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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성민 Jul 21. 2020

본격 예능제작 전문용어(은어) 가이드

feat. 일제 잔재 대잔치

전문직이 나오는 드라마는 그 세계를 얼마나 멋지게 미화하면서도 실감나게 묘사하느냐가 관건이다. 이 두 가지 균형을 잘 잡는게 중요한데, 너무 현실감 없이 미화하기만 하면 실체를 아는 이들에게 비웃음 사기 쉽고, 그렇다고 아무런 미화 없이 리얼하게만 그리면 대중에게 사랑 받기 힘들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럴 때 디테일이 중요하다. 어차피 드라마의 굵직한 서사는 사랑얘기든 미스터리든 정치극이든 '현실적이기' 쉽지 않다. 현실에서 일어난다 해도 아주 드물 만한 일이 드라마가 된다. 전문직들이 그냥 평범하게 돈 벌고 밥 먹고 피곤한 얘기는 <다큐 3일>로 만들지 드라마로 만들지는 않는다.


그래서 이야기의 큰 줄기는 비현실적이되, 디테일로 현실성을 불어 넣는다. 의사들은 편한 크록스를 즐겨 신는다든지, 기자들은 통화녹음이 되는 갤럭시를 쓴다든지 하는 식으로. 그리고 이 디테일을 살리는데 가장 즐겨 동원되는 요소가 바로 전문용어다. 그 바닥 사람들만 쓰는 말. 그쪽 업계 사람이 아니면 들어볼 일도 없을 말들을 일상적으로 주고받는 장면이 자연스럽게 연출되면, 뭔가 있어보이게 미화가 되면서 현실감도 동시에 얻을 수 있다. '에이 저런 의사가 어딨어' 싶은 미모의 배우들이 의사로 등장해도, 당장 '서브듀랄'이니 '파라클리노이드'니 하는 말들을 그럴 듯하게 주고 받으면 뭔가 현실감이 드는 것이다. 물론 누가 봐도 입에 안 붙은 전문용어를 꾸역꾸역 주워 섬겼다가는 바로 역효과다. 이건 작가의 역량이기도, 배우의 역량이기도 하다.


근데, 의료 드라마에서 의학용어가 난무해도 멋있고, 법정 드라마에서 법률용어가 난무해도 멋있는데, 방송제작현장을 다루는 드라마가 나온다면 전문용어의 활용은 아무리 생각해도 '미화'의 측면에서 마이너스다. 현실감은 줄 수 있겠지만 하나도 안 멋있다.

한국의 방송산업은 일본의 지대한 영향 아래 발달해 왔기 때문에, 곳곳에서 그 흔적을 찾아볼 수 있는데 그 중 대표적인 것이 이 '업계 용어'에 남아있는 수많은 일본말들이다. 국어순화에 앞장서야 하는 지상파 방송국이건만, 실제 이들의 언어야말로 그 어느 업계보다 일제의 잔재에 푹 젖어있는 셈이다.


시바이, 야마, 데꼬보꼬, 니쥬, 오도시...

처음 방송국에 입사했을 때는 도대체 저게 무슨 말인가 싶은 것들 투성이였다. 하지만 모두가 당연하게 쓰고 있어서 손들고 '저기 근데 그게 무슨 뜻이에요'라고 물어볼 수도 없었거니와, 언어의 학습이라는 것이 대개 그렇듯 단어의 정확한 뜻을 몰라도 앞뒤 문맥으로 유추해 이해하고, 그렇게 용례를 쌓아가다보면 정확한 정의는 모른 채 그저 '느낌'으로 소통하게 되는 경지에 이른다. 이는 다른 언어를 배울 때도 꽤나 바람직한 방법이긴 하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인데, 이 용어들을 일상적으로 쓰는 수많은 선배들도 정확한 어원을 파악하고 있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 그들도 나처럼 그냥 '느낌과 문맥으로' 익히면서 자연스럽게 입에 붙어 쓰고 있는 거였다.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무슨 뜻인지 정확히 모르면서 쓰기는 좀 꺼림칙했다. 그래서 일단 서사나 편집에 쓰이는 말들 위주로 하나 하나 찾아봤다. 이 말들은 어디서 온 걸까. 9년 차 예능PD가 정리해본 방송제작현장 업계 용어.

