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8 왕궁예배당 미사, 호프부르그,
알베르티나

들꽃의 마지막 여행 08.

by 들꽃연인

한 달 가까운 유럽 여행의 추억을 정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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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시 일찍 일어나 상쾌하고 아름다운 벨데데레 정원 아침산책과 가벼운 식사를 마치고 일정을 시작했다.

벨베데레 아침.jpg (언제나 상쾌, 상큼한 벨베데레의 아침) (이미지 : 직접 촬영)


왕궁예배당(Wiener Hofburgkapelle) 미사에 참석하기 위해 트램으로 이동했다. 천주교 신앙을 갖고 있는 것도 아닌데 미사에 참석한 것은 빈 소년합창단이 매주 이 미사에서 찬양을 하기 때문이었다. 왕궁예배당은 그리 크지 않은 규모였고, 세계 각지에서 온 관광객들로 빈자리가 없이 가득했다. 그들 대부분도 미사보다는 빈소년합창단 때문에 이곳에 온 것이리라. 이곳 역시 사전 예약이 없었다면 입장하기 어려웠을 듯했다.


미사 중간중간에 빈소년합창단의 청아한 성가가 울렸지만, 2층 뒤에 위치한 합창단의 모습은 볼 수 없었다. 미사가 끝난 후에, 신부님의 영어 소개로 합창단이 앞으로 나와 앙코르로 한 곡을 불러주는 서비스를 했다. 특이한 것은 아시아계로 보이는 소년들이 거의 절반에 가까운 비중을 차지한 것이었다. 23년 1월 메가박스에서 본 빈 신년음악회 중계영상에 빈소년합창단이 출연했는데, 그때도 아시아계 단원들이 많이 보여 인상적이었던 기억이 있고, 이번에 현장에서도 확인할 수 있었다.

빈소년합창단.jpg (왕궁예배당 미사 후 빈소년합창단의 앙코르) (이미지 : 직접 촬영)


미사가 끝난 후 호프부르크 왕궁의 내부 중에서 왕궁보물관과 시시 박물관을 관람했다.


왕궁보물관은 보물보다는 왕가에서 사용하던 물건을 전시한 박물관에 가까웠다. 왕홀과 가운, 여러 가지 성물(聖物)들이 주를 이루었다. 전날 미술사박물관에서 워낙 화려한 합스부르크의 보물들을 본 후라, 왕궁보물관은 오히려 소박해 보였다.

왕궁박물관.jpg (빈 왕궁 박물관의 왕관과 왕홀) (이미지 : 직접 촬영)


시시 박물관은 입장부터가 고역이었다. 사전 예약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긴 줄에 대기해야 했는데, 정오가 가까운 시간에 뜨거운 태양이 직사광선을 비추는 땡볕에 서있어야 했다. 내부 관람 역시 인파 속에서 떠밀려 다녀야 해, 시시라는 애칭으로 알려진 황후 엘리자베트의 인기를 실감할 수 있었다.


엘리자베트는 19세기 중반부터 20세기 초까지 합스부르크의 황제였던 프란츠 요세프 1세의 아내였다. 그녀는 빼어난 외모와 드라마틱한 인생 스토리가 겹쳐, 모차르트와 함께 오스트리아의 상품 및 관광 마케팅에 가장 많이 소환되는 인물이다.


이미 황제였던 프란츠 요세프 1세와 그녀의 언니가 결혼키로 했고, 둘이 처음 만나는 오스트리아의 휴양도시 바트 이슐에 시시도 동행했다. 그런데 그녀를 본 황제가 첫눈에 반해, 언니와의 결혼을 취소하고 시시에게 청혼을 하여 결혼하게 된다. 소문난 미모와 극적인 상황 때문에 그녀는 결혼 전부터 이미 오스트리아는 물론 유럽 전체에서 화제의 인물이 되었다.


그러나 결혼 후 시어머니인 조피와의 갈등, 딱딱한 궁정생활에서의 부적응 등으로 고생하다가 아들 루돌프 황태자의 자살, 남편 황제의 외도 등의 시련을 겪게 된다. 해외여행으로 이 같은 시련에서 도망가보려 했지만, 안타깝게도 스위스 여행 도중 무정부주의자의 칼에 찔려 60세를 일기로 사망하는 비운의 여인이다.


이런 소설 같은 인생사에, 엄청난 미인이었다는 이야기가 버무려져 그녀는 지금도 수많은 사람들에게 관심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그녀의 이야기는 여러 차례 영화로 제작되었으며, 최근에는 뮤지컬과 넷플릭스의 드라마로도 만들어졌다.


그러나 힘들게 입장한 시시 박물관은 딱 생각한 정도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특히 수많은 관광객의 물결이 힘들게 해 ‘이곳을 괜히 찾았구나’라는 생각까지 하게 만들었다.


