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양목(1) 어쩌면 이 키 작은 숲이 그 삶의 방식을 존중받는 데서부터
도시의 가장 낮은 곳에서 회양목 숲이 무성하게 자란다. 어른 무릎정도 올까. 빽빽하게 자란다. 그 밑동은 물론 줄기나 가지도 잘 드러내지 않는다. 사철, 온통 초록초록 푸르다. 루페로 자세히 관찰해 본다. 다육식물처럼 1cm 남짓 작고 통통한 잎이 참 다부지다. 서울에서는 2월 말 3월 초 노란 꽃봉오리가 튼다. 귀리 알 보다 조금 더 클까, 역시 다부진 꽃봉오리들이 잎 겨드랑이에서 무리 지어 고개를 든다. 푸른 잎이 가득 찼다. 그 까닭에 연한 노란빛을 띤 꽃 무더기는 사람들 눈에는 잘 띄지 않지만, 그렇게 터져 나온 꽃밥에 꿀벌을 비롯한 여러 곤충들이 모여들어 허기를 채우고 잔치를 벌인다.
늘 푸른 잎을 빽빽하게 키우는 건 수분 등 자기가 살 미기후를 스스로 만드는 습관 때문이다. 사철 그늘진 회양목 숲의 우듬지가 햇빛을 가려준다. 숲 아래 토양을 늘 촉촉하게 유지된다. 빽빽하게 숲이 사람 등 큰 동물들의 시야를 가려주니 작은 새들도 편안하게 와서 쉴 수 있다. 용변 등으로 천연 비료를 얻고, 열매를 퍼트리는데도 도움을 받는다. 잎도 작고 가름기(왁츠층)를 잔뜩 머금어 통통하니 수분 손실을 줄일 수 있다. 그렇게 햇볕이 매섭게 무더운 여름에도 바싹 마른 한 겨울에도, 건조한 암석지대에서도 별 탈 없이 자란다. 생명이 살아가는데 뭐니 뭐니 해도 1번 조건인 물이다. 그 물을 최대한 자기 통제하에 둘 수 있다. 그 특별한 능력의 시작은 조심성 있는 성격 덕이었을 것이다.
1년에 한, 반뼘쯤 자랄까. 윤년엔 되레 키가 세치(약 9cm) 줄어든다는 속설이 나올 정도다. 돌다리도 두들기듯 조심스러운 자람을 보면서 그간 얼마나 척박한 환경들을 나름의 방식으로 적응해 왔는지, 긴 세월과 무수한 경험들을 짐작할 뿐이다. 큰 나무들이 대부분 아직 겨울잠에서 깨어나지 않은 이른 봄 꽃을 틔우는 것도 불리한 조건을 이겨내며 몸에 새겨진 라이프스타일이다.
이렇게 더디게 자라는 회양목의 자람을 깊이 바라보며 사람들은 삶의 지혜를 얻곤 했다. 중국 송나라 때 소동파(蘇東坡, 1037~1101)는 이렇게 노래했다.
회양목은 윤년을 겪을 때
조금씩 조금씩 때를 줄이며 살아간다네.
그대의 마음이 이 나무와 같다면,
서투름을 지키는 것도 슬퍼할 일은 아니네.
黃楊厄閏年,
寸寸縮天時。
君心如此木,
守拙未足悲。
척박하디 척박한 서울살이
그런 회양목 숲 앞에 발길을 멈추고 바라보게 된다. 척박하디 척박한 서울에서도 회양목은 눈물겨운 삶을 산다. 사람들은 사철나무, 영산홍 등과 함께 아파트 생울타리나 가로수나 놀이터, 도시공원의 경계에 흔하게 심는다. 이런 오랜 세월 다부지게 자란 회양목마저도 앙상하게 말라죽게 한다. 인간의 특별한 재주가... 뭐랄까, 연구대상이다. 기후 위기 극복 명목으로 여러 다른 생물종을 연구하는데, 사람이야 말로 연구가 시급한 대상이다.
자연과 생명을 바라보는 비뚤어진 미의식은 회양목을 죄의식 없이 괴롭히며 죽이는 토대다. 무생물에 가까운 상태로 관리한 걸 '정돈됐다'라고 하고, 생물종의 특성을 무시하는 일방적인 관심과 괴롭힘을 '깔끔하다'라고 한다. 1년 동안 공들여 반뼘쯤 알뜰하게 키운 회양목 숲의 캐노피를 무자비하게 예초기 톱날을 돌려 잘라버린다. 개중 삐쭉 햇볕 쪽으로 고개를 든 개성 넘치는 가지들을 보면, 가차 없이 칼날이 돌아간다. 아파트고, 도시공원이고, 가로수고, 매년 일정한 예산이 편성되는, 그러니까 돈이 도는 곳에선 모두 마찬가지다.
여주 '코끼리 할머니' 나무
키 작은 회양목이라는 것도 단명하는 생물종인 사람의 단견에서 비롯됐다. 경기 여주의 효종대왕릉에 가면 키 4.4m에 수관(캐노피) 폭이 4.5~6.5m에 달하는 커진 회양목(천연기념물 제459호)이 있다. 300살 이상 됐다고 한다. 가족을 모두 잃고 홀로 남은 할머니 코끼리처럼 홀로 서 있다. 회양목은 우리나라 자생종으로 알려져 있지만, 그 서식처는 제대로 밝혀져 있지 않다. 천천히 자라 치밀한 조직 탓에 '도장'이나 '호패'를 만드는 용도 등으로 많이 쓰였기 때문이다. 그렇게 남벌이 된 탓에 우리 나무니 어쩌니 하면서도 내놓을만한 자생지 하나 보전하지 못했다.
도시의 아파트 회양목 숲은 30~50년이면 재개발로 몰살당할 예정이다. 어쩌면 이 키 작은 숲이 그 삶의 방식을 존중받는 데서부터 인간의 폭력적인 미의식과 엇나간 자본과 문명을 바로잡을 실마리를 찾아야 할지 모른다. 길에서 공원에서 회양목을 최대한 오래 감상하며 그 생김을 묘사해 보는데서 시작해 보면 좋겠다.
*회양목(2) 보수적 생장 전략을 택한 상록 관목의 생태학로 이어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