다만 이는 MBC 예능국 한정 용례들이고, 아마 방송사들마다 미묘하게 다른 용법들도 있을 것이다. 저 지식인 짤에서 보듯 영화판, 가요계, 디자인, 그래픽, 출판 등등의 다른 영역에서도 비슷한 단어들을 대동소이하게 쓰고 있는 듯 하다. 용례는 미묘하게 달라도 어원은 거의 비슷한 일본어들이다.


1. 야마(명)

방송가 외에도 가장 널리 쓰이는 말. 주제, 핵심 등으로 번역할 수 있다. 대중이 많이 쓰는 '야마 돌았다'와는 다른 의미로 쓰인다.

"그래서 이 촬영분의 야마가 뭔데?"

 ☞ "이 촬영분이 말하고자 하는 바는 무엇입니까?" / "이 촬영분에서 제일 재미있는 장면은 무엇입니까?"


기자들 사이에서는 '기사의 야마 = 기사를 한 줄로 요약하면?' 정도의 의미로 쓰이고, 가요계에서는 좀 더 광범위하게 '가사의 야마 = 뭔가, 그, 확 오는 느낌' 정도의 의미로 쓰이는 듯 하다.

어쨌든 '가장 중요한 것, 핵심, 에센스, 묵직한 포인트' 등등의 의미로 쓰이고 있다.


일본어로 '산'을 뜻하는 야마(やま)에서 왔다는 추정이 지배적이다. 평지에서 홀로 돌출되어 있는 그 모양에서 왔다는 해석도 있고, 위로 올라갈수록 점점 좁아지는 모양이 클라이맥스를 연상시키기 때문이라는 해석도 있다. 다 이상하다.


2. 시바이(명) / 시바이 치다(동)

'재미 요소'를 두루 이르는 말. 예능에서 '재미 요소'는 중요하지만, '야마'보다는 상대적으로 그 중요성이 떨어지는 부수적인 재미 요소들을 '시바이'라고 이를 때가 많다.

예를 들어, <선을 넘는 녀석들> 같은 교양 예능에서 설민석 씨가 역사 일화를 설명하는 장면이 있다고 해보자. 이 프로그램의 목적은 어쨌든 역사적 지식을 전달하는 것이기 때문에 당연히 이 부분이 '야마'다. 하지만 그래도 예능인데, 5분 넘게 아무런 웃음기 없이 계속 지식 전달만 이어진다면, 시사실에서는 이런 말이 나올 수 있다.

"시바이가 너무 없는데?"

해석하자면, "전체적인 흐름은 나쁘지 않으나 웃음 포인트가 너무 없다" 정도의 의미가 되겠다.


버라이어티 프로그램에서 출연자들이 미션을 수행하다가, 뭔가 재미있는 상황을 발견하고 자기들끼리 상황극을 했다고 하자. 전체 흐름과 크게 상관은 없으나 소소하게 재미는 있는 촬영분이 나왔다. 그럼 편집실에서는 이런 말이 오고 간다.

"상황극 시바이 살려요?" ☞ "상황극이 주는 재미 요소를 편집본에 포함시키겠습니까?

"재밌긴 한데 너무 길다. 아까우니까 일단 킵 해놓자. 나중에 시바이 너무 없는 것 같으면 다시 보게"

☞ "전체적인 가편집이 끝난 뒤에 재미 요소가 너무 부족한 것 같으면 그때 다시 고민해보겠습니다."


그래서 전체적인 흐름을 매끄럽게 주도해갈 수 있을 만큼 안정적인 진행능력을 갖춘 MC는 아니지만, 촬영장의 분위기를 잘 파악하고 시의적절하게 웃음 포인트를 만들어낼 수 있는 출연자의 경우, '시바이가 좋다' / '시바이를 잘 친다' 라는 평을 듣는다.

