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나리(1) 의도된 불완전성
봄이 시작될 때, 가장 먼저 번지는 색은 노랑, 개나리 노랑입니다.
그 노랑은 대개 열매로 기억되지 않습니다. 꽃이 지면 흔적 없이 사라집니다. 우리는 개나리를 “봄의 신호”로 떠올립니다. 그런데 자세히 개나리를 관찰한 사람들도 그 열매(연교(連翹), 개나리 열매가 연꽃 봉우리처럼 생겼다고 해서 붙은 이름)에 대한 기억은 잘 떠올리지 못합니다. 꽃은 있는데 열매는 없다는 인상은 어딘가 부자연스럽습니다.
이 인식에는 생태적 이유가 있습니다. 관상용으로 널리 심는 개나리(포르시티아 코레아나(Forsythia koreana))는 번식 구조에서 독특한 특징을 지니고 있습니다. 겉으로 보면 어떤 나무는 암나무처럼, 어떤 나무는 수나무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개나리는 암수딴그루 식물이 아닙니다. 한 송이 꽃 안에 암술과 수술이 함께 존재하는 완전화입니다. 다만 그 기관들의 배치와 기능이 균등하게 작동하지는 않습니다.
개나리 꽃은 두 가지 모양으로 나뉩니다.
• 어떤 꽃은 암술대가 길고 수술이 짧습니다.
• 다른 꽃은 암술대가 짧고 수술이 깁니다.
암술과 수술의 길이가 두 가지로 나타나는 현상을 이형화주성(distyly)이라고 부릅니다. 겉으로 보면 단순한 길이 차이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교배를 조절하는 정교한 장치입니다. 같은 모양끼리 교배하면 꽃가루가 잘 자라지 않아 씨앗이 거의 생기지 않습니다. 반대로 서로 다른 모양끼리 교배할 때는 씨앗이 잘 맺힙니다.
즉, 개나리에서는 잘못된 조합을 막고, 다른 형태끼리만 교배가 이루어지도록 하는 특별한 메커니즘이 작동합니다.
겉으로 보면 어떤 꽃의 수술은 작고 기능이 약해 보이고, 어떤 꽃의 암술은 충분히 자라지 못한 듯 보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이를 “퇴화”라고 부르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러나 유전체 연구는 이러한 성적 비대칭이 특정 유전자 영역과 연관되어 있음을 보여줍니다. 이는 우연히 생긴 결함이 아니라, 오랜 시간 유지되어 온 번식 전략임을 의미합니다. 완전함을 포기함으로써 다양성을 얻는 방식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식물은 때로 결실 자체보다 교배의 방향을 더 중시하기 때문입니다.
해외 수목 해설 자료인 「트리스 앤 슈럽스 온라인(Trees and Shrubs Online)」을 보면, 개나리속 식물은 같은 꽃형끼리 수분이 이루어질 경우 수정이 원활하지 않다고 설명합니다. 암술대의 길이와 수술의 위치가 서로 맞물려야 정상적인 화분관(꽃가루가 싹이 나서 형성하는 관 모양의 기관) 신장이 이루어지기 때문입니다. 같은 형태끼리는 물리적·생리적 제약이 생깁니다. 서로 다른 형태의 꽃이 만날 때 결실 가능성이 높아집니다.
이 구조는 자연 상태에서 타가수분(다른 꽃이나 다른 나무의 꽃에서 꽃가루를 받아 열매나 씨를 맺는 일)을 촉진하는 장치입니다. 한 집단 안에 두 꽃형이 균형 있게 존재할 때 씨앗이 형성됩니다.
이형화주성은 단순한 변이가 아닙니다. 물푸레나무과(Oleaceae) 전반에서 보고되는 교배 전략의 하나입니다. 최근 유전체 비교 연구에서는 개나리족(Forsythieae)에서 이러한 이형화주성이 단순한 기관의 불완전성이 아니라, 타가수분을 강제하기 위해 진화한 교배 시스템임을 시사합니다.
즉, 개나리의 꽃은 “완전한 양성화”라기보다 의도된 불완전성을 지닌 구조입니다.
같은 형태끼리는 수정이 잘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길-길, 짧-짧의 조합은 실패합니다. 길-짧, 짧-길의 교차가 필요합니다. 이것이 이형화주성의 핵심입니다.
봄의 노랑은 사실 선택과 배제의 구조 위에 서 있습니다.
그러나 도시 조경 환경에서는 상황이 달라집니다.
개나리는 꺾꽂이로 쉽게 증식됩니다. 생육이 좋고 꽃이 풍성한 개체가 선택되면 동일한 유전형이 반복적으로 복제됩니다. 한 지역의 개나리가 사실상 같은 유전형, 같은 꽃형으로 채워지는 경우도 많습니다. 이형화주성 식물에서 동일한 꽃형만 존재하면 결실은 제한적일 수밖에 없습니다. 자연 교배를 전제로 설계된 구조가 인위적 증식 방식과 만나면서 씨앗은 점점 드물어집니다.
이런 구조 속에서 우리는 매년 꽃을 보면서도 열매를 거의 보지 못합니다. 꽃은 폭발적으로 피지만, 씨앗은 조건이 맞을 때만 맺힙니다. 암술과 수술이 한 꽃 안에 존재하지만, 모든 조합이 허용되는 것은 아닙니다. 개나리는 타자를 필요로 하는 구조를 지닌 식물입니다. 인간이 같은 유전형을 반복적으로 심는 방식은 그 구조와 어긋나는 방향으로 작동합니다.
