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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리마 Nov 26. 2019

 포근한 사람들과 먹는 영양 돌솥밥

고소한 냄새와 빨강 노랑 재료들이 후각과 시각을 자극한다


  “언니, 우리 만나서 밥 같이 먹어요.”

  “그래! 좋지. 자세한 얘기는 만나서 하자구요.”


친한 동생을 만나기로 한 장소는 30여 년 동안 이어온 영양돌솥밥집이다. 영어회화를 배워보고자 친구 연희가 만든 모임에 들어간 지 벌써 1년여가 되어간다. 우리는 서로 연락하여 모임장소 주변에 있는 영양돌솥밥집을 자주 찾았다.


주문 후 바로 돌솥밥을 가져오지는 않는다. 돌솥에 밥을 짓기 때문에 어느 정도 시간이 필요하다. 돌솥밥이 나오기 전 병아리 콩을 넣은 상추겉절이, 아삭한 오이무침, 비름나물, 배추 물김치, 계란찜, 철망에 얹은 더덕구이 등이 먼저 나와서 주인공인 영양돌솥밥을 기다린다.


일이 많아 정신을 빼고 와서 몹시 시장한 날이면 밥이 지어지는 걸 기다리지 못다. 자연스럽게 식사도구를 들게 된다. 물론 함께 있어서 마음이 편한 사람과 함께 있을 때다. 가장 먼저 눈길이 머무는 곳은 배추 물김치가 있는 아담한 갈색 항아리다.


상대방의 오묵한 그릇에 앙증맞은 국자로 물김치를 퍼서 준다. 내 그릇에도 담는다. 배추를 먼저 숟가락으로 한두 점 떠서 국물과 같이 먹다. 김치는 하루 종일 일하느라 바짝 메마른 목을 축이기 좋다. 통하여 뱃속으로 내려가며 갈증을 없애준다. 메뉴를 기다리며 여유있게 받아들일 수 있도록  평정심을 갖게 한다.


아삭한 상추 겉절이에 젓가락이 간다. 상추의 풋풋함과 신선함이 느껴진다. 참기름의 고소한 맛과 함께 병아리 콩의 씹히는 맛이 자꾸 손을 가게 한다. 상추라는 재료 자체가 무겁지 아 잘 씹히며 식감이 좋다. 서로 이야기하다가 나도 모르게 본능이 시키는 대로 생각 없이 먹는 날이면 한 접시를 다 비우기도 하였다.


기다리던 돌솥밥이 왔다. 이미 비워진 상추겉절이 접시를 바라보며 순간 살짝 당황스러움을 느낀다. 아삭힌 상추와 뜨거운 돌솥밥은 찰떡궁합이기에. 상추겉절이 없는 돌솥밥은 상상할 수 없다.


 사장님에게 겸연쩍은 미소를 지으며 다시 채워줄 것을 요청한다. “이모. 너무 맛있어서 상추무침을 다 먹어버렸요.수 있?” 살짝 너스레를 떠는 날이면 식탁 주변의 분위기가 다시 밝아진다.


뜨겁게 달궈진 돌솥에는 갓 지어진 밥 위에 밤, 땅콩, 잣, 완두, 약콩 등 각종 견과류와 먹기 좋은 크기의 발그레한 당근이 옹기종기 앉아 있다. 노란 보름달이 반짝반짝 윤기를 내며 각종 재료를 품고 누워 있다. 고소한 냄새와 빨강 노랑 여러 가지 색을 가진 재료들이 후각과 시각을 자극한다. 파를 잘게 많이 썰어 넣은 간장을 한 숟가락 넣고 밥과 재료를 비빈다. 여러 재료들이 간장을 만나 한층 맛이 조화를 이루며 깊어진다.


비빈 밥을 야무지게 한 숟가락 뜬다. 밥을 뜰 때도 그냥 뜨지 않는다. 밤, 잣, 콩 등 여러 재료가 골고루 숟가락에 담기게 한다. 순간 작동이다. 입에 천천히 넣는다. 견과류가 오독오독 씹히며 당근과 파, 따뜻한 밥알이 어우러져  넘어간다. 몸에 따뜻한 기운이 퍼진다. 시원한 오이나 상추겉절이를 먹는다. 따뜻한 것을 먹고 난 후 시원한 것을 먹을 때 청량감이 배로 느껴진다.


그 사이 우리의 대화도 무르익어 간다. 그 동안 지낸 이야기며 자주 보는 프로그램, 요즘보는 책 ,  좋아하는  간식과 요즘 핫한 영화, 서로에 대한 칭찬 등이다. 돌솥밥은 사람들 사이를 묘한 분위기로 만드는 것 같다. 돌솥밥을 먹을 때는 듣기에 좋지 않은 이야기보다는 서로 복이 되는 이야기, 힘이 되는 이야기를 하는 것 같다. 저절로. 내가 그리 하고 싶어서 그런 것이 아니다. 돌솥밥의 신기한 마력이다.


밥을 다 먹은 후 돌솥 바닥에 눌어붙어있는 누룽지를 먹을 차례다. 숟가락에 힘을 주어 바닥을 긁는다. 숟가락에 조금이라도 누룽지가 많이 모이도록 욕심을 낸다. 잘 긁어질 때도 있고 안되기도 한다. 어릴 적 어머니께서 간식으로 누룽지를 눌 주시던 생각이 나며 옛 추억이 스쳐간다.


어느 늦은 가을날 친정식구들과 야유회를 마치고 그냥 들어가기 허전하여 영양돌솥밥집을 찾았다. 연로하신 부모님은 식사를 하시고 맛있게 먹었다며 말씀하였다. 그때 아버지의 환하게 웃으며 말하던 모습이 돌솥밥을 먹을 때마다 떠오른다.


돌솥밥집은 나름대로 이어져 내려오는 비법이 있는 것 같다. 직접 만든 양념장, 물김치, 밥하는 방법, 곤드레, 인삼, 전복 등 돌솥에 넣는 재료 등이 가게마다 조금씩 다르다. 건강을 생각하여 조미료를 쓰지 않는 집도 많다. 사장님들의 손님건강을 생각하는 마음 음식을 먹을 때 자연스럽게 느껴진다.


몸에 좋은 알록달록 다양한 모습으로 앉은 재료의 영양돌솥밥은 보기만 하여도 정성이 느껴져서 기분이 좋아진다. 여러 재료가 어우러지며 만들어지는 맛과 향 또한 건강한 느낌이 나서 좋다.


포근한 사람과의 대화와 식사시간 내내 따뜻하게 먹을 수 있는 영양돌솥밥이 있는 곳은 마법처럼 어디든 정겹고 훈훈한 곳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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