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변에서 "그걸 왜 지금 끝내?!"하는 분위기가 대부분이라 뿌듯하기도 아쉽기도 하다. 요새는 새로 시작해서 1년 넘게 하는 프로그램도 흔치 않으니까. 제법 오래, 잘 했고 박수 받을 때 마쳤다.
우리 프로그램을 좋아하는 애청자들도 다 <톡이나 할까?> 같은 사람들이었는지, 1년 넘게 내내 조용히 지켜보기만 하다가 종영한다니까 갑자기 여기저기서 정성스런 기사와 감상들이 쏟아져 나왔다. 하나하나 대충 쓴 게 없고, 오랫동안 꾸준히 지켜봐 준 사람들의 애정 어린 시선이 느껴져서 참 많이 격려받았다.
아, 우리 프로그램 이렇게나 사랑 받고 있었구나. 한창 할 때는 이 정도였는 줄은 몰랐네. 그러니까 이렇게 끝날 때 말고 한창 할 때 미리미리 이런 말 많이 해줬으면 서로 힘나고 좋잖아요... 아니 그래도 고마워요 엉엉.역시 칭찬은 미루지 말고 자주 많이 해야 한다.
처음에는 별 생각 없이 정리하기 시작한 촬영지 포스팅이지만, 이왕 시작한 거 끝나는 마당에 왠지 끝까지 다 정리해버리고 싶어졌다. 사실 뒤로 갈수록 이런저런 새로운 기획과 구성이 더해지면서 장소의 아름다움이 상대적으로 덜 중요한 촬영이 많아졌고, 그래서 초반만큼 예쁘고 핫한 곳을 가는 비율이 줄긴 했다. 그래서 이전 만큼 '나중에 놀러 다시 와야지' 하는 마음은 덜 생기지만, 그래도 애정과 눈길이 닿은 곳들.
아마 <톡이나 할까?> 같은 게스트 초대형 방송을 하는 제작진들이 가장 많이 고민하는 지점 중 하나가, '기존 방송에 나온 적은 없는 신선한 얼굴인데, 출연하면 "아 저 사람!"하게 되는' 인물에 대한 욕심일 거다. 앞서 출연했던 정세랑 작가나, 황석희 번역가 같은 분이 대표적으로 유명세에 비해 방송에서 볼 수 없었던 게스트였다. 일러스트레이터 키크니는 말해 뭐해.
다른 출연 제안은 줄곧 고사해오던 세 사람이 우리 프로에 나와준 공통적인 이유는 "MC가 김이나라서"였다. 이나언니(고유명사)의 존엄. 좋은 MC와 일한다는 것은 얼마나 신나는 일인지.
온라인에서 키크니의 인지도는 역대급이다. 나도 여러 번 그의 인스타 만화를 보며 울었던 사람으로서, 처음 게스트 섭외를 해야겠다는 생각을 떠올리고 몹시 신이 났었다. 다만 그는 유명세에 비해 어디에서도 신원을 노출하지 않는 작가. 아마 다른 매체들에서도 여러 번 섭외가 갔을 것이 분명한데, 얼굴 노출에 대한 부담 때문에 거절했으리라.
보통 이런 경우는 충분히 타협점이 있다. 얼굴을 가려드리면 된다. 원래 가면 같은 걸 쓰고 활동하는 사람은 같은 가면을 쓰고 나오시도록 하곤 한다. 그런데 키크니처럼 일러스트 캐릭터면 일이 커진다. 일러스트 캐릭터는 일러스트로 덮어주는 게 베스트인데, 이건 곧 애니메이션 작업을 해야한다는 뜻이니까. 통상적인 방송 제작 스케쥴에서 게스트 한 명 분량을 전부 애니메이션으로 처리하는 것은 사실 불가능에 가깝다.
그나마 <톡이나 할까?>는 이런 면에서 유리했다. 일단 전체 분량 내내 큰 움직임 없이 가만히 앉아 있기 때문에 동화 작업의 부담이 훨씬 적다. 게다가 타이핑으로 얘기하니까. 육성으로 대화하는 게스트를 애니메이션으로 대체한다면 만화 캐릭터에 평범한 사람 목소리가 나간다. 굉장히 이질적인데다 작업 여건 상 대화하는 입모양이 맞아 떨어지기가 어려우니 몰입감이 떨어질 거다. 하지만 가만히 앉아서 타자치는 모습에 감정만 적절하게 살려주는 것은 해볼만 하다. 여러모로 <톡이나 할까?>는 그를 모시기에 좋은 방송이었던 셈이다.
그래도 여전히 손이 많이 가는 작업. 다행히 키크니가 기본적인 애니메이션 작업들도 직접 하고 싶다고 해주셔서, 외주비용을 지불하고 애니메이션 소스를 받았다. 1차로 편집한 화면에 이 소스를 맞춰 배치하고, 부족한 프레임이나 표정들을 추가로 그려 입히면서 몇 주에 걸쳐 작업했다.
촬영지로 선택한 '카페 윙클(윙클베어)'은 아마 씨네큐브나 서울역사박물관을 지나 본 사람은 한 번쯤은 봤을 카페다. 옛날부터 영화 좀 본 사람이라면 비주류영화를 주로 상영하던 '미로스페이스'로 이 건물을 기억하는 이가 더 많을지도 모르겠다. 나도 대학시절 씨네큐브와 미로스페이스를 자주 오갔는데, 미로스페이스는 지금 '인디스페이스'라는 이름으로 서울극장 상영관으로 옮겨갔다. 그 자리에 들어선 건물이라 왠지 익숙한 기분.
키크니 본인이 캐릭터로 출연할 거라, 캐릭터나 애니메이션의 컨셉이 느껴지는 공간을 주로 찾다가 여길 다시 발견했다. 건물 앞뜰에 커다란 '라바' 조형물이 있어서 엄청 눈에 띈다. 아마 <라바>의 제작사인 '투바앤'에서 운영하는 카페인듯 한데, 실내에 들어서면 '라바'를 비롯한 '카페윙클'이나 '다이노코어'의 캐릭터들이 곳곳에 있으며, 카페 뿐 아니라 캐릭터 상품을 살 수 있는 상점도 잘 갖추어져 있다. 애들이랑 오면 눈 돌아갈 듯.
'윙클베어'는 이렇게 공간을 광활하게 써도 되나 싶을 만큼 넓고 쾌적한데다, 앵글에 따라서 시각적인 요소도 다채롭게 펼쳐지는 재미있는 공간이었다. 결과적으로는 우리가 작업한 키크니의 동화적인 캐릭터 느낌하고도 잘 어울렸던 것 같다.
사실 키크니도 캐릭터 사업을 소소하게 하시는 분이라, 서로 아무 상관 없는 두 회사의 캐릭터가 이렇게 같이 노출되어도 괜찮을지 염려했는데, 양쪽 모두 흔쾌히 수락해주셔서 다행이었다. 카페 사장님을 비롯한 직원들이 대부분 키크니와 김이나 씨의 팬이었는지, 굉장히 잘 협조해주시고 끝난 뒤 사내 팬사인회도 가졌던 훈훈한 촬영장.
이길보라 편.
그라운드62 / 서울 종로구 평창길 62
육성이 아닌, 그러니까 청각을 사용하지 않는 대화의 포맷으로써 <톡이나 할까?>를 하면서는, 꾸준히 기회가 되면 다른 방식으로 대화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다루고 싶었다. 농인 부모 사이에 청인으로 태어난 코다CODA로서의 경험을 그린 영화 <반짝이는 박수소리>는 그래서 프로그램 초기부터 꼭 다루고 싶었던 이야기였다.
활발하게 글을 쓰고 영화를 만드는 감독님이지만, 그동안 출연했던 연예인들에 비하면 유독 예능답지 않아 보였을지도 모르겠다. 방송을 만드는 사람으로서, 시청률과 상관 없이 꼭 다루고 싶은 이야기라 밀어붙일 때가 있다. 그렇다고 정말 오로지 "내가 하고싶은 이야기"라는 이유 뿐이면 안되고, 이 프로그램 속에 녹아들었을 때 "충분히 재미있는 이야기"라는 확신도 있어야 한다. <톡이나 할까?>라면, 충분히 잘 어울리는 이야기라고 생각했다.
촬영지를 고르는데 좀 고민이 많이 됐는데, 소재나 게스트가 직접적으로 드러내는 시각적 요소랄게 딱히 없다고 느껴져서 그랬던 것 같다. 어쨌든 손을 쓰는 언어인 '수어'이니, 손을 소재로 한 조형물이나 미술작품이 있는 곳을 가볼까도 생각해봤지만 너무 직접적이라 촌스러운 느낌이었다. (사전 미팅 때 이길보라 감독께 슬쩍 물어봤더니 그도 역시 '1차원적이네요'라고 확인사살 해주심)
그러다 떠올린 것이 <반짝이는 박수소리>에서의 수어 인서트. 영화 내내 수어가 나오는 장면은, 어딘지 알 수 없는 잔디밭 위로 수어하는 두 손을 찍은 인서트가 쓰인다. 이 컷이 이 영화를 가장 잘 보여주는 화면이라고 생각했고, 그럼 이런 잔디밭의 느낌이 고스란히 느껴지는 곳을 찾기로 했다.
몇몇 카페와 공원들 중에서 고른 곳이 평창동 한 가운데 있는 카페 '그라운드62'. 대중교통으로는 절대 갈 수 없는 곳에 있는데도 손님들이 끊임 없이 오는 것 같았다. 꽤나 지대가 높은 곳에 있어, 잔디밭에서 고요히 커피를 마시며 언덕 아래로 펼쳐진 평창동을 보는 맛이 훌륭할 것 같다. 우리는 일만 하고 왔지만.
김계란 편.
