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an Diaries
빨래를 한다.
오늘은 흰색 계열의 빨래가 많아서 기분이 좋다. 퀸사이즈 이불 속도 종종 세탁기에 돌리기 때문에 세탁기가 큰데, 빨래가 바닥에 깔리면 좀 물이 아까운 생각이 든다.
빨래가 많아서 두 통, 세 통씩 돌리는 분들이 들으면 한 소리 하시겠다는 생각도 들지만, 아무튼 세탁기에 넣으려고 봤는데 빨래가 많으면 뭔가 좋다. 이득을 보는 느낌이다.
지금은 어두운 색 계열의 빨래를 돌리고 있는데, 그다지 많지 않다. 큰 드럼 세탁기의 4분의 1은 찼을까. 그것도 풀풀 올려놓아서 그렇지, 바닥에 착착 붙이면 아마 드럼 세탁기의 동그라한 모양에, 바닥에 한 겹 깔린 정도일 것이다.
1인분의 빨랫감이란 그 정도다. 1인분의 장보기는 적게 사면 되는데, (사실은 많이 사고 많이 먹는다) 1인분의 세탁은 속도 맞추기가 만만치 않다. 골프라도 한 번 다녀오면 그 당장에 돌려버리고 싶지만, 차마 옷 한 두 벌만 넣고 시작 버튼을 누르게 되지는 않는다. 그렇다고 다른 사람 옷을 굳이 더하고 싶지도 않고... 안 그래도 적은 빨랫감에 손빨래를 해야 하는 옷이라도 몇 벌 섞이면 난감하다. 달랑 옷 두 벌 넣고 울코스를 돌리자면 대범한 나도 손가락이 멈칫멈칫한다.
혼자 있는 이유는 -전부 자의였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적게 돌려 물이 아깝더라도 내 몫만 감당하고 싶다는 마음이 큰 부분을 차지한다. 내 몫의 기쁨, 내 몫의 슬픔, 내 몫의 책임, 내 몫의 설움. 기쁨이 두 배, 세 배 된다지만, 스무 배, 서른 배의 슬픔과 울적함을 감당해본 나로서는 선뜻 기쁨을 향해 다가가게 되지 않는다. 지금의 두 배의 기쁨이 나중에 무엇으로 돌아올까를 생각하면 두렵고, 그런 두려움은 무엇인가를 원하는 마음마저도 발목, 혹은 머리끄덩이를 잡아당기는 느낌으로 나를 뒤로 물러나게 한다. 그렇다고 하루하루가 슬프냐하면 그런 것은 아니다. 웃고, 울고, 사랑한다. 단지, 무엇을 원하는 마음, 혹은 원하고 싶은 마음만을 꼭 붙들어 맬 뿐이다. ‘원하지 마’, ‘원하지 마’ 하고. 그런데도 원하는 것은 지독하게도 계속 생겨나고, 그럴 때마다 나는 작게 상처받는다. 그리고 자꾸만 속으로 확신한다. ‘그래도 원하지 않아서 작게 상처받았네. 다행이다’라고. 작게 원하는 것은 불가능한 일일지도 모른다. 원하거나 원하지 않거나의 흑백결정인지도 모른다. 그래도 작게 원했다고 생각하면, 나를 지킬 수 있을 것만 같다. 장미꽃의 유리 가림막처럼, 나를 보호해줄 수 있을 것만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