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하늘에서 뚝- 떨어진 걸까?’
나는 어느 누구와도 어울리는 게 싫었다.
이상스럽게도 공연히 짜증스럽고,
누가 뭐라고 하면 다 귀찮은 잔소리로 들렸다.
어떤 때는 아버지를 보아도 괜스레 쑥스럽고,
얼굴을 마주치기가 부끄러웠다.
그러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아버지와 함께 있고 싶은 생각이 굴뚝같았다.
내가 거실에서 텔레비전을 보고 있는데, 삼촌이 나왔다.
나는 나도 모르게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내 방으로 가려 했다. 요즘 남자들 아니,
삼촌까지도 송충이처럼 징그럽게 보였다.
“야, 너 요즘 내외하니?”
삼촌은 내 뒤통수에 대고 빈정거렸다.
“내외?”
나는 ‘내외’라는 말에 되물었다.
“그래. 내-외-!”
삼촌은 힘주어 말했다.
“안 내(內)와 바깥 외(外),
안팎이란 말이잖아요?”
나는 잠깐 생각하다가 되물었다.
“우리 조카, 아주 똑똑한데.
한자도 척척 알고.”
삼촌은 또 빈정대었다.
“도련님두 참, 아무리 수영이가
벌써 내외를 할려구요?”
주방에서 일하던 엄마가 삼촌 말을 막았다.
“거야 모르죠. 우리 조카님이
다른 아이들 보다, 초고속으로 앞서 가는 편이잖아요?”
“초고속이라뇨?”
“형수님두, 왜 있잖아요.
수영이는 제 또래보다 성숙한 편이잖아요.
덩치도 좋구요.”
엄마가 묻자, 삼촌은 피식
방귀를 뀌듯 웃으며 대답했다.
“그래두 그렇지요.”
엄마는 삼촌에게 가볍게 눈을 흘겼다.
“엄마 내외가 뭐예요.”
“넌, 몰라도 된다.
삼촌이 싱거워서 괜한 말을 한 거다.”
엄마는 내의 궁금증을 가로막았다.
거실로 나왔던 삼촌이 방으로 들어갔다.
나는 주방 쪽을 살피며 삼촌 방으로 갔다.
엄마가 삼촌의 말을 막으려는 것을 보면,
분명 삼촌이 한 말 속에
뭔가가 숨어 있을 것 같아서였다.
“삼촌 내외가 뭐야? 내가 알면 안 되는 거야?”
나는 궁금함을 풀어놓았다.
“안되긴? 아무 것도 아닌데, 형수님 그러니까
네 엄마가 괜히 그러시는구나.”
삼촌은 떨떠름한 모양이었다.
“그럼 설명 좀 해 줘요.”
“내외란 말이다. 다 큰 남자와 여자가 또는
여자와 남자가 서로 얼굴을 마주 보지 않으려는 거란다.”
‘뭐? 그래서 남자가 징그러워 보이는 건가?’
삼촌 말이 내 마음을 꼭 찔렀다.
그런데도 나는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에이, 시시해.”
억지 웃음을 웃었다.
“시시한 게 큰 일을 만들지.”
삼촌은 마음속에 있는 가시를 꺼내려 했다.
“큰일이라뇨?”
“사춘기가 쳐들어오고 있으니 큰일이지···.”
삼촌은 빙긋이 웃으며 내에게 말했다.
처음에 나는 내외가 나와는 아무 관계가 없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남자가 징그러운 거나,
또 사춘기가 쳐들어오고 있다는 웃음 섞인
삼촌의 말을 듣고 보니,
관계가 아주 없는 일 같지는 않았다.
요즈음 나는 아버지 얼굴도, 또 삼촌 얼굴도……
생각해 보니 친구 우람이 얼굴도 피하고
싶을 때가 있지 않는가?
곰곰 생각해 보니,
나는 삼촌 말이 고추냉이처럼 가슴을 톡 쏘았다.
‘정말 그런 건가?
난 내외를 하고 또 사춘기가 오고 있는 것인가?’
삼촌은 내 마음을 진열장 물건을 보듯
환히 보고 있는 것 같았다.
거침없이 바른 말을 해 주는
삼촌이 좋으면서도 무서워졌다.
얼마 안 있으면 결혼을 해, 작은아버지가 되는 삼촌.
삼촌은 늘 내에게 있어 궁금해하거나 모르는 일이 있으면,
주저 없이 해답을 주어 가까운 친구처럼 느껴졌다.
가끔 이기죽거리고 또 느물거리는데다가
꼬투리를 물고 늘어져 놀려서 한바탕 하지마는···
“삼-촌-?”
나는 마음을 가다듬고 삼촌을 불렀다.
“공주님, 여기 있사옵니다. 그러니 어서 말해 보소서.”
삼촌은 좀 느물거렸다. 삼촌 비아냥거리는 듯한 말에
나는 마음을 털어놓고 싶은 생각이 싹 가셨다.
