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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로맨스를 아시나요? 1 - 멋진 브로맨스

<일상의 기록, 생각의 낙수>

by 들꽃연인

I.

LG그룹의 프로야구팀 이름은 다 알다시피 ‘Twins’이다. 자세히 조사해보진 않았지만, LG트윈스와 MLB 미네소타 트윈스 외에는 세계적으로 흔치 않은 프로구단 이름으로 생각된다. 아마도 LG그룹의 여의도 사옥이 쌍둥이처럼 닮은 두 개의 건물 ‘Twin Tower’라는 데서 유래된 것이 아닐까 짐작해 본다. 물론 LG그룹이 과거 ‘구’씨와 ‘허’씨가 함께 만들어 ‘인화’를 그룹 이념으로 삼고 사이좋게 그룹을 운영했고, 나중에 ‘허’씨들이 LS그룹으로 사이좋게 분할했다는 이야기도 들었다.

(이미지 출처 : Pinterst_artistshot.com)

별자리에도 쌍둥이자리가 있다. 이 이름에는 그리스 신화의 이야기가 전해온다. 여러 가지 버전이 있고, 특히 오페라 ‘카스트로와 폴록스’의 스토리는 많이 다르기도 하다. 어쨌든, 신들의 세계에서 최고의 바람둥이로 유명한 제우스는 뛰어난 미모를 가진 스파르타의 왕비 레다를 유혹해 임신시킨다. 그리고 레다는 두 개의 알을 낳았는데, 그 각각에서 아들이 태어나 카스트로와 폴록스라는 이름을 지어준다. 카스트로는 레다의 남편인 왕 타이탄, 즉 인간의 아들이고 폴록스는 제우스, 즉 신의 아들이었다.

(이미지 출처 : Pixabay)

둘은 형제간의 끈끈한 우애를 과시하며 황금양털을 찾기 위한 아르고호의 모험과 납치된 헬레네를 구출하기 위한 트로이 전쟁 등 여러 곳에서 함께 싸우며 공을 세우기도 한다. 그러나 인간의 아들인 카스트로가 한 전쟁에서 치명상을 입고 죽게 되었다. 그러자 폴록스는 자신의 영생을 카스트로에게 나누어줘 둘이 영원히 함께 있게 해달라고 제우스에게 간청한다. 제우스는 그 기도를 받아들여 형제를 별로 만들어 하늘에 올려주었다. 카스트로와 폴록스는 닮은 모습의 별로 아름답게 빛나게 되었고, 둘이 만든 별자리는 쌍둥이자리로 불리면서 형제애와 우정을 상징하게 되었다.

(이미지 출처 : Pixabay)

II.

안성기와 박중훈이 주연한 영화 ‘라디오 스타’.


2006년에 개봉했으니까 벌써 20년 가까이 된 영화이다. 극 중 박중훈은 한 때 최고의 인기가수였으나, 세월이 지나면서 퇴락한 별 볼 일 없는 반(半) 한량으로, 안성기는 그의 매니저로 나온다. 우여곡절 끝에 박중훈은 한 전국 방송국(KBS였을 것으로 생각됨)의 영월 지국에서 오후 가요 프로그램을 진행하게 된다. 우습게 보고 시작했지만, 점점 지역 사람들의 진심이 모여 방송은 히트하게 되고 박중훈은 다시 중앙 연예계의 관심을 받는다. 그러나 연예기획사의 제안 조건은 매니저 안성기를 제외하고 박중훈과만 계약을 하자는 것이다. 이를 알게 된 안성기는 조용히 박중훈을 떠나 아내와 함께 지하철역에서 나오는 사람들을 상대로 김밥 장사를 하게 된다. 안성기가 떠난 것을 안 박중훈은 방송에서 울먹이며 ‘형, 돌아와’를 외치고, 안성기는 버스에서 팔다 만 김밥을 먹다가 그 외침을 듣는다. 그리고는 비가 쏟아지는 영월의 방송국 앞에서 둘은 재회한다.


이 영화에서 박중훈이 전성시대에 불러 히트한 곡으로 나온 노래가 ‘비와 당신’이었다.

