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풍의 침묵 덕분에

단풍나무(5) 처음부터 같은 나무를 바라보고 있었지

by 김트리
image.png 여주 신륵사. https://www.telltrip.com/domestic-travel/sinreuksa-temple-ginkgo-autumn/
서대문자연사 박물관의 단풍나뭇잎 화석



*단풍나무(4)에서 이어짐

단풍나무를 바라보는 일은 오래전부터 기록의 대상이었습니다. 다만 그 기록은 늘 같은 언어를 쓰지는 않았습니다. 어떤 기록은 잎의 색이 바뀌는 시점을 세었고, 어떤 기록은 그 색이 바뀌는 동안 인간의 몸과 마음이 어떻게 반응했는지를 적었습니다. 우리가 흔히 과학과 문학을 나누어 부르지만, 단풍을 다룬 글들 앞에 서면 그 구분은 그다지 단단하지 않습니다. 문학은 자연을 설명하지 않은 것이 아니라, 자연이 시간 속에서 어떻게 드러나는지를 기록해 왔기 때문입니다.

停車坐愛楓林晚,
수레를 멈춘 것은 늦가을 단풍숲이 아름다워서이고,
霜葉紅於二月花。
서리 맞은 단풍잎은 봄꽃보다 더 붉다

중국 당나라 시인 두목의 「산행山行」을 읽어봅니다. 이 구절은, 단풍숲 앞에 멈춰 선 한 사람의 시간을 그대로 붙잡아 둡니다. 그가 사랑한 것은 단풍나무가 아니라, 저녁이라는 시간에 잠긴 붉은 숲의 밀도였을 것입니다.

月落烏啼霜滿天
달은 이미 지고 까마귀가 울며, 차가운 서리가 하늘 가득하다.


江楓漁火對愁眠
강가의 단풍과 고기잡이 배의 불빛을 바라보며, 근심에 잠 못 든다.
姑蘇城外寒山寺
고소성 밖에 있는 한산사(寒山寺).
夜半鐘聲到客船
한밤중 울려 퍼지는 종소리가 나그네의 배에까지 들려온다.

비슷한 감각은 장계의 「풍교야박楓橋夜泊」에서도 반복됩니다. 강가에 서 있는 단풍은 밤의 적막과 함께 배경이 됩니다. 단풍은 말을 하지 않지만, 그 침묵 덕분에 나그네의 불면이 더 또렷해집니다. 이 시에서 단풍나무는 인간의 상태를 비추는 검은 물 위의 반사입니다.

君待つと
我が恋ひ居れば
紅葉散る
水の瀬々に
宿りせるかも
그대 기다린다고
내가 그리워 기다리니
단풍잎이 떨어지네
물 흐르는 여울마다
머물고 있는 듯하네

일본 문학에서 『만엽집』을 펼치면, 모미지는 계절어로 반복해서 등장합니다. 만엽집의 여러 노래에서 모미지는 단순히 붉은 잎이 아닙니다. 그것은 잎이 지고 있는 상태이며, 계절이 이동하고 있다는 징후이고, 그 이동을 인간의 몸이 감각하고 있다는 증거입니다. ‘단풍잎이 물가에 흩어져 머문다’는 표현은 색채의 묘사라기보다, 잎이 떨어지고 머무르고 흘러가는 시간의 리듬을 기록한 문장입니다. 이 시들에서 중요한 것은 단풍이 아름답다는 감상이 아니라, 단풍이 이미 떨어지고 있다는 사실, 그리고 그 사실을 사람이 알아차렸다는 점입니다. 이건 감상의 문학이기보다 관찰의 문학에 가깝습니다.

野ざらし
들판에 내던져진 것
心に風の
마음속 깊이 스며드는 바람
しむ身かな
스며들어 몸까지 파고드는 듯하다

하이쿠에 이르면 더 절제된 형태로 이어집니다. 마쓰오 바쇼의 시에는 단풍이 잘 등장하지 않습니다. 대신 단풍이 끝난 계절의 조건들이 등장합니다. 첫 겨울비, 몸에 스미는 바람, 갑자기 추워진 공기 같은 것들입니다. 바쇼는 단풍을 말하지 않음으로써, 단풍이 이미 지나갔다는 사실을 기록합니다. 붉은 잎을 보여 주지 않고도, 잎이 모두 떨어진 뒤에야 비로소 드러나는 계절의 상태를 정확히 포착합니다. 이것은 상징을 피한 선택이라기보다, 생태적 변화의 시점을 정확히 잡아낸 기록에 가깝습니다.

