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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성민 Jun 22. 2020

남자가 필라테스를 할 때

필라테스를 시작한 지 꽉 채워 2년 째다. 돈을 내고 하는 한 가지 운동을 이렇게 오래해 본 것은 처음인데, 확실히 홈트레이닝과 함께 꾸준히 하니 몸이 많이 달라졌다는 게 체감이 된다. 체감이 되니 운동에 의욕이 더 생기기 마련. 좋은 습관은 그렇게 되먹임을 반복하며 단단해진다.


다만 남자가 필라테스를 한다고 하면 의외라는 시선을 자주 받는다. 이 운동을 만든 사람이 '필라테스'라는 남자였으며, 전쟁포로들이 좁은 공간에서도 신체를 단련하기 위해 개발되었다는 이야기는 별로 와닿지 않는다. 그도 그럴 것이, 필라테스를 하러가면 강사부터 수강생까지 90% 이상 여자들 뿐이니까.

애초에 나 역시도 근육을 키우는 종류의 운동에는 관심이 없어 선택한 것이니 만큼, 근육을 멋지게 키우고 싶은 남성들에게는 그리 매력 없는 운동이긴 할 거다. 그래도 요즘에는 트렌드가 많이 바뀌어 남자 필라테스 강사들도 점점 늘고 있고, 여성들도 예쁜 몸을 만드는 것 이상으로 피트니스를 하며 근육을 키우는 재미를 느끼는 사람이 많아진 듯 하다. 당장 내 아내만 해도 피티를 하고 온 날이면 집에 와서 갈라진 등 근육을 만져라보라며 우쭐해 하고 있다. 그럼 나는 다리가 얼마나 더 찢어지는 지를 자랑하고.


그럼에도 여전히 필라테스가 여성들의 전유물이구나 느껴지는 가장 강력한 지점은, 강사의 언어에서다. 거의 모든 시간 동안 여성들 만을 대상으로 수업하다보니, 그렇게 습관이 된 언어를 나에게도 고스란히 쓸 때가 많다.


1. 어깨를 펼치고 가슴을 앞으로 내밀어야 할 때, "자, 회원님, 목걸이 자랑~!"

    그렇게 자랑할 만한 목걸이를 해본 적은 없지만 가슴은 내밀 수 있다.


2. 가부좌를 틀고 상체를 앞으로 숙여 엉덩이 근육을 스트레칭 할 때,

   "자, 회원님 그대로 앞으로 큰 절 하듯이 숙여주세요~"

   이런 자세로 큰 절을 해본 적은 없지만 물론 앞으로 상체를 숙이는 데는 무리가 없다.


3. 뒤로 누워 상체를 일으키는 복근 운동을 할 때, "자 회원님, 가슴 브라선 있는 데까지만 일으켜 보세요."

   브라는 없지만 어딘지는 대강 알겠다.


4. 하체 운동을 하며 엉덩이를 뒤로 빼야 할 때, "자 회원님, 예쁘게 힙업! 엉덩이 더 봉긋하게!"

   엉덩이 예뻐지면 좋지 뭐.


강사님이 나에게도 계속 이런 언어들을 써서 수업을 한다는 건, 어쩌면 굉장히 편견 없는 사람이라는 뜻일지도 모르겠다.


반면 주변 남자들은 내가 필라테스를 한다고 하면 전혀 다른 문제에 관심을 가지는데,

"그거 하면 막 쫄쫄이 입어야 되지 않아?"

"응, 아무래도 근육에 힘이 들어가는 걸 하나하나 봐야하니까 타이트한 레깅스 같은 걸 입지."

"거기 강사들도 다 여자들 아냐? 다 그런 옷 입고?"

"응, 거의 그렇지."

"그럼 수업할 때 막 만지고 그러지는 않아?"

"당연히 만질 때도 있지. 자세 알려주고 할 때는."

"...서면 어떡해?"

"......."


아하. 그게 걱정이었구나. 난 그것 때문에 곤란해본 적은 없지만, 많이 건강한 사람은 걱정될 수도 있겠다.

하지만 해 보면 알 텐데. 생각보다 별로 걱정할 문제는 아니라는 걸.

너무 힘들어서... 걱정하는 그런 문제는 아마 발생하지 않을 거다.


그래도 역시 자기가 제일 편한 운동 찾아서 하는 게 좋은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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