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풍나무는 여전히 자기 일을 한다

단풍나무(6,끝) 단풍나무는 설명되기 위해 존재하지 않습니다.

by 김트리

*단풍나무(5)에서 이어짐


단풍나무에 대해 오래 이야기하고 나면, 마지막에는 언제나 같은 질문으로 돌아오게 됩니다. 이 모든 설명과 기록, 감상과 분석이 과연 단풍나무에게 어떤 의미가 있을까 하는 질문입니다. 씨앗이 회전하며 떨어지는 이유를 알고, 잎이 붉어지는 생리를 이해하고, 잎의 갈래가 어떻게 다른 선택의 결과인지 구분하고, 문학이 이 나무를 어떻게 불러왔는지를 되짚고 나면, 단풍나무는 여전히 그 모든 것과 무관하게 서 있습니다.

단풍나무는 우리가 보든 보지 않든, 해마다 같은 일을 합니다. 봄에는 잎을 밀어 올리고, 여름에는 빛을 받아들이고, 가을이 되면 잎에서 양분을 되돌려 받고, 겨울을 준비합니다. 그 과정에서 잎은 붉어지기도 하고, 노랗게 마르기도 하며, 어떤 잎은 바람에 오래 매달려 있다가, 어떤 잎은 이른 시기에 떨어집니다. 이 차이는 감정의 차이가 아니라 조건의 차이입니다. 빛을 얼마나 받았는지, 수분은 충분했는지, 잎의 구조가 어떤 방식으로 설계되어 있는지에 따라 결과가 달라질 뿐입니다.

도시의 단풍나무도 마찬가지입니다. 보행로 옆에 심긴 나무, 아파트 입구에 놓인 나무, 좁은 흙 위에서 자라는 나무는 숲 속의 단풍나무와 다른 조건을 감당합니다. 뿌리는 제한되고, 토양은 압축되고, 공기는 더 건조합니다. 그럼에도 단풍나무는 가능한 방식으로 자기 일을 이어갑니다. 잎을 키우고, 잎을 버리고, 다시 잎을 준비합니다. 우리가 그 모습을 보며 삶의 무게를 읽어내더라도, 단풍나무는 그 무게를 상징으로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그 무게는 그저 견뎌야 할 환경 조건 중 하나일 뿐입니다.


단풍나무의 균형, 사람에겐 없는...


이 점에서 단풍나무는 고단해 보이지만, 비극적이지는 않습니다. 단풍나무의 삶은 고통만으로 구성되어 있지 않습니다. 잎을 통해 충분한 에너지를 얻는 해도 있고, 뜻밖의 가뭄이나 더위로 손해를 보는 해도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그 균형입니다. 잎을 모두 잃는 계절이 오더라도, 그것은 실패가 아니라 계획의 일부입니다. 단풍나무에게 잎의 상실은 끝이 아니라, 다음을 위한 조건입니다.

우리는 흔히 단풍을 보며 아름답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그 아름다움은 단풍나무의 목적이 아닙니다. 단풍나무는 아름다워지려고 붉어지는 것이 아니라, 회수할 것을 회수하기 위해 붉어질 뿐입니다. 그 결과가 인간의 눈에 아름답게 보이는 것입니다. 이 차이를 인식하는 일은 중요합니다. 자연을 사랑한다는 말이, 자연의 목적을 인간의 감정으로 덮어버리는 일이 되지 않기 위해서입니다.


자연을 사랑한다는 말이...


문학이 단풍을 기록해 온 방식도, 과학이 단풍을 설명해 온 방식도, 결국은 인간의 언어입니다. 그 언어들은 단풍나무를 완전히 포착하지 못합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무의미한 것도 아닙니다. 이 언어들은 우리가 자연 앞에서 어떤 태도를 취해 왔는지를 보여 줍니다. 단풍나무를 상징으로만 소비하던 태도에서, 단풍나무를 하나의 생명으로 바라보려는 태도로 이동해 온 흔적이기도 합니다.

이제 단풍나무를 다시 바라볼 때, 우리는 조금 다른 거리를 선택할 수 있습니다. 너무 가까이 다가가 의미를 덧씌우지도 않고, 너무 멀리 떨어져 숫자로만 환원하지도 않는 거리입니다. 단풍나무가 자기 방식으로 살아가고 있다는 사실을 인정한 채, 그 삶이 우리 눈에 어떻게 들어오는지를 조용히 살피는 거리입니다.

단풍나무는 내일도 잎을 떨굴 것이고, 몇 달 뒤에는 다시 잎을 밀어 올릴 것입니다. 그 과정에서 우리 책이 언급되지 않아도, 우리의 감상이 바뀌지 않아도, 단풍나무는 자기 일을 멈추지 않습니다. 이 단순한 사실이야말로, 단풍나무에 대해 오래 이야기한 끝에 남는 가장 정확한 결론일지도 모릅니다.


설명되기 위한 존재?


단풍나무는 설명되기 위해 존재하지 않습니다. 기록되기 위해서도, 상징이 되기 위해서도 아닙니다. 단풍나무는 그저, 단풍나무로써 살아갑니다. 그리고 우리는 그 앞에서, 살아 있는 존재를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를 다시 배울 뿐입니다.


출처 : https://www.istockphoto.com/kr

덧붙임. 단풍나무의 삶을 옮기는 일

단풍나무를 하나의 종으로 부를 때, 우리는 종종 그 이름이 가리키는 경계까지만 보게 됩니다. 잎의 갈래 수, 씨앗의 모양, 색이 바뀌는 시기 같은 것들입니다. 그러나 단풍나무의 삶은 그 경계에서 시작되지도, 그 경계에서 끝나지도 않습니다. 이 나무는 언제나 다른 생명들과 함께 살아왔습니다. 혼자가 아닌 상태로, 관계 속에서만 성립하는 존재로 말입니다.