이는 정확하게 일본어로 '연기'를 뜻하는 시바이(しばい)에서 온 것으로 보인다. 일본어 '시바이'는 연극, 연기를 두루 이르는 말로, 이를 이용한 꼼수나 속임수라는 뜻까지 포함한다. 영화판에서는 좀 더 원어에 가깝게 '연기적 상황'을 가리키는 말로 쓰이는 듯하고, 위에서 설명한 예능의 경우 과거 일본의 희극인들이 하던 코미디가 사실상 '연기'의 한 형태였기 때문에 위의 용례로 변형되어 왔을 것으로 추정된다.


3. 니쥬(명) / 니쥬 깔다(동)

서사가 완성되기 위해 필요한 서론, 복선, 도입부, 혹은 그런 분위기. 한국어로는 '밑밥'이라는 표현 정도면 정확할 듯 싶다.

"너무 니쥬 없이 훅 들어오니까 시바이가 안 살잖아."

☞ "이야기를 이해하기 위한 사전정보가 전달이 안 된 상태라 재미 요소가 제 역할을 못했습니다."

"이 새끼 니쥬 까는 거 봐라"

☞ "무슨 얘기를 하려고 분위기를 잡는 건지 의심스럽습니다."

이 정도의 용례면 충분히 이해가 될 것 같다. '니쥬'의 번역으로 '밑밥'이 적절해 보이는 것이, 둘 다 '깔다'라는 서술어와 호응하는 것을 봐도 느낌이나 의미나 비슷한 것 같다.


'니쥬'는 드물게 복수의 용례가 있는데, 예능에서는 위에서 설명한 뜻이 훨씬 자주 쓰이는 반면 촬영 현장에서는 '받침대'라는 뜻으로도 쓰인다. 남녀 출연자의 키 차이를 줄이거나 카메라의 높이를 조절하기 위해 놓는 등 다양한 용도로 쓰이는 작은 상자를 말하는데, 영어가 익숙한 촬영현장에서는 좀 더 폼나게 '애플박스'라고 부르기도 한다.


다른 뜻 같지만 둘 다 무언가를 받쳐주기 위해 바닥에 '까는' 용도라는 점에서 같은 어원으로부터 출발했다고 유추해볼 수 있다. 이는 '두 겹'을 뜻하는 한자 '이중(重)'을 일본어로 그대로 읽은 니쥬(にじゅう)에서 온 것으로 보인다. 무언가를 겹쳐 놓아 높이를 조절하고 발판으로 쓰는 등의 개념에서, 서사적 의미에서의 '받침대'로까지 확장된 것이 아닐까.


4. 오도시(명) / 오도시 터지다(동)

서사의 클라이막스, 혹은 웃음이 가장 크게 터지는 지점.

위에서 설명한 2번, 3번과 함께 사용할 경우,

"이게 원래 오도신데 니쥬가 너무 없으니까 시바이가 안 살잖아" 같은 문장을 구사할 수 있다.

☞ "이 장면에서 감정이 폭발해야 하는데 도입부가 너무 약해서 연출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일본어 오도시(おどし)는 '으름장, 위협, 호통' 등의 뜻을 갖고 있다. 이게 어째서 '가장 크게 웃음이 터지는 포인트'로 이어지는지 추정해보자면, 일본의 만담 문화에서 온 것이 아닌가 싶다. 일본의 가장 오래된 코미디의 형태인 만담은 2인조로 구성되는데, 바보 역할을 하는 '보케(ボケ)'와 보케의 멍청한 말에 화를 내는 '츠코미(つっこみ)'의 형태다.

이 2인조 만담은 대단히 도식적이다. 하이쿠가 그렇듯 일본의 오래된 문화들은 고전적인 형식의 틀 안에서 다양한 변주를 즐기는 것을 묘미로 여긴다. 이 도식적인 만담에서 '보케'가 계속해서 바보 같은 말을 하면, 한 번 두 번 이를 지적하고 정정해주던 '츠코미'가 참다 못해 버럭! 화를 내는 지점이 정해진 웃음의 포인트다. 버럭! 하고 으름장, '오도시'를 내지르면 웃음이 터지는 것이다.


