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리의 환상성

by 고승환
pic.jpg 라파엘로 산치오 - 아테네 학당(1511)

데카르트는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라는 유명한 어구를 남기며 모든 것을 의심해도 의심하는 나 자신의 존재는 확실하다는 확고한 철학적 토대를 제시했다. 그러나 이는 니체의 「의식철학비판」에 의해 해체되었다.


스피노자는 신과 자연이 동일한 실체이며 따라서 신의 존재를 필연적으로 증명할 수 있다고 주장하였다. 그러나 이는 칸트의 「순수이성비판」에 의해 해체되었다.


뉴턴은 시간이 어떤 지각자로부터도 독립적으로 존재하며 우주 전체에서 일정한 속도로 절대적이고 균등하게 흐른다고 주장하였고 이는 200년간 물리학의 전제로 기능하였다. 그러나 이는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이론」에 의해 해체되었다.


최근 근대철학을 공부하며 위와 같은 예시들을 계속해서 접하고 있다. 데카르트의 논리를 읽으며 고개를 끄덕이다가도 얼마 안 가 니체에 의해 처참히 해체되는 모습을 목격하며 이럴 거면 내가 왜 데카르트를 그렇게 열심히 읽었던 건가, 당혹감과 허탈감을 느꼈다. 혹자의 말마따나 정말 어떤 악랄한 신이 온 힘을 다해 인류 전체를 철저히 속이고 있는 것인가, 우리가 진리라 믿고 좇아온 것들이 실은 그 신의 조롱에 불과한 것이 아닌가, 생각했다.


하지만 조금 거리를 두고 철학사의 흐름을 다시 들여다보면 이러한 반복되는 해체의 패턴이 단지 허무하기만 한 것은 아니라는 점을 알 수 있다. 오히려 그 안에서 배울 수 있는 것이 있었다. 바로 진리라는 것은 고정된 절대불변의 실체가 아니라 시대적 배경과 인류 지성의 발전에 따라 끊임없이 해체되고 재구성되어 왔다는 점이다. 그렇다면 시대를 초월하는 절대불변의 진리는 과연 존재하는가?


여기서 중요한 구분이 필요하다. 세상에는 절대적으로 참인 진실은 존재한다. 사과 두 개 중 하나를 먹으면 하나가 남는다든지, 태양이 지구보다 크다와 같은 것들 말이다. 그러나 이러한 것들은 진실일 뿐 진리가 아니다. 진실과 진리는 본질적으로 다르다. 진실은 경험적이고 검증 가능한 사실들의 영역에 속하며 감각과 논리를 통해 확인될 수 있는 명제들이다. 물론 이 감각 또한 철학적으로 따지자면 의심의 대상이라지만 우선 넘어가도록 하자. 반면 진리는 존재의 근본, 아름다움의 본질, 선악의 기준과 같은 형이상학적 차원의 문제들을 다룬다. 진실이 무엇이 그러한가에 대한 답이라면 진리는 왜 그러해야 하는가에 대한 근본적 물음에 응답하려는 시도이다.


데카르트의 코기토는 니체의 권력 의지 앞에서 무너지고 스피노자의 신은 칸트의 비판 철학 앞에서 해체되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니체가 없었다 하더라도 데카르트의 코기토는 무너졌을 것이고 칸트가 없었다 하더라도 스피노자의 신은 해체되었을 것이다. 즉 이는 인간 존재가 지닌 인식의 한계에서 비롯된 필연적 결과이다. 실제로 니체는 진리란 고정된 실체가 아니라 은유들의 움직이는 군대에 불과하다고 말함으로써 진리의 허구성을 폭로한 바 있다. 그렇다면 절대적 진리란 존재하지 않으며 따라서 도달 가능한 목표가 아니므로 우리는 앞으로 진리를 좇을 필요도, 그럴 수도 없는 것인가?


그렇지 않다. 절대적 진리가 도달 가능한 목표가 아닐지라도 그 환상을 좇는 과정에서 우리는 분명한 무언가를 얻어낸다. 데카르트는 니체에 의해 해체되었지만 그의 방법적 회의는 근대철학의 토대를 마련했다. 만약 데카르트를 알지 못한다면 칸트의 선험적 판단이나 헤겔을 이해하는 데 어려움이 있을 것이다. 그리고 데카르트를 비판한 니체 역시 후대에 재해석되거나 비판될 여지를 충분히 남기고 있다.


이처럼 절대적 진리는 도달 불가능할지라도 그 과정에서 인간은 계속해서 자신을 재구성하고 새롭게 세계를 바라보는 시야를 얻는다. 황금을 만들겠다는 연금술사들로 인해 화학의 기초를 닦을 수 있었던 것처럼 진리 추구의 과정에서 우리는 의도치 않은 새로운 지식이나 깨달음을 얻을 수도 있다.


따라서 우리는 진리를 좇을 때 도달 지점만을 바라볼 것이 아니라 그것을 향하는 과정을 살피는 지혜와 진리가 없을 수도 있다는 가능성을 열어두고 인간 존재의 한계를 겸허히 인정하는 태도가 필요하다. 자칫 회의주의적으로 보일 수 있지만 이는 진리를 도달해야 할 고정된 목표가 아니라 끊임없는 과정으로 기꺼이 받아들이는 행위이다.


그렇기에 철학사의 반복되는 해체와 재구성을 마냥 실패로 볼 필요는 없다. 이것이 인간 사유의 지평을 확장하고 새로운 가능성을 열어왔다는 것은 자명한 사실이기 때문이다. 비록 각 철학적 시도들이 절대적 진리에 도달하지는 못했지만 인류 지성 발전에 기여한 바는 분명하다.


정리하자면 우리는 도달할 수 없다 하더라도 절대적 진리를 향해 나아가야 하며 그 과정에서 상대적 진리라는 열매를 수확할 수 있어야 한다. 설사 열매를 수확하지 못했더라도 인간이라는 유한한 존재가 무한을 향해 손을 뻗는 절대적 진리 추구는 찬사 받아야 마땅한 숭고한 몸짓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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