봄이면 단풍나무의 꽃은 곤충들에게 잠깐의 먹이를 내어줍니다. 꿀벌과 작은 벌, 파리와 나비가 꽃가루를 옮기며 지나갑니다. 이 만남은 화려하지 않지만, 유전적 다양성을 이어 주는 필수적인 연결입니다. 여름에는 잎을 먹는 진딧물과 나방 유충이 찾아옵니다. 단풍나무는 그 손실을 감수하는 대신, 잎 속의 화학 물질로 균형을 맞춥니다. 공격과 방어는 전면전이 아니라 조절에 가깝습니다. 이 나무는 모든 것을 지키려 하지 않습니다. 일부를 내주며 전체를 유지합니다.

가을이 오면 씨앗이 떨어집니다. 바람이 먼저 나르고, 다람쥐와 새가 뒤를 잇습니다. 저장된 씨앗 중 일부는 잊히고, 그 잊힘이 다음 세대의 시작이 됩니다. 종의 확산은 의도라기보다 결과입니다. 동물의 이동과 실수, 계절의 변동이 겹쳐 이루어집니다. 단풍나무의 번식은 늘 다른 존재의 삶과 얽혀 있습니다.

잎이 떨어진 뒤의 이야기는 더 조용합니다. 낙엽은 곧바로 흙이 되지 않습니다. 곰팡이와 세균이 먼저 달라붙고, 미세한 절지동물이 그 뒤를 잇습니다. 분해는 시간이 걸리는 작업입니다. 이 느린 과정 속에서 탄소와 질소, 미네랄이 풀리고 다시 묶입니다. 단풍나무가 한 해 동안 모아 둔 에너지는, 이렇게 숲의 바닥으로 흘러 들어가 다른 식물과 미생물의 삶을 떠받칩니다. 나무의 생애는 낙엽에서 끝나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때부터 숲 전체로 확장됩니다.

땅 아래에서는 또 다른 공존이 이어집니다. 단풍나무의 뿌리는 균근 곰팡이와 연결되어 있습니다. 곰팡이는 뿌리의 연장처럼 뻗어 인과 미량 원소를 모아오고, 나무는 광합성으로 만든 탄수화물을 나눕니다. 이 교환은 계약이 아니라 관습에 가깝습니다. 오래 지속된 공생의 결과입니다. 이 보이지 않는 네트워크는 물과 영양의 흐름을 안정시키고, 가뭄이나 병해에 대한 숲의 회복력을 높입니다.

이 모든 관계를 하나로 묶는 것은 토양입니다. 단풍나무의 낙엽은 토양의 성질을 바꾸고, 그 변화는 다시 이웃 식물의 분포에 영향을 미칩니다. 약간의 산성화는 어떤 종에게는 불리하고, 다른 종에게는 유리합니다. 이렇게 숲은 고르게 평탄해지지 않습니다. 미세한 차이들이 겹치며 모자이크처럼 구성됩니다. 단풍나무는 그 모자이크의 한 조각입니다.

그래서 단풍나무를 이해한다는 것은, 도감 속 정보들을 통해 그 나무 하나를 더 자세히 아는 일이 아닐지도 모릅니다. 오히려 그 나무가 어떤 관계를 열고 닫는지, 어떤 흐름을 통과시키는지를 보는 일에 가깝습니다. 종 중심의 분석은 유용하지만, 그 분석이 관계를 잘라내는 순간 생태는 빈 껍데기가 됩니다. 환경영향평가에서 특정 종을 옮겨 심고 ‘대체서식지’를 마련하면 된다고 말할 때, 우리는 그 종이 얽혀 있던 수많은 연결을 함께 옮길 수 없다는 사실을 잊곤 합니다. 나무 하나를 옮기는 것은 가능하지만, 나무의 삶을 옮기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단풍나무는 우리에게 다른 질문을 던집니다. 이 나무를 어떻게 불러야 하는가가 아니라, 이 나무와 무엇을 함께 보아야 하는가라는 질문입니다. 잎의 붉음만이 아니라, 잎을 먹는 곤충과 그 곤충을 먹는 새, 잎이 썩어 흙이 되는 시간과 그 흙을 통과하는 물의 길까지 함께 바라보는 일입니다. 그렇게 볼 때, 단풍나무는 더 이상 단풍의 주인공이 아니라 숲의 일부가 됩니다.

이 글의 앞부분에서 우리는 이름을 부르는 일과 부르지 않는 일 사이를 오갔습니다. 이제 마지막으로 남는 것은, 이름을 잠시 내려놓고 관계로 돌아가는 일일지도 모릅니다. 단풍나무는 혼자 서 있지 않습니다. 늘 다른 생명들과 더불어 살아왔고, 그 더불어 있음이 바로 이 나무의 생태입니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은 그 생태를 소유하거나 대체하는 것이 아니라, 가능한 한 온전한 상태로 지켜보는 것일 것입니다. 그것이면 충분합니다.




제1부 단풍나무 씨앗은 떨어지지 않는다

제2부 단풍은 끝이 아니라 연결

제3부 다만 생존에 필요한 균형

제4부 같은 단풍, 다른 삶

제5부 단풍을 읽다

제6부 단풍나무는 여전히 자기 일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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