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대가의 우정으로 빚은 명연주

김정원 & 피터 야블론스키 피아노 듀오 리사이틀 관람 후기

by 들꽃연인

I. 우정의 소중함

빈의 알베르티나 미술관에 가면 독일 화가 뒤러의 기도하는 손이라는 유명한 그림이 있습니다.


젊은 시절 무척이나 가난했던 뒤러와 그의 친구는 한 사람이 먼저 미술공부를 하는 동안 다른 친구가 그 뒷바라지를 하기로 했습니다. 그 후 교대로 미술공부를 하기로 하고 제비를 뽑아 뒤러가 먼저 미술공부를 하고 친구는 막노동으로 그의 학비와 생활비를 도왔지요.


그리고 뒤러는 화가로 어느 정도 자리를 잡게 되었습니다. 뒤러가 하루는 그 친구를 찾았는데, 그는 막노동으로 더 이상 그림을 그릴 수 없게 된 손을 모아 뒤러의 성공을 위해 기도하고 있었습니다. 그 손을 보며 눈물을 훔친 뒤러가 친구의 손을 그린 작품이 ‘기도하는 손’입니다.

(뒤러 '기도하는 손') (이미지 : 빈 얼베르티나 미술관에서 직접 촬영)


실제 작품은 작은 사이즈였지만, 그 스토리의 울림을 자못 큰 것이었습니다. (제가 쓴 오스트리아 기행문 ‘들꽃의 마지막 여행’ 8편에 소개한 이야기입니다. 제 브런치 08화 08 왕궁예배당 미사, 호프부르그, 알베르티나 또는 08 왕궁예배당 미사, 호프부르그,알베르티나 : 네이버 블로그를 참고하세요)


우정은 우리가 가지고 있는 소중한 감정 중에서도 특히 그 아름다움이 빛나는 감정이지요. 그런 면에서 서로의 국가가 다르고, 사는 지역이 멀리 떨어져 있음에도 피아니스트 김정원님과 스웨덴의 피아니스트 피터 야블론스키님의 우정과 호흡은 감탄할만한 것이었습니다.


3월 28일 예술의 전당에서 있었던 두 분의 피아노 듀오 리사이틀 관람 후기를 나누고자 합니다.


II. 연주회의 구성

이번 공연은 세 곡의 two pianos 곡으로 구성되어 있었습니다. 라벨의 스페인 랩소디와 루토스와프스키의 파가니니 주제에 의한 변주곡 그리고 그 유명한 베토벤의 교향곡 9번 합창을 리스트가 편곡한 작품 등이었지요.


레퍼토리를 처음 접하고선 클래식 초보로서는 쉽게 따라가기 힘든 편성으로 느껴졌습니다. 파가니니 주제에 의한 변주곡은 그나마 귀에 익은 곡이었지만, 라벨의 스페인 랩소디는 익숙해지기 위해 무던히도 반복해 들어야 했고, 합창교향곡은 풀 사이즈 교향악단에 합창단까지 함께 연주하는 곡을 피아노 두대로만 연주하는 게 가능할까 싶었습니다.

(두 대의 그랜드피아노를 맞붙여 놓았다.)

수없이 들어본 후에는 스페인 랩소디가 잘 짜인 주단처럼 매력 있고 아름다운 곡으로 느껴졌고, 전체 공연의 흐름이 환상에서 지적 긴장을 거쳐 베토벤의 인간적 환희에 이른다는 구성을 공감하게 되었습니다.


공연 현장에서는 이 세곡의 미학에 완전히 빠져 몰입과 연주자와의 일체감까지 느껴지더군요.


III. 두 대가의 호흡

두 분 피아니스트의 연주와 호흡은 모든 관객들을 음악의 깊은 세계로 끌어들였습니다. 대단히 빠른 템포의 진행이 많아 두대의 피아노 연주가 조금만 삐끗해도 크게 어긋날 텐데, 시종일관 완벽한 collaboration을 보여주신 두 분의 호흡에 감탄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자신의 음악세계에서 일가를 이룬 대가 두 분이, 함께 연주하는 파트너에 대한 신뢰와 우정으로 호흡을 나눌 때 가능한 연주가 펼쳐지던 밤은 참 아름다웠습니다. 한국과 스웨덴이라는 공간적 제약 때문에 물리적으로 함께 연습하는 시간이 길지 않았을 텐데 완벽한 연주를 맞추어내신 걸 보면 정말 대단하다는 생각뿐이었습니다.


특히 베토벤 교향곡 9번 합창을 두 대의 피아노로만 연주하던 순간은 황홀했습니다. 과연 이게 가능해? 너무 빈약하지 않을까? 하던 저의 선입견이 산산이 부서지던 순간이었지요. 때로는 현악기를, 때로는 오보에와 팀파니를, 그리고 어느 부분에서는 우렁찬 베이스 성악가의 음성이 단 두대의 피아노로만 표현되는 가운데 느껴지는 매직을 경험했습니다.


합창 4악장이 끝나는 순간 관객석에서 동시에 터져 나온 함성과 박수는 그럴 수밖에 없었고, 온몸에 전율을 느끼게 했습니다.


IV. 그리고…

이번 연주회에서의 관객들도 박수를 받을만했습니다. 스페인 랩소디나 합창은 중간에 박수가 나올만한 아슬아슬한 부분이 여러 번 있음에도 불구하고, 악장 간 박수는 전혀 없었습니다.


그 대신 곡이 끝났을 때는 우레와 같은 박수와 함성이 쏟아졌고, 물병 떨어지는 소리 한번, 작은 기침소리 몇 번 외에는 눈살 찌푸리게 하는 관객 크러시도 없었습니다.


합창의 마지막 악장이 끝났을 때 두 분이 약속이나 한 듯이 팔을 뒤로 늘어뜨리는 모습에서 얼마나 힘드셨는지를 느낄 수 있었습니다. 이날 공연에서는 앙코르가 없었지만, 어떤 관객도 아쉬워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두 분의 피아니스트께서 완벽히 쏟아내셨고, 육체적으로는 너무도 고된 연주였으리라는 것이 충분히 짐작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반가운 표정으로 로비에 나와 관객들과 인사 나눠주시고, 끝없이 이어진 줄에도 불구하고 일일이 사인과 사진촬영에 임해주신 두 분께 깊은 감사와 박수를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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