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움받되 미워하지 말라

by 고승환
2025-05-18 보덕사

나뭇가지에 내려앉은 바람 한 자락이 풀잎을 흔들었다. 풀잎은 몸을 떨었지만 바람을 탓하지 않았다. 흔들림이란 본디 바람의 뜻이 아니라 바람의 지나감일 뿐이라는 것을 풀잎은 안다. 미움받되 미워하지 말라는 말도 이와 닮아 있다. 누군가의 미움은 바람처럼 내게 닿지만 그 바람을 미움으로 되돌려 보낼 것인가는 전적으로 나의 선택이다. 불교에서는 이를 업장業障이라 한다. 남의 미움에 내 마음을 태우는 것은 내 업을 더하는 행위다. 미움을 미움으로 갚는 순간 수레바퀴는 다시 굴러간다.


분노는 사랑으로만 가라앉는다. 이상적인 윤리적 선언이 아니라 인간 내면의 진실한 회복의 측면에서 그렇다. 분노는 보통 즉각적이며 폭력적이지만 그 아래에는 종종 상처와 오해가 숨겨져 있다. 그러므로 그것을 다루는 유일한 방법은 감정의 즉시 반응을 절제하고 연기의 법칙 속에서 타인의 고통과 그 원인을 꿰뚫어 보려는 지혜의 태도를 갖는 일이다. 미움을 받은 그 순간에도 상대의 마음이 어쩌다 그러한 모양이 되었는지를 바라보려는 눈. 그 사람이 걸어온 시간과 형성된 마음의 구조를 상상하려는 시도. 그것이 자비이자 나 자신을 소모하지 않고 지키기 위한 가장 정교한 자기 보호다.


이러한 자비의 태도는 결국 나 자신에 대한 인식으로 이어진다. 누군가 나를 미워한다고 느낄 때 우리는 본능적으로 미움받는 나라는 자아의 이미지에 집착하게 된다. 하지만 그 이미지는 언제나 불완전하며 일시적인 것이다. 불교에서는 무아의 관점에서 이러한 자아 개념 자체가 환상이라고 보았고 서양철학에서도 흄이나 데리다는 자아를 단일하고 영속적인 실체가 아니라 다양한 지각과 경험의 흐름 속에서 임시로 형성된 구조라고 하였다. 즉 나는 고정된 것이 아니라 매 순간 새롭게 구성되는 서사다. 따라서 미움받는 나라는 고정된 자아 이미지에 붙들리지 않을 때, 우리는 비로소 그 감정에서 벗어날 여지를 얻게 된다.


그러나 이 말은 약함에 대한 포기가 아니다. 미워하지 않는다는 것은 결코 수동적인 인내가 아니라 내 감정을 지키는 능동적 지혜이자 내면을 소모하지 않겠다는 단호한 선언이며 원한을 품지 않는다는 것은 내가 그 감정에 의해 정의되지 않겠다는 자율성의 발현이다. 마음의 자유는 단순한 용서의 수준을 넘어서 일체의 감정을 통과시키되 붙들지 않는 무심의 경지에서 자란다. 이는 무관심이나 냉소와는 전혀 다른 차원의 인식이다. 일체의 미움이 나를 통과해 흘러가게 둘 때 나는 그 감정을 내 안에 가두지 않는다. 그것은 억압이 아니라 수용이며 저항이 아니라 초월이다. 이 초월은 감정의 소멸이 아니라 감정과 더불어 존재하되 그것에 휘둘리지 않는 자율성이다.


타인의 미움에 반응하지 않는 것은 자연스러운 감정적 반응을 억누르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넘어서는 것이다. 감정을 알아차리되 그것에 휩쓸리지 않고 그 너머를 보는 관조의 힘. 감정을 부정하지도, 따르지도 않는 균형 잡힌 상태. 내면의 질서와 외부의 혼란 사이에서 조화를 이루는 마음의 중심. 그것은 어쩌면 인간이 도달할 수 있는 가장 숭고한 상태일지도 모른다.


진실된 자아는 동굴 밖의 햇빛 아래에서만 확인된다. 내가 나를 정의하는 일이 타인의 감정에 의존하지 않는다면 미움은 내 존재를 흔들 수 없다.


나는 동굴 속 그림자에게 돌을 던진 적이 있지 않았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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