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어디까지 "로봇"인데?
들어가는 글
: 요즘 로봇은 공학의 상징처럼 느껴집니다. 그런데 역설적이게도, 많은 사람이 로봇을 '알게'되었지만, 정작 '로봇'이 뭔지 잘 모르는 것 같기도 해요. 로봇과 AI는 다른 걸까요 같은 걸까요? 과연 로봇은 무엇일까요? [로봇은 내 친구]에서는 로봇공학자로서, 로봇이 무엇인지 그리고 로봇이 어디로 나갈지에 대해 써보려고 합니다. 사실 로봇공학자도 자기가 하는 로봇 빼고는 잘 모르고 역사는 더더욱 모르기 때문에 저도 공부하면서 씁니다. 사실과 다른 내용이 있으면 미리 사과드리며 적극적으로 고치도록 하겠습니다.
전편에서 나왔던 R.U.R이 서구 시장에 로봇이라는 단어를 소개했어도, 아이작 아시모프가 로봇공학의 3원칙을 부르짖어도.... 실제로 인간과 비슷한 로봇을 만들 수 있는 사람은 없었습니다. 물론 시도는 있었죠.
그중 대표적인 것이 웨스팅하우스(Westinghouse)라는 회사가 시연했던 일렉트로(Elektro)라는 로봇입니다. 이 일렉트로는 1939년 뉴욕 박람회장에서 전시되었습니다. 크기는 무려 2m 정도 되었고 피부는 알루미늄으로 되어있습니다. 이 로봇은 걸을 수도 있었고(물론 걷는 것보다는 미끄러지는 것과 같습니다), 안에 축음기가 내장되어 있어 내가 로봇이라고 말을 할 수도 있었으며 심지어는 풍선을 불거나 담배도 피울 수 있었습니다. 이렇게 말로만 설명하면 현재와 비슷한 수준의 로봇공학 기술이 있었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직접 유튜브에 가서 찾아보시면 그런 수준은 아닙니다.
하지만, 이 로봇이 1930년대에는 처음이었기 때문에, 그 당시 사람들은 혁신으로 받아들였겠죠. 그 뒤, 로봇에 관한 SF가 만들어지면서 로봇은 점점 무언가 다른 fancy 한 것으로 여겨지기 시작했던 것 같습니다.
그럼, 다른 형태의 로봇은 언제부터 만들어진 걸까요? 로봇의 개념은 어떻게 안드로이드, 혹은 휴머노이드 같은 인간형, 혹은 생물형 로봇에서부터 다양한 형태로 확장되게 된 걸까요?
그 원인은 조지프 엔젤버거(Joseph Engelberger)라는 사람에게서 나옵니다. 기계공학을 전공했던 엔젤버거는 한 칵테일파티에서 조지 데볼(George Deveol)이라는 사람을 만납니다. 이 데볼 아저씨는 아카데믹한 백그라운드는 없었지만, 개발자였고 엔젤버거에게 프로그램화된 물체 이송(PAT) 기기에 관한 얘기를 했었습니다. 한편 이 엔젤버거는 평소 아이작 아시모프의 팬이었는데, 그걸 듣더니 "어 이거 로봇처럼 들리네요"라는 이야기를 꺼냈습니다. 생각해 보면 아시모프의 내용에 로봇은 인간처럼 생겨야 한다는 말도 없었고, 인간이 내린 명령에 순종하면서도 자율적으로 무엇인가 하는 것처럼 보이니 로봇이라고 우겨도 뭐 할 말은 없는 것 같습니다. 또 이러한 자동화가 좋은 기기에 로봇이라는 이름을 붙이면 더 그럴듯하게 보이기도 하니, 엔젤버거의 마음도 이해가 갑니다. 다만, 이렇게 되면서 결과적으로 로봇의 정의는 "꼬여버렸습니다".
그 뒤 엔젤버거와 데볼은 Unimation이라는 회사를 만들고, 데볼의 아이디어를 확장시킬 수 있는 기기를 만들기로 결심합니다. 주변에서 여러 번 "로봇이라고 부르지 말고, 프로그래밍 가능한 조작기라고 불러라"라는 조언들을 했지만, 엔젤버거는 로봇이라는 말에 꽂혀서 "로봇"이라는 단어를 포기하지 않고 "내가 만드는 건 로봇이고 로봇이어야만 한다"라고 하며, 결국 2년 끝에 첫 로봇 Unimate #001을 만듭니다.
안타깝게도 Unimate 로봇의 시장반응은 그다지 시원치 않았습니다. 간신히 GM과 포드에 일자리를 얻어 로봇을 납품할 수 있었지만, 그렇다고 시장은 이미 로봇이 없어도 자동차를 충분히 잘 만들었기 때문에, 이 로봇이 그다지 중요하지는 않았습니다.
하지만, 언론은 반대였습니다. 언론은 조금이나마 다양한 걸 할 수 있는 이 로봇에 흥미가 생겼고, 엔젤버거는 무려 Tonight Show에 나가서 맥주를 따르고 커피를 만드는 모습을 보여주었습니다.(참고 : 1, 2) 물론 이 역시 지금으로 본다면 아주 기초적인 수준의 위치제어였지만, 어쨌든 거기에 대중들은 열광했고 엔젤버거는 로봇의 2번째 아버지가 되었습니다(나중에 로봇 명예의 전당도 올라갑니다). 그리고 대중들에게 로봇은 이제 더 이상 인간을 전복시키는 존재가 아닌 나를 재밌게 해주는 도구로서 인식되기 시작했으며, 휴머노이드 뿐 아니라 다른 형태의 로봇도 있다는 것을 인식하기 시작했습니다.
다만, 로봇을 정의하고 싶어 하는 사람들에게는 문제가 생겼습니다. Unimate가 이미 로봇이 되어버렸는데, 이전에 있던 machine들과는 뭐가 다르다고 해야 되지? 로봇을 뭐라고 말해야 하는 걸까? 다음 시간부터는 로봇을 정의해보고자 하는 여러 단체들의 눈물 나는 고군분투를 알아보겠습니다. 미리 스포 하자면, 아직까지 고군분투 중입니다.-(다음 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