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봇이 저를 간병할까요?

뮤지컬 '어쩌면 해피엔딩'관람 후기

by 들꽃연인

I. 다가오는 로봇의 세상

오래전 이런 광고 copy가 있었습니다. “여보, 아버님 댁에 보일러 놓아 드려야겠어요”


몇 년 안에 그 광고는 이렇게 바뀔지 모릅니다. “여보, 아버님 댁에 로봇 놓아 드려야겠어요”

최근 몇 년 전부터 우리는 자의든 타의든 AI라는 단어를 하루에 몇 번씩 듣거나 보게 됩니다.


특히 LasVegas에서 열린 CES에서는 휴머노이드, 즉 인간 닮은 로봇, 또는 AI를 장착한 로봇이 화두였고 세계의 수많은 기업들이 이 휴머노이드를 이 전시회에 출시했습니다.


특히 현대자동차의 로보틱스 자회사인 보스턴 다이내믹스에서 출품한 휴머노이드는 인간을 닮은 부드러운 동작으로 큰 놀라움과 충격을 주었습니다.

(보스톤 다이내믹스의 휴머노이드) (이미지 : 나무위키)

이로 인해 현대자동차의 주가는 급등했고, 이 회사 노조가 자신들의 동의 없이는 단 한대의 로봇도 공장에 들여올 수 없다고 선언해서 사회적 이슈가 되면서 산업혁명 시기의 러다이트 운동이 소환되기도 했습니다.


(러다이트 운동 : 19세기 초 영국에서 산업혁명으로 도입된 방직기 등 기계가 노동자들의 일자리를 위협하자, 노동자들이 기계를 파괴하며 반발한 사회운동. 출처 : 네이버 AI 브리핑)


로봇이 과연 감정을 가질 수 있나도 오랜 논란거리이지요. 이에 대한 과학적 논쟁부터 상상력을 동원한 SF 소설, 영화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창작물도 적지 않게 나와 있지요.


그런데 로봇을 대하는 시선은 동서양이 좀 다른 듯합니다. 서양에서는 SF영화의 고전이라고 불리는 스페이스 오딧세이부터 디스토피아적인 미래를 부정적으로 그린 작품들이 많았습니다.


이에 비해 동양에서는 일본 만화 우주소년 아톰처럼 귀여운 외형의 로봇이 인간을 돕는 유형이 주를 이루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우주소년 아톰) (이미지 : 벅스 뮤직)

물론 일본 애니메이션의 기념비적인 작품 공각기동대처럼 인조인간의 어두운 면을 그린 작품도 있긴 하지요.


우리나라에서 2015년에 제작된 뮤지컬 어쩌면 해피엔딩은 가까운 미래의 로봇이 사랑이라는 감정을 느껴가는 과정을 사랑스럽고 귀엽게 묘사한 뮤지컬입니다.


지난해 뮤지컬의 아카데미상이라고 불리는 토니상에서 작품상 등 6개 부분을 수상한 뮤지컬 어쩌면 해피엔딩을 보기 위해 멀고 먼 인천문화예술회관을 다녀왔습니다.

(인천문화예술회관)


가까운 두산아트센터 연강홀에서의 공연을 놓치고, 지방 순회공연 중 그나마 가까운 곳을 찾아간 것입니다. 제 탓이니 긴 시간 이동의 수고로움은 감수해야지요.


II. 로봇이 감정을, 사랑을 느낀다면?

어쩌면 해피엔딩은 가까운 미래 서울을 배경으로 합니다. 인간을 돕는 헬퍼봇이었지만, 낡은 버전이어서 버려진 올리버와 클레어는 클레어가 고장 난 충전기 때문에 같은 아파트에 사는 올리버를 찾으면서 만나게 됩니다.

(뮤지컬 어쩌면 해피엔딩 포스터) (이미지 : 인천문화예술회관 홈페이지)

반복되는 생활의 완벽함에 만족하는 올리버와 통통 튀는 모험형의 클레어는 투닥거리면서도 조금씩 친해집니다.


그리고 올리버는 자기를 버렸지만 진정한 우정이 있었다고 믿는 옛 주인 제임스를 만나기 위해, 클레어는 반딧불이를 보기 위해 제주도 여행을 떠나기로 합의합니다.