이 식물의 번식은 관계를 전제로 합니다. 서로 다른 꽃형이 만나야 씨앗이 형성됩니다. 그러나 도시는 한 개체를 복제해 줄지어 심는 방식으로 풍경을 만듭니다. 다양성 대신 동일성이 배치됩니다.
우리는 꽃이 피는 장면에는 주의를 기울이지만, 그 이후의 번식 과정에는 거의 관심을 두지 않습니다. 개나리는 살아 있지만, 그 삶의 일부는 풍경 속에서 축소됩니다. 봄은 번성하지만 씨앗은 침묵합니다.
노랑은 봄의 감정으로 기억됩니다. 그러나 그 노랑은 선택적 교배 체계와 인간의 증식 방식이 겹쳐 만들어낸 결과입니다. 꽃은 완전해 보이지만, 번식은 조건 위에서만 이루어집니다.
‘개나리’라는 말은 15세기 문헌에 이미 등장합니다. 『구급간이방언해』(1489)에는 “가히나리”와 같은 표기가 나타납니다. 국어학 연구에 따르면, 여기서 ‘개-’는 흔하거나 야생적인 것을 가리키는 접두로 풀이됩니다. ‘나리’는 본래 백합과 식물을 가리키던 옛말로, 오늘날의 나리꽃, 즉 백합(Lilium) 속을 지칭하는 말이었습니다.
이 어원을 따르면 개나리는 ‘들에 흔한 나리 같은 꽃’이라는 뜻을 품습니다. 그러나 이 이름에는 미묘한 층위가 겹쳐 있습니다. 한국어에서 ‘개-’는 단순히 야생을 뜻하기도 하지만, 때로는 열등하거나 가치가 낮다는 뉘앙스를 함께 지니기도 합니다. 개살구, 개암, 개복숭아와 같은 예를 떠올리면 그 결이 보입니다. 가장 먼저 피어 봄을 여는 꽃이 이름에서는 이미 변두리에 놓여 있습니다. 언어는 식물을 분류하면서 동시에 위계를 부여합니다.
중국에서는 연교(連翹)라 부릅니다. 『본초강목』에는 약재로서의 쓰임이 먼저 기록되어 있습니다. 꽃보다 열매가 중심이었습니다. 일본에서는 렌교(レンギョウ)라 읽으며 한자 표기는 같습니다. 이름의 중심에 놓인 것은 봄 풍경이 아니라 약성이었습니다.
학명 포르시티아 코레아나(Forsythia koreana)에서 속명은 영국 식물학자 윌리엄 포사이스(William Forsyth)를 기념한 것이고, 종명은 한반도 기원을 가리킵니다. 학명은 인물과 지리를 기념하지만, 문화적 기억이나 생태적 의미까지 담지는 않습니다.
중국과 일본에서는 열매가 이름의 중심에 놓였습니다. 한국에서는 봄 풍경이 이름을 지배했습니다. 개나리는 씨앗과 약성을 통해 기억되기보다, 노란 장면을 통해 기억됩니다.
개나리는 매년 같은 모양의 봄을 반복합니다. 꽃은 피고, 번식은 조건 속에서만 열립니다. 교배는 선택적으로 이루어지고, 결실은 제한적으로 나타납니다. 이 식물의 생식은 ‘가능’이라는 말보다 ‘관계’라는 말에 더 가깝습니다. 다른 꽃형과의 만남, 다른 개체와의 교차가 필요합니다.
그런데도 개나리는 사라지지 않습니다. 오히려 도시의 경계마다 번져 있습니다. 담장 아래, 도로의 가장자리, 공원의 울타리, 하천 둔치의 비탈에 노랑이 이어집니다. 이 확산은 씨앗의 여행이라기보다 손의 반복에 가깝습니다. 우리는 꺾어 심고, 다시 복제하고, 또 심습니다. 한 번 선택된 개체가 같은 형태로 이어지며 노랑은 해마다 재현됩니다.
생명은 스스로를 이어가려는 힘만으로 존재하지 않습니다. 인간의 선택과 배치가 생명의 형태를 바꾸고, 생명의 기억을 바꿉니다. 개나리는 살아 있는 존재이면서 동시에 풍경의 부품이 됩니다. 씨앗을 통해 다음 세대로 건너가는 시간보다, 피어나는 장면이 먼저 호출됩니다. 우리는 개나리의 삶 전체를 받아들이기보다, 필요한 장면을 먼저 소비합니다.
노랑은 자연의 언어이면서 동시에 인간의 관리와 재생산이 만든 문장입니다. 개나리는 관계를 요구합니다. 도시는 그 요구에 늘 응답하지는 않습니다. 그 사이에서 노랑은 번성하고, 씨앗은 자주 침묵합니다.
이 침묵은 결핍이라기보다 질문에 가깝습니다.
우리는 무엇을 사랑하고 있습니까.
생명 전체를 사랑하고 있습니까, 아니면 한순간의 장면을 사랑하고 있습니까.
□ 용어 정리
이형화주성(distyly)
한 종 안에 암술과 수술의 길이가 서로 다른 두 꽃형이 존재하는 번식 구조. 서로 다른 꽃형끼리 교배될 때 결실률이 높다.
타가수분(outcrossing)
다른 개체의 꽃가루를 받아 수정이 이루어지는 방식. 유전적 다양성을 유지하는 데 중요하다.
자기불화합(self-incompatibility)
같은 유전형 또는 동일형 교배에서 수정이 억제되는 생리적 체계.
영양번식(vegetative propagation)
씨앗이 아니라 줄기·가지 등을 이용해 동일한 유전형을 복제하는 증식 방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