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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자기반성 Oct 19. 2023

우리 딸, 딸에게 받는 위로

내 딸이기에 줄 수 있는 최고의 위로도 받아 본다

이 아이를 잘 키울 수 있을까? 에 대한 수많은 생각과 미래에 대한 불안으로 매 순간 번뇌와 고민을 한다. 모든 부모가 그럴 것이다.


어떨 땐 내 고민이 무색할 정도로, 어떨 땐 내 고민이 더 깊어지기도 한다. 나의 아이이지만 내가 아닌 나와 다른, 하나의 생명체를 양육하는 것은 정말 쉽지 않다. 그럴 때마다 단지 옆에 함께 있어주는 엄마만으로 충분하다고 되뇌지만, 온전히 존재의 가치만 인정하는 것도 쉽지 않을 때가 빈번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서로에게 온전히 위로받는다. 개입하는 상황이나 주변인이 아닌, 오롯이 엄마와 딸 우리에게만 받을 수 있는 위로. 편안함. 사랑. 아이를 양육하지 않던 아가씨 시절에도 와닿았던 말이 있다.  '효도는 어렸을 때 이미 다 했다고.' 뱃속에 아이가 생겼을 때부터 말할 수 없이 벅찬 기쁨과 행복은 정말 이루 다 말할 수 없을 것이다. 아빠는 서운하겠지만, 엄마인 내 뱃속에서 키우는 10달의 변화와 교감은 엄마만 안다. 어쩌면 아이도 너무 어려 무의식에는 있으나, 기억에 없으니 오롯이 엄마의 기억에만 존재하는 그 10달은 떠올리기만 해도 뭉클하고 정말 신비로운 일이다.

우리 모두가 그렇게 엄마 뱃속으로부터 나왔다. 너무 당연한 문장인데, 그 문장을 몸소 겪고 나면 엄마인 나에게도 그 문장 마디마디의 단락의 이야기가 마치 천상계에서 잠시 겪었던 신비한 일로 바뀌는 것 같다.

내가 아닌 사람을 잉태하는 일, 아기집부터 내가 섭취하는 음식과 내 기분을 모두 함께하는 존재. 바로 내 아이. 그것도 첫째 딸. 존재만으로 사랑스러운 딸인 건 분명한 사실이다.

첫째 딸의 의미는 아빠보다 엄마에게 더 큰 의미가 있는 것 같다. 나와 전혀 다른 성격의 딸이 태어날 가능성도 매우 높지만, 일단 나와 동성이고 나와 비슷한 인생길을 걸으며 나를 이해할 가능성이 이성인 자녀보다 높지 않을까, 가능성이 높지는 않더라도 비슷한 상황이 더 자주 주어지지 않을까라는 기대에 든든한 지원군임에 마음이 풍성해진다.

아직 사춘기가 오지는 않았지만, 그녀의 사춘기 시절에 내가 그녀를 더 잘 이해해 볼 수 있으리라. 더 마음을 다독여주며 위로를 줄 수 있는 사람은 아빠가 아닌 엄마이지 않을까, 더 이해하니 더 상처 주고 그 감정이 별 것 아니라 무시하지 않는 태도만 가지고 있다면 그녀에게도 내가 위로가 되었으면 좋겠다.

그녀가 마음이 힘들 때 서스름 없이 이야기만 해줄 수 있어도 고마울 것 같다. 그렇게 또 우리의 시간이 가겠지. 내가 우리 엄마와 했던 것처럼.

그렇게 나는 딸을 보며 나의 사춘기 시절로 돌아가고, 그때 우리 엄마 입장에 서서 그날을 이해한다. 매 순간 3대가 가졌던 감정을 헤엄치며 울기도 하고 웃기도 한다.

그리고 나아가 3대째인 우리 딸에게는 무엇을 알려주고, 어떤 걸 더 자세히 이야기하며, 어떤 감정은 버리라 이야기할지 고민한다.


첫째는 7살 때까지 입주이모 손에 컸다. 워킹맘이고 첫째여서 서툴렀던 엄마사람은 많은 것을 놓쳤고 그녀의 학습과 감정 변화를 깊게 볼 수 없었다.

5살쯤 어느 날, 아파트 앞 어린이집에서 연락이 왔다. "서현이가 손가락에 힘이 부족해서 소근육 교육을 조금더 시켜달라는 전화였다." 당시 초보 엄마사람은 어리니까 그럴 수 있지라고 생각하며 조금 크면서 잘하겠지, 엄마아빠 모두 문제없으니, 큰 부분은 아닐 거야라고 넘겼었다.

