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코뿔소의 향기로운 가족들

목서(4) 목서속은 어디에서 왔는가

by 김트리
image.png Osmanthus fragrans with orange flowers. Shot in Kobe, Japan. 출처 : 위키백과

*목서(3)남쪽 나무가 서울의 밤에 남긴 신호에서 이어짐.


시월이면 서울의 밤에 번지는 향기는 동아시아 남쪽, 겨울에도 잎이 떨어지지 않는 숲, 난대림에서 왔다.

목서속(Osmanthus)은 전 세계에 흩어진 나무가 아니다. 종다양성의 중심은 분명하다. 중국 남서부 산지—운남·귀주·사천 일대의 아열대 상록활엽수림. 일본 난대림. 한반도 남부 해안. 베트남 북부 산지.
예외적으로 코카서스와 튀르키예에 한 종(오스만투스 데코루스, Osmanthus decorus)이 분포하지만, 진화적 중심은 동아시아다.

산과 산 사이, 계곡과 계곡 사이, 때로는 대륙의 가장자리까지. 코카서스와 터키 북동부에 자연 분포하는 오스만투스 데코루스는 이 속(屬)의 분포가 단순히 동아시아 내부에만 머물지 않았음을 보여준다. 다만 이것이 곧바로 현대의 장거리 분산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식물지리학에서는 이를 제3기 유라시아 아열대림의 잔존 집단(relict population)으로 해석하는 견해가 우세하다. 과거 더 따뜻했던 시기, 동서로 연속됐던 난대 식생대가 빙기 이후 분절되면서 양 끝에 집단이 남았을 가능성이다. 물론 올리브과 핵과의 조류 산포 특성은 드문 장거리 이동의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하지 않지만, 목서속의 서방 분포는 무엇보다 고기후의 기억을 담고 있다.


중국 숲이 프랑스 향수병에


그렇다면 목서속은 어떻게 서양의 유명 브랜드 향수의 원료가 됐을까. 진화의 중심과 달리 산업적 운명은 유럽에서 완성되었다. 19세기 식물 채집과 온실 재배, 그리고 20세기 향료 추출 기술의 발달은 양쯔강 남쪽의 꽃을 파리의 향수병 속으로 옮겨 놓았다. 오늘날 서양의 향수에서 오스만투스가 낯설지 않은 이유는, 그 나무가 유럽의 숲에 자라서가 아니라, 세계적 향료 네트워크 속으로 편입되었기 때문이다.

베타 아이오논(β-ionone 계열, 바이올렛/가죽 느낌), 감마 데칼락톤(γ-decalactone, 복숭아/살구 향), 리날룰(linalool, 플로럴 노트), 다마스콘(damascone류, 장미와 유사한 깊이) 등의 독특한 조합은 사실 파리가 아닌 동아시아 숲이 키워냈다는 의미다. 그 숲은 빛은 산란되고, 겨울에도 녹색이 이어진다. 목서속은 그 안에서 느린 속도로 잎을 유지하며, 꽃을 준비하고, 열매를 맺는다. 우리가 맡는 향기는 그 숲의 공기다.


숲의 내부에서


중국 아열대 상록활엽수림의 식생 조사 플롯을 보면, 목서속은 상층을 형성하는 우점 교목은 아니다. 녹나무과와 상록 참나무류, 동백나무과 수종들이 수고 20m 안팎의 교목층을 이루며 광환경과 미기후를 결정한다. 이에 비해 목서속은 대개 소교목 또는 대형 관목으로 아교목층과 관목층에 분포한다. 상대피도는 높지 않지만 반복 출현율이 안정적인 ‘동반종(companion species)’으로 기록된다. 숲의 실루엣을 만드는 종은 아니지만, 층위 다양성과 계절적 자원 공급을 통해 숲의 내부 구조를 지탱하는 층위에 가깝다.

그러나 숲은 주연만으로 유지되지 않는다. 하층에서 잎을 유지하는 나무는 빛의 흐름을 완충하고, 토양 수분을 안정시키며, 곤충과 조류에게 계절적 자원을 제공한다. 목서속은 화려한 교목이 아니라, 숲을 조용히 붙들고 있는 층위에 가깝다.

서울의 목서를 이해하려면 그 자리를 기억해야 한다.

서울은 난대가 아니다. 겨울은 더 건조하고, 바람은 더 차갑다. 그럼에도 목서는 살아남는다. 도시의 열섬, 남향 배치, 건물 사이의 완충 효과가 그를 돕는다.

그러나 서울의 목서는 더 이상 숲의 내부에 있지 않다. 그는 화단과 가로수의 나무가 되었다.

향기는 남았지만, 그가 속했던 숲은 사라졌다.


속(屬)을 기억하는 일


목서 한 그루를 향기로 읽는 것은 쉽다. 그러나 목서속을 기억하는 일은 어렵다.

