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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자기반성 Oct 19. 2023

걱정, 화(火)의 무게

너무 싫은 모습의 기저에는 걱정이 있어

첫째딸이 답답해 죽겠던 그날, "엄마 왜 이렇게 화를 내?" 첫째도 혼나는 와중에 용기를 내어 물어본다. 둘째도 덩달아 "엄마 릴렉스~"

ENTP에 어떤 성향조사, 별자리 체크를 해도 항상 나오는 항목인 '상상력', 어렸을 때 학교정문에서 교실로 걸어가는 중에도 나는 혼자 걸으며 온갖 상상을 했다. 그 공상하는 시간이 매우 자주였고 지금도 또렷이 기억난다. 나는 하나의 이벤트를 보면 그 이후에 발생할 일들까지 쭈루룩 떠오른다.

이게 화로 연결되면, 어마무시해 지는 것이 작은 실수였지만 그것은 이내 10년뒤 딸의 습관이 되어 있는 모습이 떠오른다.  

그러니 엄마로서 걱정이 동반되면서 화를 부르는 것이다.

이 화 또한, 우리 엄마로 부터 시작되었다. 외가쪽은 삼촌 2명에 이모3명으로 5남매였는데, 모두 화가 많으셨다. 외할머니는 아주 인자하다고 항상 생각했었기 때문에 외할아버지 영향인가라고 혼자 생각해왔는데, 어른이 되고나서 외할머니의 모습에서 우리 엄마의 모습을 보았다.

참 싫은 모습인데, 그 화가 나에게도 있었다. 사실 나는 남에게는 무관심한 AB형의 기질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어렸을 때 나는 화가 1도 없는 물에 물탄듯 술에 술탄듯한 성향이라는 것에 의심의 여지가 없었다.

자매인 우리집은 정말 싸우는 일이 없었다. 당시에는 다른 집도 그런줄 알았는데, 자매는 엄청 나게 싸운다는 걸 우리 딸들이 싸우는 모습을 보고 더 절실히 알게 되었다.

지금에 와서 생각해보면 우리집 자매 싸움이 없었던 이유는 동생이 너무 순종적인 기질의 아이였기 때문이였다. 그런데, 둘다 결혼을 하고 많은 이벤트들에 노출되면서 화가 촉발되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화를 다루는 것에 아직은 익숙하지 않은 상태라 보면 될 것 같다.


화를 가만히 드려다 보았다.

내가 아는 걸, 상대방도 알텐데 저런 행동을 한다라는 나만의 오해에서 발생하기도 한다.

다른 사람을 무시하는 마음에서도 화가 생겨난다.

앞으로 같이 해나가야 하는데, 그 사람이 그 역할을 못해주면 어떻하나 우려에서 발생한다.

나보다 다른 사람이 부족한 면에 초점을 두고 있을 때 발생한다.


화는 일어날 수 있는 감정이라 한다. 감정이 생겨나는 것이 잘못은 아니라 한다. 화도 낼 수 있어야 진정 건강한 정신을 가졌다 할 수 있다 한다.

그럼에도 화는 모두에게 불편하고 불쾌하다.

그래서 나는 아직도 화에 대해 많이 생각한다. 남편과 싸울 때도 나는 솔직한 감정에 충실했었는데, 10년간 싸우고나서는 화를 꺼내어 보이는 것에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어쩌면 화는 나로 부터 오기 때문에, 드러내기 전에 내가 소화해보는 시간이 필요한 것 같다. 부부관계에서는 물론 두 사람과의 타이밍 때문에 이 화를 잘 다루어 내는 것이 상당히 어렵다.

딸은 어린 아이이고 내말을 단번에 뉘앙스까지 캐치하기 어려울 것이라 생각해서 설명을 하려고하지만, 아직 내 통제안에 있다는 생각에 강압적일 때도 있다.

내가 자랄 때도 우리 엄마도 나에게 화를 많이 내시는 편이였다.

