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권성민 Jul 02. 2021

어떤 삶의 목격자가 되는 순간.

영화 <빛나는 순간>

어릴 때부터 항상, 차를 타고 기차를 타고 비행기를 타고 어딘가 멀리 떠날 때면, 차창 밖으로 보이는 '사람이 살지 않을 것 같은 풍경' 속의 '사람이 사는 집'들에 눈길을 빼앗기곤 했다.

저 사람은 저기 언제부터 살았을까. 왜 살게 됐을까. 어떻게 살고 있을까. 저 사람의 일상은 어떤 모양일까. 저 삶에서 보고 경험하는 것들은 내 것과 어떻게 다를까.

비슷한 이유로 오래된 유적들에도 마음을 빼앗겼다. 나는 더더군다나 눈을 들면 고성이 펼쳐져 있는 수원에서 유년시절을 보냈으니 상상력은 늘 자력에 당겨지듯 끌려나오기 마련이었다.

유년시절 처음 봤던 지브리 애니메이션에 마음을 빼앗긴 것도, 그 아름다운 작화나 색감, 히사이시 조의 서정적인 음악 때문이 아니라 배경 미술에서 느껴지는 생활감 때문이었다. 상상 속 세계 허구의 인물들인데도, 너무나 현실감 있게 묘사된 그들의 생활공간들이 항상 영화가 보여주는 이야기 이상을 상상하게 만들었다.

인물이 사용하는 장면도 한 번 나오지 않고, 이야기랑 아무 상관도 없이 그저 배경을 가득 채웠을 뿐인 온갖 물건들이 그 인물에게 살아있는 역사를 부여했다.


아 저 사람의 일상은 저런 모양이겠구나. 저 삶에서 보고 경험하는 것들은 내 것과 이렇게 비슷하기도 저렇게 다르기도 하겠구나. 차창 밖 풍경은 알려주지 않은 상상의 빈 공간을 지브리는 채울 수 있게 도와주었다.

아버지 고향은 경북 안동 남선면이다. 안동 권 씨의 집성촌인 이 마을 어귀에는 800년 된 느티나무와 실개천이 흐른다. 몇 대째 이 마을을 지키며 살아오고 있는, 아마도 대부분 이번 대가 마지막일 듯한 몇십 가구가 모여있다.


군복무를 마치고, 더 넓은 세상에 목이 타 온갖 나라들을 들쑤시러 출발하기 직전이었다. 아마도 어릴 적 상상만 했던, 어떤 사람들의 일상을 직접 보고 싶다는 욕심이 드디어 실체가 되려던 시간이었나 보다. 이동의 자유를 박탈당한 채 보이는 거라곤 끝없이 검은 산뿐인 G.O.P에서 몇백 걸음에 갇혀 세월을 보내고 나오니 그 욕구는 폭발할 것처럼 부풀어 올라 있었다.


그래도 전역은 했으니, 할머니 산소에 인사는 드리러 가야하지 않겠냐는 아버지 말씀에 안동을 찾았다. 어릴 적엔 외양간마다 소도 있고, 명절마다 처마 밑에 신발이 넘쳐흘렀으며, 두루마기에 수염을 기른 어르신도 자주 보이던 시골은 이제 꽤나 적막했다.

산소에 갔다 돌아오는 길에, 밭 한 어귀에 서있는 노인을 보았다. 그도 마을의 다른 사람들처럼, 거기서 나고 거기서 자라 백발조차 샐 때까지 이 마을에서만 세월을 쌓았을 터다. 일을 마치고 허리를 쉬는 중인지 한참을 가만히 서있는 그 노인을 나도 한참 바라보았다.


칠팔십 평생을 한 마을에서만 보낸 삶.

그에게 세상이란 어떤 모양일까. 자녀들은 안동 시내로 대구로 그것도 아니면 서울로 떠났을 텐데. 이 작은 마을에서 태어나 평생 이 마을을 지킨, 땅을 보고 하늘을 보고 살아온 그에게 삶이란 세상이란 어떤 크기일까. 물론 젊은 날 세상을 한창 누비다 돌아왔을 수도 있을 테고, 장성한 자녀들이 계절마다 해외여행을 보내드렸을 수도 있겠지만, 내 멋대로 혼자 상상을 했다.