이렇게 추정해보면 '오도시'가 예능에서 가장 웃음이 터지는 포인트를 가리키는 말로 쓰이는 이유를 짐작해볼 수 있다. 처음에는 그렇게 '웃음' 자체를 가리키는 말이었던 것이, 지금은 가장 감동적인 장면이라든지, 혹은 시각적으로 가장 스펙터클한 장면처럼 연출자가 생각하는 '가장 중요한 포인트'를 지칭하는 말로 두루 쓰이고 있다.


5. 니마이(명) / 쌈마이(명), 나까(명)

통상 '니마이'는 '쌈마이'와 쌍을 이루는 단어다.

'쌈마이'는 업계가 아니더라도 대단히 일상적으로 쓰이는 단어이니 이해가 쉬울 것이다. 좋게 표현하면 '키치(kitsch)하다', 좀 더 직설적으로는 '천박하다, 저속하다'의 정도의 느낌이겠다. 사실 '키치하다'는 것도 최근에나 좋은 뉘앙스가 더해진 것이지 원래 '천박하다, 저속하다'의 의미를 갖고 있었던 것은 같다.

'니마이'는 여기에 대칭되는 의미로 '진지하다' 정도의 의미가 되겠다.


이 두 단어는 어원이 확실한데, '니마이'는 '두 번째 페이지'라는 뜻의 니마이메(にまいめ)에서 왔고, '쌈마이'는 '세 번째 페이지'라는 뜻의 산마이메(さんまいめ)에서 왔다. 이는 일본의 경극 문화에서 온 것으로 가부키 배우들을 소개하는 대본의 첫 페이지에 여성주연이, 두 번째 페이지에 남성주연이, 세 번째 페이지에 조연/엑스트라들이 기재되어 있었던 것이 기원이다.

그래서 일본어 사전에 '니마이메'는 (남자 주연을 할 만큼의) '미남'이라는 뜻이, '산마이메'는 '익살스러운 역'이라는 뜻이 적혀 있다. '여주, 남주, 익살꾼'의 조합은 가부키에서부터 '인어공주 에리얼, 에릭 왕자, 세바스찬'이나, '안나, 크리스토프, 올라프'의 디즈니에서까지 볼 수 있는 전통적인 역할분배인 셈이다.


이런 의미의 연장에서 다른 업계에서는 '니마이'를 '주연급'이란 뜻으로, '쌈마이'를 '조연급'이란 뜻으로 쓰기도 하는 것 같다.

하지만 예능판에서는 미묘하게 그 느낌이 다른데, 진지한 걸 기피하고 다소 위악적인 분위기의 예능 제작 현장에서는 때로 '쌈마이'가 우대 받고, '니마이'는 부담스러운 느낌을 표현하는 경우로도 왕왕 쓰인다.

"아우 그 배우는 너무 니마이야"

☞ "그 배우는 다소 진지한 성향이 강해서 웃음을 만들고자 하는 우리의 연출 방향과는 안 맞을 수 있습니다."


추한 분장이나 슬랩스틱으로 원초적인 웃음을 유발하는 경우, 내부에서 '쌈마이'라고 부르며 인정과 지지의 뉘앙스를 보내는 경우가 많다. 예능에 다양한 요소가 있지만 어쨌든 '웃음을 유발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가치로 평가 받기 때문이다.

'쌈마이'와 비슷하게 쓰이는 '나까'라는 단어도 이러한 이중적인 뉘앙스를 보인다. 하지만 '나까'는 그 어원을 추정할 수 없어 그저 '쌈마이'와 비슷한 의미라고만 소개한다. 일본어 '나까'는 '가운데, 안'이라는 의미를 뜻하는데, 이것이 어째서 이런 의미로 변화되었는지는 나의 배경 지식의 부족으로 추론이 불가능하다. 속까지 다 보여준다는 뜻이려나. 속된 말로 '빤쓰 벗고'라는 표현이 있듯이.


물론 최근의 예능은 웃음만을 추구하지 않는 경우도 많기 때문에, 니마이가 꼭 부정적으로만 쓰인다고 볼 수는 없다.

"어, 여기는 시바이 싹 빼고 니마이로 가야 돼."

☞ "이 시퀀스는 진지한 주제를 다루고 있기 때문에 웃음을 유발하는 요소는 모두 배제하는 방향으로 편집합시다."


