일에 선전포고를 하며 제2차 세계대전이 발발했다. 히틀러의 독일은 파죽지세로 진격해 유럽 전역을 순식간에 손에 넣었다. 결국 1940년 5월 10일, 기존 총리 보수당 네빌 체임벌린(A. Neville Chamberlain)이 사임했다. 히틀러의 간계를 전혀 파악하지 못하고 보기 좋게 놀아난 데다 제대로 맞붙은 노르웨이 침공에서도 패배하여 국민적 비난이 쏟아졌기 때문이다. 그 자리를 바로 같은 당 윈스턴 처칠이 대신했다. 그는 일본 항복 직전인 1945년 7월 26일까지 집권했다. 승리를 위해 노동당과의 대연정도 마다하지 않는 등, 발군의 리더십을 발휘해 전쟁을 승리로 이끌었다.

나치의 선동선전 문구 (사진=처칠박물관, 런던, 권용진)

처칠은 나치의 악몽이었다. 위의 사진은 나치의 선동선전 문구이다. 윈스턴 처칠을 가리켜 "the man who invented the bomb war against civilians(민간인 폭격 전쟁의 발명자)"라 비난하고 있다. 전쟁의 화신 나치는 역으로 처칠을 전쟁광으로 몰아가곤 했다. 처칠은 히틀러의 나치당이 집권하자 곧장 독일의 재무장을 경고하며 영국더러 군비를 증강해야한다 닦달했다. 나치의 절박하고 아니꼬운 심정을 알 만하다.

처칠을 보면 대북강경론을 고수하는 소위 '보수'들의 마음을 어림짐작할 수 있다. 나치는 오스트리아를 점령한 1938년까지도 전쟁 의도를 부인했다. 당시 영국 수상 체임벌린이 뮌헨까지 날아가 독일 수상 히틀러와 협상을 벌였고, 그 결과로 '뮌헨협정'이 탄생했다. 협정은 "더 이상 영토 확장을 추구하지 않겠다"는 히틀러의 다짐을 골자로 했다. 체임벌린이 전용 경비행기에서 내리며 하얀색의 협정문을 한 손으로 휘두르는 장면은 아주 유명하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네빌 체임벌린 (사진=LONDON REMEMBERS)

"여기(제 손에) 평화가 있습니다. ... 나는 이것이 우리 시대의 평화라 믿습니다. ... 이제 우리 앞에는 평화가 확대될 일만 남았습니다."

이를 두고 처칠은 "우리는 완전하고도 절대적인 패배를 목도했다"고 평하며 영국이 전쟁으로 고통받을 것이라 한탄했다.

뮌헨협정 이후 히틀러와 나치는 신나서 길길이 날뛰었다. 나치 선전부장관이자 악랄하기로는 히틀러에 버금가는 요제프 괴벨스(Paul Joseph Goebbels)가 남긴 기록이나 당시 관련 문헌을 살펴보면 알 수 있다. 영국이 히틀러의 말만 곧게 믿고 유럽 대륙에서는 손을 뗄 것이니, 이제부터 ‘하고 싶은 거 다 해’도 된다는 확신을 얻은 것 같다. 실제로 1938년 뮌헨협정을 기점으로 유대인 학살(포그 롬, Pogrom)은 더욱 악랄해지고 규모도 확대되었으며, 나치는 군사력을 확대하여 고삐 풀린 망아지처럼 폭주할 채비를 마쳤다.

분명 2차 대전 발발 직전 영국 지도부는 말로만 평화를 외쳤다. 지도력에 확신을 주어 여론을 잠재우기 위해서였다. 겉치장에만 몰두하다 보니 물밑에서 책동되는 음모는 포착하지 못했다. 결과는 인류 역사상 가장 참혹한 전쟁이었다. 상대방에 대한 철저한 탐색과 실질적인 조치 없이 말로만 외치는 평화가 얼마나 허망한지를 잘 보여주었다.

일반적으로는 이 시기에 ‘세력균형’이 깨졌다고 평가한다. 즉, 군사력이나 경제력이 한쪽(나치 독일)으로 급속히 기울어 전쟁을 일으킬 유인을 제공했다는 것이다. 6.25 전쟁도 크게 다르지 않다. 남한의 허술한 국방과 미국의 소극적인 태도가 북한 김일성과 소련 스탈린의 전쟁 욕구를 부추겼다고 볼 수 있다.