“불렀으면 말해 봐.”
“아냐.-”
나는 마음을 고쳐먹고 딱 잘라 말했다.
자칫 잘못하다가는 또 집안에서
웃음거리가 될 것 같아서였다.
참, 삼촌은 알다가도 모를 일이 많았다.
어떤 일은 입에 자물통을 잘 달아주는데,
어떤 일은 10초도 안 되 떠벌려
내 입장을 아주 난처하게 만들어 놓을 때가 많았다.
“별 싱겁긴-? 누가 키 안 크다고 할까봐-”
나는 삼촌 말에 방문을 꽝 닫고 밖으로 나갔다.
삼촌에게 속 시원하게 말을 할걸 그랬나,
나는 닫힌 문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내 방으로 와, 책상 앞에 앉았다.
괜스레 답답한 게 마음이 울렁였다.
삼촌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가 다시 꼴도 보기가 싫어졌다.
또 배가 쌀쌀 아파 왔다.
여기 저기 짚어봐도 이렇다 하고 아픈 데가 없는데,
하여튼 배가 아파 왔다.
나는 끙끙거리며 책상 위에 이마를 대었다.
“아이구- 아이구-”
나도 모르게 신음이 입안에서 흘러 나왔다.
나는 아랫배를 움켜쥐고 일어나 침대로 가서 누웠다.
천장이 빙그르르 돌아가 회전목마를 타고 있는 것 같았다.
‘혹시 몹쓸 병에 걸린 게 아닐까?’
이런 생각이 들자, 눈물이 고였다.
‘내가 죽으면 내 무덤에 내가 좋아하는
노란 국화꽃 한 송이를 놓아 줄 이가 있을까?’
나는 눈물을 흘리며, 내 무덤에
국화꽃 한 송이를 바칠 사람을 생각해 보았다.
제일 먼저 아버지가 떠올랐다.
아버지, 아버지는 제일 슬프게 우실 거야? 그리고···
다음으로 엄마가 떠올랐다.
엄마는 까탈 부리는 내가 없어졌다고 속 시원해 할까?
아니면 주워 온 아이가 없어졌다고 얼씨구나 할까?
친구들을 생각해 보았다.
친하게 지내자고 하루가 멀다고 새끼손가락을 거는 은경이,
거기에 시샘을 하며 가까이 하려 하는 숙희,
또 나도 좋아하지만 너무도 주책없이 좋아하며
따라 다니는 인애, 그리고 우직한 우람이,
어느 누구 하나 내 무덤에 내가 좋아하는
노란 국화꽃을 바칠 것 같지가 않았다.
‘아아- 그래도 엄마밖에 없잖아. 그럼 난 뭐야?’
내 생각은 늘 친 엄마가 아니라고 생각하는
엄마에게로 돌아와 머물렀다. 나는 더욱 슬퍼졌다.
그러다가 또 삼촌이 떠올랐다.
삼촌은 자기가 좋아하는 노란 국화꽃이 아니더라도
꽃 한 송이쯤은 가져다 줄 것 같았다.
삼촌은 숙모 될 사람에게 장미꽃 주는 것을
여러 번 보아왔기 때문이다.
“여우야, 밥 안 먹니?”
오빠 민우가 문을 빠끔히 열고 얼굴을 디밀었다.
“오빠나 먹어.”
나는 이불을 확 뒤집어썼다.
“먹기 싫으면 관둬라. 네 배고프지, 내 배 고프냐?”
조금 있다가 삼촌이 왔다. 나는 얼른 눈물을 훔쳐 닦았다.
“수영아, 저녁 먹자.”
삼촌 목소리가 아까와는 달리 따뜻하게 들려왔다.
“삼촌 나, 배 아파서 못 먹겠어.”
나는 삼촌에게 기대고 싶어졌다.
“어디 좀 보자.”
삼촌은 두꺼비 같은 손으로 내 이마를 짚어 보았다.
“열이 좀 있는데.”
삼촌 말에 나는 눈물이 왈칵 쏟아져,
이불을 끌어당겨 얼굴을 감췄다.
“약을 먹어야겠는데.”
삼촌은 내 방에서 나갔다. 나는 이불 속에서 흐느꼈다.
식탁에서 아버지 웃음소리가 크게 들려왔다.
‘아빠는 저렇게도 좋을까? 내가 아프다는데
와 보지도 않구. 아빠두 괜히 날 좋아하는 척 하는 건가?’
나는 아버지가 얄미워졌다. 나는 덮었던 이불을 걷어 치웠다.
아버지 말소리가 크게 들려왔다.
껄껄대는 아버지 웃음에 내에게서 슬픔이 사라지고,
심통이 불거졌다. 아랫배가 살살 아픈 것도
내 심통에 무서워 달아났는지 아프지가 않았다.
나는 일어나 거울을 보았다.
눈물 자국이 자동차 바퀴 자국처럼 희미하게 나 있다.