6. 바레(명) / 바레 시키다(동), 바레 나다(동)

번역하면 '스포'에 해당한다. 미리 밝혀지면 안 되는 내용이나 시각적요소가 화면에 드러나는 것을 말한다. 이는 당연히 막아야 하는 경우가 많으므로 실제 용례는 부정형인 '바레 안 되게'의 형태가 주로 쓰인다.


예를 들어 프로그램의 두 주인공이 대결을 펼치는 경우, 보통 긴장감을 위해 대결의 결과가 발표되기 직전에 한 회차를 끝내는 경우가 많다. 이 때 다음 회 예고편은 그 결과에 대한 궁금증을 더욱 부추겨야 하기 때문에 결과를 추론할 수 있는 요소가 화면에 보이는지를 꼼꼼히 확인한다.

"야 여기 얘 왕관 쓴 거 바레 났잖아. 이 컷 쓰면 어떡해."

☞ "우승자가 왕관을 쓴 모습이 화면에 보이는데, 이것은 다음 회 결과에 대한 스포일러이니 주의해 주십시오."


바레는 정확히 일본어 '들키다, 들통나다'인 '바레루(ばれる)'에서 온 것으로 보인다. 여기서 동사형 어미인 '루'를 빼고 '바레'란 단어만 명사처럼 쓰이기도 하는데, 한때 일본에서는 '입고 있는 옷이 유니클로인 것을 들키다'라는 뜻의 '유니바레(ユニバレ)'라는 말이 쓰이기도 했다.

'유니클로'는 옷의 디자인이나 품질은 양호하면서 가격이 싼 것으로 인기를 끌었는데, 바로 이 '싼 가격'이 브랜드 이미지에 부정적이라는 것을 회사 스스로도 인지하고 옷 바깥쪽에는 브랜드 로고를 넣지 않음으로써 마케팅에 성공했다. 그래서 유니클로 옷은 그냥 입으면 브랜드가 보이지 않아 '유니클로가 아닌 척' 할 수 있는데, 그 옷이 유니클로인 것을 들키면 '유니바레'가 되는 것이다.


예능 회의실에서는 시사 후 PD나 작가들이 낸 의견을 한 사람이 받아적고 정리하는 회의록을 쓰기도 한다. "결과가 바레 안 되게" 편집해달라는 의견을 받아 적을 때, 어원은 알 수 없고 그냥 소리 나는대로 쓰는 건 왠지 문서에 어울리지 않는 것 같다고 고민했는지, 적당히 한자처럼 바꾸어 '발해 안 되게'라고 적혀 있는 경우를 가끔 본다. 어원을 모른 채 단어를 쓰다 보면 일본어의 잔재를 우리 민족의 긍지로 승화하는 일도 생긴다.


7. 데꼬보꼬(형)

드물게 형용사다. 편집이나 서사의 균형감각, 리듬감, 호흡 같은 것을 두루 이르는 말이다. 이렇게 쓸 수 있다.

"어 재밌는데, 너무 시바이만 계속 나오니까 정신이 좀 없다. 데꼬보꼬가 좀 있어야 되는데."

☞ "재미 요소만 쉴 새 없이 이어지는 편집이 다소 평이하므로, 쉬었다 웃을 수 있는 편집의 리듬감이 필요합니다."


일본어 '데코보코(でこぼこ)'는 '요철, 울퉁불퉁'이라는 뜻이다. 한자로 보면 더 와닿는데, 순서는 반대다. 철요(). 실제로 운전자들 중에서도 미끄럼방지나 과속방지를 위해 도로표면을 울퉁불퉁하게 처리한 것을 '데코보코'라고 부르는 사람들이 가끔 있다.

딱히 더 설명할 게 없다. 편집이나 서사를 '울퉁불퉁'하게 해달라는 거다. 들어갔다가 나갔다가, 리듬감이 느껴지는 모양처럼 리듬감이나 호흡을 살려달라는 말.


8. 나래비(형)

특별한 서사 구조를 만들지 못한 채, 장면이나 사건들만 주르륵 늘어놓은 편집을 말한다.


