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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마스 투 유

[일상의 기록,생각의 낙수 - 라보엠, 파리나무십자가 소년합창단 관람기]

by 들꽃연인

I.

아들 둘인 우리 집의 막내는 아주 어린 시절부터 독특한 개구쟁이이자, 기발한 귀염둥이였다. 학교에서 돌아올 때 길가에 있는 정육점을 수시로 들렀는데, 도대체 거길 왜 가 버릇 했는지 지금도 모를 일이다. 심지어 그 정육점의 총각을 형이라 부르며 매우 귀여움을 받았다고 한다. 그렇다고 뭐, 소고기를 공짜로 받아오거나 그런 적은 없었다.


또 혼자서 이발을 하러 미용실에 갔는데, 미용사가 “너 왔구나, 잘 있었니?” 했더니, “저 처음 왔는데요? 아마 제 쌍둥이 동생이 왔었을 거예요.”라는 거짓말을 천연덕스럽게 하기도 했다고 해서 나를 어리둥절하게 만들기도 했다.


내가 거실에서 퍼팅 연습을 할 때면 옆에 앉아서 귀여움을 떨었는데, 어디서 배웠는지 “사장님, 굿 샷”, “이번에는 안 들어가서 노 굿 샷” 이런 추임새를 넣곤 해서 나를 웃겼다.


왜 그렇게 된 건지는 모르겠는데, 우리 집에서는 신혼 초부터 크리스마스트리를 만드는 건 아빠 담당으로 되어있었다. 큰 애가 열 살이 조금 넘고, 막내는 아직 열 살이 안되었을 때로 기억하는 어느 12월 초, 그때도 난 두 아들과 함께 크리스마스트리를 장식하고 있었고, 집안에는 아내가 만드는 빵 냄새, 쿠키 냄새가 가득했다.

(이미지 출처 : Pixabay)

두 아들과 나는 돌아가면서 크리스마스 캐럴을 한 곡씩 부르기로 했다. 몇 바퀴가 돈 후 막내 순서가 되었는데, 이미 자기 아는 노래가 다 나와서 매우 난감해하던 막내는 이윽고 기상천외한 캐럴을 부르기 시작했다. 생일 축하 곡 ‘Happy birthday to you’의 앞부분 가사를 크리스마스로 부른 것이다.


“크리스마스 투 유, 크리스마스 투 유,

크리스마스, 크리스마스,

크리스마스 투 유”

아내와 나, 큰 아들은 박장대소를 하고, 난 막내를 안아 올렸다. 그날 캐럴 부르기의 1등은 단연 막내였다. 이날의 기억은 내가 살아오면서 가장 행복했다고 생각되는 날 중 하나였던 것 같다.

(이미지 출처 : Pixabay)

II.

크리스마스가 다가오면 매년 어김없이 그것도 여러 번 펼쳐지곤 하는 공연들이 있다. 아이들과 함께 보는 대표적인 공연인 발레 ‘호두까기 인형’, 정식 공연은 물론이고 성가대들이 부르기도 하는 헨델의 ‘메시아’, 크리스마스는 물론, 연말까지도 연주되는 베토벤 교향곡 9번 ‘합창’, 그리고 크리스마스 시즌에 한국을 자주 찾는 파리나무십자가 소년합창단의 공연과 크리스마스이브에 시작된 젊은 연인들의 애절한 사랑을 그린 오페라 ‘라 보엠’ 등을 들 수 있을 것이다.


그중 먼저 서울시 오페라단과 국립 심포니 오케스트라가 연주한 푸치니의 오페라 ‘라 보엠’을 관람했다. 세종문화회관 대극장의 만족스러운 공연환경도 좋았고, 관객들이 매너와 호응도 역시 좋았다.

[라 보엠 주요 출연진의 커튼콜] (이미지 출처 : 직접 촬영)

‘라 보엠’은 보헤미안들을 일컫는 프랑스어로, 이 작품에서는 파리에 사는 젊은 예술가들을 보헤미안으로 묘사했거나, 보헤미안 같은 자유로운 영혼으로 그렸을 것이라고 추측해 봤다. 어쨌거나, 파리에 사는 가난하지만 따뜻하고, 예술과 사랑에 대한 열정을 가진 젊은이들로 생각하면 좋을듯하다.