1938년 9월 30일 뮌헨, 영국 수상 체임벌린과 독일 수상 히틀러 (사진=Wikimedia Commons)

대한민국 ‘보수’는 아마 이런 상황을 경계하며 ‘세력균형’을 맞춰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 같다. 한국, 특히 남한은 역사적으로 침략당하기 일쑤였다. 중국의 속국이었고, 일본의 식민지였으며, 북한 인민군과 중공군이 짓밟은 땅이었다. 경계심이 깊게 뿌리내릴 법하다. 그 연장선상에서 보수는 아주 강한 경계심을 갖고 있다. 대한민국의 안보를 조금이라도 위협하는 모든 국가는 적국으로 간주한다. 북한이 그렇고, 일본이 그렇고, 중국이 그렇고, 러시아도 그렇다. 얼마 전 북한이 자국 영해 내에서 미사일을 발사했을 때 “문제없다”라고 말한 미국 트럼프 대통령도 비난을 면치 못했다. ‘이번에 쏜 미사일은 대한민국에 위협인데, 너희 일 아니라고 함부로 말하지 마라’는 식이었다.

평화외교를 지향하는 민주정부, 특히 문재인 정부는 가장 큰 비판 대상이다. “평화를 구걸한다”, “나라 팔아먹는다”, “북한에 또 속는다”는 비난은 이제 뻔한 레퍼토리가 되었다. ‘보수’는 북한을 신뢰하지 않는다. 공산주의에 빠져 동족상잔의 비극을 일으키고 최근까지도 끊임없이 군사도발을 지속해온 주범이기 때문이다. 북한을 믿고 인도적 지원을 해주거나 경제제재를 해제하는 것은 “쌀 퍼주고 핵 돌려받기”에 지나지 않는다. 재미나게도 이런 레퍼토리는 80여 년 전 처칠을 위시한 대(對) 독일 강경파가 체임벌린에게 가한 비판과 아주 닮아있다. 현실 인식에서나 해결책 제시에서나 지금 우리나라 보수는 윈스턴 처칠과 거의 동일한 사고방식을 가졌다고 할 수 있다. 아마도 이는 “역사로부터 배우겠다”는 의지에서 기인할 것이다.

그러나 역사에서 현실 해결의 정확한 지침을 얻겠다는 발상은 환상에 불과하다. 시대가 변하면 상황을 둘러싼 조건도 달라질 수밖에 없다. 조건이 달라지면 당연히 접근법도 달리해야 한다. 역사에서는 추상적인 교훈만 얻을 수 있을 뿐이다. 구체적 문제를 동일한 방식으로 바라볼 수 없다. 특히 정치나 외교 문제에는 국내 정세, 국제정세, 상호 무역의존, 지도자의 리더십, 이념과 사상 등 셀 수 없이 많은 변수가 끼어있다. 상황을 유형화하여 일관된 처방을 내리기가 사실상 불가능하다. 체임벌린의 몰락은 상황 판단 실수 탓이기도 했지만 노력 부재와 대응 실패 탓이기도 했다. 우리나라 평화외교에 그대로 끼워 맞출 수 없다. 비극의 역사를 반복하지 말자는 보수의 애국심은 칭찬할 만하지만 접근방식은 지극히 ‘옛것’이고 구시대적이다.

오늘날 문재인 정부가 펼치는 평화외교는 체임벌린 때와는 달리 유효하다. 거의 모든 나라가 경제적으로 상호 의존하는 오늘날, 주요 국가 간 전쟁 가능성은 제로에 수렴한다. 요컨대 미중 무역전쟁이 확대되고 있어도 실제 전쟁으로 비화되기란 불가능하다. 둘은 여전히 상대국 국채의 최대 소유주이고, 상호 투자액도 가히 상상을 초월한다. 상대가 무너지면 나도 무너지는 상황에서 전쟁이 터지면 결과는 ‘루즈-루즈(LOSE-LOSE)’일 뿐이다. 미국과 중국이 종종 거하게 힘을 겨루기는 해도 그것이 실제 군사력을 동원하는 전쟁으로 이어지지는 않는다.

