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효근 작곡가의 화이트러브 공연 관람기
I. 사랑의 색깔은 무엇일까?
사랑은 보통 붉은색을 연상시킵니다. 아마도 사랑의 표시인 Heart 곧 심장이 붉은색이기도 하고, 붉은색이 열정을 상징하기도 해서일 듯합니다.
그래서 사랑과 관련된 대표적인 기념일인 밸런타인데이의 표시와 마케팅도 붉은색을 중심으로 이루어지지요. 그런데 사랑과 관련된 또 하나의 색깔이 바로 하얀색입니다. 밸런타인데이보다 한 달 뒤에 있는 화이트데이 때문이지요.
화이트데이의 유래에 대해서 언급되는 이야기는 밸런타인데이의 초콜릿 마케팅으로 재미를 본 일본의 제과업체들이 사탕 마케팅을 위해 만들었다는 것입니다. 진위 여부는 알 수 없지만, 화이트데이의 달콤한 느낌을 다소 떨어뜨리는, 달갑지 않은 이야기이기는 합니다.
하지만 연인들에게 그날의 유래가 무슨 문제가 되겠습니까? 사랑하는 사람이 있고, 그 사람과 함께하는 화이트데이의 시간이 달콤한데, 더 무엇이 아쉽겠습니까?
이 달콤한 날, 김효근 작곡가의 달달한 노래들로만 구성된 공연, 작곡가 김효근의 K-아트팝 로맨틱 가곡 콘서트 White Love를 관람하기 위해 White day인 3월 14일 오후, 집에서 멀고 먼 하남문화예술회관으로 향했습니다.
II. 난 왜 울었을까?
음악회 관람 전, 연주곡들이 익숙해질 때까지 반복 청취하는 예습을 늘 합니다. 그런데 기악곡들에 비해 성악곡은 훨씬 빠르게 익숙해져 예습이 쉽더군요. 특히 김효근 작곡가님은 예술성을 유지하면서도, 대중들에게 보다 더 다가가는 K-아트팝 가곡 운동을 하신 지 오래이신 분이라서 더 쉽게 곡들이 익숙해진 면도 있을듯합니다.
그러고 보니 제가 은퇴 후 열심히 공연을 다녔지만 성악곡만으로 구성된 콘서트는 처음이었네요. 어쨌든 성악 콘서트는 예습의 효과도 아주 컸습니다.
이번 레퍼토리 14곡 중 제가 알고 있었던 곡은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와 <가장 아름다운 노래> 두 곡이었습니다.
그런데 이번 공연의 첫 곡인 <사랑의 꿈>을 베이스 바리톤 길병민님이 부르기 시작할 때부터 모든 곡이 너무 익숙해 예습의 효과가 짱이었습니다.
그리고 첫곡부터 계속해서 걷잡을 수 없이 눈물이 쏟아졌습니다.
난 왜 그렇게 울었을까 생각해 보니, 여러 이유가 떠올랐습니다.
남성 갱년기를 지나며 여성 호르몬이 늘었다, 처음 본 성악 콘서트가 감동적이었고, 김효근 작곡가님의 곡들이 다 좋았다, 저 하늘의 별이 된 사람이 그리웠다, 화이트데이에 화이트러브 공연을 혼자 보러 온 처지가 서글펐다, 등등.
그렇지만 한마디로 말하면 무조건 눈물이 심하게 흘렀다입니다. 앞의 모든 이유들이 다 농축되어 있었을 수도 있구요.
김효근 작곡가님 곡들은 오늘 공연 이전에도 접한 모든 곡이 다 좋았습니다. 음악 전공자도 아닌데, 대학 재학 중 대학생 가곡제에서 ‘눈'으로 대상을 받았다고 합니다. 그러나 그 이후에도 경제, 경영학을 공부했고 경영학과 교수로 오래 재직하신 분이기에 그분의 곡들과 이화여대 경영대 교수라는 이력을 접했을 때 놀라움도 컸습니다.
푸쉬킨의 시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는 중고등학교 때부터 익히 알았지만, 김효근 작곡가님의 가곡으로 접한 후 어느 가을에는 그 제목만 보아도 눈물이 흘렀습니다.
그래요, 저 울보예요.
III. 요즘 젊은 친구들, 참!
이번 공연의 티켓 오픈 시간에 하필 급한 일이 있어서 조금 늦게 들어갔더니, 1층은 이미 매진이었고, 2층 중간쯤에 간신히 표를 예매할 수 있었습니다.