가난한 시인인 주인공 로돌포는 크리스마스이브에 촛불을 빌리러 자신의 다락방을 찾아온 ‘미미’를 만나 첫눈에 사람에 빠진다. 이들 가난한 연인은 로돌포의 친구들이 기다리는 카페로 함께 간다. 크리스마스이브의 거리는 무척 들뜬 모습이고, 어린이들의 해맑은 웃음소리와 장사치들의 호객 소리에 묻혀 요란하기 그지없다. 친구들은 미미를 반겨주고, 일행들은 흥겨운 크리스마스이브를 보낸다.

[라 보엠 출연진들의 커튼콜. 크리스마스이브 축제를 즐기는 2막에서 많은 인원이 출연한다] (이미지 출처 : 직접 촬영)

그러나 미미는 심각한 병을 앓고 있었고, 이를 치료해 줄 돈이 없는 로돌포는 미미에게 거짓으로 시비를 걸며 이별을 통보한다. 이들은 로돌포의 다락방에서 재회를 했으나, 이미 쇠약해진 미미는 친구들의 따뜻한 우정을 느끼며 사랑하는 로돌포의 품에서 숨을 거둔다.


아, 왜 많은 오페라의 여주인공들은 극 종반에서 죽음을 맞이할까? 이 오페라 라보엠을 비롯해 같은 작곡가인 푸치니의 토스카, 나비부인, 그리고 베르디의 아이다와 리골레토, 라 트라비아타 등 정말 많다. 이것은 아마도 관객들의 눈물샘을 자극해 감동과 공감을 자아내려는 의도일 것이라는 글을 본 적 있는데, 일리 있는 분석이라고 생각된다.


한편 이날 공연에서는 오케스트라와 출연진의 연주 모두가 만족스러웠다. 국립심포니오케스트라는 출연진들의 연기를 방해하지 않으면서도 자체적으로도 훌륭한 연주를 해주었다고 느꼈다. 전체적으로 젊은 출연진들은 발랄하면서도 풍부한 감성과 연기를 보여주었고, 로돌포 역의 김정훈과 미미 역의 황수미에게는 정말 많은 박수를 보내주고 싶었다.

['미미'역을 맡은 소프라노 황수미] (이미지 출처 : 직접 촬영)

크리스마스가 다가오면서 크리스마스트리와 장식을 준비하는 11월 말, 젊은 연인들이 크리스마스이브에 사랑을 맺어 달콤하고도 쓴 사랑을 이어가는 이야기는 많은 이를 로맨틱한 분위기로 이끌 것 같았다.


III.

내가 파리나무십자가 소년합창단에 대해 제일 궁금한 것은 왜 한국에 그리 자주 공연을 오는 것일까 하는 점이다. 1907년에 창단한 이 합창단은 유럽, 미주, 아시아, 아프리카 등 세계 각지에서의 공연으로 프랑스를 대표하는 문화 사절로 인정받고 있다고 한다. 또 빈 소년합창단과 함께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소년 합창단이며, 프랑스 정부로부터는 수 차례의 훈장을 받았고, 교황으로부터는 ‘평화의 사도’라는 칭호를 받았다. 즉 그리 허접하거나 시시한 팀이 아닌, 대단한 합창단인 것이다.


그런데 이렇게 최고로 꼽히는 합창단이, 1971년 첫 내한공연을 가진 이래로 코로나 때를 제외하곤, 거의 매년 한국을, 그것도 크리스마스 시즌에 찾는 것이다. 그 이유가 궁금해서 폭풍 검색을 해보고 AI에 물어보기도 했지만 내 실력으로는 만족스러운 결과를 얻지 못했다. AI는 ‘한국에서는 크리스마스에 사람들이 모이고 즐기는 문화가 있어 이런 문화를 배우기 위해서 온다’는 다소 상식적이거나 작위적인 답변을 내놓아 실망스러웠다.


그냥 내가 해본 짐작으로는, 이 합창단은 몇 개의 공연 팀이 있어서 세계 여러 지역에서 공연을 하리라고 추리해 봤다. 그리고 동아시아 지역을 담당하는 팀이 한국에 오는 스케줄이 주로 크리스마스 무렵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다. 좀 더 호의적으로 추가한다면 한국에서 관객들의 반응이 좋고, 티켓 판매율도 높아 더 자주 찾게 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정도의 짐작을 했다.