살라댕방콕 / 서울 종로구 돈화문로11다길 40
우리 제작진이 나에게 줄곧 하는 말 중에 하나가, '그래도 예능이니까 가끔 좀 더 웃기고 싶다' 였다. 그래서 그래도 괜찮을 법한 게스트가 섭외될 때는 한 번씩, 평소보다 좀 더 컨셉질을 해보기로 했고 그 와중에 김계란 씨가 섭외되었다.
김계란이 '무천도사'랑 닮았다는 것은 워낙 유명한 밈이라, 정말 제대로 무천도사 코스프레를 입히고 거기에 맞춰 김이나 씨와 장소도 최대한 같은 컨셉으로 보여주고 싶었다. 사실 정말 제대로 웃기고 싶었다면 녹색칠하고 피콜로 정도는 했어야겠지만, 바쁜 녹화 일정 중에 그 정도 특수분장을 하고 지우는 것은 확실히 무리라 손오공 의상 정도로 타협보기로 했다.
문제는 장소인데, <드래곤볼>스러운 장소라는 게 참으로 애매한 것. 당장 1차원적으로 떠올릴 수 있는 것은 <드래곤볼> 피규어가 잔뜩 장식되어 있는 곳이나, 사람들이 흔히 떠올릴 '무술' 컨셉의 도장 같은 곳들. 하지만 둘다 실제 <드래곤볼> 속 장면들이 연상되기는 어렵다. 그러다 떠올렸다. '천하제일무도회'.
사실 무천도사는 거의 <드래곤볼> 초반에만 주요 인물이지, 프리더가 등장하고부터는 거의 존재감이 없다시피 하다. 그건 만화 초반에 주요 무대가 되었던 '천하제일무도회'도 마찬가지. 이 시기<드래곤볼>은 의외로 이런 동남아시아풍 열대기후가 주 배경이다. 그 중에서도 '천하제일무도회'가 열리는 이 무도회장은 꽤나 그 정체성이 확실한데, 딱 인도네시아나 태국의 분위기가 느껴지는 건축물 아니겠나.
그래서 이런 분위기가 느껴지는 장소들을 열심히 찾아다녔다. 그러다 찾아낸 곳이 익선동에 있는 태국음식점 '살라댕방콕'. 안 그래도 핫한 동네인데 분위기도 좋은 곳이라 사람이 붐벼 보였다. 정말 저 <드래곤볼> 무도회장 안에 있는 식당 같아서 혼자 꽤 즐거워했다.
(방송에는 안 나갔지만 이런 것도 당했다. 물론 이나언니를 먼저 들었다. 사실 이나언니는 나도 들 수 있을 것처럼 말랐어서 그렇게 놀랍지 않았는데, 편집회의 때 내 몸무게도 별로 임팩트가 없다는 작가님들의 의견 때문에 그냥 이 분량은 전부 들어내기로 했다.)
선미 편.
사색 / 서울 중구 수표로10길 20
이것저것 활용할 게 많았던 을지로의 예쁜 술집. 반대쪽에는 커다란 샹들리에도 있는데, 우리 배경에는 이쪽이 더 잘 어울려서 이렇게 찍었다. 촬영지에 재미있는 요소가 많을 때는 선택에 대한 갈등이 많이 생긴다.
선미 편은 이은재PD가 전체적인 준비를 했는데, 그는 '선미'를 모델로 만든 레고 제품이 있다는 사실에 꽂혔다. 김이나 씨도 <톡이나 할까?> 내내 레고에 대한 찬사를 늘어놓지 않았던가. 그래서 '레고'가 주가 되는 공간과 선미의 이미지에 어울리는 공간 사이에서 내내 고민을 했다. 하지만 의외로 레고가 컨셉인 공간들이 생각보다 서울에 그리 많지 않기도 했고, 겨우 찾아보면 선미의 이미지와 썩 어울리지 않더라.
그래서 그냥 선미와 어울리는 공간에 레고를 왕창 가져오기로 했다. 다행히 문의를 넣은 레고 코리아 측에서도 굉장히 반가워해주셔서 선미 레고 말고도 예쁜 레고를 잔뜩 가져와주셨다. 덕분에 인서트로 상당히 요긴하게 썼다. 영상을 보면 느낄 수 있지만, 대화의 내용과 어우러지면서 단순히 예쁜 인서트 이상의 컷들이 되었다.
선미는 정말 사랑스러운 사람이었다. 처음 보는 스탭들에게도 그렇게 살갑게 다가오는 사람은 정말 드물다. 제작진들 모두 그 짧은 촬영 동안 선미의 매력에 빠져 버렸다. '알록달록'이란 표현이 참 잘 어울리는, 무지개 같은 사람.
여러분 편.
서울라이트 / 서울 중구 을지로11길 28
두 회에 걸쳐 방송한 시청자 오픈채팅 특집 <여러분 편>.
<톡이나 할까?>를 만드는 동안 제일 많이 본 반응 중 하나인, "나도 김이나랑 톡하고 싶다 ㅠㅠ"에 성원하기 위해 기획한 특집이었다. 오픈채팅 방 입장 시간을 공지하고, 무작위로 들어오는 사람들과 한 명씩 짧은 대화를 나누기로 한 특집.
준비하면서 "사람들 너무 안 들어오면 어떡하냐"던 작가님의 걱정이 무색하게, 넉넉하게 열어놓은 입장 정원이 순식간에 가득차버렸다. 촬영시간은 고작 2시간인데, 입장한 시청자들을 다 만날 수 없음은 물론이거니와, 한 사람에게 쏟을 수 있는 시간도 터무니없이 짧게 되었다.
계산대에서 내 뒤에 기다리는 사람들이 잔뜩 있는데 나 때문에 좀 지체 되기만 해도 애가 닳는 게 사람이다. 그런데 '나와 대화하려고' 기다리고 있는 사람이 수백명이라면 그 마음이 얼마나 부담스러울까. 덕분에 이나 누나도 나도 마음에 짐이 잔뜩 남았다. 동시에 얼굴도 모르는 수많은 사람들과 교감하며 어울리는 이나언니의 센스를 목격한 촬영이기도 했다.
촬영장을 찾을 때 이르기를, '백예린 감성'이라고 명명했다. 가수 백예린 씨가 공간을 꾸미는 감성이 너무 예뻐서 한동안 온라인에서 화제가 된 적이 있었다. 방에서 혼자 여러 사람과 채팅을 하는 촬영의 분위기와도 잘 어울릴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서울 안에 비슷한 감성이 느껴지는 장소들을 물색하다가 찾아낸 카페 '서울라이트'.
평소처럼 게스트가 등장하는 촬영이었다면 두 사람을 찍기엔 턱없이 작은 공간이었지만, 이 날은 MC 한 명만 찍으면 되니 화각이 훨씬 여유로웠다. 커피도 맛있고, 작은 카페 안에 속속들이 예쁜 소품들이 많아 시청자 사연에 어울리는 인서트를 찾아 넣기도 수월했던 곳. 게스트도 없는 촬영이니 아낀 출연료로 예쁜 네온사인도 만들었다.
사실 이 녹화처럼 혼자 앉아서 얼굴도 안 보이는 여러 사람과 카톡을 한다면, 애초에 <톡이나 할까?> 기획의 중요한 지점이었던 '마주 보고 있을 때의 미묘한 감정들'은 나오기가 어렵다. 원래 다들 그렇듯 그럴 땐 손으로는 뭘 치고 있어도 표정은 잘 변하지 않으니까.
이름 있는 연예인이 나오는 것도 아니고, MC의 감정이 세심하게 보이기도 힘든 세팅이라 사실 회사 안에서는 다소 회의적인 평을 들었다. 하지만 후일 함께 만들었던 동료들에게 애정이 가는 회차를 물어보면 다들 이 특집을 빼놓지 않고 이야기하더라. 그만큼 마음의 무게가 고스란히 남은 녹화였던 것 같다.
선우정아 편.
앵글340 / 서울 종로구 청계천로 155
선우정아 씨는 신보 '버팔로'의 발매에 맞춰 섭외가 이루어졌다. 개인적으로도 너무 오랫동안 좋아했던 뮤지션인데 마침 방송으로도 만나게 된다니 어떻게든 잘 만들어보려고 욕심이 잔뜩 났던 기억이 난다.
홍보를 하러 오시는 거면 또 열심히 컨셉을 맞춰야지. 출연이 결정됐을 즈음은 아직 신곡 발표 전이었는데, 발표 전인 마스터 버전의 '버팔로'를 미리 들어볼 수 있는 것도 얼마나 즐거웠는지. 이퀄라이져 위 아래로 꽉 찬 구성이, 정말 좋은 스피커로 들을수록 그 풍성함을 마음껏 감상할 수 있는 노래다.
그런데 이게, 이 노래를 살려보자니 뭔가 쉽지 않은 거다. '버팔로'는 소띠 해에 발매하는 소띠 선우정아의 '소적 정체성'을 담은, 소처럼 쉬지 않고 일하는 워커홀릭의 에너지와 충돌을 담은 그런 노래다. 그러니까 그걸, 화면 속에서 뭘로 표현하지.
역시 제일 먼저는 1차원부터 출발한다. 노래가 '버팔로'니까 진짜 버팔로가 보이는 곳은 어딜까. 당연히 서울 시내에서 살아있는 버팔로를 찾아갈 수는 없고, 대신 원시성을 컨셉으로 잡은 매장들은 종종 있다. 이태원의 바베큐 집에 가면 커다란 가젤의 뿔이 장식되어 있는 벽이 있고, 이상하게 바버샵들에 유독 사슴뿔이나 코끼리 상아 같은 걸로 인테리어를 해놓더라. 거기에 동물 가죽이나 박제 같은 것들로 장식이 되어있는 곳이라면 노래 분위기나 연상되는 이미지들 하고도 잘 어울리긴 할 거다.
