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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원석 May 24. 2018

2. 꽃파티

내가 엄마 곁으로 가까이 다가가면 

엄마는 멀리 피하는 것 같고, 

내가 멀리 피하려 하면 엄마가 

가까이 다가오는 것 같았다.

나는 창 밖 놀이터에서 뛰어 노는 아이들을 

물끄러미 바라보며 엄마 생각에 잠겼다. 

“아이쿠.”

갑자기 배가 쥐어뜯는 것처럼 또 아파 왔다. 


나는 배가 너무 아파 수업 시작종이 울리는 것도, 

선생님이 들어오신 것도 모르고 

책상에 엎드려 있었다.

“김수영 어디 아프니?”

선생님이 내 자리에 와서, 내 머리를 만져보았다.

“열이 좀 있는데. 양호실에 가 봐.”

“괜찮아요. 선생님.”

“가서 약 먹고 오는 게 좋아.”

선생님은 나를 일으켜 등을 밀었다.


나는 하는 수 없이 양호실로 갔다.

“너 그거 있니?”

양호선생님은 나를 편히 앉게 하더니, 

다짜고짜 그게 있냐고 물었다.

“선생님, 그거라뇨?”

“왜 매달 있는 거 있잖아.”

“매달 있는 거요?”

나는 양호선생님 말뜻을 알면서도, 

알고 있다는 게 웬지 쑥스러워 잡아떼자,

“알았다. 침대에 누워 봐라.”


선생님은 나를 반듯하게 침대에 눕게 했다. 

그리고는 배를 이리 꾹 저리 꾹, 꾹꾹 눌러 보았다.

“이제 어른이 되려고 배가 아픈 거란다.”

양호선생님은 엄마와 같은 말을 하며, 빙그레 웃었다.

“어른이 되려면 배가 아픈가요?”

“집에서 엄마가 아무 말씀 안 하시던?”

“….”

“여자는 남자와 달라 어른이 되려면 

젖가슴이 봉긋해지고 다달이 있는 게 있단다. 

그게 있으려고 배가 아픈 거야.”

쉬는 시간이 되자 은경이와 인애가 쥬스를 사 가지고 왔다.

“많이 아프니?”

두 친구가 근심스런 얼굴로 물었다.

“너희들은 그거 있지?”


양호선생님은 아이들을 보자 또 그거가 있냐고 물었다.

“예.”

아이들은 당당하게 대답했다.

“수영이도 그게 있으려고 배가 아픈 거야.”

양호선생님이 빙그레 웃으며 말하자,

“야, 너 나직 애기였구나. 

우리가 여태껏 애기와 놀았다니? 그걸 이제서야 하니?”

인애가 피식 웃으며 놀리는 투로 말했다.

“맞아, 우리가 여태 애하고 놀았잖아.”

은경이도 피식 웃었다.


나는 ‘그거’를 머리 속에 넣고는 

공부를 하는둥 마는둥 하고 집으로 왔다.

“누나.”

숙모가 될 경애 씨가 와 있었다.

“얘는-? 누나가 뭐니? 작은엄마 될 사람한테.”

엄마는 가볍게 나무랐다.

“작은엄마가 널 보러 왔단다.”

엄마는 저녁 준비를 하며 말했다.

내가 작은엄마가 될 사람과 방에 앉았을 때였다.

“딩동- 딩동-”

부자가 요란스럽게 울려댔다.


“수영아, 축하한다.”

은경이와 인애 그리고 반 친구인 몇몇 아이들이 들이닥쳤다.

“어서들 와라. 어쩐 일이니?”

엄마가 친구들을 맞았다.

“수영이가 어른 된 것을 축하해 주려구요.”

인애가 친구들을 대신해 말했다.

친구들 지껄임에 내가 머쓱해 있자,

“수영아 축하한다.”


빨간 장미 한송이와 쇼핑빽 조그만 것을 선물로 주었다. 

내가 어리벙벙해 있자,

“어서들 들어와라. 나도 너희들처럼 

수영이 ‘꽃파티’를 해 주러 왔다.”

“꽃파티라구요?”

작은엄마 말에 깜짝 놀랐다. 

“얘들아, 우리 작은엄마 되실 분이야.”

내가 소개를 하자,

“야! 작은엄마 멋지다.”

친구들은 감탄을 하며 환호성 했다.


“그럼, 여자 중학교 선생님이신데. 

그런데 누나 아니? 작은엄마, 꽃파티가 뭐예요?”

“그건 나중에 듣기로 하고, 선물을 먼저 펴 봐.” 

은경이가 재촉을 했다.

“그래, 어서 펴봐라.”

작은엄마도 재촉했다.

나는 마지못해 펴보았다.

“아니, 이건?”


“그래. △△패드다!”

은경이가 환하게 웃으며 대답했다.

“이건 말이다. 

우리 여성들만이 쓰는 거라구. 그렇죠 작은엄마.”

친구들이 작은엄마라는 바람에 

작은엄마의 귀밑 볼이 발그스름해졌다.

“수영아, 여자는 말이다. 

어른이 되려면 달거리가 있는 법이란다.”