(이미지 출처 : 직접 촬영)

아울러 한 가지 더 놀라운 것은 서울, 성남, 고양 같은 수도권 대도시뿐만 아니라 부산, 대전, 청주, 구미, 당진 같은 지방 대도시와 중소 도시에서도 공연을 갖는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세종문화회관과 서울예술의전당에서 피날레를 장식하게 된다. 나는 그 첫 공연이었던 12월 6일의 고양 아람누리 공연을 찾았다.


공연 전 아람누리에 있는 식당에서 오랜 친구와 이른 저녁식사를 함께 했다. 공연도 좋았지만, 오랜 벗과 정담을 반주로, 우정을 반찬으로 나누는 식사는 참 즐거운 시간이었다. 이야기도 잘 통했고, 친구가 세상을 살아오며 깊어진 지혜와 품성, 바래지 않는 유머와 편안함이 날 푸근하게 또 정겹게 만들어 주었다.


파리나무십자가 소년합창단의 공연에는, 당연한 이야기지만, 어린이 관객들이 부모님의 손을 잡고 많이 찾았다. 이런 공연에 어린 관객들의 귀여운 모습을 보니, 왠지 성탄 분위기가 더 느껴지는 듯했다. 그리고 이 꼬마 관객들은 두 시간 정도의 공연 내내 크게 떠들거나 말썽 부리지 않고 좋은 관람 매너들을 보여 기특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부모님들의 교육 덕택이기도 했겠지만, 어린이들의 문화 지능도 올라간 듯했다.


합창단의 공연은 1부와 2부, 그리고 앙코르 곡을 6곡이나 불러 거의 3부 정도 되는 구성으로 진행되었다. 1부에서는 성가곡과 프랑스 샹송, 그리고 세계 각국의 노래로 구성되었는데, 칠레, 세네갈, 그리고 특이하게도 아랍 전통음악도 포함되어 있었다. 네이비블루 색 교복 스타일의 반바지 유니폼을 입고 비교적 자유스러운 분위기에서 아름다운 하모니를 들려주었다. 소년들이 번갈아 나와 서너 마디씩의 한국어 인사를 해서 많은 박수를 받았고, 머리는 백발이지만, 얼굴은 많이 나이 들어 보이지 않는 지휘자(뱅상 토마)는 활기차고 열정적으로 지휘를 했다. 특히 세네갈 민요인 ‘툼바’를 부를 때는 ‘툼바라 툼바’하는 멜로디를 관객 모두가 합창하게 하고, 이를 백 코러스 삼아 단원들이 노래를 해 분위기가 더욱 흥겨워졌다.

[파리나무십자가 소년합창단. 촬영이 가능한 앙코르 곡 연주 장면] (이미지 출처 : 직접 촬영)

2부에서 단원들은 미사에 참석하는 소년들처럼 하얀 제례복을 입고 나무 십자가를 목에 둘렀다. 2부에서는 클래식과 성가도 있었지만, 크리스마스 캐럴이 중심이었다. ‘징글벨’처럼 흥겨운 곡부터 ‘고요한 밤, 거룩한 밤’까지 귀에 익은 캐럴을 여러 곡 불렀는데, 특히 ‘고요한 밤, 거룩한 밤’은 배터리로 작동되는 듯한 초를 하나씩 들고 베들레헴 마구간을 연상시키는 대형을 만들며 노래해 감탄을 자아냈다. 또 캐럴 ‘천사들의 노래가 하늘에서 들릴 때’를 부를 때는 천사들의 음성을 듣는 듯한 착각이 들 정도였다.

[파리나무십자가 소년합창단] (이미지 출처 : 직접 촬영)

각각 10곡씩 20곡을 부른 1, 2부가 끝나자 관중들의 열광적인 박수와 앙코르 신청이 이어졌고, 귀여운 두 곡의 앙코르 후에는 ‘고향의 봄’ ‘아리랑’ 영화 국가대표 OST 중 ‘Butterfly’ ‘걱정 말아요, 그대’ 등 한국 노래 4곡을 정확한 가사로 불러 관객들을 열광시켰다. 전 관객이 기립박수와 휴대폰 손전등 흔들기로 감동을 전하는 가운데 즐겁고도 가슴 먹먹한 공연은 막을 내렸다.


사랑스러운 소년들에게 크리스마스의 축복이 임하기를, 그리고 아슬아슬한 이 나라와 전쟁 중인 곳의 불쌍한 사람들에게 하늘의 영광과 땅의 평화가 주어지기를.


모두, 모두 메리 크리스마스, 그리고 크리스마스 투 유!!

(이미지 출처 :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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