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권성민 Jul 17. 2021

내 작품이 내 마음을 위로할 때.

<가시나들> 티저 모음.

끝난 지 2년이 넘은 <가시나들>을 아직도 가끔 본다.

물론 내가 만들고 쓴 모든 것들에는 애정과 열정이 담겨 있지만, 그렇다고 마냥 팔이 안으로 굽는 성격은 아니다. 써놓은 책들도 "이 책을 돈 주고 사서 봐주신다니!"싶을 때가 많고, 한창 하고 있는 프로그램도 '아직 한참 멀었는데 더 도약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를 머릿속에 달고 산다.


그런데 <가시나들>은 그냥 좋다. 만든 지 시간이 흐른 만큼 만들었던 기억도 이제 거리감이 있다. 그냥 한 명의 시청자로서 좋다. 나는 이런 걸 좋아하고, 내가 마음 놓고 좋아할 수 있는 것을 내 손으로 만들어냈다는 사실에 스스로 위안을 얻는다. 그럴 때가 많지 않은데, 다시 봐도 만족스럽다. 동시에 그럼에도 이게 시장에서 유의미한 성과를 거두지 못했기에, 나는 만드는 사람으로서 앞으로 어떻게 해 나가야 할 것인가 고민도 같이 든다.


티저를 참 많이 만들었다. 짤막한 티저로 옮겨놓은 순간들이 사실 내가 이 촬영을 하면서 제일 사랑했던 순간들이기도 하다. 이 영상들을 보고 있으면 2년 전 4월, 아직 겨울의 흔적이 온전히 물러나지 않았던 그 초봄의 냄새며 분위기들이 다시 생각난다.


고민은 고민이고, 모아놓고 한 번씩 다시 보고 싶은 사랑스런 순간들.


첫 번째 티저.

"학교를 못 간" 할머니들의 노래. 중간중간 '관뒀어' 등으로 다시 부르는 할머니의 목소리를 좋아한다.

중국인 멤버 우기는 이때 듣고 알게 된 이 노래를 그 뒤로도 간혹 흥얼거리는 모양인데, 2000년에 발매된 한국 가요를 99년생 중국인 우기가 알고 있다는 사실에 충격을 받는 팬들이 있는 것 같다.

https://youtu.be/DDoIycDrSr8


두 번째 티저.

전날 밤 홈파티를 위해 가져온, 춤추는 닭다리가 썩 마음에 드셨던 남순 할머니.

편집실에서 몇 번을 돌려봤는지 모르는 장면.

남순 할머니 집에는 아직도 꼬마전구와 풍선들이 그대로 걸려있다.

https://youtu.be/oGAtFsfCWS8


세 번째 티저.

소풍 나가서 한 스피드 게임. 이건 무조건 못 맞춘 장동윤 씨 책임임. 당연함.

https://youtu.be/mL8Xoe4Vsd0


청일점이었던 장동윤 씨는 <가시나들>에서도 가장 뜨거운 반응을 불러일으킨 멤버였는데, 방송이 끝난 뒤에도 꾸준히 좋은 배우로 승승장구하다 보니 이런 입덕영상 편집본까지 돌아다니는 걸 봤다.

사실 처음에는 프로그램 취지에 맞게 짝꿍들도 전원 여성으로 구성하려는 생각도 있었는데, "그래도 이성이 섞여 있을 때 나타나는 화학작용을 포기하긴 아쉽다"는 작가님들의 의견에 한 자리를 남자로 바꾸었다.

그 말을 듣길 정말 잘했다.

https://youtu.be/KaWBw7-258E


네 번째 티저.

할머니에게 잘 감기면서도 적당히 현실센스도 같이 챙기는 이브의 매력이 물씬 보였던 장면.

안동의 우리 할머니 댁도 마찬가지였지만, 여전히 전파를 수신해서 TV를 보는 시골은 KBS 1TV와 MBC 밖에 나오지 않는 곳이 많다. KBS 2TV도 거의 안 나온다.

하지만 어르신들의 선호는 압도적 KBS. 사실상 채널은 하나인 셈.

"9번이 제일 다양하게 나와"라는 말에서 공영방송이 어떤 사람들을 항상 고려해야 하는가를 생각했었다. 이제 더 이상 공영방송의 일원이 아니지만.

https://youtu.be/In5zQbkLTeY


그리고 이브에게 감탄했던 순간.

따로 클립은 없는 것 같지만 나는 <가시나들>을 통틀어 남순 할머니가 이브를 시켜 스탭들에게 두유를 나눠주는 장면을 가장 사랑한다.

https://youtu.be/JhUG_rtYymE


다섯 번째 티저.