하지만 아무래도 이런 곳을 배경으로는 이야기가 더 가지를 치고 나가긴 어려울 것 같다. 그럼 주제에 맞춰보기로 한다. 소처럼 열심히 부딪히며 일하는 에너지.
선우정아 씨는 아무래도, 본인이 지붕 아래서 일하는 사람이다 보니 화이트칼라의 노동자들이 일하는 사무실을 떠올렸다고 한다. 사실 '소처럼 일하는 노동'을 말할 때 육체노동자를 떠올리는 것도 너무 단순한 연결이라 세련된 맛은 없다. 사무직들이 일하는 모습 속에서도 버팔로 같은 육체성을 발견해서 보여줄 때 훨씬 더 그럴 듯 하겠지.
하지만 그러려면 이제 연출이 들어가야 한다. 현실의 사무실은 버팔로 노래처럼 화려하고 강렬하지 않으니까. 무슨 큰 행사라도 준비할 때가 아닌 이상 대개 키보드 두드리는 소리나, 전화벨 울리는 소리, 간식 까먹는 소리 정도나 간간이 들릴 뿐이다. 퇴근 시간이 다가오면 서로 눈치를 보며 공기가 바뀌는 소리라든지.
그러니까 노래가 연상시키는 느낌을 내려면, 배우들을 배치해서 정말 바쁘게 일하는 모습을 연출해야 한다. 종이도 좀 날려주고, 와이셔츠 소매 걷고 다급한 소리도 좀 치고, 넥타이를 거칠게 풀어헤치는 화려한 사무직들의 모습. 그런 모습을 뮤직비디오나 다큐멘터리에서는 충분히 보여줄 수 있겠지만, 1시간 넘게 카톡하는 두 사람 뒤에서 그럴 수는 없다. 실제로 정말 치열하게 바쁜 사무실에서는 비슷한 에너지가 느껴지긴 하겠지만, 그런 곳은 찾아가서 촬영하는 것만큼 민폐도 없고. 애초에 촬영이 가능할리가.
그래서 좀 더 직접적인 '일의 현장'들을 찾아보기로 했다. 그 중에서 떠오른 건 동대문과 청계천 일대의 수많은 오토바이들. 지금이야 배달의 전성시대라 배달 오토바이가 요 몇년새 부쩍 늘었지만, 동대문과 청계천 일대는 까마득히 오래전부터 늘 수많은 배달 오토바이들의 서킷이나 다름 없었다. 주로 의류원단 도매부터 조명, 전기 등 각종 소규모 건축자재들이 쉴 새 없이 오토바이로 배달된다. 대규모 헌책방과 완구 도매상도 다 이 근방에 몰려있다. 평화시장이 괜히 평화시장이었겠는가.
나에겐 그 오토바이들이 마치 버팔로처럼 보였다. 두두두두 우렁찬 소리를 내며 앞으로 돌진하는 에너지들. 선우정아의 노래와 어울리는 현장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창밖으로 이런 배달 이륜차들이 잘 보이면서도, 한창 노동이 이루어지고 있는 광경도 보이면 좋을 것 같았다.
그래서 찾은 곳이 청계상가 맞은 편의 앵글340 카페. 바로 창 밖으로는 어마어마한 규모의 공사가 한창이고, 청계천로를 달리는 차량들도 바로 보이는 앵글을 잡았다. 활짝 열린 통창 너머로 공사 소음이며 차량 소음들이 계속 들려오는데, 평소 같았으면 당연히 이런 이유로 촬영지 탈락이었겠지만 이 녹화에서는 이런 분위기들이 고스란히 살아있었으면 했다.
하지만 아무래도 20분 내내 이 소음을 듣는 것은 시청자에게도 고역일 거라, 평소와는 달리 최대한 선우정아의 음악을 삽입하면서 현장음을 밀어버리는 구간을 많이 만들었다. 어차피 선우정아를 말하며 그의 음악을 안 듣고 갈 수는 없으니 일석이조인 셈. 후반부에 육성으로 대화하고 노래를 부를 때는 창문을 닫았다.
시그니처 커피가 굉장히 맛있어서 스탭들도 한 잔씩 마시며 감탄했다. 방송 초반에도 이나 누나와 선우정아 씨가 커피 맛있다고 좋아하는 장면이 나온다.
널찍한 공간에 고가의 가구들까지 내부 인테리어도 사장님이 신경을 굉장히 많이 쓰신 게 느껴지는데, 촬영지로 대관 요청을 했을 때는 그런 내부는 거의 안 나오고 창 밖에 공사장만 잔뜩 나올 거라고는 생각도 못 하셨겠지... 그래도 커피 맛있었으니 다음에 또 놀러 갈게요...
주호민 편.
대우조명 / 서울 중구 청계천로 160
주호민 작가님이 섭외되고 나서 제일 먼저 '조명가게에서 찍으면 어때요?'라고 제안한 것은 우리팀 메인작가님이었다. 반 정도는 농으로 한 말 같아서 처음엔 빵 터졌는데, 생각할수록 나쁘지 않아서 바로 진행. 선우정아 편과 같은 날 녹화였는데, 마침 다리 하나 사이로 마주 보고 있는 청계상가의 조명가게 협조를 얻었다.
사실 평소에도 을지로, 청계천 일대의 조명가게들을 지나다닐 때마다 '저기서 뭔가 촬영하면 그림 좋겠다'는 생각은 하던 터였다. 온갖 종류의 화려한 조명들은 그 자체로 훌륭한 미장센이니까. 아마 강풀 작가도 그런 점에서 착안해 <조명가게>라는 작품을 처음 구상하지 않았을까 싶다.
게다가 이렇게 엄청난 수의 조명들 앞에서 촬영하면 당연히 인물도 훨씬 화사하게 살아난다. 굳이 인물 조명을 따로 주고 반사판을 대고 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1년 넘게 촬영하며 확인한 사실인데, 김이나 씨는 이런 따뜻한 색감의 조명 아래서 가장 예쁘게 찍힌다. 3200K의 텅스텐 색감. 보통 조명가게들은 주광색과 이런 텅스텐 조명들이 적당히 섞여 있어서 촬영하기엔 안성맞춤이다.
물론 이런 헤어스타일의 주인공을 조명가게로 불러 촬영하는 것은 사람에 따라서는 무례하다고 느낄 수도 있겠지만, 주호민 씨는 본인도 방송에서 언급했듯 자신이 적당히 희화화되는 것을 충분히 잘 활용하고 즐기는 사람이라 우리도 부담 없이 즐겁게 촬영할 수 있었다.
클로즈업을 당겨보니 그의 두상은 정말이지 예쁜 동그라미이며, 이 사실이 재미있던 카메라 감독님들이 주변의 전구로부터 자꾸 창의적인 카메라 워크를 시도하셔서 꽤나 다양한 컷들이 쓰였다.
최근 온라인에서는 누구보다 재미있는 사람이기도 하고, 그래서 어느 정도는 웃음을 위해 섭외한 것도 있지만, 누구보다 본업을 잘하는 스토리텔러로서의 이야기도 듣고 싶었다. 그리고 그가 아들의 이야기를 꺼내며, 담담하게 '이런 세계가 있다는 것을 알려주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고 말한 이야기는 마음에 오래 남을 것 같다.
여담이지만, 이 방송을 제작할 때쯤 <톡이나 할까?>의 대략적인 종영시기가 결정되었다. 제작진은 모두 가공할 파괴왕의 위력을 다시 한번 실감했다.
죽음의 실무자들 편.
파주 병원세트 / 경기도 파주시 탄현면 검산로 423-71
아임스튜디오 / 서울 마포구 월드컵북로 45
프로그램이 오래 이어지면서 유명인들의 이야기를 듣는 것과는 좀 다른 주제를 다뤄보고 싶다는 욕심이 나에게도 김이나 씨에게도 있었다. 그중 누나가 꽤 오래 관심을 가져온 주제는 '죽음'이었다.
'죽음'이란 주제는 무겁다. 그리고 자신의 죽음을 이야기할 수 있는 사람은 없다. 자신의 죽음이 가깝게 예정된 사람은 있겠지만 그 이야기를 마주 앉아 하기에는, 우리는 너무 의연한 사람들만을 이상적으로 상상하고 있을 가능성이 크다. 대부분의 평범한 사람들은, 자신의 죽음을 두고 차분하게 누군가와 마주 앉아 토크쇼를 하기엔 깨지기 쉬운 마음이다.
그러다 생각하게 된 것이 '실무자들'이란 단어였다. 방송국에서도, 아무리 화려하고 감동적인 쇼라 한들 그 뒤에 분주하게 실무를 보는 사람들이 있다. 죽음 또한 그렇다. 늘 죽음 곁에서 자신의 '일'을 하는 사람들이 지켜본 죽음에 대한 이야기를 듣는 것은 분명 의미가 있다.
가장 쉽게 생각할 수 있는 예가 장례지도사였다. 우리가 일상에서 가장 일반적으로 접하는 죽음의 모습은 장례식장이다. 조문객으로서 어떻게 하는 것이 예의인지는 여러 번 들어서 알고 있지만, 정작 내가 상주가 되었을 때 거기서 어떤 일들이 벌어지는지는 의외로 얘기해주는 사람이 많지 않다. 가장 경황이 없고 마음이 어려울 때, 계속해서 처리해야 되는 행정적이고 경제적인 결정들이 있다는 것을 당장 자기 상황이 되어서야 알게 되는 이가 많다. 심지어 장례식을 치르려면 대략 얼마 정도의 돈이 필요하다는 것 정도는 알고 있어야 하지 않을까.