우여곡절 끝에 제주도에 도착한 올리버는 제임스가 1년 전에 사망했으며 그의 가족들은 올리버를 필요 없다고 해 낙담합니다.


하지만 클레어의 위로에 기운을 찾고, 클레어와 반딧불이 여행을 함께하면서 사랑을 느낍니다.


둘은 자신들의 아파트로 돌아와 달달한 행복을 느낍니다. 그러나 시간이 갈수록 올리버는 자신보다 기능이 멈출 시간이 적게 남은 클레어 때문에 가슴 아파하고, 클레어는 자신 때문에 올리버가 힘들어한다는 사실을 견디기 힘들어합니다.


그리고 둘은 서로를 만난 이후의 기억을 삭제하기로 합의하지요. 그 이후의 마지막 장면 스포일러를 자제하고 남겨두기로 하지요.


단, 사랑과 아픔을 경험한 커플이 서로에 대한 기억을 삭제한 이후를 다룬 인상적인 명작영화 <이터널 선샤인>과 비슷하면서도 다르다는 점만 힌트로 드립니다.

(영화 이터널 선샤인 포스터) (이미지: 나무위키)


III. 달달한 로봇연기의 두 배우

올리버를 연기한 정휘 배우는 약간 탁성이기는 했으나 노래를 부를 때는 개성 있고 멋진 음성이었습니다. 특히 약간 멍청한 로봇연기를 코믹하게 소화한 것이 좋았습니다.


클레어 역할의 방민아 배우는 통통 튀며 귀엽고 사랑스러웠습니다.


두 배우의 케미도 무척 좋아 관객들을 미소 짓게도, 눈물짓게도 만들었지요.

(26.3.15 어쩌면 해피엔딩 주요 출연진)

제임스는 올리버를 버린 옛 주인이지만 작품 곳곳에서 해설자이자 내레이터 역할을 하며 넘버들을 부릅니다.


작품 전반에 흐르는 넘버들은 스토리 전개를 위한 억지스러움이 전혀 보이지 않았으며 넘버 각각의 곡들이 다 좋았습니다.


반주는 피아노 5중주가 담당했는데, 전체 분위기를 커버하기에 충분했으며 라이브의 매력을 한껏 느끼게 해 주었습니다.


공연장인 인천문화예술회관은 이름에서 느껴지는 연륜에도 불구하고 새 건물처럼 깔끔하게 잘 관리되고 있어서 기분이 상쾌했고 대공연장도 만족스러웠습니다.


단, 물품보관소의 규모가 작아 꽃 등 공연장 반입이 안 되는 물품만을 보관해, 코트를 맡길 수 없었던 점이 조금 불편했습니다.


관객들 매너도 좋아 관크, 즉 관객 크러시 없이 잘 관람할 수 있었습니다.


IV. 에필로그 - 진정한 여행

K-Culture가 세계를 흔들고 있습니다. K-pop부터 기생충, 오징어게임, 미나리(이젠 이게 뭐였더라 싶죠? 윤여정 배우님이 아카데미 받은 영화였죠^^), 토니상의 어쩌면 해피엔딩, 그리고 K-pop 데몬헌터스의 아카데미 수상 소식까지 기쁜 소식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이 즐거운 소식이 계속되길 빌며, 튀르키에의 시인 나짐 히크메트의 <진정한 여행>이라는 시로 오늘 이야기를 마치겠습니다.


<진정한 여행>

가장 훌륭한 시는 아직 쓰여지지 않았다

​가장 아름다운 노래는 아직 불려지지 않았다

최고의 날들은 아직 살지 않은 날들

​가장 넓은 바다는 아직 항해되지 않았고

​가장 먼 여행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불멸의 춤은 아직 추어지지 않았으며

​가장 빛나는 별은 아직 발견되지 않은 별

​무엇을 해야 할지 더 이상 알 수 없을 때

​그때 비로소 진정한 무엇인가를 할 수 있다


​어느 길로 가야 할지 더 이상 알 수 없을 때

​그때가 비로소 진정한 여행의 시작이다


나짐 히크메트 (튀르키에 시인)


(이미지: Pixabay, 직접 촬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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