하남의 공연장 티켓이 이렇게 빨리 없어지는 걸 보니 김효근 작곡가님의 인기가 대단한가 보다 생각했습니다.
물론 그 생각도 맞았습니다만, 현장에서의 느낌은 이날 공연한 베이스 바리톤 길병민님과 테너 김지훈님의 팬들이 상당히 많았다는 이유도 있었습니다. 공연장은 빈자리 하나 없는 만원이었습니다.
전 ‘팬텀싱어’라는 오디션 프로그램을 안 봤기 때문에 길병민님이나 김지훈님을 잘 몰랐습니다.
김지훈님은 제가 즐겨 듣는 cbs FM의 클래식 프로그램 ‘아름다운 당신에게’의 DJ 이신 김정원 피아니스트께서 최근 개인적인 사정으로 잠시 자리를 비웠을 때 스페셜 DJ를 한 적이 있습니다. 그때 보이는 라디오에서 처음 보았습니다.
길병민님의 노래는 많이 들었지만, 외모를 본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습니다. 그런데 두 분 다 음성과 가창력이 대단한 것은 물론이고, 깜짝 놀랄만한 미남이시더군요. 수많은 팬들이 이해가 갔습니다.
그리고 두 분의 여성 소프라노, 이상은님과 이한나님이 출연하셨는데, 이분들도 여신급 미모에 가창력도 대단했습니다.
요즘 여성 성악가들은 예전의 성악가분들처럼 약간 목소리에 가성스런 필터를 끼고 성악스럽게(?) 노래를 하는 것이 아니라 깨끗한 본인의 음성 그대로를 내는 듯이 느껴집니다. (우리나라 음악의 발전에 엄청난 기여를 하신 예전 성악가님들을 비하하는 건 절대 아닙니다).
이미 유명한 중견 성악가가 되신 강혜정, 이해원, 김순영님 등이 대표적인 예가 되겠네요. 이번 공연에 출연하신 두 분의 소프라노도 그러했습니다.
이상은님은 성악가가 아니라 배우라고 해도 될 정도의 미모를 갖췄고, 이한나님은 곡 마지막 부분에 3도 정도를 더 올려서 끝내는 하이 소프라노 발성이 전율을 느끼게 했습니다.
이 분들은 제 자녀 세대이거나 그보다 조금 더 위 정도 되시겠네요. 이분들 세대가 어릴 적 그런 얘길 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요즘 아이들은 남자 애들이나 여자 애들이나 다 예쁜 것 같아.”라고.
그 예쁜 애들이 이제 성장해서 ‘요즘 젊은 친구들’이 되었죠. 게다가 오늘 출연한 네 분은 뛰어난 가창력까지 갖추었으니 요즘 젊은 친구들, 참 대단합니다. 하긴 저희 집 두 아들도 저보다 잘생기고 똘똘한 것 같긴 합니다.
그런데 요즘 젊은 세대가 우리나라 역사상 처음으로 부모 세대보다 잘살기 힘든 세대가 될듯하다니, 우리 기성세대가 반성하고 젊은이들을 위해 좀 더 배려하며 애써줘야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아, 반주를 해주신 이연지 피아니스트 등 K-아트팝 앙상블도 정말 좋았습니다. 성악가들을 정말 잘 받쳐준 것은 물론, 이 분들의 연주 자체도 훌륭해서 좋은 공연의 일부를 든든하게 구성해 주셨습니다.
IV. 옥에 티
후기를 쓸 때 이 옥에 티가 항상 조심스럽습니다. 당사자들에게 큰 결례가 될듯해서입니다. 가급적 익명으로 쓰려고 노력합니다만, 그래도 만에 하나 본인께 전달된다면 아마추어의 거친 느낌이라는 것으로 혜량 해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전체 네 파트로 구성된 공연에서 전반부인 I, II 파트가 끝난 전체 공연의 중간에, 젊은 천재 작곡가라는 분에 대한 소개와 김효근 교수님과의 대담, 그리고 그분 작곡의 독특한 곡을 자신이 직접 피아노로 연주까지 했습니다.
젊은 후배 예술가를 소개하고 끌어주시려는 김효근님의 진정성이 느껴졌고, 참신한 발상의 멋진 곡 연주도 좋았습니다만, 전체 공연의 흐름과 너무 맞지 않아 홀로 돌출되는 느낌이었습니다.
게다가 다소 눌변인 이 작곡가와의 대담이 너무 길어 전반부의 감동과 집중이 끊기는듯한 아쉬움이 있었습니다.