이런 식으로 회의한 끝에 장례식을 돕는 장례지도사, 고독사 현장을 치워주는 특수청소부, 이미 결정된 죽음을 존엄하게 맞이할 수 있도록 돕는 호스피스 의사의 세 분으로 게스트를 결정했다. 평소처럼 김이나 씨와 마주 앉아 대화하지 않고, 각자의 직업이 어떤 모습인지 한눈에 알 수 있는 장소에서 각각 진행하기로 했다. 반면 김이나 씨는 '죽음'하면 가장 쉽게 떠올릴 수 있는, 아무것도 없는 공간에서 이야기하기로.
의자가 불편해서 허리가 아팠던 이나 누나.
장례식장이나 병원은 촬영 협조를 얻기가 어렵다. 당연히 거기 누군가가 실제로 장례를 치르고 있거나 치료 중인데 촬영장을 꾸리는 것은 말이 안 되고, 비어있는 시간대를 잘 섭외해서 들어가야겠지만 두 곳 다 언제 그 공간이 필요해질지 모르는 곳이라 촬영을 위해 긴 시간 비워주는 것도 무리다. 사람이 죽어서 장례를 치러야 한다는데 우리 촬영 때문에 다른 곳 가시라고 할 수는 없으니까.
그런 이유로 병원은 꽤 잘 만들어져 있는 세트가 많다. 우리가 촬영한 곳도 파주의 병원과 장례식장 세트를 함께 운영하고 있는 곳. 김이나 씨의 호리존 세트와 특수청소부의 빈 집 촬영은 홍대 인근의 스튜디오에서 진행했다. 진행자와 각각의 게스트들의 각자의 공간에 있으면서도 평소와 같은 호흡으로 대화를 나눌 수 있다는 것도 이 포맷의 장점이었던 것 같다.
김유정 편.
도화서 / 서울 중구 을지로12길 17
사극 드라마 <홍천기>의 홍보를 겸해 출연 요청이 들어온 김유정 씨는, 그의 분위기에 어울리는 동양적 공간을 찾으려 꽤나 고민했다. 더구나 극 중에서는 그림을 그리는 화공. 그런 이미지까지 같이 느껴지면 참 좋을 텐데. 서울엔 한옥을 개조한 한국적인 분위기의 좋은 공간들이 많지만, 문제는 그런 곳들은 하나 같이 다 엄청 좁다. 두 사람이 마주 앉아 차를 마시기엔 적당할지 몰라도 그 두 사람을 찍을 카메라가 들어갈 공간은 거의 나오지 않는다.
힙스터의 골목 을지로에 자리 잡은 '도화서'는 그래서, 완전히 사극이라기보다는 개화기의 느낌에 더 가까운 와인바이긴 했다. 배경의 그림이나 전체적인 분위기가 그래도 제법 잘 어울렸던 것 같다. 원래 창문에는 파란색 커튼이 달려 있었는데, 색감의 통일을 주기 위해 분홍 커튼으로 바꿔달았다.
김유정 씨의 대화를 보며 한 가지 재미있었던 것은, "연예인으로서의 삶이 당연하게 내면화되었다"는 건강한 느낌이었다.
무명시절을 오래 버텼거나, 치열한 오디션을 거쳐왔거나, 어쨌든 성인이 되어 연예인이 된 많은 이들은 사람들이 자신을 좋아하고 알아보는 상황에 대해 일말의 당황함을 드러낼 때가 많다. 그게 겸손이든, 정말 적응이 안 돼서 그런 것이든, 그것이 이질적인 상황이라는 것은 인지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김유정 씨는 자신이 기억하지 못할 때부터 이미 연예인이었다. 성인이 된 지금도 정상급 연예인이다. 앞서 언급한 종류의 연예인들에 비해 그가 노력을 덜했다거나 편한 길을 걸었다는 뜻은 절대 아니다. 그만한 매력과 재능과 고민이 있었으니 여기까지 왔겠지.
다만 그는 인지가 생긴 시점부터 평생을 자신을 알아보는 세상 속에서 살아온 거다. 어딜 가나 자신을 알아보고 '랜선이모'를 자칭하는 사람들 투성이였을 것이다. 그에겐 이게 이질적인 상황이 아니라 자기 삶의 자연스러운 한 부분이구나, 하는 느낌을 이 대화 속에서 느꼈다. 그 당연한 받아들임이 주는 묘한 평온과 건강함. 좋더라.
공간을 고르느라 꽤 고생했던 것과는 별개로, 김유정 씨와 애틋한 눈빛 연기에 도전한 이나 누나의 놀라운 연기력 덕분에 봉태규 편의 신발만큼이나 화제가 됐던 방송분.
곽범과 이창호 편.
정태호 소극장 / 서울 마포구 어울마당로 94-8
2021년 상반기는 몰래카메라가 아닌가 싶을 정도로 '매드몬스터'의 날들이었는데, 한참 핫할 때 몇 차례 섭외를 시도했으나 정말 스케줄이 안 나와서 내내 못하다가 겨우 성사되었다. 다만 조건은 '매드몬스터'가 아닌, 곽범과 이창호 본명으로.
우리 입장에서도 반가운 부분이었는데, 사실 '매드몬스터'의 인터뷰들을 볼 때마다 어느 선을 넘어가면 어떤 한계가 느껴졌다. '매드몬스터'의 세계관 안에서 직접 만들어내는 콘텐츠와, 거기에 호응하는 사람들의 반응은 그 자체로 풍성한 이야기가 된다. 그런데 이걸 외부 인터뷰로까지 확장하면, 애초에 그 세계관 안으로 뛰어들어 그냥 같이 어울려 노는 게 아닌 이상 묵직한 이야기를 듣기는 어렵다. 이런 놀이의 문법을 이해하지 못했던 몇몇 기자들이 '어디까지 맞춰줘야 되냐'라며 발끈한 기사도 본 적이 있다.
물론 우리 MC는 누구보다 이런 세계관 설정을 잘 이해하는 사람이라서, 그렇게 가도 충분히 재밌는 시간을 보낼 수 있었을 거다. 그럼에도 이런 드라마틱한 인기를 경험하고 있는 사람의 속내를 듣고 싶다는 욕심이 더 컸다.
(확실히 드라마틱한 변화였는지, 자기들도 인기를 좀 실감하고 싶다며 등장할 때 제작진들에게 힘껏 환호성을 질러달라는 부탁도 하셨다. 그럼 우린 또 열심히 한다.)
그래서 선택한 촬영지는, 두 사람이 지금 같은 인기를 얻기 전에도 자신들의 공연을 꾸준히 해왔던 '정태호 소극장.' 여전히 동료 개그맨들이 공연을 이어나가고 있는 곳이다. <개그콘서트>를 그만두고 조금은 막막하던 시기에 "금광을 캐는 기분이었다. 분명 여기 어디 금이 있는데, 어딘지 모르겠지만 조금만 캐면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라고 생각하며 그 무대에 섰다는데, 거기서 나누는 이야기는 그 자체로 와닿는 지점이 있었다.
톡해서 좋니? 편 (feat. 윤종신).
르돌치1946 상수점 / 서울 마포구 토정로 128 서강8경 빌딩
시작한 지 52회. 중간에 스페셜이 한 편 끼어있었으니 정확히 53주째 돌아온 1주년 특집. 1주년 특집으로 뭘 하면 좋을지 몇 가지를 고민하다가, 다른 방송에서 게스트로 보기 어려운 김이나 씨의 측근을 스페셜 MC로 모셔오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특별히 와주신 윤종신 님. MC 윤종신의 <톡해서 좋니?>편이었다. 게스트가 된 우리 MC가 그 어느 때보다 편한 마음으로 앉아있던 날.
1년 동안 했던 이야기들을 돌아보는 시간인 만큼 공간에 특별한 컨셉이 있을 건 없었고, 모처럼 그냥 예쁜 곳을 찾았다. 다만 한참 덥던 8월이었으니 야외는 빼고. 첫 회 박보영 편을 녹화하던 8월의 루프탑에서 두 사람이 어찌나 더워하셨던지.
'르돌치1946'은 마포 일대에서 전망이 빼어나기로 유명한 '서강8경' 빌딩에 자리 잡은 카페다. 대단히 무게 잡은 느낌은 없는 편안한 디자인의 내부지만, 시원한 통창 너머로 펼쳐진 한강과 강변북로, 여의도의 고층 빌딩들이 멋지게 잡혔다.
1주년 기념 사진!
김희진 편.
떼레노시떼 스페셜점 / 경기도 용인시 기흥구 기흥단지로 81-2
아마 역대급 조회수가 나온 편이 아니었을까.
올림픽 같은 큰 이벤트가 열리면 모든 방송 관계자들은 눈에 불을 켜고 여기서 어떤 스타가 배출되는지 지켜본다. 이 스타들에게는 본 행사가 끝나자마자 온갖 러브콜이 쏟아지기 때문에 놓치지 않으려면 라이징의 기색이 보일 때부터 발 빠르게 줄을 서야 한다. 우승 같은 걸 하고 나면 이미 늦을 때가 많다.
우리도 도쿄올림픽이 시작하자마자 섭외 대상을 꾸준히 눈여겨봤다. 올림픽 특집으로 여러 게스트를 섭외할 수 있는 다른 프로그램들과 달리 우리에겐 한두 자리가 아마 최대일 테니 선택과 집중이 필요했다. 그중 우리 제작진의 압도적인 애정을 한 몸에 받은 김희진 선수.