시시동상_pixabay.jpg (황후 엘리자벳 시시의 동상) (이미지 : Pixabay, 시시 박물관은 사진 촬영 불허)


6월도 되기 전, 빈의 한낮 태양은 맵게 뜨겁다. 시시 박물관을 나와 호프부르크 앞마당인 헬덴플라츠를 거쳐 왕궁정원(Burggarten)으로 향했다. 이곳의 상징이자 빈의 상징이라고도 할 수 있는 모차르트의 동상이 있는 곳이다. 천재라는 말이 가장 잘 어울리는 음악가는 단연 모차르트일 것이다. 화려함과 우울함, 장엄함과 사치스러운 가벼움, 인생에 대한 즐거움과 고뇌, 이 모든 것들이 모차르트 한 사람의 음악에 담겨있음에 경탄하게 된다.


모차르트 동상.jpg (빈 왕궁정원에 있는 모차르트의 동상) (이미지 : 직접 촬영)


왕궁 정원에는 수많은 빈 시민들이 잔디에 앉아 썬텐을 하거나 도시락을 먹고 있다. 아이들은 공놀이를 하고 어떤 이들은 책을 읽는다. 참으로 평화로운 풍경이다. 하지만 나에게는 저 땡볕 아래 앉아있는 것은 고역일 것이다. 햇빛을 피해 그늘을 찾는 우리와 달리, 서양인들은 해바라기처럼 태양을 동경한다. 피부 모공 속에 있는 곰팡이를 죽이기 위해서라는 이야기도 있던데, 사실 여부는 알 수 없고…


왕궁정원 잔디밭.jpg (빈 왕궁정원의 잔디밭에서 여유를 즐기는 빈 시민들) (이미지 : 직접 촬영)


공원 한쪽에 있는 팔멘하우스에서 점심식사를 했다. 과거 궁전의 온실이었던 곳을 식당으로 만들었는데, 지금도 온실의 느낌이 많이 남아있다. 왕궁 온실이 변한 식당이라 비싸고 화려할 것 같았는데, 가보니 대중적이고 부담 없는 식당이었다.


필멘하우스 식당.jpg (과거 왕궁 온실이었던 팔멘하우스 식당) (이미지 : 직접 촬영)


식사 후에는 알베르티나 미술관을 관람했다. 뒤러의 ‘토끼’와 ‘기도하는 손’을 비롯해 뭉크, 모네, 모딜리아니, 칸딘스키 등의 작품을 전시하고 있는 훌륭한 미술관이다. 하지만 한국인들에겐 많이 알려졌지 않고, 그저 영화 ‘Before Sunrise’에서 야경 보는 곳 정도로만 알려져 있는 듯하다.


뒤러 토끼.jpg (뒤러의 토끼 : 털 하나까지의 묘사가 섬세하다) (이미지 : 직접 촬영)


‘기도하는 손’에 얽힌 이야기가 감동적이다. 젊은 시절 무척이나 가난했던 뒤러와 그의 친구는 한 사람이 먼저 미술공부를 하는 동안 다른 친구가 그 뒷바라지를 하기로 했다. 그 후 교대로 미술공부를 하기로 하고 제비를 뽑아 뒤러가 먼저 미술공부를 하고 친구는 막노동으로 그의 학비와 생활비를 도왔다. 그리고 뒤러는 화가로 어느 정도 자리를 잡게 되었다. 뒤러가 하루는 그 친구를 찾았는데, 그는 막노동으로 더 이상 그림을 그릴 수 없게 된 손을 모아 뒤러의 성공을 위해 기도하고 있었다. 그 손을 보며 눈물을 훔친 뒤러가 친구의 손을 그린 작품이 ‘기도하는 손’이다. 실제 작품은 작은 사이즈였지만, 그 스토리의 울림을 자못 큰 것이었다.


뒤러 기도하는 손.jpg (뒤러의 기도하는 손) (이미지 출처 : 직접 촬영)


알베르티나 미술관 관람을 마치자 피로가 몰려왔다. 빈에 도착했을 때부터 무리하기도 했고, 특히 이날 아침부터 왕궁 미사, 왕궁보물관, 시시 박물관, 알베르티나에 이르는 여정은 몸에 경보를 울렸다.

오후 4시쯤 숙소로 돌아와 4시간 가까이 낮잠과 휴식으로 푹 쉬면서 몸을 달래주었다.


8시쯤 일어나 트램으로 벨베데레로 이동해 해질 무렵의 벨베데레를 산책했다.

그리고 베트남 쌀국수로 저녁식사를 한 후 하루를 마감했다.

걸음 수 21,013보.


벨베데레 저녁.jpg (저녁 무렵에도 아름다운 벨베데레의 정원) (이미지 : 집접 촬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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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 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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