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라 웨스트오버 <배움의 발견>
주사위를 던지는 느낌이었다.
이미 내 손을 떠난 주사위의 숫자는
신의 뜻대로 결정될 수밖에 없어 보였다.
며칠 만에 필사로 하루를 열었다. 타라 웨스트오버의 <배움의 발견> 중 한 문장이다.
16살인 주인공인 혼자 공부해서 대학입학을 위한 ACT시험을 보러 가기 전날 남긴 말이다. (참고로, ACT는 SAT와 함께 미국 수학 능력 평가시험이다.) 16살 때까지 한 번도 시험을 본 적이 없는 그녀는 수학, 영어, 과학, 독해 4과목 중 자신 있는 과목은 독해뿐이라고 했고, 목표한 대학에 가기 위해서는 응시자의 상위 15% 안에 드는 점수가 나와야 된다고 했다. 다음 날 시험장에서 시험 감독이 나누어준 OMR카드에 대해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이상한 분홍색종이'라고 표현할 정도였던 그녀에게 주사위는 어떤 결과를 가져왔을까?
이 대목에서 이야기의 맥락상 시험에서 그녀는 목표를 달성하겠다는 추측을 했다. 하지만 그 시점에 있는 주인공이라면 예측이 안 되는 미래에 대한 막연한 불안감이 얼마나 컸을까 싶다. 열심히 던져보지만 내려지는 숫자에 대해 더 이상 힘을 발휘할 수 없는 무.기.력.이 문장에서 느껴졌다.
흔치 않지만 주사위도 내가 원하는 숫자가 나올 때가 있다. 심지어 두 개를 던지면서 "더블!"이라고 외치는데 더블이 나오는 놀라운 상황도 연출된다. 그게 인생의 재미이기도 하다.
우리 인생은 언제나 주사위를 던진다. 주사위를 던지면서 으랏챠챠 힘을 낼 때도 있고, 힘을 빼고 던져야 하니 던지는 경우도 있다. 어떻게 던진 주사위가 인생에 더 도움이 되는지 정답은 없는 듯하다. 전자가 항상 좋은 결과를 얻는 것도, 후자가 항상 실망을 안겨 주는 것도 아니니까.
단지, 주사위가 던져지는 순간 '이것이 최선인가'에 대한 질문을 해봐야 한다.
<배움의 발견>의 이야기로 다시 돌아가자면 그녀는 좋은 점수를 받는다. 목표한 대학에 갈 수 있는 점수이다. 잠시 그녀의 운명에 기쁨을 느꼈다. 그리고 그녀의 인생에 수없이 던져질 주사위가 궁금해지기도 했다. 어차피 우리 인생은 주사위를 던지고 신이 그 결과를 결정한다면 그 상황을 겸허하게 받아들이는 게 낫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우리는 중요한 결정이 있을 때 '주사위 운명론'에 인생을 맡긴다. 최선을 다한 후라면 삶의 좋은 태도이지만, 최선을 다하지 않았다면 될 대로 되라가 아닐까.
매일 반복되는 하루라 주사위 따위는 없어 보일 수도 있지만, 우리의 인생은 부지런히 주사위를 던진다.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은 주사위가 던져지는 매 순간, 그 결괏값으로 신을 원망하지 않기 위해 사는 것이다. 사실, 가끔은 왜 나에게 이런 숫자를 주셨냐고 신을 원망할 때도 있지만 또 지나 보면 신이 주신 숫자가 또 다른 기회를 열어주기도 했다.
몹쓸 연애를 끝내지 못하고 허우적거릴 때, 하향 지원한 회사에서 계속 낭패를 볼 때, 아무리 노력해도 성과가 없을 때, 내 의도와는 상관없이 인간관계가 꼬일 때였다. 지나 보면 더 좋은 연애가, 더 좋은 회사가, 또 다른 경력이, 배움과 성장의 기회가 열리기도 했다. 물론 항상은 아니었다.
가끔 지친 몸과 마음을 추스르지 못하고, 주사위 공중부양인 상태가 있다. 아무런 선택도 없고 아무런 결과도 없는, 마치 내 인생만 공중에 떠서 정지된 것 같은 상태. 주사위를 끌어내릴 힘도, 방법도 모를 때가 있다. 어떻게 허우적거리다가 주사위를 끌어내려서 어떤 숫자라도 나오게 만들어 왔었는데...
만약 그냥 계속 공중에 떠있게 둔다면 내 인생이 어찌 흘러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