북한도 다르지 않다. 이미 세계경제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윈-윈 게임(Win-win game)'을 하고 싶어 할 뿐이다. 북한은 2018년부터 갑작스레 태도를 바꿔 비핵화·개방을 천명했다. 이제는 우리나라를 통해 미국과 협상하며 경제제재를 해제해달라고 요구한다. 세계경제에 어떻게든 다시 편입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전쟁은 그들에게도 곧 멸망이고, 이념이나 명예, 자존심 따위를 지키기 위해 생명이나 재물을 포기하기란 불가능하다. 그들이 그렇게 움직일 거라고 생각하는 것 자체가 이미 구시대적이다.

김정은이 개인 의지로 전쟁을 일으킬 수 있다는 우려도 있다. 그러나 북한의 1인 독재도 이제는 전제 황권처럼 기능하지 않는다. 김정은 아래에는 경제파와 군부파로 대표되는 수많은 세력이 존재하고 김정은은 그들 사이의 균형을 맞추려 발버둥 친다. 체제를 관료 세력이 떠받치는 판국이니 관료 세력 중 한 축이 등을 돌리면 그때는 숙청으로도 해결이 안 된다. 영화 <강철비>에서 나오는 것처럼, 김정은이 경제노선 편만 들어주면 결국 강경한 군부 노선에서 내란을 일으킬 수도 있는 노릇이다.

상황이 이러하니 북한 사회도 이제는 이념이나 맹목적 충성보다는 이익이나 정당성을 기반으로 굴러간다. 사람들이 이익이나 정당성을 중시한다는 것은 그들이 스스로를 '사회'의 구성요소 이전에 '개인'으로 여기기 시작했음을 의미한다. 개인으로서 인간은 자기 이익이나 생존을 최우선시하기 마련이다. 현재 상태가 평화라면 어떤 개인도 괜히 전쟁을 하고 싶어 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다른 나라로부터 신뢰를 얻고 공생하기를 원할 것이다. 북한에는 이미 자본주의가 침투했고, 해외 문물도 꽤나 많이 유입되고 있다. 북한 인민은 스스로의 처지를 어느 정도 짐작하고 있다. 김정은은 관료들의 충성을 얻어야 하고, 관료들은 인민의 봉사를 보장받아야 한다. 인민은 전쟁이 아니라 개방과 번영을 원한다.

시대가 바뀌면서 패러다임도 바뀌었다. 지금은 전쟁이 아니라 공존의 시대다. 그럴수록 남북정상이 서로 신뢰하고 협의해나가며 양국민이 평화를 확신할 수 있도록 유도해야 한다. 북한이 알맹이만 쏙 빼먹고 냉큼 뒤통수를 때릴 리는 만무하다. 천안함, 연평도 포격, 그리고 최근까지 수차례의 핵실험을 거듭하며 이미 세계 사상 최고 수준의 경제제재를 경험한 바 있다. 본인들이 뒤통수칠수록 세계가 등을 돌린다는 사실을 이미 깨달았다. 못되게 굴기보다 착하게 굴어야 떡고물이 떨어진다는 교훈을 얻었다. 이런 상황에서 마냥 "저 빨갱이들한테 속지 마라"는 말만 앵무새처럼 반복한다면 상황을 객관적이고 면밀하게 분석해보지 않았음을 자인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80년 전 영국, 전쟁론자 처칠은 시대의 부름을 받았다. 평화론자 체임벌린은 시대의 버림을 받았다. 2019년 대한민국, 우리에게도 체임벌린이 아닌 처칠이 필요할까? 1950년 6.25 전쟁 전후로는 무능하고 무책임한 이승만 대신 처칠이 필요했을지 모른다. 그러나 감히 단언컨대, 지금 우리나라에는 처칠이 필요하지 않다. 이제는 평화의 시대다. ‘적’을 잘 구별하고 잘 싸워내는 장군(General)이 아니라, ‘상대’를 잘 파악하고 잘 구슬려내는 ‘협상가(Negotiator)’가 필요하다.

2017년 5월 둘째 주 타임(TIME) 아시아판 표지 (사진=TIME)

그리고, 우리는 전 세계가 주목하는 협상가를 가졌다.


갈등과 반목의 시대를 넘어 평화의 시대로.

웰컴(Welcome), 문! 굿바이(Good-bye), 처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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