특히 내가 엄마가 찾아오라는 물건을 못 찾을 때, 많이 욱하셨던 것 같다.

(경상도 사투리로) 야물지 못하다. 라는 생각이 엄마를 걱정 시켰던 것일까? 당시에는 별것이 아닌데, 왜이렇게 엄마는 화를 내나 라고 생각했지만, 엄마가 된 이제 알 것 같다. 엄마는 밥상을 차리느라 오랜 시간 서서 요리를 한 뒤 힘들어서였던 것 같다. 빨래를 널고 청소를 하느라 손이 두개라도 모자란데, 척하면 척 알아 듣지 못하는 딸이 답답했을 터였다. 딸이라도 손에 물 한방울 안 묻히게 키웠기에 살림의 '살'자도 모르고 관심없는 둔한 딸이였기에 걱정도 되셨을 것이다. 반찬 만들 때 순서나 팁을 알려주면 건성으로 대답하는 딸이 못 마땅 하셨을 것이다. 저게 나중에 혼자 밥해먹을 땐 어쩌려고 저러나 걱정하셨을 거다.


걱정을 화로 표현하지 말고, 걱정이란 단어로만 바꿔도 화자나 청자나 서로 좋았을 텐데 말이다.

하지만 일상에서는 이론처럼 퍼뜩퍼뜩 떠오르지 않고 내 지르게 된다. 불행히도 우리 남편 또한 화가 많은 사람이다. 나는 결혼해서 화를 입 밖으로 냈던 것 같다. 항상 나는 화가 없는 사람이라 생각했는데, 지금 생각하면 불만은 속으로 많았던 것 같다. 그러나 K장녀이라 엄마에게 소리내어 불만을 말하는 성격도 아니였고, 동생이 워낙 수용적인 성격이라 동생과도 소리내어 싸움이 안되었다. 아빠는 워낙 부드럽고 항상 유쾌하셨기엔 아빠의 단어에는 화가 일절 없었다. 아빠가 돌아가시고 엄마에게 전해 듣기로 아빠는 우리가 시험성적이 기대만큼 안 좋을 때에도 조금 더 공부하라는 말도 조심스러워 엄마에게 부탁했다고 하셨다.

그래서 나는 화가 없는 아빠 성향을 닮은 줄 알고 30년을 살아왔고 소리를 지르며 화를 내 본적이 없었다.

그런데 결혼을 하고, 참 다른 남편을 만나고 싸움의 패턴이 소리 지르기가 되면서 화를 다루는 방법이 안 좋은 방향으로 전환되었다. 10년이 지난 지금, 우리는 이제 소리 지르는 싸움이 얼마나 서로 상처가 되는지 조금은 깨달았고 조심하는 중이다.

싸움이 불편한 것은 모두 같을 것이다. 그런데 반드시 현장에서 꼭 그 이야기를 해야 끝나는 사람이 있고, 피하는 사람이 있는건 확실하다. 소리를 내지르되 그날 끝내는 사람과, 말은 안 하지만 답답하게 몇일을 가는 성향의 사람 중 누가 더 낫다 할 수 없는 문제다.


딸에게도 이런 화가 많을 것이다. 어떻게 다뤄 내야하는지 본보기가 되어야 할텐데 참 부족한 엄마, 아빠이다. 어제 밤에도 누워서 딸에게 이야기를 했다. "서현아, 다른 친구가 맘에 들지 않아도 입 밖으로 그 말을 꺼내지마. 분명히 니가 원하는 다른 마음이 있을꺼야" 구구절절 설명을 덧 붙였더니, 10살 딸이 "아~ 그럴수도 있겠구나."정도로 반응을 한다.

분명 어떤 의미인지 10살인 지금은 다 알지 못할 것이다.

그러나 먼저 화를 다뤄내고 있는 엄마인 나는 나랑 똑닮은 딸에게 오늘도 이야기한다.

"화를 낸게 아니라 걱정이 되어서 서현이에게 엄마가 말해주는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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