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을 수 없는 존엄의 가벼움

'미키 17'을 보고 든 나의 생각

by FRNK

인간은 존엄한 존재인가, 인간의 존엄성은 과연 지켜질 수 있는가? 영화 '미키 17'은 미키라는 주인공이 계속해서 프린팅 되는 가까운 미래 세계에 대한 이야기를 그린 봉준호 감독의 신작이다. 이 글은 영화 이야기라기보다는 보면서 내가 느꼈던, 또는 봉감독이 주제로 삼지는 않았지만 영화에서 나타난 인간의 존엄성에 대한 나의 간략한 생각이다(영화 리뷰를 원한다면 다른 영화 리뷰를 찾아보시길!).



우리는 인간 모두가 존엄하다고 생각하고, 최소한 그렇게 배웠다. 그럼 여기서 존엄이란 무엇일까? 사전적 의미의 존엄은 다음과 같다. ‘한 개인은 가치가 있고 존중받고 윤리적인 대우를 받을 권리를 타고났음’

뭐 머리로는 다들 비슷하게 생각할 것 같다. 인간이기 때문에 우리는 존엄할 수 있다고. 그리고 우리는 모두 그 존엄성을 지켜줘야 하고 존중을 해줘야 한다고. 그런데 우리는 그렇게 행하고 그렇게 살아가고 있을까? 아는 것과 행하는 것이 다른 것이 진짜 아는 것이라 할 수 있는가?

당장 요즘의 세계에서 일어나는 많은 일들만 보아도 그 존엄은 너무 쉽게 다른 가치로 환원된다.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 과정은 말할 것도 없고, 지금 마무리되어가는 과정에도 미국의 행동과 요구를 보면 인간을 존엄하게 보는 자세라 말하긴 어렵다. 가자지구에서 일어난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은 다른가. 수십 년이 지나도 그들이 벌이는 행위와 얻고자 하는 목표는 잔인하리만큼 한결같으며 자본적, 정치적 원리로 그들을 이용 및 지지하는 세력들 또한 마찬가지다.


우리는 여기서 한 번쯤 고민해 봐야한다. 왜 인간은 존엄하고 그 가치를 인정받아야 하는 것인가? 사실 이건 인간들끼리 오랜 역사와 사건들 속에서 깨닫고 깊게 뉘우친 뒤에 머리에 새겨진 본능에 가깝다. 그래서 결국 인간에게 인문학이 중요한 이유라고 생각한다. 인문학은 인간들이 살면서 켜켜이 쌓아놓은 지식과 지혜들을 모아둔 학문으로, 인간이란 무엇이고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에 대한 힌트를 줄 수 있는 하나의 백과이다. 오랜 시간 동안 벌어진 수많은 사건과 인류에게 깨달음을 준 사고들, 시대별로 변화해 가는 상황에 따라 올바른 생각에 대한 제안, 무엇을 보고 듣고 무엇을 느끼는 것이 인간인지를 알게 해주는 것들, 그래서 우리는 역사를 배우고 철학을 탐구하며 예술을 가까이 두기 위해 노력해 왔다.

하지만 언제부터인가 인문학의 가치는 날로 낮아졌으며 그 자리에는 다른 기준들이 대체되어 왔다. 자본은 말할 것도 없고 인종, 국가, 이념, 종교(종교도 인문학에서 아주 큰 부분을 차지하지만 요즘의 종교는 어느 시대나 그랬듯이 그 본질이 왜곡되고 결국 사람들에게 이용당하고 만다), 세대, 성별 등 인간을 카테고라이징 할 수 있는 거의 대부분의 요소들로 우리의 머릿속은 대체되어 가고 있다. 그리고 그 카테고리들은 서로를 향해 존중하고 권리를 인정해 주는 요소가 아닌 서로를 배척하고 평가, 판단하는 잣대로 전락하고 만다. 우리는 서로를 어떻게 생각하고 살아가고 있는지 돌이켜보면 쉽게 알 수 있다.


인류는 오랜 기간 세상을 살면서 끊임없이 배우고 성장하며 발전해 왔고, 또 앞으로도 계속 그럴 것이라는 사실을 나는 믿어 의심하지 않는다. 하지만 요즘 많이 드는 생각은 민주주의에서 가장 중요한 요건인 건강하고 올바른 사고를 하는 개개인의 가치가 흔들리기 시작하면서 위기가 모이고, 그 위기들이 모여 큰 사건이 되었을 때 우리는 그 사건을 지혜롭게 해결할 지도자와 리더를 갖추고 있을지 우려된다.

2009년 무라카미 하루키가 이스라엘에서 논란이 많았던 ‘예루살렘상’을 받으며 자신이 소설을 쓰는 이유에 대한 소감을 그 유명한 '벽과 달걀'의 비유와 함께 밝혔는데, 16년이 지난 오늘날에도 그 빛은 참 희미하고 위태롭게만 느껴져 마음 한편이 씁쓸하다.



"개인이 지닌 영혼의 존엄을 부각시키고 거기에 빛을 비추기 위함입니다. 우리 영혼이 시스템에 얽매여 멸시당하지 않도록 늘 빛을 비추고 경종을 울리자, 이것이 바로 이야기의 역할입니다. 나는 그렇게 믿습니다. 삶과 죽음의 이야기를 쓰고, 사랑의 이야기를 쓰고, 사람을 울리고 두려움에 떨게 하고 웃게 만들어 개개인의 영혼이 더할 나위 없는 소중함을 명확히 밝혀내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는 것. 그것이 바로 소설가의 일입니다. 그러기 위해서 우리는 날마다 진지하게 허구를 만들어나갑니다."

- 2009년 무라카미 하루키의 '예루살렘상' 수상 소감 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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