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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ay Nov 27. 2019

청소보다 더 중요한 것

결혼기념일의 깜짝 선물 - Bruderhof 공동체생활 4

부르더호프 공동체의 초등학교는 오전에는 교실 수업, 오후에는 외부 수업(정원, 농장, 들판, 운동)을 한다. 방학이 되면 하루 종일 노는데, 특히 밖에서 더 많은 시간을 보낸다. 이번 주는 시험기간이고 다음 주부터 방학이 시작된다고 한다. 아침부터 아이들은 학교에 가는 것에 대한 기대가 큰지 한껏 들떠있다. 다른 친구들이 시험 볼 때는 선생님이랑 퍼즐을 맞추고 그림을 그린다고 한다.

7시 30분에 아이들을 학교에 보내고 청소를 시작하려고 빗자루를 들었다.
제인할머니가 부르신다.

“Ray~ 이리 와 봐요. 이건 꼭 봐야 해요!!”
베란다에 나가니 옆방 부모도 나와 있다.

다른 집 부모들도 모두 아이들이 학교 가는 것을 지켜보고 손을 흔들고 있다.
“Ray~ 청소보다 이게 더 중요해요”
‘아... 그렇지?’
순간 ‘아~ 내가 중요한 것을 놓치고 있었구나~~’

아이들이 대견하게 느껴져 흐뭇하다. 제인할머니 덕에 다른 친구들과 뒤섞여 학교로 가는 아이들의 모습을 볼 수가 있었다. ‘이런 여유를 누리다니~’  

아침 청소를 끝내고 8시 30분에 제인할머니를 따라 집을 나섰다. 오늘부터 본격적으로 이들의 일상으로 들어간다고 할 수 있다. 가슴이 두근거린다. 빨래방을 둘러보고, 공동체 책방을 구경했다. 공동체에서 발간한 책들을 몇 권 챙기라고 하신다. 그리고 오전에 일할 공장으로 향한다. 부르더호프는 원목 가구와 목재 아동 장난감을 생산해서 공동체의 수익을 마련하고 있다.

공장에는 다양한 작업 영역이 있는데, 오늘 나는 할머니와 가구의 안전장치 조립을 하는 일을 배정받았다. 작업 규칙 중 중요한 것은 1시간 근무, 15분 휴식 철저하게 지는 것이다. 하던 일을 마무리하려고 하는데, 제인할머니가 빨리 내려놓으라고 하신다. 곧이어 공장 안 전기가 차단되어 선풍기도 꺼지고, 전등도 꺼진 상태가 되었다.
‘이렇게까지 정확하게 휴식시간을 지키다니 놀랍다.’
작업 공간을 나오니 차와 물이 준비되어 있다.

먼저 나온 사람들은 휴게 공간 벤치에 앉아 차를 마시거나, 수다를 떨고 있다.
 
오전 작업을 끝내고 점심식사 시간이 되어 식당으로 이동했다. 초등학생부터 어른까지 같은 식당에서 함께 점심을 먹는다고 한다. 아이들은 상기된 얼굴로 수업시간에 이것저것 만들기 놀이를 했다고 엄마에게 이야기한다. 식사 전 사회자가 나와서 전체 소식을 공유하고 찬송을 부르고 기도를 한다. 그 내 이름이 들린다. '웬일이지?’
“Ray의 결혼기념일을 축하합니다”라는 말이 나온다.
“축하해요. 이 화관 선물이에요. 오늘 하루 종일 쓰고 다녀야 해요~”
제인할머니가 화관을 씌어 주신다. 어떻게 이분들이 알게 되었나 생각해 보니, 비행기에 두고 내린 카메라를 설명하다가 자연스럽게 결혼기념일 이야기가 나왔었는데... 그것을 기억하고 이렇게 축하해 주게 되었나보다. 몇백명 앞에서 축하를 받으니 엄청 쑥스럽다.

덕분에 오후부터 잠잘 때까지 만나는 사람들한테 몇십 번은 축하를 받은 것 같다.
“Happy anniversary~ Congratulation!”
사람들이 미소를 지으며 덧붙이는 한 마디...

“남편은 잘 있나요?”
며칠이라도 함께 방문하기로 한 남편이 못 오게 됐다는 소식을 뉴욕에서 코디네이터에게 메일로 알렸는데,.. 모두들 공유한 것 같다(ㅠ.ㅠ). 전자여권이 아니라서 비행기를 못 타고 집으로 돌아갔다는 것이 생각나서 자꾸 헛웃음이 나온다. 점심 식사 후 쉬고 있는데 한국인 멤버가 내 방까지 찾아오셨다. 결혼기념일 선물로 달콤한 향이 나는 노란 장미 꽃병과 카드를 주고 가셨다. 잠시 머물다 가는 사람에게도 이런 챙김을 해주다니~~ 감동이다.

