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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성민 Jan 20. 2018

픽사가 바라보는
'너희들의 가족주의'

영화 <코코>

출장으로 해외를 나가면 현지 코디들이 붙는데 보통 한국에서 건너가 사는 이민자들이거나, 혹은 한국말을 잘하는 교포 2세인 경우가 많다. 코디들은 업무에 관련된 현장 연결부터 숙식에 필요한 정보까지 정리해 준다. 가끔은 회식까지 함께 할 만큼 긴 시간을 같이 있기도 한다.

그들을 보면서 한 가지 인상적이었던 것은, 
내가 별로 좋아하지 않는 한국의 이른바 '의전 문화'를 완벽히 수행할 줄 안다는 거다. 심지어 술자리의 소위 '주도'까지 나보다 훨씬 잘 알고 능숙하게 따른다. 딱히 이쪽의 상급자가 원하지 않았더라도.


처음엔 그게 좀 의아했다.
한국식 권위주위에 기반을 둔 불필요한 의전 문화는 우리 세대에서 늘 '없어져야 할 인습'으로 얘기 되고, 이에 대한 반례로 항상 '위아래 없는' 서구 문화가 거론 되는데 정작 그 서구 문화의 당사자들은 어쩜 저렇게 능숙한 적응력을 보여주는가. 게다가 내가 경험한 교포 2세들은 보통 '아버지 세대' 문화를 자신에게서 적극적으로 분리하려는 경향이 강했는데.

직접 그들에게 묻고 이유를 들으니, 바로 '분리했기 때문에' 가능한 거였다. 그러니까 그들의 그 능숙한 의전은 정확하게 '상대 문화에 대한 타자로서의 존중'이었다. 정중한 문화상대주의 같은 거.

우린 그 권위주위가 피로하고 불편한 '우리 문화'이기 때문에 불필요한 의전 문화에서 감정적인 거부감을 느끼지만, 그네들은 자기 문화가 아니라 그냥 '일'이다. 일에 감정을 섞으면 안 되지. 타 문화에 우열의 판단을 둬도 안 되고. 어차피 한 주 만나고 떠날 사람들의 문환데. 남의 문화는 그대로 존중해줘야 하는 거다. 딱 그런 태도.

<코코>에서 느낀 묘한 감정이 그랬다. 마지막에는 어찌어찌 모든 갈등이 해결되지만 아무리 그래도 그 가족 너무 숨 막힌다. 그래서 아름다운 엔딩에도 어딘지 찜찜하다.

그건 아마 <코코>에서 그려진 그 꽉막힌 가족주의가 한국 문화 안에도 고스란히 살아있기 때문일 거다. 픽사의 직원들은 그 압박을 느낄 일이 없으니 그저 '문화상대주의적 관점'에서 아주 성실하게 그 문화로부터 내러티브를 만든 거고.

엄마가 슬리퍼 들고 등짝 스매싱을 한다거나 꼬박꼬박 애들 바짓단을 접어 올려준다거나, 이런 세심한 문화적 고증 덕분에 멕시코 문화권 출신 관객들의 감탄을 얻어냈지만, 동시에 늘 음악이라면 죽고 못산다든지 왁자지껄 드센 목소리로 시끄럽다는 등등 미국이 갖고 있는 멕시코인들에 대한 스테레오 타입을 열심히 재생산 하기도 한다.

생각해보자.
픽사에서 한국인을 주인공으로 작품을 만든다면 아마, 주인공은 친구 별로 없고 내성적인 성격에 수학 과학에 관한 천재성을 보여 줄거다. 부모는 주인공이 공부를 계속해서 의사가 되길 바라지만 주인공은 하필 음악을 너무 좋아한다. (여기서 음악은 댄스가 동반된 KPOP이어야 한다.) 그러다 자신의 재능을 알아봐주는 남자랑 결혼을 하고, 그집 며느리로 명절 때 제사준비를 해야하는데, 부모랑 싸우고 숨어 들었다가, 꿈에서 시댁의 조상신들을 만난 뒤, 가족의 소중함을 깨닫고 다시 돌아와 열심히 제사를 섬기며 음악과 가족을 되찾는다면. 과연 한국의 관객들은 얼마나 유쾌하게 볼 수 있을까.

타문화를 재료 삼아 만들어지는 내러티브는 가치판단의 기준 역시 그 문화에 두어야 할까. 픽사는 자신들 문화의 개인주의보다는 멕시코 문화에 깊게 어린 가족주의를 선택했다. 확실히 그게 맞는 선택이라는 생각은 들지만 어딘지 좀 찝찝한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물론 아름다운 영화였다. 할머니가 주 양육자인 연인과 둘이 손잡고 크레딧이 끝날 때까지 눈물 줄줄 흘렸다. <코코>는 그렇게 영화로서 충분히 훌륭했지만 픽사가 보여줘온 창의성과 디테일이 많이 죽은데다, 여기에 더해 멕시코 문화를 절대로 그저 '타문화'로만 볼 수 없는 한국 관객으로서는 오롯이 잘만들어진 내러티브로만 보긴 힘든가 보다.

하루 간격으로 <원더>와 <코코>를 봤더니 그 두 문화의 대비가 더욱 강렬하게 느껴진다. 국경 하나 사이에 두고 이렇게 다른 가족이라니.
너네는 <원더>가 보여주는 개인주의적이고 주체적인 가족애가 가장 이상적이잖아.
모를거야 이 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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