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어진 일상 아니라 만드는 일상

이제까지 밥은 찾아 먹기만 하면 되는 쉬운 일인 줄 알았다

by 자기반성

일어나면 늘 차려져 있던 엄마의 밥상.

한식은 뜨거워야 맛있는 것. 국도 뜨거워야 했던 완벽했던 엄마의 밥상.

그렇게 19년 꼬박, 멀리 떨어져 자취하면서도 엄마의 반찬들을 10여 년을 거쳐 회사에서 사원증 태그만 하면 먹을 수 있던 밥상. 회사에서 육아휴직이나 재택 해서 안 좋은 점이 뭐냐 물었을 때 회사 아침, 점심, 저녁 못 먹는 것이라 했던 동료들의 말에서도 밥을 차려 먹는 일은 40살이 되어도 남이 차려주던 밥상에 벗어나지 못했었다.


아이들이 어렸던 시절에는 아이들용 음식을 만드느라 주어진 숙제처럼 애썼다가 아이들이 초등학생이 되고는 조금 더 밥상에 신경을 쓰게 되었다. 요리에 별다른 재주가 없는 내가 회사를 떠나 전업주부가 되면서 요리를 한 시간이 고작 몇 년 되지 않는다는 사실이 나도 놀랍다. 중간에 헬퍼도 고용했으니 한국인인 우리 집 밥상에 대해 진지하게 임한 게 몇 년 되지 않는다.

그리고 싱가포르에 와서 더운 나라에 살다 보니 한국에서 보다 조금 더 운동을 하면서 밥상은 또 달라졌다. 경상도였고 밥상에 진심이셨던 엄마의 밥상에는 생선, 고기, 콩 여러 가지 단백질이 다양한 채소와 함께 했었다면, 내 밥상에는 단백질이 부족한 일부 채소와 다양하지 못한 메인 메뉴가 다였다.

채소를 좋아하는 나는 단백질을 턱없이 부족하게 먹는다는 것도 싱가포르에 와서 알았으니, 골고루 먹어야 한다는 것은 교육을 통해서 늘 들어왔으나, 막상 내가 선호하는 음식에는 단백질이 거의 없었고, 식재료가 부족한 싱가포르에서는 더욱 그랬다고 합의화해 본다.


일상을 산다는 것은 당연한 말이고 흔하고 다 비슷하지 않나라는 생각을 했었다.

그런데 코로나, 해외생활을 하면서 일상을 다시 보게 되었다.

새벽에 집을 나서 회사셔틀을 타고 저녁에 다시 회사셔틀을 타고 집에 돌아와 잠시 쉬다가 잠드는 시간의 일상은 그저 회사가 나에게 주는 몇 시간 안 되는 시간을 쪼개 뭐라도 하려고 애썼던 시간이었다.

시간에 쫓겨 분주했던 그때와 달리, 시간의 여유가 생긴 요즘 편안해진 일상은 생각보다 단순하면서 복잡했다.

그리고 시간은 여유가 있으나 마음속은 복잡할 때도 많았다.

이 시간들을 이렇게 보내도 되는 것인가. 그래서 내 나름대로 만든 일상을 살아보려 노력했다. 회사를 가는 것처럼 일어나서 책상에 앉아해야 할 일을 생각해 보거나 책을 읽는 시간을 갖는 것을 시작했었다. 책상이라는 것이 조금 우습기도 했다. 당장의 업무나 공부가 아닌 시간에 명상을 책상에 앉아서 하는 게 편했던 시간이었다.

그러다가 스트레칭을 위해 요가매트를 펴기도 하고, 러닝머신을 타러 운동을 하기도 했다.

순서가 뭐가 중하겠나. 뭔가 나에게 맞는 게 어떤 방법인지 알아보기 위해 이것저것 시도해 본 시간도 필요하다는 것이 당연하면서도 너무 소소해서 싱거웠다.


뭔가 대단하고 목적이 있는 것에 애쓰던 것에 너무 힘을 쏟고 있던 나에게 일상의 것들은 일을 하다 시간이 남을 때 가장 끌리는 것을 해보는 정도에 그쳐 있었다면, 지금 일상은 시간을 효율적으로 쓰고 싶은 마음에 중심이 있다.


너무 힘든 일이 있을 때, 많은 경험을 가진 어른이 하는 이야기 중 와닿았던 문자이 있다.

힘든 생활에 흔들릴지라도 니 삶의 중심을 놓지 말아라.

복잡하고 어지러울수록 사람은 자신을 잃기 쉽다. 어떤 상황에서도 내 삶을 붙잡고 있는다는 것이 그 어느 것보다 중요한 일이 된다는 의미일 것이다.


일상은 그랬다.

내가 하루를 온전히 스스로에게 약속한 것들을 지켜 살아내는 것.

내 삶을 내가 만들며 매일 있는 일상을 내가 지키는 것.

일상을 포기하고 살 수 없게 된다는 것은 나에게 엄청난 일이 생겼다는 것일 테니까.

시시하다 생각했던 지금의 일상이 얼마나 소중한 시간인지 나 스스로 더 깨달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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