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큐를 너머 유머로

엄마의 다큐를 너머 아빠의 유머로 가거라

by 자기반성

저희 아버지는 매우 유쾌한 분이셨어요. 늘 우리 집 여자 3명을 웃게 만드시는 분이셨어요.

아빠의 유머는 생활 곳곳에 베어 있었고 따뜻했어요.

저희 집 부엌에 전화기가 있었는데, 제가 학교를 다녀와 간식을 먹고 있는 그 시간 아빠는 늘 퇴근 전 엄마께 출발한다 전화를 하셨죠.

"발. 출." (출발)

엄마는 늘 아빠 전화를 받을 땐 얼굴에 미소가 가득하셨어요. 전화기 너머로 들려오는 두 분의 정겨운 대화를 들으며 저희 자매는 자랐죠. 참 행운이라는 것을 제가 가정을 꾸리며 더 알게 되네요.

아빠는 지금 MBTI로 해석하자면 E 셨어요. 외향적이시고, 리더십과 유머를 장착하여 어느 모임에서나 의장을 맡으셨어요. 제가 본 남자의 이상적인 모습은 늘 존경하던 저희 아빠였고, 저희 엄마의 기준도 상향이었답니다.

두 딸의 사위를 보는 시점엔 늘 '아빠만 한 사람이 없다.' 하시며 엄마 아빠의 첫 만남 이야기를 해주시기도 했어요. 저도 엄마의 의견에 한치의 반대가 없어요. 정말 아빠 같은 사람은 있을까? 엄마는 참 남편복이 많다.

그런데 제 남편과 연애 중에 '발. 출'이라는 말을 들었어요. 남편은 아마도 의도를 가지고 말을 하지 않았겠지만, 저에게 이 남자를 다시 보게 만든 단어였죠.

저희 남편도 E이고 유머러스합니다.

저의 '남편 이상형' 조건에 '유머'는 우선순위가 높지는 않았지만, 기본적으로 재미없는 남자를 좋아할 여자분은 없을 듯해요. 센스라는 것이 자상함이 될 수도 있고 츤데레일 수도 있듯 유머센스는 길러지는 것이 아닌 장착템이더라고요. 매일 일상을 살아야 하는 부부 사이에 노력이 아닌 타고난 센스는 참 필요한 요소라 생각됩니다.


반면, 저는 1부터 9까지는 다큐였던 것 같아요.

유머를 필요로 하는 순간에 상대방이 웃기면 크게 웃을 줄만 알았지, 유머센스는 장착하지 못했죠.

유머센스는 없는데 또 유머코드는 확고해서 남을 까는 유머는 질색했던 것 같아요. 제가 가장 좋아하는 개그맨은 고인이 되셨지만 따뜻했던 지선님과 장도연님의 개그를 좋아합니다.

사실 다큐인 여자가 유머인 남자랑 같이 일상을 사는 일은 감사함의 연속입니다. 제가 엄마가 되고 유머센스에 더 목을 매게 된 것 같아요. 왜냐면 우리 딸들은 위기의 순간, 당황스러운 순간, 힘든 순간에 다큐가 아닌 유머로 문제를 대할 수 있다면 너무 감사하겠는 마음이 생기더라구요. 많은 엄마의 마음이겠죠?

유전자 중에 엄마는 안 가지고 태어났어도 외할아버지와 아빠가 지녔으니 "너희는 타고난 유머센스가 있을 거야, 그걸 엄마는 너희가 성장하는 중에 더 발견해 주고 키워주고 싶어."라는 생각을 가지게 되었어요.

살아오면서 유머, 참 중요하고 내가 존경하는 분들도 유머를 장착하신 분들이 많더라고요. 나이가 들어도 참 유쾌하신 분들을 저희 딸들이 닮았으면 좋겠습니다. 유머센스를 장착하지 않은 저는 그분들을 닮기위해 뼈를 깎는 노력을 해야합니다.


반면, 와이프가 핀잔주고 다큐로 받아쳐서 힘 빠질 텐데도 불구하고 늘 재밌는 이야기나 유머로 받아쳐줘서 고맙다 남편아. 아이들도 아빠의 영향을 받아 그렇게 자랐으면 좋겠어. 내가 더더 많이 웃을게.

우리 집 유머를 담당해 줘. 딸들아 엄마의 다큐를 뛰어넘어 아빠의 유머로 가거라.


사고의 시프트가 일어나 언젠가 '나 오늘 그 멘트 괜찮았다.'라고 스스로를 칭찬할 날이 많아지기를 바라봅니다. 모두 웃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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