어쨌든 그의 삶은 이 느티나무 그늘 아래서 시작해, 그 그늘 아래 묻힐 테니.


난 그의 삶을 모른다. 하지만 그토록 넓은 세상을 갈망했던 내 젊은 눈에, 한 마을에서 태어나 그곳에서 오롯이 생을 갈무리하는 삶은 아득하게 느껴졌다. 그러면서도 어렴풋이, 그가 그 마을에서 깨달아 온 삶과, 수많은 세상을 들쑤시고 다니려는 내가 마지막 순간에 깨달을 삶이 결국에는 비슷하지 않을까 하는 건방진 생각도 했다.

이야기를 만들고 전하는 사람이라면 아마 다들 비슷한 욕구가 있을 거다.

어떤 삶의 이야기를 만나는 순간, 그리고 그 삶이 안동 남선면 작은 마을 어귀에 서있던 그 노인처럼 조용히 흘러가 가까운 몇몇 사람들에게 말고는 금세 잊혀질 것 같이 느껴질 때, 그 이야기를 기록하고 알리고 싶다는 그런 욕망. 왠지 저 삶을 지켜보았다고 말해주는 사람이 있어야 할 것 같은 그런 묵직함.


<빛나는 순간>에서 처음에는 그저 제주 해녀들의 삶을, 그중에서도 눈에 띄는 해녀 '진옥'의 삶을 담겠다고 다짜고짜 제주에 내려온 PD '경훈'을 보며 동질감을 많이 느꼈다. 물론 극 중에서 묘사하는 다큐멘터리PD와 나 같은 예능PD가 일하는 방식은 굉장히 다를 때가 많지만, 실은 다큐멘터리에 가까웠던 <가시나들>을 준비할 때는 꽤나 닮았던 것 같다.

'경훈'처럼 아예 내려가 눌러붙어 살며 '삼촌'의 한 사람이 되지는 못했지만, 어쨌거나 일상의 변화가 서울처럼 출렁이지 않는 농촌사회에서 외지인이란 조심스러운 존재다. 그 조심스러움을 조금씩 풀어나가기 위해, 몇 달 동안 매주 함양에 내려가 집집마다 인사를 드리고 노모당에 무작정 엉덩이 붙이고 앉아 버티고 마을 어른들을 찾아뵙던 시간들이 떠올랐다. 나중에 수십 명 스탭들과 우르르 내려와도 그 속에서 반가운 아는 얼굴이 되기 위해서.


그때 내 모습이 꼭 영화 속 '경훈'의 모습 같았을 거다. 마음에 들어보겠다고 희멀그레 지어보이는 웃음이 얼마나 속 없어 보였을 것이며, 어쭙잖게 따라하는 사투리며 동넷말들은 어찌나 어색하기 짝이 없었을까. 뻔히 다 느껴지면서도 서울서 젊은 놈이 뭐라도 해보겠다고 먼 길 찾아온 모습이 신기하기도 귀엽기도 해 상대해 주셨을 속마음은 나도 안다.

<빛나는 순간>은 어떤 사랑에 대한 이야기이고 거기에 대해서도 이야깃거리가 많지만, 많은 이들이 이 영화 속에서 사랑을 볼 테니 나는 PD로서 좀 더 남다르게 다가왔던 다른 지점을 적어두고 싶다.


'진옥'의 삶을 따라가는 영화는 결국 역사의 어떤 지점과 만난다.

<가시나들>을 찍을 때도 그랬다. 방송에 내진 않았지만, 촬영지가 된 함양 일대는 지리산 자락이 곳곳에 드리운 지역이었고 지리산은 한국전쟁 이후 빨치산들의 주 활동 무대였다.


할머니들이 어릴 적 학교에 가지 못한 이야기 속에는 어떤 형태로든 꼭 빨치산의 이야기가 섞여 있었다. 그들이 위험하다는 게 학교에 못 간 이유인 분도 있었고, 빨치산들은 점잖고 신사다웠다는 증언도 있었으며, 마을에 남아있던 미군들이 오히려 더 못되고 나빴다는 이야기를 하는 이도 있었다. 그 나쁨의 수준이 너무 끔찍했다.


촬영의 주요 장소가 된 몇몇 집에는 총격전의 흔적이 그대로 남아 있었다. 처마 밑 벽에 총알이 뚫고 나간 구멍들, 깨진 벽의 조각들이 선명했다. 주름진 손으로 그 흔적들을 가리키며 주억거리던 할머니의 목소리가 생생하다.

