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 공부 싫어해요

CBS 창사 72주년 기념 콘서트 <봄의 정원> 관람 후기

by 들꽃연인


I. 공부 싫은 범생이에게 선물 같은 힐링 콘서트

중학교 때 얼굴에 작은 부스럼이 난 적이 있습니다. 여드름인지 알고 고민하다가 어머님께 말씀드리고, 동네 주치의이셨던 약사님께 찾아갔지요


이것저것 한참을 물어보시던 약사님께서 원인 진단과 처방을 내리셨습니다. 원인은 밤에 졸지 않고 공부하려고 작은 수건을 물에 적신 후 졸릴 때마다 얼굴을 문지른 것이었고, 처방은 졸리면 무리하지 말고 자라는 것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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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말씀을 드리니, 저 공부 무지 잘했을 것 같죠? 안타깝게도 그렇진 않고, 범생이이긴 했습니다. 그 범생이 습관이 지금도 남아 공연이나 전시회 갈 때 예습을 하고, 이런 후기를 작성하며 복습을 합니다.


26.3.17일 롯데콘서트홀에서 열린 CBS 창사 72주년 기념 콘서트 <봄의 정원>은 프로그램 전체 연주곡이 예습 필요 없는 제 애정곡이나 잘 아는 곡들로 구성되어 있었습니다. 특히 연주자들과 성악가들께서 멋진 공연을 보여주셨고, 주최 측의 ‘한 말씀'같은 순서가 없어서 특히 좋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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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습 안 해도 되는 공연이 좋고 힐링이 되는 걸 보면 확실히 제가 공부하는 거 별로 안 좋아한다는 게 증명되는 듯합니다.


II. 최애곡, 베토벤의 황제

연주회는 모차르트 오페라 <피가로의 결혼> 서곡으로 시작했습니다. 기분 좋은 음악회의 시작을 좋아하는 곡으로 기분 좋게 감상하고 있는데, 제 좌석 왼쪽의 여성 일행 두 분 중 왼쪽에 앉으신 분이 계속 휴대폰을 보고 계셨습니다. 그런데 중단할 기미가 보이지 않아 계속 신경이 쓰였고, 결국 제가 그만 보시라고 부탁했습니다. 두 분 다 우아한 숙녀분들이셨는데, 외모만큼의 교양은 없으셨나 봅니다.


그건 그렇다 치고, 제가 클래식에 입문한 곡이자 가장 좋아하는 곡은 베토벤의 피아노 협주곡 5번 <황제>입니다. 매번 황제 연주가 있으면 가급적 들으려고 하기에, 1년에 서너 번은 듣는 것 같습니다.


전 클초딩 아마추어지만, 연주자의 해석이 제 느낌과 안 맞을 때는 괴롭고, 심할 경우 짜증이 납니다. 반대로, 그 스타일이 딱 맞을 때는 기분이 날아갈 듯합니다.


오늘 연주한 김성진님 지휘의 디토 오케스트라와 피아니스트 박종해님은 제게 좋은 점과 아쉬운 점이 교차했습니다. 클알못인 아마추어 느낌이니, 읽으며 거슬리는 부분이 있더라도 용서해 주십시오.


박종해님의 열정적인 연주는 아주 좋았고, 3악장은 특히 좋았습니다. 1악장도 좋았으나, 악장 후반부에 음이탈이 아슬아슬한 곳이 한 군데 있었습니다. 2악장은 좋게 표현하자면 영롱한 이슬이 하나씩 느껴지는 듯했고, 좀 격하게 표현하자면 음 하나하나의 알갱이가 신발 속에 들어간 모래알처럼 느껴지는 듯해서, 2악장 특유의 서정이 좀 아쉬웠습니다.


디토 오케스트라는 깔끔하고 예쁜 연주를 했고, 음이탈이나 에러 느낌 없는 차분한 분위기였습니다. 이 분위기가 2악장에는 잘 맞았으나, 장엄한 1악장이나 화려하고 박진감 있는 3악장에서도 분위기가 다 그렇다 보니 가라앉으며 피아노에 끌려다니는 느낌이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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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악장 종료 후에는 관객들의 우렁찬(?) 박수가 나와 난감했습니다. 보통 초청 티켓이 많은 날이 그러한데, 지난 1월 세종문화회관에서 열린 아르필 오케스트라 신년음악회가 그랬고, 이번 음악회도 그러했습니다.


초청 티켓으로 온 분들은 대개 음악에 대한 관심보다는 주최 측과의 관계에 대한 관심이 많아 음악에 대한 집중도나 상식이 부족한 경우가 많을 것으로 짐작됩니다. 무릇 공연에는 내돈내산의 티켓으로 찾는 문화가 뿌리내렸으면 합니다.


박종해 피아니스트의 앙코르 곡은 베토벤 피아노 소나타 8번 ‘비창’의 2악장이었습니다. 이 곡은 아주 서정적으로 연주가 진행되어 좋았습니다.


제 우측에 앉으신 신사분은 음악 좀 들어보신 분인 듯했습니다. ‘황제’와 ‘비창’ 연주 중간중간에 본인이 아는 멜로디인 듯, 제 쪽으로 꼰 발과 손으로 지휘를 하듯 박자를 휘저어 아주 정신 산만했습니다. 도저히 더 방해를 받을 수 없어서 1부 끝난 후의 인터미션 시간에 정중히 이야기를 했더니, 다행히도 순순히 받아들여 줬습니다.


