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입생 때 기숙사에 사는 부산 친구가 한 명 있었다. 패션 스타일이 아주 훌륭한 친구였다. 그런데 기숙사 친구들에게 들은 소문으로는 그 친구 방(정확히 침대구역) 청소문제가 있다고 했다. 그 후에 나는 그 친구 기숙사에 놀러 갈 일이 있었고 소문을 눈으로 직접 확인할 수 있었다.
자취를 시작하면서 그래도 보고 자라온 엄마의 청소루틴과 전화 너머로 들려오는 잔소리 덕분에 정리정돈 정도는 했던 것 같은데, 미숙한 우리 눈에도 그 친구는 다소 심하다는 생각을 했다. 왜냐면 그 친구는 다른 친구들에 비해 본인의 꾸밈에 매우 진심이었기 때문에, 본인 주변도 깔끔할 것이라는 모두의 기대에 못 미치 쳤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엄마가 다 뒷바라지해주던 생활에서 떨어져 나와 혼자 자취하던 나도 뭐 크게 다르지 않았다. 걸레질은 정말 몇 달에 한 번이나 했던 것 같고 학교 과제한다는 명목으로 방에서는 잠만 자면서 먼지가 굴러다니면 쓱 닦아내고 내 시간을 청소에는 쓰지 않던 시절이었다.
40대 이후에는 자기 관리의 결과가 여실이 눈에 보이기 시작하는 나이이다. 피부, 머릿결, 운동을 하느냐 안 하느냐 눈에 보이는 몸의 탄력과 체력. 이민을 와서 비교하는 시선에 많이 무뎌져 있지만, 다른 사람 눈을 떠나 나 스스로 느끼게 되는 나를 가꾸는 시간의 결과물들이 나타는 시기인 건 맞는 것 같다.
나는 갑상선 저하로 약을 복용 중인데 하필 저하증은 신진대사가 느려져 살이 쉽게 찌는 체질로 변한다는 특징이 있다. 왜 갑상선 저하가 찾아왔는지 이유는 모르겠으나, 운동은 눈곱만큼 하고 살이 안 빠지는 이유를 갑상선 저하 핑계를 대고 있다. 몸이 쉽게 지치기 때문에 좀처럼 의지를 다잡는 일이 30대 때와 같지 않고, 핑계될 것이 있으니 마음도 같이 약해지는 느낌이다.
내 몸하나 단정히 깔끔히 건사하는 일만 잘해도 됐던 20대, 가정을 이루고 아이가 태어나면서 서툴던 살림과 육아에 더 많은 에너지를 써야 했던 30대, 아직도 많이 남은 육아의 길과 반대로 점점 떨어지는 체력으로 내 몸 하나 건사하는 일 마저 싶지 않아 지는 40대이다.
남편과 이야기하다 "한국사람들은 극강의 효율적인 운동을 찾느라 운동을 안 하다"는 이야기에 빵 터졌다. 너무 귀한 내 시간을 들이면서 할 운동인데, 도대체 최대의 효율적인 운동이 뭘까만 찾고 있던 내 모습이라 정곡을 찌른 농담에 한참을 웃었다.
40대가 되어서 거저 되는 일은 없고, 노력으로 차근차근해야 하는 영역이 운동임을 알고 있지만 한국인의 특징인 걸까, 요행을 바라며 허구를 쫒는 망상은 빨리 '알아차림'으로 저 떠다니는 생각의 조각들을 잘 주어 담아야 하는데, 불혹인데 말이다.
30대 때 회사셔틀을 타고 새벽같이 출근해서 그룹운동을 했었다.
요가와 필라테스의 중간쯤 되는 운동강도는 강하지 않은 운동이었지만 그래도 웬만하면 참석하려고 노력했었다. 체력을 더 증강시키지는 못해도 지금의 체력 정도라도 유지하고 싶은 마음이었던 것 같다.
운동강도가 스트레칭 수준이었고 운동을 끝내고 사내에서 씻고 아침을 먹고 일을 하러 바로 올라가야 하는 시간이 빠듯했기 때문에 나는 운동할 시간이 많이 없다는 핑계만 갖고 있었다. 그땐 운동을 통해 뭔가 이루려는 목표가 없었고 막연히 휴직을 하고 시간이 생기면 당연히 몇 시간씩 운동에 전념하지 않을까 생각만 했었더랬다. 그런데 남편과 운동을 해보니, 운동은 몇 시간씩 하는 일이라기보다 내 한계치를 알고 이룰 수 있는 정도의 목표를 세우고 조금씩 운동의 강도를 높이는 일이었으며, 매일의 근육통을 견디며 꾸준히 해야 하는 일이었다. 헬퍼가 오면 식단을 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는데 생각보다 맛있는 음식을 포기하는 일은 환경의 문제라기보다 40년간 먹어 온 내 식습관이라는 것도 알게 됐다.
뭐 먹지에 대한 고민이 그 정도로 나에게 가치가 있는 일인지 몰랐고, 나의 첫 24시간 공복은 '와 정말 안 먹는 게 되는 건가' 충격적이었다.
이전엔 늘 체력도 좋고 살도 많이 찌지 않는 표준형이라 생각했는데, 어릴 땐 전혀 관심사가 아니였던 운동이 40대가 되고서는 풀기 쉽지 않은 시험문제 같다. 살도 계속 찌고 붙은 살은 왜 이렇게 안 빠지는 것인지, 강철 체력이었는데 왜 이리 체력은 떨어지는 것인지 속상하다. '효율 좋은 운동 그만 따지고 꾸준히라도 해야지, 나 하나라도 잘 건사해나가야지.' 글을 쓰면서 다시 의지를 다 잡는다. 갑상선 다이어트 검색도 그만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