秋雲漠漠四山空
가을 구름 아득히 퍼져 사방 산은 텅 비었네.
落葉無聲滿地紅
낙엽은 소리 없이 떨어져 온 땅을 붉게 물들이네.
立馬溪橋問歸路
계곡 다리 위에서 말 세우고 돌아가는 길을 묻네.
不知身在畫圖中
자신이 이미 그림 속에 있음을 알지 못하네.
정도전, 방금거사야거(訪金居士夜居)

한국 문학에서도 단풍은 일찍부터 관찰의 대상이었습니다. 조선의 시인들은 단풍을 단(丹) 풍이라 불렀고, 이 말은 색채의 화려함보다 변화의 상태를 가리키는 말이었습니다. 단풍은 이미 물들었고, 곧 떨어질 것이며, 그 과정은 인간의 의지와 무관하게 진행됩니다. 이 인식은 자연을 인간의 감정에 종속시키지 않습니다. 오히려 인간을 자연의 시간 안에 놓습니다. 단풍을 노래한다는 것은, 자연의 변화에 인간의 감각이 어떻게 맞물리는지를 기록하는 일이었습니다.

이렇게 보면 단풍을 다룬 문학은 결코 생태적 사실에서 멀리 떨어져 있지 않습니다. 잎이 붉어지는 시점, 떨어지는 장소, 물가에 머무는 시간, 그 변화를 알아차리는 몸의 반응까지, 문학은 이미 자연의 과정을 세밀하게 기록해 왔습니다. 다만 그 기록은 수치나 공식이 아니라, 시간과 관계의 언어로 이루어졌을 뿐입니다.

이제 단풍나무의 생리를 알고 나면, 이 문학적 기록들은 더 이상 막연한 상징으로 읽히지 않습니다. 안토시아닌이 만들어지는 시기, 잎에서 양분이 회수되는 과정, 잎의 갈래 구조가 빛과 바람을 다루는 방식이 떠오르면서, 시 속의 단풍은 더 구체적인 시간표를 갖게 됩니다. 문학은 과학을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 아니라, 이미 다른 방식으로 같은 장면을 기록하고 있었던 셈입니다.

그래서 이 책에서 단풍을 다시 읽는 일은, 문학과 과학을 화해시키는 일이 아닙니다. 둘이 처음부터 같은 나무를 바라보고 있었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일에 가깝습니다. 과학은 단풍나무가 어떤 전략으로 계절을 통과하는지를 말해 주고, 문학은 그 전략이 시간 속에서 어떻게 감각되는지를 남겨 두었습니다. 이 두 기록은 서로를 부정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함께 놓일 때, 단풍나무의 삶은 더 또렷해집니다.

단풍을 기록한다는 것은 결국, 인간이 자연의 변화 속에서 어떤 위치에 놓여 있는지를 묻는 일입니다. 문학은 그 질문을 오래전부터 던져 왔고, 단풍나무는 매해 같은 방식으로 그 질문을 다시 보여 주고 있을 뿐입니다.


⬛ 인용 작가
두목(杜牧, 803–852)
중국 당나라의 시인. 자연 풍경을 순간의 정서로 포착하는 데 능했다. 「산행(山行)」에서 단풍은 색채의 대상이 아니라, 저녁이라는 시간에 잠긴 숲의 상태로 등장한다.
장계(張繼, ?–?)
당나라 시인. 생몰연대는 정확히 전해지지 않는다. 「풍교야박(楓橋夜泊)」에서 단풍은 밤·서리·불면과 함께 배치되며, 인간의 정서를 비추는 배경으로 기능한다.
만엽집(萬葉集, 8세기 편찬)
일본 최고(最古)의 시가집. 특정 개인의 작품이 아니라 다수의 노래를 엮은 집성이다. 모미지(단풍)는 계절어로 반복되며, 잎이 떨어지고 머무는 시간의 흐름이 세밀하게 기록된다.
마쓰오 바쇼(松尾芭蕉, 1644–1694)
에도 시대 하이쿠 시인. 직접적인 단풍 묘사보다, 단풍이 끝난 뒤의 바람·추위·공기를 포착했다. 말하지 않음으로써 계절의 전환점을 기록하는 방식이 특징이다.
정도전(鄭道傳, 1342–1398)
조선 초기의 정치가·사상가·문인. 자연을 인간 감정의 장식으로 소비하지 않고, 인간이 자연의 시간 속에 놓여 있음을 인식하는 시선을 보여준다. 단풍은 변화의 상태이자 귀로(歸路)를 묻는 계기다.




*단풍나무(6)으로 이어짐


제1부 단풍나무 씨앗은 떨어지지 않는다

제2부 단풍은 끝이 아니라 연결

제3부 다만 생존에 필요한 균형

제4부 같은 단풍, 다른 삶

제5부 단풍을 읽다

제6부 단풍나무는 여전히 자기 일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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