나는 검지손가락에 침을 묻혀 눈물 자국을 지웠다.
“히히-”
나는 시무룩한 표정을 바꾸어 웃음을 지어 보였다.
거울 속에 나는 진짜 나 보다 더 떨떠름하게 웃어 보였다.
나는 방문을 살짝 열고 바깥 동정을 살폈다.
아버지, 그 맞은 편에 삼촌, 아버지 바로 옆에 오빠,
오빠 옆에 엄마, 오빠 맞은 편에 자리는 비어 있다.
바로 내가 앉아야 할 자리다.
‘저 빈자리를 두고도 밥이 제대로 넘어간단 말인가?’
문을 박차고 나갈까, 아니면
이불을 푹 뒤집어쓰고 누워 있을까?
나는 바깥 상황을 살피며 생각을 가늠해 보았다.
그러나 둘 다 이 상황에서는 마땅하지 않았다.
나는 생각을 바꾸었다.
바로 그때에 또 배가 살살 아파 오기 시작했다.
“엄마, 배 아픈데 먹는 약 없어?”
나는 자연스럽게 문을 열고 나갔다.
“배가 아파서 밥을 못 먹는 거니?”
엄마는 얼굴에 근심을 담고 물었다.
나는 대답 대신 고개를 가볍게 끄덕였다.
“요즘 소화가 잘 안 되는 모양이구나.”
그제서야 아버지는 나를 바라보았다.
“약 없어요?”
나는 다시 물었다.
“네가 아침에 먹고 두었잖니?”
“아참, 그렇지.”
나는 그제서야 생각이 났다.
아침에 학교 갈려고 할 때에 배가 아파 약을 먹었다.
그리고 거실 텔레비전 위에 놓았던 것을···.
“아프더라도 밥을 먹고 먹지. 빈속에 약 먹으면 안 좋을걸.”
다른 식구들은 밥을 먹고 있는데, 엄마는 밥숟가락을 슬며시 놓고
나에게서 눈을 떼지 않았다.
“그래 수영아, 밥 먹고 약 먹어. 그게 좋아.”
삼촌은 일어서서 내 손을 식탁으로 잡아끌었다.
“가만 놔둬도 다 먹게 되어 있다구.
무슨 배가 아파? 괜히 꾀병이지?”
오빠가 불쑥 튀어나와 잠잠해지려는
내 마음을 헤집어 놓았다.
“오빠가 돼 가지고, 그게 무슨 말이냐?
수영이 진짜 아프다구. 열이 있더라.”
삼촌은 나를 두둔했다.
“열이 있다구?”
아버지는 수저를 놓고 내 이마를 짚어 보려 하였다.
나는 아버지의 손길을 뿌리치며,
“괜찮아요.”
하고 물러섰다.
엄마는 내 국그릇에 더운 국으로 바꾸고는
어서 먹으라고 했다. 나는 엄마에게 고마운 생각이 들었다.
저녁을 먹은 나는 방으로 와서 침대에 벌렁 누웠다.
거실에서는 텔레비전을 보며 킥킥거리는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맞아, 의붓 엄마가 아니라, 친 엄마야.
엄마만큼 날 잘 대해 주는 이도 없어.
아버지는 그냥 내 맘에 들기만 해.
그런데 왜? 왜- 난 엄마를 미워하고 있는 걸까?
엄마가 날 미워하는 게 아니라,
내가 엄마를 미워하고 있는 거야.’
나는 처음으로 입장을 바꾸어
엄마에 대한 생각을 해 보았다.
내 머릿속은 실타래가 뒤엉켜
어디부터 가닥을 찾아야 할지 몰랐다.
“수영아, 엄마다. 들어가도 되니?”
나는 벌떡 일어나 방문을 열었다.
“과일 좀 먹어라.”
엄마는 쟁반에 과일을 담아 들고 들어왔다.
내가 좋아하는 딸기다.
“엄마.”
“수영아, 배 아프다고 아무 약이나 먹지 마.”
엄마는 딸기를 먹으라고 가져온 게 아니라,
내에게 무언가 얘기를 하려 온 것이다.
“······”
엄마 말에 나는 아무 말을 하지 않았다.
내가 대답을 하지 않아도 엄마는 무슨 말을 할 것 같아서였다.
“수영아, 네 배가 아픈 건 어른이 되려고 하는 거야.”
나는 엄마 말에 정신이 번쩍 차려졌다.
‘아니, 내가 벌써!’
예전에 학교에서 선생님께 들은 얘기가 떠올랐던 것이다.
“어른이 되려구요?”
“그래. 엄마도 그랬었어.”
엄마는 내 손을 꼭 잡았다.
“엄마, 나 어떡하지?”
나는 엄마 품에 안겼다.
학교에서 선생님께 여자는 남자와 달리
생리를 한다는 것에 대해 들었다.
“엄마-”
나는 가슴이 답답해지고 무서워졌다.
“괜찮아.”
엄마는 나를 꼭 안아 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