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쪽 나무가 서울의 밤에 남긴 신호

목서(3) 향은 누구에게 가는가

by 김트리
image.png 출처 : 위키백과

목서(2) 상록이라는 기술에서 이어짐


목서의 향은, 가을 저녁, 갑자기 공기 속에서 튀어나오는 듯한 그 짙은 향기는 사람의 기억과 감정을 먼저 건드린다. 그래서 목서는 ‘향기로운 나무’가 되었고, 그 향은 감상의 대상이 되었다. 그러나 향은 감상을 위해 만들어지지 않는다. 그것은 신호다. 그리고 대부분의 경우, 그 수신자는 인간이 아니다.


목서 향은 누구를 위한 좌표일까


목서 꽃이 내뿜는 향은 휘발성 유기화합물(VOCs)의 복합체다. 리날롤, 바실렌, 바이올렛톤 계열의 성분들이 섞여 공기 중으로 퍼진다. 이 화학 신호는 특정한 방향을 가진다. 주로 밤이다. 목서의 향은 낮보다 해질 무렵과 밤에 더 또렷해진다. 이는 우연이 아니다. 목서의 주요 수분자는 낮에 활동하는 벌보다는, 해질 무렵과 밤에 움직이는 곤충들—나방류와 소형 야행성 곤충들이다. 향은 그들을 부르는 좌표다.

이 지점에서 목서는 다시 숲의 나무가 된다. 조엽수림의 많은 나무들이 그렇듯, 목서는 시각보다 후각에 기대는 전략을 발전시켜 왔다. 울창한 상록의 캐노피 아래에서는 꽃의 색보다 향이 더 멀리, 더 정확하게 전달된다. 꽃은 작고 눈에 띄지 않지만, 향은 바람을 타고 숲을 가로지른다. 꽃의 화려함이 아니라, 공기를 매개로 한 소통이 목서의 방식이다.

그런데 이 오래된 신호 체계가 서울이라는 도시에서 다른 조건과 마주한다. 밤은 더 밝아졌고, 공기는 더 따뜻해졌다. 인공조명은 곤충의 이동 경로를 바꾸고, 도시의 열섬 현상은 개화 시기와 향의 확산 패턴을 미묘하게 흔든다. 어떤 곤충은 더 이상 오지 않고, 어떤 곤충은 계절을 헷갈린다. 향은 여전히 뿜어져 나오지만, 그 향을 정확히 읽어내는 수신자는 줄어들거나 바뀐다.


목서가 흔해진 서울


그럼에도 목서는 서울에서 점점 흔해지고 있다. 이는 우연이 아니다. 남쪽 해안과 제주에 제한적으로 분포하던 이 나무가 수도권의 아파트 단지까지 올라온 데에는 기후의 변화와 함께, 인간의 선택이 작용했다. 상록성, 관리의 용이함, 민원 없는 잎과 꽃, 그리고 ‘좋은 향기’. 목서는 도시 조경이 요구하는 조건을 거의 완벽하게 충족하는 나무다.

여기에는 조경의 정치가 있다. 어떤 나무는 선택되고, 어떤 나무는 배제된다. 열매가 떨어져 미끄럽지 않은가, 벌이 많이 꼬이지 않는가, 낙엽 민원이 없는가. 이런 기준 속에서 목서는 살아남았고, 북상했다. 남쪽의 숲이 도시의 화단으로 옮겨온 것이다. 그러나 나무가 이동한다고 해서, 그 생태적 기억까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꽃이 지고 난 뒤, 목서는 열매를 맺는다. 작고 눈에 띄지 않는 열매다. 도시에서는 이 열매가 성숙하기도 전에 사라지는 경우가 많다. 전정되고, 쓸려나가고, 관심 밖으로 밀려난다. 수분이 이루어졌는지, 종자가 퍼졌는지 우리는 거의 알지 못한다. 꽃이 끝나면 이야기도 끝났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식물의 시간에서 꽃은 시작에 가깝다. 그 뒤에 이어지는 번식과 확산의 과정이야말로 생의 핵심이다.

목서의 향은 그래서 이중의 의미를 갖는다. 하나는 여전히 숲을 향한 신호이고, 다른 하나는 인간의 세계에 남겨진 잔향이다. 우리는 그 향을 ‘좋다’고 말하지만, 그것이 누구를 부르기 위해 만들어졌는지는 거의 묻지 않는다. 향은 인간에게 소비되지만, 그 기원은 인간 바깥에 있다.


멈추지 않는 숲 나무의 신호


밤이 되면, 서울의 한 아파트 단지에서 목서는 여전히 향을 내보낸다. 누가 듣고 있는지는 알 수 없다. 어쩌면 이제는 거의 아무도 듣지 못할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향은 반복된다. 이것이 목서가 살아온 방식이고, 살아남은 방식이기 때문이다. 인간이 있든 없든, 숲의 나무는 신호를 멈추지 않는다.

꽃은 잠깐이다. 그러나 그 잠깐의 향기에는, 수천 년 동안 이어져 온 소통의 기억이 압축돼 있다. 우리가 그 향을 맡을 때, 잠시 인간 중심의 감상을 내려놓을 수 있다면, 목서는 다시 제자리로 돌아간다. 향기로운 나무가 아니라, 숲의 언어를 아직 잃지 않은 존재로


조니 미첼(Joni Mitchell)

〈Woodstock〉

We are stardust

We are golden
And we've got to get ourselves
Back to the garden


우리는 별의 먼지이고

우리는 황금이며

우리는 다시

정원으로 돌아가야 한다



목서(4, 끝) 목서속은 어디에서 왔는가로 이어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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