그 속에는 동아시아 상록림의 기후사, 곤충과 새의 이동 경로, 화학 신호의 선택 전략, 빙기 이후의 북상 과정이 겹쳐 있다.

서울의 밤에 번지는 향기에는 중국 남부의 습한 공기와 일본 난대림의 그늘이 섞여 있다. 우리는 한 종을 키우고 있지만, 사실은 하나의 숲을 옮겨 심은 셈이다. 그 숲의 맥락을 지운 채 향기만 소비하는 순간, 목서는 정원수가 된다. 그러나 그 속(屬)을 기억하는 순간, 목서는 다시 숲으로 돌아간다. 향기는 잠깐 머문다. 그러나 기원은 오래 남는다.


Claude Debussy – “Clair de Lune”
https://www.youtube.com/watch?v=CvFH_6DNRCY


#용어 정리

■ 목서속 (Osmanthus)

올리브과(Oleaceae)에 속하는 상록 소교목·관목류의 속(屬). 약 30여 종이 동아시아에 집중 분포하며, 대표종은 Osmanthus fragrans(목서, 금목서·은목서 등 품종 포함).

■ 종다양성의 중심 (Center of species diversity)

특정 분류군이 가장 많은 종 수와 유전적 다양성을 보이는 지역. 진화적 기원지(origin)와 반드시 동일하지는 않지만, 대개 오랜 분화가 축적된 지역을 가리킨다.

■ 상록활엽수림 (Evergreen broad-leaved forest)

겨울에도 잎을 떨어뜨리지 않는 활엽수들이 우점하는 숲 유형. 동아시아 난대·아열대 지역에서 발달하며, 다층 구조와 높은 생물다양성이 특징이다.

■ 제3기 유존집단 (Tertiary relict population)

신생대 제3기(약 6,600만~260만 년 전) 동안 광범위하게 분포했던 식생이 빙기 이후 축소·분절되면서 일부 지역에 고립되어 남은 집단. 동아시아–코카서스 간 분포 단절을 설명하는 식물지리학적 개념이다.

■ 고기후 (Paleoclimate)

과거 지질시대의 기후 조건. 식물 분포의 역사와 진화 경로를 해석하는 데 핵심적인 요소다.

■ 핵과 (Drupe)

단단한 내과피(endocarp) 속에 씨앗이 들어 있는 열매 형태. 올리브, 복숭아, 목서 등이 이에 속한다. 조류 산포에 적합한 구조다.

■ 조류 산포 (Ornithochory)

열매를 먹은 새가 씨앗을 다른 장소로 이동시키는 종자 분산 방식. 장거리 분산(long-distance dispersal)의 주요 메커니즘 중 하나다.

■ 향기 성분

β-ionone (베타 아이오논)

카로티노이드 분해 산물. 바이올렛·가죽 느낌을 내는 노트.

γ-decalactone (감마 데칼락톤)

살구·복숭아 향을 내는 락톤 화합물.

Linalool (리날룰)

플로럴 계열의 대표적 모노터펜 알코올.

Damascone (다마스콘류)

장미 향의 깊이를 만드는 노트. 매우 낮은 농도에서도 강한 향을 발산.

이들은 식물의 2차 대사산물(secondary metabolites)로,

수분 매개자 유인과 생태적 상호작용에 관여한다.

■ 식생 조사 플롯 (Vegetation plot)

일정 면적을 설정해 출현 종, 개체 수, 피도, 흉고직경(DBH) 등을 기록하는 조사 단위. 군집 구조와 우점도를 분석하는 기본 방법이다.

■ 우점 교목 (Dominant canopy tree)

군집 상층(canopy layer)을 형성하며 광환경과 미기후를 결정하는 수종. 상대피도와 기저면적(basal area)이 높다.

■ 아교목층 (Sub-canopy layer)

상층 교목 아래에서 자라는 소교목층. 빛 조건이 제한된 환경에 적응한 종들이 위치한다.

■ 관목층 (Shrub layer)

지면 가까이에 형성되는 저층 식생 구조. 종 다양성과 미소서식지 제공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다.

■ 상대피도 (Relative cover)

특정 종이 군집 전체 피도에서 차지하는 비율. 우점도 판단의 지표다.

■ 동반종 (Companion species)

특정 군집에서 반복적으로 출현하지만

구조를 지배하지는 않는 종.

군집의 안정성과 층위 다양성을 보완한다.

■ 미기후 (Microclimate)

소규모 공간에서 나타나는 국지적 기후 조건.

수관 구조, 지형, 건물 배치 등에 의해 형성된다.

■ 열섬 효과 (Urban heat island effect)

도시 지역의 기온이 주변 농촌보다 높게 나타나는 현상.

건물, 아스팔트, 인공 열원 등이 원인이다.

■ 북상 (Northward range shift)

기후 변화에 따라 식물·동물의 분포 경계가 고위도로 이동하는 현상.

최근 난대 상록수의 한반도 중부 확산과 연결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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