하나 더.
공연에서 자주 문제가 되는 게 관객 크러시, 즉 관크인데요, 지난해 12월 이탈리아 산타 체칠리아 오케스트라와 임윤찬 피아니스트의 협연이 예술의 전당에서 있었는데, 라벨의 피아노 협주곡 G장조의 2악장, 그것도 임윤찬님의 연주가 잔잔히 홀로 진행되는 와중에 정치 유튜브 소리가 30초 정도나 울려 퍼진 역대급 관크가 있었지요.
지난 3월 12일, 제가 직관한 부천필하모닉 오케스트라 공연에서는 지휘자가 지휘를 시작하려고 두 팔을 올렸을 때 기운차게 전화벨이 울렸고, 잠시 기다렸는데도 멈추지 않자, 최정우 지휘자가 급기야 팔을 내리고 객석을 돌아보고야 전화벨이 꺼지는 작지 않은 관크도 있었습니다.
이번 White Love 공연에서는 그렇게 큰 관크가 있지는 않았지만, 제 좌우측에 앉으신 두 분의 여성 관객이 신경을 쓰이게 하더군요.
좌측에 앉으신 분은 세 번째 곡 정도부터 팔짱을 끼고 아예 박수를 치지 않더군요. 뭐가 불만인데, 저렇게 박수를 치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신경이 쓰였습니다. 인터미션이 없는 공연이었는데, 앙코르 전 마지막 곡까지 그렇더군요. 그런데 그때쯤 숨소리가 조금 거친 게 느껴져서 살짝 돌아보니 아예 머리까지 뒤로 기대고 입을 벌린 채로 주무시고 계셨습니다(조는 것이 아니라!!). 참 어이없었습니다.
우측에 앉으신 분은 길병민님의 팬인 듯했습니다. 길병민님이 나오는 순서마다 환호성을 지르고 난리가 아니었습니다만, 그건 팬으로서 당연히 그럴 수 있지요. 제가 길병민님이 무대에 나왔을 때 제 오페라글라스를 빌려드리기도 했으니까요.
그런데, 아까 말씀드린 천재 작곡가가 나온 순서에서 아예 휴대폰을 꺼내 이것저것 보시는 것이었습니다. 앙코르 때는 휴대폰 라이트가 켜진 상태에서 녹음을 하다가 진행요원의 제지를 받기도 했습니다. 기본 관람 예절이 안된 주책을 보는듯해 입맛이 썼습니다.
공연장이었던 하남문화예술회관은 공연 감상 자체에는 큰 지장이 없었습니다만, 전체적으로는 좀 더 투자가 필요하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티켓을 나눠줄 때 예술의 전당이나 세종문회회관 같은 조회 및 즉시 프린트 시스템이 없는지, 사전에 티켓을 모두 프린트해 놓고 가나다 순으로 창구를 나눠 이름을 얘기하면 찾아주는 다소 원시적인 시스템이어서 직원분들이 상당히 애쓰심에도 불구하고 어쩔 수 없이 시간이 지체되고 줄은 길어졌습니다.
시 예산이 부족했는지 로비가 너무 좁더군요. 공연 전후 로비는 출퇴근 시간의 환승역처럼 인산인해였습니다. 또 객석 의자의 앞뒤 좌석 간격은 너무 좁아 저 같은 숏다리도 무심결에 앞 좌석 의자를 차게 되는 결례를 저질렀습니다.
V. 에필로그
아름다운 공연이었습니다만, 사랑의 공연을 혼자 보고 돌아가는 발걸음이 무척 쓸쓸할 뻔했습니다.
그런데 하남에 사는 절친이 아침에 부인과 속초로 바다를 보러 갔음에도 불구하고 제가 온다는 이야기를 듣고, 일정을 당일로 마치고 하남으로 돌아와 저를 위해 김치 삼겹살을 구워주었습니다.
특히 부인께서 그리 하라고 독려하셨다고 합니다.
그리고 정겨운 대화를 반주로, 우정을 반찬삼아 시간을 나누었지요.
그리고 흐르는 강물에 아파트의 조명이 비치는 미사리의 뷰 맛집 ‘마담 파이’에서 달달한 파이와 쌉쌀한 커피로 달달한 대화를 이어갔습니다.
늦은 시간, 친구의 전송을 뒤로하고 지하철로 돌아오는 White day의 귀갓길이 외롭지 않고 따뜻했습니다.
(이미지 : Pixabay, 직접 촬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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