물론 김희진 선수는 올림픽의 라이징 스타는 당연히 아니고, 이미 진작부터 덕후몰이를 하고 있던 여자배구의 아이돌이다. 하지만 유독 이번 도쿄올림픽에서 여자배구의 인기가 폭발적이었고, 회의실에서도 올림픽 기간 내내 김희진 선수의 새로운 짤이 업데이트되고 있었다. 그래서 일찌감치 문의를 넣어놨다. 아마 다른 방송에서도 섭외 연락이 많이 오겠지만 우선적으로 고려해주시라고. 이미 회의실에서는 출연이 결정되어도 추가적인 자료조사가 필요 없을 만큼 자발적으로 그에 대해서 샅샅이 찾아보는 중이었으니.
촬영지를 고민하면서는 당연히 팀이 훈련하는 배구경기장도 고려 대상이었다. 하지만 경기 중계는 물론이거니와 배구연맹에서 만든 영상들 속에서도 경기장 배경의 모습은 많이 보았을 테니, 인근의 다른 장소들 중에서 찾기로 했다.
그래도 기왕이면 배구경기장이 연상되었으면 했는데, 경기를 볼 때마다 경기장 바닥의 색깔이 참 예쁘다고 느꼈다. 경쾌한 청록색과 오렌지색의 배치. 그래서 우리 촬영지에서도 배구 경기장을 연상시키는 색깔이 보였으면 했고, 마침 경기장 인근 떼레노시떼 카페에 비슷한 색깔의 파사드가 있었다. 공간도 큼직하고 쾌활한 것이 촬영에는 더없이 훌륭했다. 촬영지를 결정하고 났더니, 실제로 선수들이 종종 찾는 카페라는 사실도 알게 됐다.
촬영 당일에는 잠시 짬을 내어 줄곧 이 날만 기다려온 제작진들의 작은 팬미팅 시간도 가졌다. 심지어 평소엔 잘 나서지 않는 카메라 감독님들 중에서도 "국대 사인은 받아야지."라며 반짝이는 목소리가 나왔던 날.
편집하면서 한 가지 신기했던 점. <톡이나 할까?>는 출연자들이 나눈 카톡을 화면으로 재구성하면서, 실제 카톡을 보고 반응으로 이어지는 호흡을 최대한 리얼하게 편집하려고 노력한다. 이 편집을 1년째 해오면서 "카톡 전송 ㅡ 인지 ㅡ 반응"으로 이어지는 평균적인 속도가 익숙해져 있는데, 실제로 사람들은 어떤 메시지를 읽고 이해한 다음 웃거나 쑥스러워하기까지 약 1초 정도의 시간이 걸린다. 그런데 김희진 선수는 실제 카톡 속도에 맞춰 편집을 했더니 이상하게 너무 반응이 빠른 거다. 거의 10프레임 내외의 반응. 처음엔 편집이 잘못된 줄 알았다가 나중에 깨달았다.
이야 이게 국대 배구선수의 반응속도구나....
김소영 편.
당인리책발전소 / 서울 마포구 월드컵로14길 10-8
김소영 아나운서를 찍을 거라면 당연히 본인의 책방인 '책발전소'에서 찍어야 했다. 본인은 촬영만 했다 하면 항상 이곳이라 식상해 보일까 걱정하는 것 같았지만 어쩌겠나, 이 공간 자체가 그가 만들어낸 이야기의 정수인 걸. 꽤 좋은 직장을 다니다가 퇴사를 한 후, 차근차근 자신의 사업과 경험을 공간으로 쌓아나간 것이 그의 이야기니까. 그렇다고 무조건 '퇴사하고 자신의 꿈을 펼쳐보아라!'라는 식의 이야기를 하는 사람은 아니라 더욱 좋았다.
김소영 아나운서는 내 MBC 입사 동기고, 사실 그래서 이제 공식적으로는 아나운서가 아니지만 나에겐 여전히 아나운서라는 호칭이 가장 익숙하다. 개인적으로 연락하면 겉으로 보이는 이미지보다 훨씬 재미있는 사람이다. 그런 면을 보여줄 수 있으면 좋겠다는 욕심이 있었는데, 사실 내가 그를 좋아하는 더 큰 이유는 매사 아주 신중한 사람이라는 점이었다. 방송에서는 그의 신중한 매력이 더 드러난 것 같다.
그리고 김이나 씨를 좋아하는 꽤 많은 사람들이 같은 이유로 김소영 아나운서도 좋아하는 걸 발견한 것도 섭외의 이유였다. 두 사람 다 직장생활을 꽤 오래 하다가 자신의 길을 만들어 간만큼, 더 많은 사람들의 삶을 폭넓게 공감하고 경험할 줄 아는 매력이 있다. 충분히 따뜻하지만, 그렇다고 마냥 이상적이지만은 않은 현실적인 시선들. 젊은 여성들에게는 너무 멀지 않은 나이의, 참고로 삼고 싶은 멋진 선배의 느낌.
책발전소의 따뜻한 분위기가 마주 앉은 두 사람과 참 잘 어울렸다.
그리고 또 한 번 발군의 연기력을 보여준 이나 누나와, 늘 나를 설레게 하는 저 명료한 발성과 발음의 소영이가 보여주는 애틋한 <소나기> 낭독.
추석을 앞두고 추석특집으로 어떤 게스트를 섭외해야 할까 고민하던 중에, 작가님이 "츄를 섭외해서 '츄'석특집 어때요?"라고 하시는 걸 듣고 바로 츄진.
츄석특집을 위해 달나라 같은 공간을 몇 군데 찾아다녔고, 그중 츄의 이미지와도 잘 어울리는 환상적인 미디어아트 전시장을 촬영지로 골랐다. 테이블에 송편이랑 식혜도 좀 놓고.
농담 섞인 이름의 특집이 아니어도 사실 츄는 충분히 독보적인 위상의 캐릭터로 자리매김한 인물이다. 깨물하트로 시작된 그의 대체 불가능한 매력은 애써 찾아보지 않아도 인터넷 곳곳에서 마주칠 수 있다. 실은 조금은 비현실적이라고까지 느껴질 정도의 밝은 매력이라, 이 정도로 인기를 얻었으면 분명 마음고생도 많이 했겠다는 생각도 했다.
어떤 곳이든 여러 사람이 모이는 곳은 비슷하겠지만, 나도 교회에서 공동체 생활을 오래 하면서 그런 경우를 종종 봤다. 사람들 앞에서 유독 밝고, 유독 눈에 띄며 다른 이들에게 좋은 에너지를 꾸준히 주는 사람의 고민.
보통 십 대 후반에서 이십 대를 거치면서, 사람들은 '아무리 밝아 보이는 이에게도 그늘이 있기 마련'이라는 모종의 진리를 깨우친다. 그래서 자신의 눈에 도무지 그 그늘이 보이지 않는 사람을 발견하면 의심이나 걱정의 눈길을 보내게 되더라. 그건 종종 불신이나 서운함의 형태로 발현되고, 어떤 형태든 그걸 받는 당사자에게는 부담이 된다. 나는 교회에서 주로 고민을 듣는 자리에 있었기 때문에, 밝고 눈에 띄는 사람들로부터 이런 부담에 대한 고민을 듣는 경우가 가끔 있었다.
그러니까, 그런 사람이라고 고민이나 그늘이 없는 건 아니다. 다만 그걸 다루는 방법이 다를 뿐. 사람들 앞에서 항상 밝고 사랑스러운 모습으로 있는 게 아주 자연스러운 사람도 있다. 그게 꼭 가식이나 위선인 것도 아니고, 솔직히 가식이나 위선이면 또 어떤가. 그건 다른 말로 배려고 노력일 뿐인데. 그때의 기억들이 여러 화면들 속에서 츄를 마주칠 때마다 떠올랐다.
김이나 씨가 방송에서 한 말이 꼭 맞다. "사람은 달처럼, 누군가에게 보이지 않는 뒷면이 반드시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그 앞면과 뒷면이 똑같은 사람도 있다." 그런 사람은 없을 거라고 멋대로 재단하는 것은 종종 아주 무서운 태도가 되기도 한다.
물론 츄를 앉혀놓고 꼭 이런 얘기만 각 잡고 들을 필요는 당연히 없었다. 그거야말로 "너 솔직히 말해, 말 못 할 고민 있지." 하는 진부한 태도니까. 다만 이미 그런 고민들을 충분히 했을 것이고, 그렇게 스스로 단단하게 정리한 몇 마디 정도는 소개해주어도 좋을 것 같았다. 그래서 딱 그만큼, 다루어졌으면 했다.
최현우 편
지노 / 경기 파주시 탄현면 새오리로 211-31
오프닝 마술을 제작진에게도 전혀 알려주지 않아서, 현장에서 다들 "헐!" "뭐야!"를 연발하게 만들었던 마술사 최현우 편. 여성 관객들이 전반적으로 마술을 관대하게 즐긴다던 최현우 씨의 말과 달리 시종일관 의심하고 경계하는 이나 누나였지만, 결국 그도 입이 안 다물어지게 만들어놓고 본격적인 촬영을 시작했다. 누나는 '당했다'라는 표현을 썼지만.
'후뿌뿌뿌'를 밈으로 즐겨 쓰는 최현우 씨였기에, '해리포터' 컨셉이나 그 분위기가 나는 공간들을 최대한 열심히 알아봤다. 그냥 '마술'을 키워드로 하는 공간들은 생각보다 할로윈 같은 분위기의 키치한 공간들이 많은데, 그쪽은 촬영지로서는 좀 아쉬운 편이었다.
파주의 커다란 건물이 통째로 고풍스러운 카페인 '지노'는 대놓고 마술이 키워드인 곳은 아니었지만 오히려 마술사의 공간으로 더 제격이었다. 보아하니 이미 여러 드라마를 비롯해 곳곳에서 촬영지로 애용하는 곳인 듯했다. 그도 그럴 것이 전체적인 분위기부터 소소한 디테일까지 세심하게 신경 쓴 흔적이 역력해, 좋은 화면을 연출하기가 수월했다. 벽에 가득 걸려 있는 초상화들에서 '해리포터' 복도 느낌도 나고. 덕분에 몇몇 컷은 초상화에 CG를 입혀 즐겁게 활용할 수 있었다.
