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나라 냉장고
김명섭
어느 나라 냉장고인지
문 열어 보니
윗칸에 살고 싶어 하던 상추
동상이 걸려 죽어갔다
바닥에 살던 몇 겹의 푸른 꿈도
말갛게 얼어
속이 비어도
당당하게 살던 대파
허리가 짓눌려
일어설 수 없는 도표를 그렸다
방부제 넣은 햄
색소 첨가한 포도주 등
몇 몇은 얼굴색도 안 변하고
의젓하게 살았다
바닥에 떨어진 당근
술 취한 노숙자로 뒹굴고
어디서 나는 냄새인지
얼른 문을 닫았다
책임자가 집을 비웠나
사용법대로 살지 않는 한
자신의 위치 지키지 않는 한
인공지능 자유 냉장고라도
개별 관리는 해주지 못 하나보다
저녁에는 식구들이 둘러앉아
졸린 눈 비벼가며
사용 설명서 다시 돌려 읽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