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을 떠나는 비행기에서 민서는 ‘게임 안 하기’ 약속을 했고, 지금까지도 잘 지키고 있다. 하루 하루 지나면서 언어가 안 되고, 친구들도 없고, 엄마를 쫓아다녀야 하니 답답도 한 것 같다. 어제 일리네 가족이랑 강에 수영을 하러 갔는데, 하필이면 그 집 딸 친구도 같이 와있다.
“민서야. 너도 저기 가서 같이 놀아~”
“엄마. 나는 낄 수가 없겠어요. 대화가 안 되잖아요.”
“뭐 어때~ 그냥 놀면 되지~~”
“싫어. 안 갈래요. 친구는 왜 데리고 와 가지고... 같이 못 놀잖아!!”
“그러게 말이야. 너무 아쉽다. 민서는 같이 놀고 싶은데...”
“엄마. 나 한국에 가고 싶어! 친구들이 보고 싶어요.”
아이들은 지루할 때면 친구를 생각하고, 외로워하고, 웹툰과 드라마를 보고 싶어서 아이패드를 만지려 든다. 이제 어느 정도 적응도 되었으니 아이들의 일상을 챙겨야 할 때가 온 것 같다.
“엄마~ 프로듀서 보면 안 돼요?”
“오늘은 너무 늦어서 안 돼~ 10시가 다 됐잖아. 그거 보면 12시가 다 되는데?”
“엄마~ 어제도 못 봤단 말이야. 그래서 열심히 청소도 했는데... 엉엉엉~~”
“민서야. 그럼 너 내일 일찍 일어날 수 있겠니?”
"그럼요~!!"
아이들은 프로듀서를 볼 때면 너무 행복해한다. 사실 그 시간만은 나도 자유의 몸이 될 수 있다. 잠잘 시간만 되면 지민이가 내 옆에 와서 온 몸으로 부비부비 하고 애교를 부린다. “엄마~ 재워주세요~~” 양 팔을 벌려 고사리 같은 아이들 손을 만지는 것도 참 좋지만, 하루 종일 육체노동을 해서 피곤한 몸도 침대가 그립다.
“얘들아. 우리 체크리스트 하자! 그거 해서 90점 이상 되면 볼 수 있는 걸로~~”
“엄마. 정말~~ 와. 좋아요. 뭐로 할까요?”
“너희들이 생각해 봐. 우선~ 뭘 넣어야 할지~~”
“음~~ 줄넘기, 일기, 청소하기, 설거지 하기, 피아노 연습, 책상 정리, 샤워, 식사 준비 돕기, 문제집 풀기, 엄마한테 대들지 말기”
“와. 좋은데? 너무 늦게 자면 안 되니까 8시 30분 전에는 다 끝내야 한다?”
“네. 알았어요. 엄마~ 사랑해요~!!”
밤 9시가 되어야 해가 저무는 한 여름이라서 참 좋다. 6시도 안돼서 저녁을 먹이고 설거지를 하고 6시 30분쯤 집을 나선다. 커뮤니티센터에 피아노가 있어서 들판을 가로지르는 길을 가다 보면 자연스레 산책을 하게 된다. 과수원, 밀밭, 꽃밭, 소들이 먹는 풀밭, 소 다니는 길을 지나간다. 가장 많이 보는 것이 풀이고, 하늘이다. 저기 넓게 펼쳐진 파란 하늘에 둥둥 떠다니는 구름이 너무 아름답다. 다양한 색깔이랑 모양을 만들고 있는 구름을 보며 아이들이 한 마디씩 한다.
“엄마~ 저기 봐요. 저건 용이에요. 용~”
“어머~ 언니. 재네~~ 지금 집에 가는 중인가 봐~~”
“맞아. 지민아. 저기 토끼들도 세 마리가 있는데 같이 가나 봐. 저쪽으로 가잖아.”
커뮤니티센터 안에 있는 피아노 앞에 섰다. 거의 한 달 만의 연습이라서 지민이는 음자리를 자꾸 헷갈린다.
“언니~ 나 이것 좀 알려주라~”
“음. 알았어. 지민아. 이건 말이야.....”
“아냐. 아냐. 됐어~ 나도 알아~~”
지민이의 성격이 딱 나온다. 자신이 없어서 언니한테 도움을 요청은 했지만, 막상 스스로 하고 싶은 마음이 큰가 보다. 그래서 꼭 중간에 거절을 한다.
“지민아. 너는 노래 3곡을 5번씩 치고, 민서는 한 곡만 5번 하자”
“엄마. 내 노래는 긴대.. 나 3번만 해주면 안 돼요?”
“민서야. 힘들어도 5번 하자. 어려운 곡인데 그래야 연습이 되지~”
소파에 누워 아이들의 피아노 소리만 듣는다. 집에서라면 정말 상상할 수 없는 시간이다. 정신없이 퇴근해서 저녁 먹이고 설거지하느라 듣는 시늉 정도만 겨우 할 수밖에 없었다. 처음에는 연습하기 귀찮다는 아이들이 몇 번 치고 나니 기분 좋게 하고 있다. 내가 몇 년간 학원비를 냈는데, 이 정도 맛은 있어야지~ㅎㅎ
피아노 연습이 끝나도 여전히 하늘이파랗기만 하다. 아이들과 잔디밭 놀이터 그네로 달려간다.
“엄마~ 나 봐요. 엄마가 알려 준대로 하니까 잘 돼요. 나랑 시합해요.”
“지민아. 언니 봐라. 머리가 뒤에 나무에 닿는다?”
“민서 언니~ 엄마 좀 봐~ 제일 잘해~ 높아~”
“지민아 걱정 마. 엄마는 조금 있으면 어지럽다고 할 거야. 엄마 그쵸?”
“맞아. 그럴 거야. 엄마 피곤해~”
“지민아. 우리 신발 멀리 던지기 시합하자. 하나 둘 셋 하면 던지는 거야?”
“좋아. 언니~ 하하하! 하나~두울~세엣~”
“엄마~ 저기 봐요. 달이 보여요.”
“얘들아~ 이제 우리 마지막 하고 집에 가자. 프로듀서 봐야지?”
아이들 놀이의 엔딩은 꼭 눈물이다. 신발 던지기 시합에서 지민이가 져서 눈물을 펑펑 흘리며 내 가슴에 흠뻑 안긴다.
“엄마. 엉엉엉~~”
“지민아. 왜 울어~ 괜찮아.”
“그래도 속상하단 말이에요.”
“지민아. 언니는 반칙했어. 다른 발로 신발을 찼잖아~”
“지민아. 언니가 잘못했어. 미안해. 울지 마~~”
“그래. 너희들 오늘은 무승부야.”
“근데. 엄마~ 무승부가 뭐예요?”
“응. 똑같이 이겼다는 뜻이야. 지민아 다음에 또 하자~”
서로 엄마의 손을 잡겠다고 난리를 피우는 아이들을 중재하며 집으로 돌아오는 길도 즐겁다. 나에게 아이들에게 육아휴직이, 미국 세 달 살기가 가져다주는 여유를 만끽한다. 왼손, 오른손 잡아당겨지고 쉴 틈이 없지만, 아이들과 재잘재잘, 하하호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