프로그램의 예고편을 예로 들어보자. 예고편의 가장 중요한 목적은 '다음 회차를 자세히 설명하는 것'이 아니라, '다음 회차를 보고 싶게 만드는 것'이다. 그래서 실제로는 전혀 중요하지 않은 다음 회차의 대사나 장면들을 마치 엄청나게 중요한 것처럼 편집해 '낚시'하는 경우도 많다. 실제 다음 회를 보고 예고편의 '낚시'를 욕할지언정 어쨌든 궁금해서 다음 편을 보게 만들었다면 잘 만든 예고편으로 인정 받는다. 예고편 안에 하나의 독립된 서사를 담아야 하는 것이다.


하지만 양심의 소리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어떤 PD들은, 시청자를 속이면 안 될 것 같은 부담을 느낀다. 그래서 아주 친절하게, 다음 편에서는 어떤 일들이 벌어지는지 차근차근 설명하는 예고편을 만든다. 주인공들이 시장에 가서, 상인들과 대화하며 장을 보고, 집으로 돌아와 좌충우돌 요리를 하고, 맛있게 먹는 예고편.

물론 촬영이 아주아주 재미있게 잘 됐다면 있는 그대로 붙여놓는 것만으로도 기대감이 생기겠지만, 보통은 1시간 동안 보여줘야 할 장면들을 30초짜리로 주르륵 붙여놓으면 이도저도 아니게 된다.

그래서 30초짜리 예고편 만의 독립된 서사 없이, 그저 재미있어 보이는 장면들만 나열해놓은 예고편 편집은 이런 평을 듣는다.


"이건 그냥 나래비잖아."

☞ "새로운 서사구조를 만드는 고민이 느껴지지 않는, 장면들의 나열에 불과합니다."


나래비는 일본어 '나라비(ならび)'에서 온 것으로 보인다. '일렬로 늘어선 모양, 줄지어 선 것' 등을 의미하니 사실상 거의 그 의미 그대로 들어온 셈이다.

물론 예고편의 역할에 대한 의견은 PD마다 다를 수 있다. 나 역시 너무 사기치는 예고편은 안 쓰고 싶어하는 편이긴 하다.


9. 와꾸(명) / 와꾸 짜다(동)

'나래비'가 안 되게 하려면 '와꾸'가 있어야 한다. '와꾸(わく)'는 일본말로 '테두리, 틀, 프레임'이란 뜻인데, 거의 본뜻 그대로 방송업에서도 쓰인다.


크게 두 가지 용도인데, 하나는 위에서 말했듯 '나래비'가 안 되게 만들기 위한 '이야기의 전체적인 구조' 혹은 '개요' 정도의 의미로 쓰인다. 이는 편집에서 서사 구조를 짤 때도 쓰이지만, 문서나 예산 등을 기획할 때 대략적인 가안을 만들어 본다는 의미로도 넓게 활용된다.


"대충 예산 와꾸 짜보고 하나씩 쳐내자."

☞ "대략적인 예산을 추정치로 잡아보고 세부 항목을 하나씩 다시 확인하는 작업을 하겠습니다."

"아 이거 스케쥴이 와꾸가 안 나오는데."

☞ "출연자들과 촬영 스탭, 촬영지 등의 일정 조율이 이루어지지 않아 촬영에 차질이 예상됩니다."


이는 본래 일본어 '와꾸'의 뜻이 확장되어 사용되는 형태이고, 두 번째는 좀 더 원래 의미에 가깝게 쓰이는 경우다. 예능 프로그램에서 '지난 주 이야기'를 요약해 보여주거나, 이야기의 흐름과 상관 없는 개념 설명이 자료화면과 함께 들어갈 때, 본편의 화면과 구분하기 위해 화면 외곽에 CG로 디자인 한 프레임을 씌운다. 이 경우도 '와꾸'라고 부르며, 이는 원래 뜻인 '틀, 프레임'이라는 의미와 일치한다.

서사나 편집에 쓰이는 말들만 정리해보자면 대충 이 정도겠다. 거의 뭐 그냥 일본어 풀이 정리나 마찬가지인 수준이다.

