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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리마 Sep 16. 2019

그 거짓말은 거짓말이 아니다

거짓말에 관한 이야기

                                                                

‘선생님, 선생님 반 혜준이가 오늘 서울에 갔지요? 혹시 할머니가 돌아가셨는지요...’


수업이 끝나고 업무를 바쁘게 추진하고 있는데 컴퓨터 모니터에 옆반 정 선생님의 메시지가 왔다.


전날 내가 받은 혜준이 어머니의 문자내용은 할머니가 편찮으셔서 가족이 할머니 병문안을 하러 서울에 간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돌아가셨냐니...


 ‘몇 시간 사이에 돌아가셨나? 별다른 연락이 없었는데...’


의아한 마음을 가지고 있던 차에 정 생님을 만나게 되어 물었다.

  “선생님, 혜준이 할머니께서 돌아가셨나요? 저에게는 분명히 할머니가 편찮으셔서 서울에 간다고 했는데요. 왜 그러시죠? 무슨 일이 있나요?”


정 선생님이 아침 출근길에 혜준이 가족이 차에 타는 것을 멀리서 보았단다. 마침 앞에 있던 상준이에게 자세한 내용을 물었다. 상준이가 “혜준이 할머니가 돌아가셨대요. 그래서 서울에 간대요.”  그 말을 듣고 정 선생님이 생각하길 ‘만약 그렇다면 정 선생님이 학부모회에 알려서 조처할 일이 생길 수도 있다.’고 생각하여서 확실한 내용을 알고자 혜준이 담임인 나에게 물었다고 했다.




얼마 전 민수와 성민이 일에도 상준이가 거짓을 말하여 다신 그러지 않겠다고 약속을 한 상태였다. 그런데 약속한 것과 상관없이 며칠이 지나지 않아 또 사실이 아닌 말을 하다니 이해할 수가 없었다. 앞으로 상준이가 말하는 것은 반절 접고 들어야겠다고 생각했다.


두 번을 이어서 상준이에게 거짓말로 당하고 나니 상준이에 대한 신뢰감이 없어졌다. 다음부터는 이런 비슷한 일이 일어나도 놀라지 않고 상처받지 않겠다고 생각했다.


며칠 후 선생님들과 얘기를 하다가 상준이 얘기가 나왔다. 이런 일들이 교실에서도 많이 일어난다는 것이었다. 선생님들의 의견과 상준이의 요즘 행동을 보니 있는 일을 크게 부풀려서 선생님들의 관심을 받으려고 한다는 데 생각이 모아졌다. 이런 어이없는 행동으로 인해 나는 얼마나 상처를 받았던가. 그러나 허언증이 이런 연유에서 출발했다고 생각하면 이해가 될 것도 같았다.





내 생각이 바뀌고 있을 무렵이다. 전교생 독서 행사를 ‘내가 좋아하는 책 소개하기’라는 주제로 활동을 하였다. 학생들 각자 자신이 좋아하는 책을 다양한 방법으로 소개를 하는 독서활동이었다.


 글쓴이, 주인공, 등장인물, 줄거리, 감동 깊은 장면, 느낀 점 등을 내용으로 책을 만들어 보게 하였다. 형형색색의 종이 등 여러 가지 재료를 활용하여 독후 활동으로 책을 만들어 보게 한 것이다. 그리고 학생들에게 전시된 책을 읽고 느낌이나 응원하는 내용의 글을 포스트 잇에 써서 책 옆에 붙이게 하였다.


아이들이 만든 책이 전시된 복도를 지나가는데 상준이가 우리 반 아이들이 만든 책을 하나하나 살펴보고 일일이 댓글을 써서 붙여주는 모습이 보였다.


  “상준아, 안녕! 그렇게 열심히 뭐 하고 있어?”
  “저희반보다 잘한 것 같아서 재미있게 보고 있어요. 저희 반은 느낌이나 감동받은 장면 같은 것을 제대로 안 썼는데 선생님 반 아이들은 그런 걸 참 잘 썼어요.”
  “상준아, 칭찬해주어서 고마워. 선생님은 상준이네 반 아이들이 한 것도 맘에 들던데. 그림도 느낌이 있게  잘 그렸고 또 책도 예쁘게 잘 만들었더구나. 너희들이 소개하는 책을 꼭 읽고 싶은 기분이 들.”


 상준이가 얼마 전 자신의 일로 상한 나의 마음을 풀어주려고 노력하고 있음을 느낌으로 알게 되었다. 그래. 이 아이 성향이 이렇구나. 이러한 행동들이 선생님들의 관심과 사랑을 받고 싶은 표현이었구나.


옆에서 자주 아이의 행동을 보고 여러 가지 일을 겪으니 아이의 마음이 느껴졌다. 그 행동이 이해가 되었다. 그 아이의 말을 반쯤 접고 들어야겠다는 생각을 한 내 자신이 조금 부끄러워졌다. 거짓말이 그냥 거짓말이 아니었다. 거짓말에도 그 아이의 마음이 담겨 있었다.




여러 가지 물건에 사용법이 있듯이 거짓말에도 사용법이 있다.


생활하면서 사람들은 숱하게 거짓말을 한다. 몇십 년 만에 만난 지인에게도 우리는 거짓말을 하곤 한다. “하나도 안 변하셨네요. 그대로예요. 시간이 비켜간 듯 여전히 아름답고 젊으세요.” 상대방이 듣기에 좋은 거짓말을 한다. 따뜻한 거짓말이다. 이런 거짓말의 시작으로 딱딱한 분위기가 화기애애해지기도 한다.


내가 좋아하는 <인생은 아름다워>라는 영화의 주인공 귀도는 사랑하는 아들이 처참한 유태인 수용소 생활을 이겨내게 하고 싶었다. 모든 것은 단체 게임이라고 거짓말을 한다. 결국 아이에게 게임하듯 즐겁게 수용소 생활을 하게 하고 아들의 목숨도 구한다. 보통사람이라면 절체절명의 순간에서 결코 나올수 없는 거짓말이다. 아버지의 여유있고 필사적인 거짓말에서 오히려 감동을 받게 되는 순간이었다.


나는,  거짓말에 아직 서툰 상준이가 독서행사에서 한 말이 설사 거짓말이라 하더라도 속아 넘어가고 싶다. 그 거짓말에는 인생의 고단함을 덜어주는 따뜻한 거짓말이 묻어 있기에.


상대를 배려하는 마음이 가득한 아이의 귀여운 거짓말, 그 거짓말은 거짓말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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