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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립커피

by 김광수

작열하는 열대의 태양

강렬한 햇살을 온몸으로 받고서

초록의 빛을 잃지 않는

불의 씨앗


푸르른 불의 씨앗은

인간의 곁불을 쬐며 서서히

다갈색의 원두로,

뜨거운 적도의 기운을 품은

맛과 향의 결정체로 진화한다


그라인더에 살포시 내려앉은 원두

주인의 손에 부드럽게 갈려

곱고 미세한 입자로 변모하고,

드리퍼로 옮겨진 정열의 가루

또 한 번의 뜨거운 샤워를 기다린다


빵처럼 부푼 더미를 향해

뜨겁고 차분한 물줄기가

중심으로부터 천천히 원을 그리며

바깥을 향해 더 크게, 크게

다시 중심으로 더 작게, 작게

원을 그리다, 이윽고

원두의 뜨거운 기운을 함빡 머금은

쌉쌀하고 향긋한 커피가

서버로 쏟아져 내린다


컵에 녹아내린 열대의 태양은

코와 혀끝에서 강렬한 존재감을 드러내고

천천히 목을 타고 넘으며

다시금 정열을 일깨운다


한 잔의 커피

우주의 합작품이다


뜸 들이기에 부푸는 신선한 원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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