마술을 '쇼 엔터테인먼트'라고만 생각해왔던 나로서는, 촬영을 준비하는 동안 자신의 업에 대해 철학적으로 깊이 그 의미를 탐구해온 최현우 씨의 성찰에 여러 번 감탄했다. 단순히 사람들을 즐겁게 해주는 것 이상의 의미를 말해주었고, 그 고민의 결을 전할 수 있어서 좋았다. 역시 20년 넘게 한 길을 걸어온 사람들의 내공은 남다른 데가 있다.
사실 무엇보다 마술 같았던 것은 그의 동안. 아무리 동안으로 유명한 연예인들도 실제로 가까이서 보면 나이의 흔적이 보일 때가 많은데, 최현우 씨는 코앞에서도 도무지 그게 보이지 않았다. 물론 그런 걸로는 이나 누나도 만만치 않지만 심지어 최현우 씨가 이나 누나보다 오빠다. 둘 다 이상한 사람들이다.
일부러 타로카드를 챙겨 와 촬영이 끝나고도 한참 동안 제작진들 타로점을 봐주고 가셨다. 방송에 다 못 내서 애석할 뿐.
십센치 권정열 편.
사이드 노트 클럽 / 서울 마포구 양화로 130 라이즈호텔
노래를 정말 '징그럽게 잘한다'는 말이 딱 어울리는 권정열 편.
처음 버스킹을 시작한 곳도 그렇고, 노래 '은하수 다방'의 배경이 된 곳도 그렇고 홍대 인근이 주 활동무대였다는 사실을 바탕으로 찾은 홍대 라이즈호텔의 루프탑 바. 쾌적하고 깔끔하면서 창밖으로는 그가 노래를 부르던 홍대의 거리가 바로 보인다.
실은 예전에 아내와 한 번 방문한 적이 있었는데, 그때 분위기며 음료 맛이며 참 괜찮았었어서 촬영지로도 한 번 써야지 벼르고 있었다. <톡이나 할까?>를 만드는 동안에는 늘 좋은 곳을 가게 되면 촬영지 생각부터 했으니까.
사실 '찌질함'이 주 정서인 십센치의 노래들이나 초창기 가사들을 생각하면 호텔 바는 조금 안 어울릴지도 모른다. 그런데 마침 김이나 씨가 방송에서 그 얘기를 언급한다. 싱어송라이터들은 인기를 얻고 생활이 안정되어 갈수록 점점 가사에서도 그 변화상이 드러난다고.
그러면서 권정열 씨가 스스로 발견한 가사들. 2010년 노래 '새벽 4시'에서는 "차가운 여관방 이불"을 노래하다가 2017년에는 '호텔룸'이란 노래를 부른다. 어쩌면 버스킹을 처음 시작한 홍대 거리가 창밖으로 보이는 호텔 바는 그래서 더 어울리는 촬영지였을지도.
이런 변화에서 왠지 모를 아쉬움을 느끼는 팬들은 늘 있기 마련이다. 싱어송라이터든, 작가든, 풍요롭지 못한 고민 속에서 나오는 질감이라는 게 있으니까. 사람들이 거기에 공명하며 마음을 보내면, 그 인기를 얻은 창작자는 아마 대부분 그 생활로부터 점점 멀어질 거다, 아이러니하게도.
하지만 누군가에게 위로와 즐거움을 선사한 사람의 형편이 좋아지는 것은 당연하고 환영할 만한 일이다. 그걸 못 마땅해하면서 계속 그가 여유롭지 못하길 바랄 수는 없다. 혹은 분명 형편이 나아진 걸 뻔히 아는데 계속 옛날의 감성을 연기한다고 흘겨보는 것도 별로다. "옛날 감성이 좋았는데"라고 말하는 마음은 분명 이해하지만 작품은 사라지지 않고 남아있으니 그걸 다시 들춰보면 어떨까. 어차피 좋은 예술가는 계속 새롭게 또 나올 테니. 그리고 나는 요즘의 십센치 노래가 더 좋다. 여전히 징그럽게 세심하고 궁상스럽게 좋다.
사실 그렇다. 십센치 노래는 많이 달라졌지만 또 여전하다. 방송에서 권정열 씨는 "십센치의 화자는 전부 한 사람이다"라고 하는데, 매번 비슷한 결의 화자를 가지고도 이렇게 끊임없이 좋은 노래들을 만들어 내는 것은 지치지 않고 내면을 들여다보는 그의 체력 덕분인 거 같다.
거울은 오래 들여다볼수록 좋은 게 나오지 않는 법이고, 그건 보통 그 사람을 갉아먹게 되는데, 이렇게 계속 자신을 들여다보면서도 스스로를 지켜내는 그의 건강함이 존경스럽다.
잘 되면 한 톡 소개, 남자 편.
사이드 노트 클럽 / 서울 마포구 양화로 130 라이즈호텔
김이나가 카톡을 컨설팅해주는 "잘 되면 한 톡 소개"(키크니 님이 지어주신 제목)가 반응이 나쁘지 않았는데, 한 번만 하기엔 아까운 포맷인 것 같아 한 번 더 해보기로 했다. 지난번엔 의뢰인이 여자분이었으니 이번엔 남자분을 모시고 해 보기로.
지난번 여자 의뢰인 때보다 두 사람의 케미를 더 신경 써서 상대역을 섭외했는데, 확실히 좀 더 제대로 소개팅하는 분위기가 만들어졌다. 이나 누나도 두 사람의 교감에 지난번 보다 더 즐거워했고. 아무래도 이 언니 이런 게 진짜 전공인 거 같다.
촬영 장소가 중요했는데, 지난번과 마찬가지로 두 사람이 분리된 공간에 있되 서로가 슬며시 보이는 세팅이 필요했다. 김이나 씨가 의뢰인에게 코칭해주는 게 상대방에게 들리진 않지만, 그래도 얼굴을 들어 서로를 보려면 흘긋 볼 수 있는 그런 묘한 긴장감의 공간. 이번 촬영에선 그 세팅이 제대로 작동해서, 두 사람이 서로 어색하게 시선을 나누는 장면이 대단히 귀여웠다.
그리고 무엇보다 야외 촬영. 1년 중 뙤약볕이나 한파에 시달리지 않고 야외 촬영을 할 수 있는 날은 며칠 없다. 기회가 될 때 최대한 열심히 야외 촬영을 해야 한다. 이번 촬영을 하면서 또 실감했다. 시시각각 변하는 자연광과 바깥공기가 만들어내는 분위기를 능가하는 세팅은 없다. 루프탑 너머로 펼쳐진 하늘과 노을의 색감 속에 앉아 있는 두 사람의 그림이 참 예뻤다.
이 모든 조건을 충족시키는 곳이 이 사이드 노트 클럽이었는데, 마침 같은 날 촬영인 권정열 씨에게도 딱 맞는 촬영지라 두 공간을 안팎으로 나눠 하루 종일 여기서 찍기로 했다. 모처럼 두 촬영을 한 장소에서 진행한 덕분에 세팅도 훨씬 세심하고 여유 있게 할 수 있었던 고마운 곳.
이 날 묘한 분위기로 소개팅 촬영을 마친 두 사람은 촬영이 끝난 뒤에도 따로 자리를 이어갔다. 그 뒤로 어찌 됐는지는 나도 모르겠다.
"아니 PD님 여기 햇빛 너무 눈부셔 저 카메라 봐봐" / "아 그거 아니고 요거요 요 카메라" / "아 요거?"
장동선 편.
아르코미술관 <횡단하는 물질의 세계> / 서울 종로구 동숭길 3
<톡이나 할까?>에서 김이나 씨가 가장 자주 하는 말 중 하나가 "우리 뇌가요"였다. 그만큼 뇌 과학에 관심이 많고, 일상 속에서 느끼는 것들을 뇌의 관점으로 해석하는 노력을 늘 기울였다. 그래서 뇌 과학자를 게스트로 꼭 한 번은 모셔야겠다고 생각했다. 장동선 박사님은 최근 가장 정열적으로 활동하는 뇌 과학 전공의 과학 커뮤니케이터인 동시에, 강연 중에 피아노 연주를 자유롭게 활용할 정도로 한 때 뮤지션을 꿈꿨던 분이기도 하니 훌륭한 게스트였다.
'뇌 과학' 이야기가 가지를 뻗어나갈 수 있는 공간은 어디일지 꽤 많은 곳을 돌아다녀봤다. 처음엔 에셔 풍의 착시 일러스트가 컨셉인 공간도 찾아봤다. 우리가 일상에서 가장 익숙하게 만나는, 뇌의 편법을 활용한 대중적인 예술이니까 이런 공간에서 이야기가 꼬리를 물 수 있겠다는 생각에.
하지만 생각보다 마땅한 공간이 별로 없다는 난관에 봉착했을 때, 아르코 미술관에서 하고 있는 이 전시를 발견했다. <횡단하는 물질의 세계>. 예술과 기술이 만나는 통합적인 작품들을 테마로 이루어지고 있는 전시였다. 부리나케 쫓아가 잠시 둘러봤는데도 좋은 이야깃거리가 많았다.
사실 전시 중인 미술관에서 촬영을 하려고 하면 작품의 훼손 우려나 저작권 문제 같은 것들 때문에 성사가 잘 안될 때가 많은데, 아르코 미술관에서는 흔쾌히 공간을 내어주고 대부분의 여건을 조율해주신 덕분에 멋진 그림을 담아낼 수 있었다.