방송에는 단순히 어려웠던 시절, '가시나'라서 학교를 가지 못하고 배움의 기회를 얻지 못한 이들로 냈지만, 실은 이들의 삶에는 훨씬 더 많은 역사와 이야기들이 어려있었다. 그걸 다 담아내자니 4회짜리 파일럿은 아무래도 역부족이었다. 방송은 그들의 오늘과 배움과 일상에 집중하기로 했다.

서울에서 뻥 뚫린 고속도로로도 4시간, 거기서 다시 차를 굽이굽이 운전해서 올라간 언덕 위 마을에, 대여섯 채 자리한 집 대부분이 비어있는 채 서로를 벗 삼아 살아가는 농익은 인생들. 한 달 내내 마주치는 얼굴을 다 합쳐봐야, 서울 사는 내가 하루에 마주치는 얼굴보다 적은 삶. 요즘처럼 누구나가 저자가 되고 자기 이야기를 담아내는 세상이었다면 이미 몇 권의 책으로 써내도 모자랐을 그 인생들은 이제야 한글을 배우고 띄엄띄엄 당신의 이름을 쓴다.


평생 쌓여온 감정과 생각들을 말로 밖에, 그나마도 자유롭게 말할 수 없었던 이들에게 뒤늦게라도 '글'이라는 언어가 주어졌을 때, 기술과 규범은 아직 제대로 익히지 못했을지언정 표현하고 쏟아낼 것들은 이미 가득했다. 이제 막 한글을 배운 이들이 쓴 글이라고는 믿을 수 없는 수많은 표현들. 그 시차가 만들어내는 행간의 깊이는 까마득한 것이었다.


아마 이들은 이들의 이야기를 끝내 다 써내지 못할 것이다. 하루에도 쓸데없는 오만가지 생각을 수도 없이 남기는 우리 세대와는 달리, 온 삶 가득 채운 수많은 폭풍들은 뒤늦게 깨친 글 몇 자 속에 겨우 담겨질 것이다. 그들이 말로 남긴 이야기는 자녀와 지인 몇몇의 기억 속에 잠시 남아 있다가, 지리산 자락 어드메에서, 혹은 제주의 파도 소리와 함께 부서져 흩어지겠지.

우리는 누구나, 우리 삶의 목격자를 필요로 한다. 또 다른 영화 <노매드랜드> 속 길 위의 삶을 사는 이들도, 자신의 삶을 지켜보고 기억해 줄 누군가를 그리워했다. 그 삶이 대단하고 위대하고, 기록에 남길 만한 엄청난 이야기여서가 아니라, 그저 우리는 모두 목격자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지브리의 배경미술처럼 생생하게.


그 욕망이 남들보다 더 커다란 사람들. 내 삶의 이야기를 이런저런 형태로 가득 남겨 목격자를 잔뜩 만들어 두고 싶고, 동시에 누군가의 삶에 대해서도 열렬히 목격자가 되고 싶은 이들이 결국 이야기를 만드는 이들이 되겠지. 작가, 기자, PD, 감독, 이야기를 만드는 그 어떤 사람들. 


그렇기에, 목격자가 턱없이 부족한 어떤 삶을 만나는 순간, 이 삶 앞에서 여러 사람 몫의 목격자가 되고 싶다는 강렬한 충동에 휩싸인다. 이야기를 듣고, 기록하고, 남기고, 알리고 싶은 마음. 기 이런 삶이 있었고, 그 삶은 이 역사 속에서, 이 세상 안에서 이런 모양을 하고 있었다고.

<빛나는 순간> 속 '경훈'은 그 마음이 사랑으로 이어졌지만, 그가 카메라를 들었던 순간들에는 반드시 그 마음이 섞여 있었을 것이다. 내가 이 인생 앞에서 목격자가, 증인이 되고 싶다는 마음. 어쩌면 이 영화를 만든 감독님의 마음에도.


적어도 이 영화는 어떤 빛나는 순간, 혹은 고통스런 순간들에 대한, 그리고 때로는 순간이라 더 빛나고, 그래서 더 고통스러운 순간에 대한 훌륭한 목격자다.

작가의 이전글 망설임 없이 너의 이름을 적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