서사나 편집이 아니라 촬영이나 화면 요소를 이르는 말 중에도, 다른 장비의 도움 없이 카메라를 손으로 직접 들고 흔들리는 느낌을 그대로 살려서 촬영하는 '핸드헬드(Hand-held)'를 '손에 든 물건'이라는 뜻의 일본어인 '데모찌(てもち)'라고 부른다든지, 화면의 입체감을 살리기 위해 피사체와 카메라 사이에 렌즈 가까이 다른 피사체를 걸고 찍는 것을 '나에게 가까운 쪽'이라는 뜻의 "'데마에(てまえ)' 걸고 찍는다"고 표현하는 것처럼 온통 일본어 투성이다.

물론 '화면 프레임 속 인물의 머리 위쪽 공간'을 뜻하는 '헤드룸(head room)'처럼 일본어가 아닌 촬영용어도 쓰긴 쓴다. 하지만 거의 절대 다수는 일본어의 잔재다.


일견 거부감이 드는 사실이긴 하지만, 언어란 결국 쓰는 사람들 간의 상호작용에 의해 생명력을 얻는다. 한국에서 방송산업을 처음 시작했던 사람들이 일본 산업으로부터 대부분의 기술을 전수 받았고, 이들이 용어를 재정립할 의무가 있는 학자도 아니었으니 결국 업계의 역사를 따라 입에서 입으로 굳어진 말들이다. 위의 용례를 보면 알 수 있듯 대체할 수 있는 마땅한 한국어를 찾기 힘든 경우도 많다.


특히 이렇게 특정 산업이나 기술과 관련된 언어들은 그 기술의 발달과 함께 만들어지는데, 한국이 그 기술을 주도적으로 만들어온 나라가 아닌 이상 결국 촬영/방송 용어들은 일본어가 아니면 영어 문화권에서 만들어진 말이 된다. 일본어를 대체하기 위해 굳이 영어 용어를 쓰는 것도 어색한 일인 것은 마찬가지다. 그렇다고 국립국어원에서 억지스럽게 만든 것 같은 순화어를 굳이 찾아야 할까 싶기도 하다. '댓글'이나 '누리꾼'처럼 어느 정도 정착한 말들도 물론 있지만, 스마트폰을 '똑똑전화'로 쓸 수는 없잖아.


업계 사람들끼리 쓰는 은어는 소통을 원활하게 하는 역할을 함과 동시에 그들 사이에 유대감을 강화하는 역할도 한다. 바른 언어는 아닐지언정 소통과 유대감이라는 역할을 충실히 수행하고 있다면 인위적으로 이 언어를 대체하는 것은 쉽지 않다. SNS 플랫폼은 아무리 뛰어난 UI와 디자인을 갖고 있어도 사용자수가 절대적인 가치다. 같은 플랫폼 안에서 상호작용하는게 목적인 서비스는 다른 요소가 아무리 뛰어나다 한들 이용자가 없으면 가치가 없다. 인간의 가장 기초적인 SNS가 언어인걸.


물론 정확한 디렉션을 원하는 사람에게 그냥 '데꼬보꼬 살려서'라는 말은 애매하게 눙쳐서 빡칠 뿐인 말로 들릴 수도 있다. 은어는 쓰는 사람들 사이에서 포괄적인 뉘앙스를 전달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는 동시에, 정확한 정의는 아무도 내리지 못한 채 '느낌만으로' 소통한 나머지 서로의 이해가 엇나가기도 하는 역기능을 가진다. 소통이 잘 안 됐을 뿐인데 작업자의 능력 부족으로 여겨지면 억울하잖아. 원활한 협업을 위해서라도 정확한 의미의 언어를 쓰려는 연습도 필요해 보이긴 한다.


노파심에 하는 말이지만, 업계 은어가 아닌 송출되는 방송 언어는 정말 국어순화에 엄청나게 노력하고 있다. '다꽝'이나 '고수부지' 같은 말을 몰아내는 수준을 말하는 게 아니다. '야채'가 일본식 한자표현이라 전부 '채소'로 바꿔쓰고, '계란'도 일본식 한자표현이라 '달걀'로 바꿔 쓸 정도로. 그래서 가끔은 좀 답답할 때도 있다. '계란말이'랑 '달걀말이'는 느낌이 다르단 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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