뇌 과학에 대한 이야기가 나올 때면 자주 만나게 되는, <라쇼몽> 류의 "실체적 진실은 없고 결국 우린 저마다의 세상에서 살뿐"이란 얘길 싫어한다. <매트릭스>가 보여주는 것처럼, 사실 우리 뇌가 받아들이는 감각 신호는 실체와 구분할 수 없다는 이야기. 그 태도가 가지는 이점은 이해하지만, 한편으로는 간편하고 게으른 도피일 뿐이지 않나. 그래서 박사님의 마지막, 'Neural Coupling' 이야기는 유독 나에게 건네는 위로처럼 들리기도 했다. 결국 어떻든 간에 우리는 서로 애살있게 만나야 한다.
핸드스피크 편.
페블 스튜디오 / 서울 서대문구 수색로 144
종영을 앞두고 '카카오임팩트'측에서 협찬 제안이 들어왔다. '카카오임팩트'는 다양한 사회적 이슈들을 다루는 카카오의 사회적기업 자회사인데, 여기서 지원하는 펠로우십 단체들 중 몇 곳을 <톡이나 할까?>에서 소개해줄 수 있냐는 것이었다. 출연할 펠로우십의 선정은 제작진에게 맡기는 조건으로.
우리 프로그램으로 좋은 이야기를 소개할 수 있다면 감사한 일이었다. 보통은 시청률이나 향후 이어나갈 인지도를 의식해서 부담을 느끼기도 하지만, 종영을 앞두고 회사가 직접 제안한 협찬 건이었으니 그런 부담으로부터도 자유로웠다. 물론 당연히 단순한 협찬 컨텐츠로 만들고 싶지는 않았으니, 프로그램으로 다루어도 충분히 매력이 있어야 했다.
그중 먼저 눈에 들어왔던 것은 농인예술전문기획사 '핸드스피크'였다. 이미 두 차례에 걸쳐 <톡이나 할까?>에서도 농문화를 소개해온 만큼 꾸준히 다룰 내용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같이 자료를 본 다른 동료들도 핸드스피크에서 만들어내는 콘텐츠가 '농예술'로서의 의미 뿐 아니라 퍼포먼스 자체로도 멋지다는 사실을 확인해주었다.
그래서 펠로우십 멤버인 정정윤 대표님과 전반적인 대화를 나누고, 핸드스피크의 공연을 보는 구성으로 가기로 했다. 끝머리엔 공연을 한 아티스트들도 직접 함께 대화에 참여하기로 하고. 카톡으로 대화를 나눌 때는 누가 농인이고 청인인지 구분이 사라진다. 이 방송이 자기 모습을 잘 보여주는 순간 같다.
컨셉도 컨셉이지만, 일단 공연을 두 개나 봐야 하니 거기에 걸맞은 공간이 필요했다. 충분히 크고, 공연하는 신체가 명확하게 눈에 들어올 수 있는 곳. 몇몇 댄스영상과 뮤직비디오들을 참고해서 춤추는 모습이 생생하게 보일 수 있는 세팅을 골랐다.
일단 공연에 맞춘 장소이긴 했지만 더 긴 분량을 차지할 토크에도 뭔가 컨셉이 필요했다. 춤추기 좋은 공간인 동시에, 농인 예술에 대한 시각적인 이미지를 어떻게 주어야 할까. 애초에 그런 컨셉이라는 게 있긴 있을까. 그러다 발견한 곳이 페블 스튜디오였고, 여기엔 자유롭게 활용이 가능한 벽 구조물이 있었다.
동그란 구멍이 뚫린 하얀 벽을 보고 있자니, 그 뒤에 파란 천을 대면 방송 화면에 삽입되는 수어통역사의 이미지가 연상될 수 있을 것 같았다. 정정윤 대표님 본인도 청인으로서 농인들의 세계를 소개하고 연결하는 역할을 하시는 만큼 그런 의미로 보이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대표님의 동의를 구하고 파란 동그라미 안에서 촬영을 진행했다.
코로나 시국이 이어지고 정부의 방송 브리핑이 중요해지면서, 이런 형식의 열악한 수어통역 화면이 농인들에게 제대로 전달되지 못한다는 지적도 많은 것이 사실이다. 그래서 중요한 브리핑은 아예 연사 옆에 동등하게 서서 투샷으로 방송하는 시도도 생겨났다. 또 한편에서는 반대로 파란 동그라미 속에 등장한 통역사의 수어가 흥미를 끌어 화제가 되는 경우도 왕왕 생겨났다. 손동작과 함께 풍부한 표정이 쓰이는 수어의 특성이 사람들의 눈에 띄었던 거다.
어떤 식으로든 저 파란 동그라미가 이야깃거리가 되면 충분하겠다는 생각으로 세팅했다. 정작 촬영 때는 공연 두 개와 단톡까지 하느라 기본적인 핸드스피크 이야기만 나누는 것으로도 빠듯했지만.
핸드스피크의 공연은 훌륭했다. 수어라는 또 다른 언어가 가지는 표현력과 힘이 잘 전달된 방송이었다. 아마 파란 동그라미 안에만 있을 때는 느끼기 어려운 힘이었을 거다. 무언가가 익숙하게 생각해왔던 것과 다르다는 걸 느끼게 할 수 있다면 예술이든 방송이든 충분히 제값을 하는 거라고 생각한다. 다행이다.
임창정 편.
서울포차 홍대점 / 서울 마포구 와우산로 76
'가수 임창정'에서 사람들이 가장 쉽게 떠올릴 수 있는 공간은 아마 포장마차일 거다. 그의 가장 유명한 노래(사실 다 유명하지만)중 하나인 '소주 한 잔' 때문이기도 하고, 본인이 동명의 술집 브랜드를 운영하고 있기도 하니 더욱 그렇다.
하지만 '김소영 편'과는 달리 '포차사장 임창정'이 아니라 '가수 임창정'을 말하기 위한 자리이니 만큼, 그 감성은 가져가되 꼭 '소주 한잔'에서 찍을 필요는 없을 것 같았다. 그보다는 그림이 좋은 곳으로. 홍대 거리에 있는 서울포차는 포차 느낌이 물씬 나면서 공간도 크고, 무엇보다 머리 위로 가지런히 꾸며진 꼬마전구의 느낌이 좋았다.
그래도 창정 형님을 모셨는데 라이브는 들어야 하지 않겠는가. 실제 서울포차에 노래방 기계는 없었지만 촬영용으로 한 대 준비했다. 가져오는 김에 김이나 씨 라이브도 듣고. 노래하는 이나 누나는 참 매력 있다. 뿌듯. 창정 님의 라이브는 물론 말할 것도 없고. 그야말로 쩌렁쩌렁. 현장에 있던 스탭들이 그 위세에 다 놀랐다.
출연하는 게스트들 특유의 카톡 말투를 보는 것도 중요한 포인트였던 프로그램인 만큼, '휴먼아재체'의 창시자는 그 자체로도 출연하는 의미가 있었다. 과연 매 카톡마다 붙는 물결 하며, 방심할 때마다 치고 들어오는 아재개그의 향연이 그야말로 화려했던 방송분.
니트생활자 편.
마더 오프라인 / 서울 용산구 이태원로55나길 6
'핸드스피크' 다음으로 촬영한 카카오임팩트의 또 다른 펠로우십 협찬.
'니트생활자'는 펠로우십 리스트 중에서도 단연 눈에 띄었다. 카카오임팩트가 후원하는 대부분이 한눈에 봐도 다 중요하고 멋진 활동들이었는데, 그중 '니트족을 후원하는 사회적 기업'이라는 소개가 조금 색달랐던 거다. 사실 이것도 좀 평범한 말로 바꾸면 '청년실업' 문제인 셈인데, 기존의 '니트족'이라는 말 자체가 쓰여온 맥락이 있다 보니 여러 가지 색깔이 덧칠해진다.
그래서 좀 더 알아보니, 어딘지 귀여워 보이면서도 정말 중요한 역할을 하는 곳이었다. 취업이나 경제활동에 참여하지 못해 백수기간이 길어지는 청년들을, 일종의 '회사놀이'인 가상의 회사로 출근시켜 매일매일 '뭐라도 하게 돕는' 회사. 가서 그냥 책을 읽다와도 되고, 넷플릭스를 보다 와도 된다. 어쨌든 뭔가를 하고, 내가 오늘 무얼 했다는 기록을 정리해서 남기는 게 중요하다.
그런데 정말 그렇다. 사람이 일상적인 루틴이 사라지고 집에만 있다 보면 몸도 마음도 점점 고립된다. 그런 상황에서도 끊임없이 뭔가를 찾아 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대개는 얼마 안 가 동력을 잃고 자존감도 자꾸 구겨지기 마련이다. 그 기간이 길어질수록 시야도 좁아지고 사회성도 고갈돼서, 점점 더 취업하기 어려운 사람이 되기 쉽다. 악순환이다.
내가 MBC에서 해고됐을 때도 나를 걱정해주신 여러 단체에서 공통적으로 제안해왔던 것이, "책상 하나 비워줄 테니까 와서 아무거나 하고 싶은 거 하다가 가요."였다. 여러 해직언론인들을 겪은 그분들은 알았던 거다. 아침에 일어나서 출근할 곳이 있다는 게 사람에게 얼마나 중요한 지.
근데 이게 언뜻 들으면 되게 별거 아닌 거 같다. 책상 하나 비워주고 자리를 마련해주고. 딱히 뭔가 대단한 걸 시키는 것도 아니라서 지자체나 시민단체가 팔 걷고 나서기도 애매한 영역이다. 아예 직접적인 직업훈련이나 심리상담 같은 것도 아니니까. 사실 이런 소소한 도움이 적절할 때 없으면 나중에는 더 큰 비용이 필요해지는데.