지금 생각하면, 스케치북에 그림을 더 그려 보라고 시켜보거나 학습지를 따라 써보게라도 했어야 했나 싶지만 아마 지켜보지는 않고 쿠팡에서 스케치북 결제만 더 하고 쉽게 써지는 색연필만 잔뜩 주문해 놓기만 했을 것 같다. 그만큼 워킹맘은 삶의 여유가 없었다. 회사 셔틀을 타고 집에 오면 녹초가 되어 빨리 쉬고 몸을 회복해야지에 모든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

소근육 발달 문제는 싱가포르에 도착해서 8살 1학년을 입학하면서 다시 문제가 됐다. 정확히 말하면 '다시'라기보다, '이미' 존재하던 문제가 '언급'되었다.

읽고 듣는 능력에 비해 쓰기 능력이 현저히 떨어지니, 한 번에 10만 원이 넘는 쓰기 컨설팅을 보내라고 지정 학원 번호를 알려주는 것이다. (싱가포르 학교에서는 선생님들도 과외를 할 수 있게 되어 있어, 연계된 학원이나 지정 학원을 알려주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사실 나는 그때도 '초등학교 1학년이 받는 수업이, 일반 문제집 사면 다 있는 따라 쓰기, 선에 맞춰 쓰기 말고 뭐 어떤 신기한 프로그램이 있겠나. 싶어 보내지 않았다. (보내지 않은 것에 대해 지금도 같은 결정을 했을 것이다.) 3학년이 된 지금은 돌아보면, 소근육에 문제가 있다기보다 성격자체가 끈기가 부족하고 그림 그리기를 즐기지 않는 성격이라 5살 그리기 시간에 대충 그리지 않았을까 라는 생각도 해본다.

워킹맘이어서 옆에 붙어서 손가락 잡고 1번 해줄 것 2번 같이 그려주며 노력하지 않았던 걸 후회하지 말자는 내 합리화일 수도 있다.

싱가포르에 정착한 지 4년이 되어가고, 유년기 언어 노출 폭이 증가하는 초등학교 생활이 시작되면서 영어가 더 편하지는 딸을 보며 한글 교육도 비슷한 상황을 맞이했다.

우리 엄마는 나의 어릴 적 본인이 했던 방식을 언급하며 도움이 많이 되었으니, 너도 애들에게 해주라고 조언하신다. 그 방법은 나에게도 뚜렷한 기억으로 남아 있다. 엄마는 동화책 카세트테이프를 아주 자주 틀어주셨고 우리가 고르게 하시고 바닥에 누워 그림을 그리면서도 듣고, 숙제를 하면서도 틀어뒀었다.

그 방법도 노출을 늘리는 것에 일조를 분명했겠지만, 듣다 보면 흐르는 소리로 변하고 어느새 뭔가에 집중했기 때문에 오디오를 읽어주는 책을 보지 않는 이상 지속적인 도움이 되었던 게 맞을까 싶긴 하다.

하지만 지금 생각해 봐도 엄마의 노력이 있었다. 카세트를 우리 눈높이에 두셨고, 원하는 테이프를 고르도록 독려했고, 꽤 오랜 기간 동일한 방법으로 언어 자극을 주셨다. 하나하나 작은 장치들도 엄마의 노력 없이는 자녀에게 주어지지 않는다. 그런 엄마의 부지런함으로 자녀들은 자란다는 사실은 분명하다.

엄마의 노력과 모국어로 다니는 학교생활로 전혀 한국어에는 문제가 없지만, 언어 능력이 매우 낮은 유전자를 가지고 태어난 나는 영어 학습에 매우 약하다. 현재는 그렇게 결론을 가졌다. 언어도 유전이다.

몇 년을 영어권 국가에 머물고 영어로 업무를 하고 있지만 영어가 그렇게 어렵다. 쓰기, 읽기, 듣기는 정규 교과 과정으로 딱 인문계학생이 필요한 점수 따기로 패스는 했으나, 타고난 언어 능력 없이 아주 애써서 따낸 노력이라고 생각한다.

학습에는 정말 많은 노력과 종합적인 기질이 필요하다.

지극히 평범한 우리 딸을 보아도 그렇고, 내가 지나온 유년기 시절의 애씀을 보아도 그렇다. 우리 엄마의 학습성취도는 확인할 수 없으나, 지속 학습 쪽 일을 하지 않으신 것으로 보아, 엄마 또한 지극히 평범했으리라. 아빠 쪽 유전자가 섞였을까 기대해 보지만, 첫 딸은 외가 유전자인 것 같다.

그래서 나는 우리 첫째 딸을 보면 나를 보는 것 같아 더 답답하지만 충분히 이해한다.

단지 나보다는 조금 더 나은 방법, 쉬운 방향을 택할 수 있도록 찾아주고 싶으나 모든 학습에 기본은 노력이기에 내가 대신해 줄 수 없어했던 소리를 또 할 수밖에.

아마 많은 부모님들이 공감할 내용 일 것이다.


하지만, "너무너무 사랑한다. 내 딸. 엄마는 늘 너를 응원해."라고 크게 외쳐주고 싶다. 지금의 우리 엄마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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