제 왼쪽 숙녀분은 음악에 취한 듯 턱을 괴고 몸을 앞으로 굽혀 앉아 있었는데, 좌석 간 높낮이 차가 큰 2층 이상의 좌석에서 몸을 앞으로 굽히면 뒤쪽의 관객이 심각하게 시야를 제한받습니다. 뒤에 앉은 관객이 이의제기를 하지 않는데, 제가 뭐라고 하는 것은 너무 오지랖이 넓은 일일 듯해 가만있었습니다.


공연장에서의 매너는 다른 관객의 감상에 피해를 주지 않는 것이 기본일 것입니다. 물론 몰라서 매너를 지키지 못하는 것도 있지만, 뭐 복잡한 공부도 아닌데, 조금만 신경 쓰면 될 것을 가지고 관객 크러시라는 말까지 들어서야 참 곤란한 일입니다.


III. 너무나 즐거웠던 2부 성악곡 시간

2부는 디토 오케스트라가 오페레타 박쥐 서곡으로 문을 열었습니다. 그 후 이해원 소프라노님과 카운트 테너 이동규 님이 번갈아 솔로로, 또는 듀엣으로 오페라 아리아와 뮤지컬 넘버들을 들려주었습니다.


이해원님은 깨끗하고 아름다운 음성과 미모, 그리고 깜찍한 천의 얼굴 표정으로 노래와 연기를 동시에 소화했습니다. 이해원님의 노래를 듣는 도중 저도 모르게 계속 미소가 지어졌습니다.


저의 근거 없는 분류입니다만, 우리나라의 여성 성악가는 조수미님 이전의 시대와 이후의 시대로 나누어지지 않을까 합니다. 그 이전 성악가님들은 어찌 보면 카운트 테너 음성 비슷한 성악스런(?) 발성이었다면 조수미님을 필두로 해서 최근의 여성 성악가님들은 깨끗한 자연 음성을 성악적으로 다듬어 소리를 내는 것이 최근의 흐름이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혼자 생각이고 전혀 전문적인 근거는 없습니다.


전 사실 카운터 테너에 대해서는 약간 불편한 감정을 가지고 있습니다. 중세에 남성을 거세시켜 소프라노 음성을 내게 했다는 파리넬리가 연상이 되어서입니다. 물론 카운터 테너가 파리넬리와는 아주 다르다는 것은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번 공연의 이동규 카운터 테너는 참 감탄할만했습니다. 오페라 카르멘 중 두 곡의 아리아를 카운터 테너 음성으로 불렀는데 훌륭했습니다. 목에 정열적인 진홍색 스카프를 두르고 나와 뿌리듯, 던지듯 하는 동작으로 관객들을 매료시키며 웃음도 자아냈는데, 전 그 장면에서 왜 나훈아님의 공연이 연상되었는지 모르겠습니다. ^^


카르멘 두 번째 아리아인 ‘사랑은 길들지 않는 새’도 열창을 해주었는데, 디토 오케스트라가 좀 아쉬웠습니다. 클라이맥스에서 성악가와 호흡을 맞춰 빠밤빰 빰~ 하는 부분을 악센트 있게 때려줘야 하는데, 너무 약해서 노래의 맛을 충분히 살려주지 못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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뒷부분에서는 뮤지컬 넘버들을 두 성악가가 불러주었는데, 아리아와 뮤지컬 넘버 사이에 이해원 소프라노님이 제가 좋아하는 김효근 작곡가님의 ‘첫사랑’을 아름답게 불러 저를 꺼뻑 넘어가게 했습니다.


앙코르 곡은 두 성악가가 고양이 귀 같은 걸 달고 나와 로시니의 고양이 이중창을 불렀는데, 너무 재미있고 귀여워서 관객들이 다 즐거운 웃음을 터뜨렸습니다.


IV. 에필로그 - 기분 좋은 음악회, 기분 나쁜 음악회

몇 년 전 경기도의 한 도시 교향악단이 창단 기념일에 맞춰 전 좌석 만원으로 베토벤의 교향곡 5번, 피아노 협주곡 5번을 공연했습니다. 가격도 싼 데다가 좋아하는 곡들의 공연이어서 거리를 멀다 하지 않고 찾아갔지요.


결과는 대실망이었습니다. 연주 자체가 엉망이었던 데다가 연주회 후 해당 지역 정치인들을 소개하며 관객들의 박수를 유도했는데, 안 그래도 맘에 안 드는 연주회의 뒤끝을 확실히 망쳐버린 기억이었습니다.


그에 비해 이번 연주회는 공연 자체도 좋았지만 사회자도 없었고 사장님의 '한 말씀'도 없는, 공연 그 자체만을 즐길 수 있는 연주회여서 기분이 좋았고 역설적으로 주최 측에 대한 이미지도 더욱 좋아졌습니다.

공연 후 귀가하는 발걸음이 가벼웠고, 콧노래도 나왔습니다.

(김성진 지휘자, 이해원 소프라노, 이동규 카운터 테너) (이미지 : 이해원 인스타그램)

(이미지 : Pixabay, cbs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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