(이미지 출처 : bing 검색_a20.ofl.kr)

비디오로 영화를 빌려 보던 시절, 이 영화를 보는데 철철 눈물이 났다. 그러는 날 보며 아내는 매우 이상한 듯 물었다. “왜 그렇게 울어? 이 영화는 그렇게 울만한 영화는 아닌데?” 난 속으로 생각했다. ‘당신이 남자의 우정을 알아?’


후배 L에게 이 영화 얘기를 간단히 하고, 기회가 되면 보라고 했다. 얼마 후 L이 엉엉 울면서 전화를 했다. 지금 막 그 영화를 봤다고, 그리고 형 생각이 나서 눈물이 걷잡을 수 없다고.

[영화 라디오스타에서 박중훈이 '형, 돌아와'라면서 울부짖는 장면] (이미지 출처 : bing검색_joynews24.com)

III.

후배 L과는 매우 특이한 부서에서 같이 일을 했다. 사내방송국.


90년대 초반, 회사에 긴박한 상황이 생겨 회사에서는 기존에 없던 사내방송국을 긴급하게 만들기로 했다. 그 당시는 PC도, 휴대폰도 일반화되지 않았던 시기여서 사내 동시 의사전달수단은 팩시밀리밖에 없었다. 그러나 팩시밀리로는 전달에 매우 제한사항이 많아 사내방송국이 필요하게 된 것이다. 당시 나는 일선 영업 현장에서 일 잘하고 있던 대리였는데, 회사에서는 대학 때 학교방송국 활동 경험이 있었던 나를 급히 발령 내서 방송국을 만드는 임무를 맡겼다. 나는 역시 대학방송 경험이 있던 직원을 물색해서, L과 함께 일하게 되었다.


회사의 업종과는 전혀 다른 업무인 사내방송을 맡았지만, 우리는 치열하게 일했다. 자정을 넘겨가며 방송을 준비하는 일도 많았고, 화장실에 가는 시간이 아까워 뛰어갔다 오기도 했다.


그때만 해도 전자식 도어록이 일반적이지 않았는데, 회사에서 방송국은 보안시설이라고 특별히 도어록을 설치해 줬다. 그런데 어느 날 아침 출근해 보니 이 도어록이 작동하질 않아 방송국에 들어갈 수 없었다. 나중에 알아보니 배터리 방전이었다. 어쨌든 아침 방송시간이 다가오는 급한 순간, L이 환풍구를 통해 천장으로 올라갔다. 그리고 Mission Impossible의 탐 크루즈처럼 천장을 기어가 방송국 환풍구로 내려간 후 문을 열어 무사히 방송을 할 수 있었다.

(이미지 출처 : Pixabay)

늦은 밤, 일을 마치고 퇴근할 때면 회사 근처의 술집, 음식점들은 모두 문을 닫았고, 유일하게 한잔 할 수 있는 곳은 포장마차 밖에 없었다. 우리는 포장마차에서 쓰디쓴 꽁치 내장을 씹으며 소주잔을 기울였다. 그리고 멋진 사내방송국을 꼭 만들자고 다짐했다. 그리고 우리는 훌륭한 사내방송국을 만들었고, 좋은 형, 동생이 되었다.


요즘 젊은 세대들에겐 평생직장이란 개념이 거의 사라졌기에, 직장에서 만난 사람들과도 깊은 관계를 맺지 않고 꼭 필요한 만큼의 접촉을 한다고 한다. 물론 우리 젊은 시절에도 드물긴 하지만 ‘직장에서 형, 동생 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 그 사람이 왜 당신에게 형이냐?’ 이런 비난을 하는 사람도 있긴 했다.


그런 사람들은 그러라고 하고…


L과 함께 만든 사내방송국은 30년이 넘는 동안 후배들이 이어가며 잘 방송하고 있고, L과는 30년이 넘는 형제이자 친구로서 우정을 이어가고 있다.


우리가 젊은 시절에 열정을 불살라가며 만들었던 것은 사실 사내방송국이 아니라 우리의 형제애와 우정이 아니었을까?


오늘은 왠지 L을 불러서 꽁치에다 소주를 한잔하고 싶다.

(이미지 출처 :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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