“달거리를 순수 우리말이고 월경 또는 맨스라고 해.”

인애가 작은엄마의 말을 받았다.


‘달걸이, 월경? 맨스?’

내 머리 속에 어슴프레 떠오르는 것이 있었다.

내가 초등학교 1학년인지, 유치원 때인지 기억은 잘 안 떠오르나, 

하여튼 어렸을 때의 일이다. 

불쑥 엄마 방에 들어갔다가 엄마가 팬티를 갈아입는데 

피가 잔뜩 묻은 걸레 같은걸 벗어내어 엄마가 피 흘리고 죽는 줄 알고, 

엉엉 운 적이 있다. 나는 그 때 생각을 하고 빙그레 웃었다.

“얜, 어른 됐다니까 좋은가 보지? 혼자 실실 웃게?”

눈치 빠른 인애가 훔쳐보고는 퉁을 주었다.


“너희들은 다 하지?”

“그럼요. 전 작년 겨울부터 한걸요.”

작은엄마 말에 아이들은 

서로 자기가 먼저 했다고 실랑이를 벌였다.

“것 봐라. 걱정할 일이 아니란다.”

“내가 걱정 했나요? 

그래서 작은엄마가 지원하러 오신 건가요? 야! 

수영이 작은엄마 캡이다.”

정순이가 느물댔다.


“우리 수영이가 걱정을 하다니? 

난, 소식을 듣고 축하를 해 주러 온 거야. 

너희들처럼 말야.”

그렇게 말하는 작은엄마가 고마웠다. 

작은엄마는 분명 삼촌의 말을 듣고 온 것이다. 

삼촌은 내가 걱정되어 작은엄마를 보내, 

내게 모든 걸 가르쳐 주고, 

또 위로해 주라고 했을 것이다. 

그런데 친구들 앞에서 나를 째째하게 만들지 않은 

작은엄마가 고마울 수밖에···


“엄마 들어가도 되니? 작은엄마가 케익 사오셨는데.”

엄마는 벌써 케익을 들고 안으로 들어왔다.

“이 케익에도 초를 꽂는 건가?”

“빨갛고 큰 초 있죠. 그거 하나 꽂으면 돼요.”

엄마 물음에 인애가 대답했다.

“이제 너희들이 우리 수영이 선배구나. 

어쨌든 우리 수영가 어른이 되었다니 기쁘구나.”

“수영아 어머님께 고맙다고 인사 드려야지.”

작은엄마가 말했다.

“엄마 고마워요.”

나는 쥐구멍으로 들어갈 듯한 소리로 말했다.


“수영아, 촛불 꺼라.”

나는 ‘호오-’ 촛불을 단숨에 껐다.

“짝- 짝- 짝- 이제 수영이가 어른 된 걸 축하한다.”

“너희들은 내 달거리에 대처해 나가는 방법을 

자세하게 일러주거라. 그 수업료로 오늘 너희들에게 피자를 사 주겠다.”

“야아- 역시 너희 작은엄마는 우리와 통하는 캡이다!”

아이들은 좋아했다.

엄마와 작은엄마도 밖으로 나갔다. 친구들이 

내게 달거리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해 주라는 신호였다.

“야, 그 거시기라는 게 말이다. 처음엔 겁이 나고, 

귀찮았는데 곧 괜찮아져.”

인애가 먼저 입을 열었다.


“수영아 너, 배 아프다고 하는데, 

그 싸인이 있는 게 얼마나 좋은지 아니? 

난 말야. 배가 안 아프고 몸에 아무런 이상이 없었어. 

그러니까 싸인이 없었다는 얘기지. 

그런데 어느 날 이모네 갔다가 그게 비쳐 개망신 당했지 뭐냐? 

하기사 이모네 집이 아니라, 다른 데였다면 

더 망신살이 하늘로 뻗쳤을지도 모르지만 말야···”

예림이는 거시기의 첫날을 말했다.


“난 있잖니? 거시기가 있을 때마다 신경질이 막 난단다.”

“난 말야. 지금도 거시기가 있을 때마다, 

배가 몹시 아파 꼭 진통제를 먹어야 해.”

“그건 시집가면 안 아프데.”

“시집? 히히히- 정순인 배 안 아프려면 빨리 시집가야겠다.”

아이들은 인애 말에 모두들 배꼽을 잡고 웃었다.


“야야- 그나저나 옛날에는 거시기 땜에 일일이 

걸레를 빨아 썼단다. 지금은 요거 하나 가지고 쓰다가 

잘 버리면 되는데, 그때 걸레 차고 또 빨고 삶던 

때를 생각해 봐라. 지금이야말로 하늘나라에 온 우리가 아니겠니.”

“그건 그렇고, 왜 꽃파티라고 하니?”

나는 궁금증을 풀어놓았다.

“그거야 뭐, 그게 빨간 색이잖아. 그래서 그렇게 부른대나 봐.”

“그것도 그거지만, 그걸 하면서부터 얼굴이 피고 예뻐진데.”

나는 아이들 말을 종합하여 확실하지는 않지만 

꽃파티라는 게 무엇이라는 것을 어렴풋이 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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