'니트생활자'는 딱 그 지점을 찾아내서 자기 영역을 만들어낸, 영리하고 필요한 단체였다. 제작진 중에서는 그렇잖아도 집에 니트족이 한 명 있어서 이래저래 마음이 답답했던 이가 있었는데, 처음엔 '니트족을 지원한다고?' 하고 봤다가 자료를 읽어보고는 수긍하게 되었다. 컨텐츠는 일단 이러면 된 거다. 뭐지? 하고 봤다가 오~ 하게 되면.
니트생활자는 대표도 공동으로 두 분이고, 기왕이면 참여한 청년회원들의 목소리도 직접 듣고 싶었다. 여러 사람이 앉을 수 있게 자리가 좀 널찍한 곳이 필요했다. 동시에 회원들이 출근해서 각자 자기 일을 옹기종기 하고 있는 그 느낌도 보였으면 했다. 그래서 김이나 씨가 대표님들과 대화하는 너머로 각자 편하게 앉아서 자기 할 일을 하는 회원들이 보이는 공간이 필요했다.
그렇게 찾은 곳이 이태원의 마더 오프라인. 공간을 다채롭게 쓸 수 있는 데다 깔끔하고 큼직해서 좋았다. 사실 화면에 잡힌 앵글 반대쪽에 더 예쁜 공간들이 있었는데 다 보여주지 못해 아쉬웠다.
마지막 회, 나와의 채팅 편.
스튜디오 에이포 /서울특별시 마포구 백범로 35 서강대학교
예능PD들은 대개 쿨한 걸 좋아한다. 그래서 꽤 많은 예능 프로그램들이, 마지막 회라고 뭘 엄청 대단하게 하는 경우가 잘 없다. 그냥 평소 하던 대로. 마지막에 끝인사 하는 MC멘트와 함께 '시청해주셔서 감사합니다' 하는 자막 정도 넣을 때가 많다. 사실 마지막을 성대하게 꾸미는 건 자화자찬이 되기 쉬우니까. 그게 성정에 안 맞는 사람이 많은 것 같다.
나는 쿨하지가 못해서, 조연출 시절에도 애정을 바쳤던 프로그램의 마지막이 그렇게 쿨하게 끝나는 게 못내 아쉬웠다. 그래서 <톡이나 할까?>는, 그 시절 했던 프로그램들에 비하면 그렇게까지 길지도 않았지만, 그래도 마지막은 마지막답게 꾸미고 싶었다.
실은 마지막 회까지도 꽤 솔깃한 이름들로부터 출연제의가 들어왔다. 하지만 마지막 회의 게스트는 김이나 본인이 되는 게 가장 의미 있을 것 같았다.
실은 게스트를 이렇게 정하기 전에, 작가님의 다른 아이디어가 있었다. 마지막 회를 즈음해 이벤트 같은 걸 해보고 싶다고. 카톡을 다루는 프로그램답게 사람들이 자기 카톡을 태그 해서 올리는 챌린지 같은 걸 해서 상품을 주면 어떻겠냐고. 그게 소중한 사람에게 보내는 카톡이든, 웃긴 카톡이든 누구나 다 쓰는 앱인 만큼 각자의 이야기들을 모아 보면 좋을 것 같다고.
그래서 그 이벤트를 뭘로 할까 고민하던 차에, 카톡에서 매번 쓰지만 명칭은 한 번도 신경 안 썼던 메뉴가 보였다. 내가 내 계정으로 카톡을 보내는 기능. 보통 메모나 파일을 저장하기 위해 쓰지만. 그 이름이 '나와의 채팅'이었다.
그 말이 써먹기 좋아 보였다. '나와의 채팅.' 그럼 마지막 회에 김이나 씨도 '나와의 채팅'을 하고, 시청자들에게도 과거의 자신에게 말을 거는 '나와의 채팅'에 참여해달라고 이벤트를 하면 될 것 같았다.
'나와의 채팅'으로 결정되고 나서는 첫 회부터 지금까지 김이나 씨가 MC로서 했던 말을 전부 출력했다. 다행히 모든 말을 텍스트로 나눈 프로그램이라, 그동안의 대화를 똑같이 받아 적을 수 있었다. 대화로그 파일이 남아있는 데이터도 많았고. 그래도 정리하는 작가님들이 몹시 고생하셨다. 그 말들을 하나씩 다시 읽으며, 1년이 지난 오늘의 김이나에게 다시 질문할 만한 것들을 추렸다. 대답으로 쓸 수 있는 말들도 다시 고르고.
실제 촬영장에서 김이나 씨는 정말 대화하는 마음으로 참여해야 하니, 대본을 짜 놓고 그대로 따라오게 할 수는 없었다. 그래서 쓸만한 과거 대화의 데이터를 넉넉하게 정리해 놓고, 현장에서 그때그때 대화 흐름에 맞춰 골라서 쓰기로 했다. 대화는 유형별로 나눠서 분류하고, 예상되는 답변으로 쓸만한 말들은 따로 모았다. 단답이나 적당한 리액션은 현장에서 내가 타이핑하기로 했다. 1년 넘게 이나 누나의 카톡 로그만 매일 봐왔으니, 대충 말투와 답변 정도는 흉내 낼 수 있었다. 이 프로그램이라 가능한 구성이었다.
아무리 내가 대화를 흉내 낸다고 해도 이나 누나는 그게 나라는 걸 알고 있으니, 좀 더 몰입을 하려면 다른 장치들도 필요했다. 스튜디오에 LED 패널을 둘러 가상의 공간을 만들고, 정면에는 김이나 본인의 그동안 출연했던 영상들을 띄우기로 했다.
대화 내용과 눈앞의 영상이 너무 따로 놀면 그것도 몰입이 안 될 테니, 예비 구성안으로 만들어놓은 대화 로그를 보고 실제 그 말을 했던 방송분의 표정을 하나하나 편집해서 가져왔다. 동료 PD들이 지난 1년 여 동안의 방송분을 뒤져 그 말을 하던 순간을 각각의 파일로 렌더링 해서 저장하느라 고생 꽤나 했다. 이렇게 각각의 파일로 번호를 매겨 가지고 있다가, 내가 채팅창에 대사를 치는 걸 옆에서 보고 거기에 해당하는 파일을 실시간으로 재생했다.
그렇게 1년 간의 이야기로 자신과 대화를 나누고 나면, 그동안 출연했던 게스트들로부터도 과거의 자신에게 보내는 메시지를 받아 띄우기로 했다. <톡이나 할까?>에 나와주었던 게스트들 중에, 우리가 다시 부탁을 드리면 기꺼이 프로그램을 위해 메시지를 보내줄 수 있을 것 같은 분들에게 연락을 돌렸다. 사실 부탁을 드릴 때까지만 해도, 이렇게까지 진솔한 이야기들을 받게 될 줄은 몰랐다. 새벽에 편집실에서 메시지를 하나하나 화면에 얹으며 얼마나 울컥했는지 모른다.
게스트들의 메시지가 끝나면, 챌린지에 참여한 시청자들의 메시지도 한꺼번에 등장. 생각보다 많은 분들이 참여해주셔서 모든 메시지를 띄우진 못했지만, 이 역시도 우리가 처음 생각한 것보다 훨씬 깊은 진심들이 담겨 있었다. 다들, 과거의 자신에게 이렇게 말을 걸 수 있구나 싶었다. 이벤트를 열기로 한 나 스스로도 겸연쩍은 마음이 많았는데.
사실 '과거의 나에게 하고 싶은 말'이란 결국, '지금의 내가 미래의 나에게 듣고 싶은 말'일 것이다. 너 그때 걱정했지, 괜찮더라. 하는 이야기. 과거의 나에게 그렇게 얘기해줄 수 있다면, 지금의 나도 그런 말을 들어도 되지 않을까 하는 마음.
그리고 LED 문이 열리면서 데이브레이크의 공연으로 피날레를 꾸몄다.
마지막은 마지막다워야 하니까. 마지막은 역시 무대니까. <톡이나 할까?>가 무대로 끝난다면 그건 역시 데이브레이크여야 잘 어울리겠지. 눈치 빠른 이나 누나는 저 LED가 열릴 거라는 건 이미 짐작했지만, 그 뒤에서 데이브레이크가 나올 거라고는 상상 못 했을 거다. 한 달 전에 섭외했는데도 끝까지 비밀을 지켜준 데이브레이크 님들께 무한한 감사를.
엔딩곡은 '빛나는 사람'과 'WITH'. 모두 과거의 나에게 말을 건다면 불러줄 수 있는 노래라고 생각했다. 촬영 전에 "마지막 회라고 혹시라도 내가 울길 기대한다면 포기하는 게 좋을 거다"라고 엄포를 놓았던 이나 누나는 그래도 눈시울이 가득 차올랐다. 그 정도면 충분했다. 아우 카메라 뒤에 있던 나도 눈물 났는걸.
그렇게, 마지막 회다운 <톡이나 할까?>였다.
애정을 쏟았던 만큼, 마지막을 잘 보낼 수 있어서 참 기뻤다. 마지막 회는 사람들의 감상도 곳곳에서 묵직하게 올라왔다. 1년 넘게 마음을 담아 꾸준히 챙겨 봐주셨다는 시청자들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어서 그것도 참 벅찼다. 그동안 못 들었을 뿐이지, 이렇게나 사랑받고 있었구나.
그럼 나도 한참 정신없이 제작하던 과거의 나에게, 사람들이 잘 보고 있으니 더 즐거워해도 된다고 격려의 메시지를 보내주고 싶다. 보낼 수만 있다면. 아니 어쩌면 그때 어렴풋이 들었을지도.
오래오래 남을 것 같다. 매주 매일 보던 이나 누나의 카톡 말투와 얼굴도. 마음에 깊이 와닿았던 게스트들의 이야기도. 만들면서 깨달았던 어떤 생각들도 모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