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명섭
도뢰이 비목
김명섭
전쟁의 긴 겨울 그림자 속에서
꼬인 생활만큼 길게 꼰 새끼로
튼튼하게 나뭇단 묶듯
남은 가족의 체온을 묶던 윤근이 아버지
못 먹어 부황난
식구들 뱃고래 채우기 위해
밤새 무릇과 송기를 고고
가난을 졸이던 수정이 할머니
흙 지게질로
옥양목 저고리 여섯 벌의 어깨가
모두 해졌다는
그렇게 신혼마저 해진 명섭이 엄마
화전을 일구고 일구어도
뿌리를 박는 잡초
캐 내 버릴 수 없었던 고향 생각
그 향수에 먼산바라기가 된 제홍이 고모
심장병 앓아 누운 자식 위해
차가운 구들장 데우려고
청솔 찍다가 산림 간수에게 들켜
자존심마저 찍혀버린 인태 아버지
도뢰이 피난민 수용소 언덕에는
가정을 살린 생활 전사들의
썩지 말아야 할 비목이 있다
남은 우리들의 앞날을 위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