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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자기반성 Oct 19. 2023

나를 꼭 닮은 딸을 둔, 엄마의 무게

우리 집 3대 모녀, 모두 소집되는 순간들

저에게는 두 딸이 있습니다.

첫째와 둘째는 참 많이 달라요. 똑같은 엄마아빠 밑에서 다른 유전자를 탑재하고 태어났어요. 첫째만 키웠다면 몰랐을 이 감정, 힘듦, 앞으로의 다짐을 위해 글을 쓰며 마주하게 되었습니다.


참 사람 좋아하는 딸이에요. 5살부터 9살까지는 늘 공부는 못해도 친구 사귀는 것에는 1등이라고, 그나마 다행이라고 했어요. 10살이 되고부터는 친구 관계가 깊어지고, 본인의 성격 형성이 많이 발달된 시점이 되니 '관계'라는 관점에서 많은 부분이 미성숙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맞아요. 40살인 저도, 70살인 저희 엄마도 미성숙한 인간인데, 고작 10년 살아온 아이들은 당연하겠죠.

그런데 말입니다. 둘째과 비교되는 천성적인 기질이라는 부분에서 첫째 딸은 둘째보다 훨씬 많은 자아성찰이 필요한 스타일이라는 것을 매일, 매시간 마주하면서 제가 글로써 여러분과 공유하고 소통하고 싶어진 이유였지요.


사실, 첫째 딸은 성격이나 기질이 저와 아주 많이 닮아 있어요.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도저히 이해가 어려운 부분이 있답니다. 어쩌면 저 어릴 때도 똑같았을 텐데, 부끄러웠던 기억으로 선택적 기억 저장소에서 지워진 걸지도 요. 얼마 전 학교에서 연락이 왔어요. 저희 딸은 지금 해외에서 국제학교를 다니고 있어 매우 자유분방한 학교를 다니고 있답니다. 그런데 한 친구와 감정적으로 격하게 싸우게 되어 선생님이 이 둘이 이야기를 못하게 분리해 놨으니, 부모님께 알린다는 연락이었어요.

딸이 하교 후 내용의 전말을 확인해 보니 자신의 일이 아닌 친구의 친구, 그러니까 자신의 베프에게 싸운 친구가 너랑 이제 놀지 않을 거라는 말에 자기가 나서서 그 친구에게 잘못을 빌라고 요구하면서 벌어진 일이라고 설명했어요. 어떤 성격인지 아시겠죠?

딸을 앉혀 놓고 이야기를 했어요. "딸, 엄마는 너희의 상황을 자세히 들어 알겠고, 네가 베프를 생각하는 마음이 크다는 것도 이해했어. 하지만, 그 친구 두 명이 해결할 일이지 네가 나서서 다른 친구에게 사과를 강요할 수 없어. 그건 Not your business야. 이해했어?" "알았어. 엄마." 분명 그렇게 말하고 돌아섰고, 며칠 뒤 화해했다고 해서 잘했다고 했는데, 2주쯤 지났을까 다시 선생님께 연락이 왔어요.

이번에는 우리 딸 베프에게, 지난번 싸웠던 그 친구가 딸 베프의 코를 만져서 코피가 났다 해요. 이번에도 또 저희 딸이 나서서 사과를 하라고 했다는 말을 해서 다시 싸웠다 합니다.

맞아요. 아이들이 한 번에 배우면 그게 더 신기할 일이지요. 그래서 다시 앉혀 놓고 말했어요. 이번에도 저번과 같은 상황이야. 'Not your business."

저도 대학원을 여대에서 이수했는데, 그때 조별과제할 때 비슷한 상황이었어요. 조를 같이 하던 언니가 과제에 적극 참여하지 않는 친구의 헌담을 해서, 저는 제가 나서서 해결을 해야 한다는 생각을 했던 것 같아요. 그래서 누군가 과제에 참여하지 않는 친구에게 말을 하고 조원에서 빠질지 과제를 나눠 가져갈지를 물어봐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저는 이야기했죠. 그러고는 그 친구랑은 다소 서먹해졌습니다. 그런데 재밌는 건 뒤에서 헌담을 했던 그 언니와는 서로 SNS를 오가며 댓글도 남기고 잘 지내더라고요.

처음에는 내가 학부는 거친 남녀공학을 나와서 여대만의 분위기를 몰랐나? (그 조원친구가 학부석사를 같은 여대에서 쭉 해 왔던 친구라 야리야리한데 거친 내가 너무 몰아붙인 건가) 생각도 했습니다.

명확하게 이해되지 않는 상황들은 가끔 이렇게 불쑥 튀어나와 그때 상황을 다시 생각해 보게 되는 것 같아요. 아직도 그때의 미묘한 분위기와 감정이 해소되지 않은 채로 남아 있습니다.

그래서 딸의 비슷한 상황에 저의 대학원시절이 소환되었지요.

정답이라는 게 없다는 것과 당시 모두에게 좋은 방향이라 생각했던 그날의 에피소드도 결국 나에게 편한 방법이었던 것인가, 내가 나설 필요는 없었고 나서지 않았더라면 불공정하게 나눠진 과제분담을 누군가 메꾸면 그냥 됐던 것인가, 똑같이 나눌 수는 없었겠지만 그런 친구들은 어떻게 상대해 가며 함께 생활해야 하는 것인지 어쩌면 지금 같은 상황이라도 비슷하게 지나갔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즉흥적인 성향의 사람인지라 조원들이 불만을 가지고 있는 불편한 상황을 담아두지 못하고 아마도 입 밖으로 내어 발설했을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오늘 딸에게 다시 한번 주의를 줍니다. 그녀가 어렴풋이 알아들을 그날까지 그녀에게 다시 알려주는 일이 지금 할 수 있는 일이겠지요. 이런 영화도 한번 찾아보고, 콘텐츠도 찾아서 보여주고 싶네요.

이런 일을 마주할 때, 저는 저희 엄마의 성격과 외할머니의 성격을 다시 소환해 봅니다. 유전자라는 게 참 무서워요. 너무나 똑같이 닮았고, 환경적인 변화를 겪어도 겪어도 잘 변하지 않고, 본질에 다가갈수록 더 뚜렷해지는 기질을 어떻게 바꿔야 할지가 아니라, 어떻게 다뤄내야 할지를 곰곰이 생각해 봅니다.


오늘도 모자라고 덜 자란 저의 기질을 마주하며, 딸이라는 거울을 보며 반성과 자책과 묘안 구상을 위해 정보의 바다를 서칭하고 다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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