우기는 정말 매력 있는 인물이다. '한글공부'라는 기획의 차원에서 외국인 멤버도 한 명 같이 들어가면 좋겠다는 의도였는데, 우기는 한국의 예능에서 '외국인'을 소비하는 예상 가능한 방식들이 아무 의미가 없을 만큼 본인의 매력으로 충만한 사람.

짝꿍 멤버들 중에서도 가장 쿨하고 시원시원한 캐릭터였는데, 역시 할머니들 중에서 가장 쿨한 승자 씨와 붙으면서 만들어진 묘한 균형감이 좋았다.

https://youtu.be/n4s-QdGSxo0


여섯 번째 티저.

개천가에 앉아 이야기를 나누는 소리 누나와 유정. 이 영상도 따뜻하고 유쾌해서 자꾸 보게 된다.

사실 연예인들은 미디어로 볼 때와 실제로 만났을 때의 느낌이 다른 경우도 많고, 때로는 그래서 그냥 미디어로만 보는 게 더 매력적인 사람들도 물론 있다. 하지만 소리 누나는 실제로 만나고 함께 일 할수록 더 팬심이 자라나게 만든 사람. 그가 나오는 작품들을 오래 보고 싶고, 또 같이 일할 수 있는 기회가 있으면 좋겠다.

https://youtu.be/hA_q5LNlujs


일곱 번째 티저.

방송이 나가고 가장 많은 공감을 샀던 부분. "우리 할머니도 레슬링 좋아하시는데!"라는 반응이 많았다.

대단히 의외인 것 같아 보이지만, 사실 그리 젊지 않다는 TV 콘텐츠 중에서도 노년층이 소비할 만한 것들은 생각보다 많지 않다. <가시나들>에서 보이는 것처럼 문맹률이 높아 일단 자막이 중요한 콘텐츠 대부분은 따라가기가 힘들고, 자막이 아니더라도 대부분의 말들이 너무 빠르고 많다. 바로 눈앞에서 직접 사람이 말해도 천천히 크게 말해야 하는 경우가 많은데.

그래서 굳이 언어가 큰 비중을 차지하지 않는 음악쇼들, 그러니까 <가요무대>나 일련의 트로트 방송들이 아니면, 비디오로 모든 서사가 다 직접적으로 전달되는 레슬링 같은 스포츠 영상을 보게 된다. 아니면 대사 하나하나를 또박또박 천천히 큰 소리로 전달해주는 연속극이나.

시대가 변하고 공영방송도 수익성을 고민하게 되면서 연속극들도 대부분 폐지되고 있다.

https://youtu.be/0-yToZ6-PI0


이건 충격받은 우기.

https://youtu.be/YXTbMdUj-3Q


여덟 번째 티저.

가장 시청자 반응이 좋았던 티저 중 하나. 채소지옥에 빠진 수빈.

우리는 대부분의 노년층을 도시 문명의 맥락에서 바라보다 보니, 도시 문명의 기술에 뒤쳐진 노년층을 무력한 존재로 여기게 될 때가 많은데 어느 스포츠 팀이든 원정경기보다 홈그라운드에서 더 유리한 법이다.

사실 편집하면서 우리도 어느 작물의 컷이 뭔지 정확히 잘 모른 채 했다. 그래서 오디오에서 얘기하는 작물 이름과 실제 비디오가 일치하지 않는다. 보여주고자 하는 대상에 대한 해상도를 올려야 더 정확히 잘 보여줄 수 있다.

https://youtu.be/_LLRVVkLMro


아홉 번째 티저.

노모당에서 진입한 유정. 나는 사실 프듀 시리즈 대부분에 관심이 없었어서, 함께 촬영하기 전에는 그렇게 잘 알지 못한 편이었다. 하지만 촬영하면서 확실히, 그 치열한 오디션 현장에서 눈에 띄고 사람들의 사랑을 끌어당기는 사람에게는 거부하기 어려운 매력이 있다는 걸 다시 느꼈다.

https://youtu.be/BrKPBpZG4N4


그리고 메인 예고편.

내 마음을 부드럽게 만들어주는 작품을 직접 만들었다는 보람과 뿌듯함을 느끼게 해 준다.

또 그런 걸 만들 수 있기를, 그리고 그게 시장에서도 유의미한 작품이 되기를.

https://youtu.be/MVWGOg29yg8


마지막으로, 에필로그로 나갔던 소리 누나의 시.

그 피곤한 편집실에서도 이 장면을 만지며 마음이 깊이 젖어들었던 새벽이 생생하다.

누나 책 언제 써요.

https://youtu.be/efVZiAcBfzA

작가의 이전글 어떤 삶의 목격자가 되는 순간.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