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는 없다. K는 있다. K는 여기 없다. K는 저기 있다. K는 불안하다. K는 쓴다. K는 쓰지 않으면 불안하다. K는 매일 쓴다. K는 쓰는 것으로 저기 있다는 것을 확인하다. K는 문장을 완성할 때마다 단단해진다고 믿는다. K는 언어로 자신을 둘러싼다. K는 언어 속에서 살아있다고 느낀다. K는 흐릿하다. K의 언어는 선명하다. K는 자신을 깊숙이 매장한다.
K는 매장된 자신을 동정한다. K는 절망을 노래한다. K는 성찰을 반복한다. K는 자기 연민을 포장한다. K는 행동하지 않는다. K는 생각에만 머문다. K는 폐허를 꾸민다. K는 폐허를 꾸미기 위해 언어를 남용한다. K는 감정을 냉정하게 다듬는다. K는 문장을 조각한다. K는 문장을 쓸 줄 안다. 그런데 그것이 K의 문제다.
K의 문장은 상처 입히지 않는다. K의 문장은 감탄을 유도한다. K의 문장은 피를 보이지 않는다. K는 상처를 연기한다. K는 고통을 연기한다. K는 삶을 시늉한다. K의 감정은 어휘로 조작된다. K는 무너졌다. K는 무너진 적 없다. K는 무너진 자의 형상을 닦는다. K의 무너짐은 설계되었다. K의 무너짐은 연출되었다. K는 준비된 절망의 퍼포먼스를 통해 아름다운 절망을 연기한다. K는 자기를 무너뜨리지 않는다. K는 무너진 자신을 만든다. K의 무너짐은 건축학적이다. K는 미학의 관점에서 보면 성공했다. K는 문학의 관점에서 보면 실패했다. K의 언어는 도약하지 않는다.
K의 언어는 자신에게만 머무른다. K는 자기 얘기만 한다. K는 글을 쓸 때 누군가를 위해 쓴 적 없다. K는 누군가와 함께 울기 위해 쓴 적 없다. K는 누군가를 위로하기 위해 쓴 적 없다. K는 오직 자신을 위해 쓴다. K는 자기밖에 모른다. K는 혼자다. K는 혼자일 것을 고집한다. K는 고통을 말할 때조차 혼자다.
K는 고통을 나누지 않는다. K는 사랑을 고백하지 않는다. K는 슬픔에 손 내밀지 않는다. K는 도움을 요청하지 않는다. K는 고통의 장면에 누군가 함께 있는 것을 참지 못한다. K는 고통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K는 다만 고통으로 인한 혼란을 두려워한다. K는 고통이 감정을 흘리기 전에 봉합한다. 그래서 K의 글에는 타인이 없다. K의 글은 타인이 들어올 수 없도록 설계되어 있다. K의 문장은 K를 중심으로 무한히 회전한다.
K의 문장은 무례한 적 없다. K의 문장은 부끄러운 적 없다. K의 문장은 흔들린 적 없다. K는 무너진 자의 글을 쓰지만 무너진 적 없다. K는 흐느낀 자의 문장을 쓰지만 울어본 적 없다. K의 문장은 미끄럽다. K의 글은 구절과 구절이 서로 손잡고 줄지어 걸어간다. K의 글은 문장 하나하나가 등장 타이밍을 정확히 지킨다. K의 글은 격해지지 않는다. K의 어떤 문장도 선을 넘지 않는다. K는 문장을 전시한다.
K는 철학이라는 세련된 방식으로 타인을 배제한다. K는 철학이라는 학문의 무게로 고립을 보증받는다. K는 철학을 사랑하지 않는다. K는 철학을 믿지도 않는다. K는 철학을 이용한다. K는 철학의 언어로 자신의 실패를 미리 정당화한다. K에게 철학은 면죄부다. K가 진리를 탐구한다고? 개소리다. K는 생각하는 척하며 자기를 예배하고 느끼는 척하며 이미지를 가다듬는다. K는 감정을 꺼내기 부끄러울 때 철학을 꺼낸다. 철학은 K의 방패다. K의 철학은 말이 많다. 사랑이 K를 흔들기도 전에 K는 사랑에 대한 불가능성에 대한 담론으로 발을 뺀다. K는 문학이 얼마나 불안정한 장르인지 안다. 그래서 K는 철학을 호출한다. K는 철학을 호출하여 문장의 열기를 식힌다. K는 철학을 호출하여 감정적 동요의 여지를 제거한다. K에게 철학은 자기 연민을 학문으로 위장해주는 가장 편리한 도구다. 그리고 K는 그 도구의 사용에 탁월하다.
K는 이 모든 작업을 고요하게 수행한다. K의 문장은 매끄럽다. K의 문장은 숨 가쁘다. 하지만 K의 문장은 흔들리지 않는다. K는 문장을 인간으로서 쓰지 않는다. K는 문장을 기술로서 쓴다. K는 인간의 감정을 문장 안에 재현하지 않는다. K는 조율한다. K는 압축한다. K는 정제한다. 철학은 결국 K를 보호한다. 그래서 K는 철학을 택했다. K는 문학의 피가 아니라 철학의 잉크를 택했다.
K의 글은 아름다워 보일 수 있다. K의 글은 아름답다. K의 문장은 정교하다. K의 문장은 치밀하다. K의 문장은 우아하다. K의 구조는 안정적이다. K의 논리는 견고하다. K의 어휘는 섬세하다. K는 문장의 재료를 정확히 안다. K는 철학이 어떻게 감정을 대신할 수 있는지 안다. K는 무기력조차 하나의 스타일이 될 수 있음을 안다. K는 문장으로 감정을 숨긴다. K는 문장으로 감정을 통제한다. K의 독자는 그 안에서 울 수 없다. K의 독자는 응답할 수 없다. K의 모든 말은 이미 말해졌다. K의 문장은 이미 닫혀 있다. K는 모든 것을 너무 잘 설명한다. K는 예상된 반박을 미리 반박한다. K의 글에는 반박의 여지가 없다. K의 독자는 침묵한다. K의 독자는 무력하게 수긍한다. K는 독자에게 침묵을 강요한다. K는 독자의 개입을 용납하지 않는다. K는 독자를 질식시킨다.
이것이 K의 문장이다. K의 문장은 위험하게 자기 미화의 언덕을 기어오른다. K는 문학을 구원이라 부른다. K는 문학에게 구원받을 수 없다. 문학은 이미 K의 신앙이 되었다. K는 해체를 말하지만 자신을 구성하는 데만 성공했다. K는 실패를 말하지만 결코 실패하지 않는다. K는 자신을 진짜 글로 살아낸 적 없다. K는 문학이기를 포기한 문장의 비극이다. K의 문장은 모든 것을 은폐한다.
K는 졸리다. K는 자고 싶다. K는 꿈속의 감정을 상상한다. K는 베개 밑에 전하지 못한 편지를 생각한다. K는 머리맡의 성경을 생각한다. K는 글을 쓰기 시작한 시절을 생각한다. K는 습작 노트를 태우던 공원을 생각한다. K는 혼자됨을 두려워했던 시절을 생각한다. K는 바닥을 쓸면 반짝이던 먼지를 상상한다. K는 기억나지 않는다. 이름이었나? 사람이었나? K는 조금 어지럽다. K는 자고 싶다. K는 자연사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