오후에는 식당 청소를 배정받았다. 바닥을 쓸고, 창문과 온갖 장신구, 벽까지 걸레질을 하니 시간이 쏜살같이 지나간다. 짝꿍이 된 여자 청년 미샤는 아주 친절하다. 어떻게 청소를 해야 하는지 세세하게 알려준다. 평소 나에게 제일 부족한 것이 청소인데... ‘이렇게 배우게 되는구나~~’. 그치만 청소를 하면서 ‘이렇게 깨끗해도 되는 거야?’라는 질문이 올라온다. 공동체의 아름다움, 깨끗함은 그냥 얻어지는 것이 아닌가 보다. 일하는 동안 미샤는 한국에 대해서, 한국의 교육제도에 대해 질문을 계속한다. 내 입에서 나오는 대답이 별로 자랑할 것들이 없다. “한국 사회는 너무 빠르고... 교육은 엄격하고, 힘들고....”  아... 슬프다.

5시가 되어 일이 끝나고 아이들이 있는 학교에 도착했다.
“우리 학교는 아이들 수가 너무 적어요. 그래서 지역에 있는 아이들 2명이 다니고 있어요.”라고 선생님이 설명해주신다. 이곳 사람들의 자녀에 대한 관심은 정말 어마어마 한것 같다. 공동체 안이라서 엎어져야 코 닿을 거리인데도 모든 부모가 아이들을 데리러 온다.
민서는 “엄마, 나 오후에 옥수수 밭에서 풀 뽑기를 했어요. 이 손가락 봐~ 너무 힘들었어~”

지민이는 “엄마~ 놀다가 발이 부딪쳐서 피가 나요.
벌써부터 그을린 얼굴, 땀에 젖은 옷들을 보니 아이들이 잘 적응하는 듯싶어 안심이 된다. 정말 신기한 것은 여기 아이들은 차가운 날씨에도 맨발로 놀이터에서 놀고 산에도 간다는 것이다. 정말 건강해지겠다 싶다. 

오늘 저녁에는 우리 집에서 파티를 한단다. 제인할머니가 나의 결혼기념일 축하를 위해 한국인 멤버 부부와 본인 자녀들을 초대하셨다.

‘에구 민망해라. 이렇게 챙김 받아도 되는 거야?’

집 앞 벤치에서 따뜻한 바람을 맞으며 치즈케이크, 과자, 말린 사과 캐러멜, 차를 나눈다.
“오늘의 주인공은 Ray이니 가만히 있어요~”
제인할머니는 한국인들의 결혼식에 대해 관심이 많으신지 질문을 하신다. 내 어휘력이 부족해서 표현하기가 쉽지 않다(ㅠ.ㅠ).
“우리 결혼식은 하루 종일 행사가 있었어요~”하신다.
공동체에서는 결혼을 정말 중요하게 여긴다는 것을 다시 느낀다. 생일과 결혼기념일 축하는 일상의 중요한 이벤트인 것 같다.   

아이들을 재우고 있는데 자원봉사자 코디네이터 루크한테 전화가 왔다. 결혼기념일이니 특별히 한국에 있는 남편과 전화 연결을 해주겠단다. 여기는 인터넷이 안 되니 며칠간 짧은 문자로만 소통을 했더니 남편이 그리웠는데 뜻밖의 선물에 얼떨떨하다.
“남편~ 여기 공동체 식구들이 축하한대~”
“감사하네~ 나도 당신한테 깜짝 선물이 있어. 항공사에 다가 비행기에 두고 내린 카메라가 없어진 것은 분실이 아니라 도난이라고 강력하게 메일을 써서 보냈는데... 연락이 왔어. 카메라를 찾았다고 하네? 그쪽으로 보내달라고 할까?”
“어머~ 진짜 결혼기념일 선물이네. 고마워~~ 잘 받을게”
민서는 아빠 목소리를 듣더니 눈물을 흘린다. 잠자다가 얼떨결에 깨서 통화를 한 지민이는 멍~하고...

아이들을 다시 재우고 방에 돌아오니 두 부부는 아직도 설거지 중이다.
“감사해요. 저희 남편이 축하 잘 받았다고 인사 전해 달래요~ 제가 치울게요”
“Ray~ 다 했어요. 오늘 피곤했을 텐데~ 얼른 들어가서 쉬어요.”
“제인할머니~ 고마워요”
사실 새로운 일과에 적응하느라 긴장을 많이 하긴 했다.그리고 기대하지 않았던 축하, 결혼기념일 선물까지 오늘 하루가 나에게 선물 그 자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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