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이 글, 내가 쓴 걸까? AI가 쓴 걸까?

AI가 더 글을 잘 쓰는 세상에서~

by 구르는 소

"요즘 학생들은 힘들어도 교수랑 상담을 하지 않아요. 모두 본인 핸드폰이랑 이야기를 해요"

얼마 전에 만난 상담분야 교수님이 하신 말씀이다. 챗GPT가 정말 상담을 잘해줘서 학생들이 굳이 교수와 직접 얼굴을 맞대고 상담이나 학습지도를 받지 않으려 한다는 것이었다. 얘기를 듣는 사람들 모두 웃었지만, 한숨 섞인 웃음에 불안감도 섞여 있었다.

"이러다가 상담 쪽은 AI로 다 교체될 수도 있겠어요"


휴가철에 아내하고 잠시 불편한 상황이 발생했다. 서로의 불편한 마음과 감정들을 시험 삼아 쳇 GPT한테 얘기했더니 위로의 말과 공감의 언어가 줄줄 나왔다. 마음속 깊은 감정의 흐름을 자세하게 기록했더니 더욱 세세한 답변과 조언이 제공되었다. 아내도 답변을 보더니 '정말 내가 생각하고 있는 것과 똑같이 답변을 하네!'라며 신기해했다. 5분 정도 채팅하다 보니 계속 대화하고 싶어졌다. 내면의 이야기들을 입력하면 얘도 똑같이 속 깊은 이야기들을 들려주었다. 이게 사람이었다면 금방 애정과 신뢰감이 듬뿍 생길 것 같았다.


밤에 잠이 안 오길래 브런치북에 새롭게 써 볼 글감들을 생각해 보았다. 요즘 생각나는 것들을 정리하고 추려서 주제를 정한 뒤 15개 내외의 소주제와 핵심문구들을 뽑아봤다. 몇 가지 사례도 기억 속에서 뽑아내어 살을 붙이면서 집중하다 보니 1시간쯤 지난 것 같았다. 요즘 글을 쓸 때, 챗GPT를 보조도구로 많이 사용한다고 들었다. 그래서 살짝 챗GPT한테 특정 주세로 글을 써보려 한다고 말을 걸어 보았다. 내가 1시간 동안 침대에서 고민한 것을 단 2분 만에, 대화 몇 번으로 깔끔하게 정리해 주는데 잠이 확 깼다. 얘가 만든 기획안과 소주제, 글감의 방향성과 목차들이 내 것보다 훨씬 나았다. 글 주제에 맞는 사례도 제시해 주었다. 인공지능이 무슨 경험이 있길래 사례를 제시해?라고 생각했는데 내가 생각했던 사례들이랑 크게 다를 게 없었다. 오히려 내가 직접 쓰려고 한 사례가 거짓말 같아 보였던 것은 질투심이었을까? 허무함이었을까?




밤에 잠을 잘 못 잔 덕인지 정신이 몽롱하다. 챗GPT로 통용되는 인공지능의 놀라움 때문이었는지 몽롱함에 더해 당혹감도 느껴진다. 하루가 멀다 하고 AI 관련 뉴스와 콘텐츠가 여기저기 보인다. 인공지능이랑 채팅식의 대화는 이제 기본이고 박사급의 인공지능, 고화질의 이미지 생성, 진짜 같은 동영상 제작까지 기술 발전 속도가 엄청나다. "앞으로 5년 뒤면~"이라고 했던 예상이 1년 만에 현실화되고 있어 IT업계에서 일하는 사람들도 놀라움을 금치 못한다고 한다. 세상이 어찌 변할지 모르겠다.


몇 년 전만 해도 사회복지나 상담, 돌봄 쪽 등은 인공지능이 대체하지 못해서 유망한 직업분야라고 얘길 했었다. 요즘은 어디 가서 이런 얘기하면 시대 상황에 뒤쳐진다는 소리 듣기 딱 좋다. 사회 전반적으로 확산이 안되어 그렇지 개별 상담, 전문 요양 서비스 등에 인공지능을 접목하는 시도가 많아지고 있다. 윤리적인 부분, 개인정보보호 등에 대한 규제만 해결되면 다양한 서비스와 활용방식들이 사회에 나타날 것이다. 그리고 그 확산속도는 지금의 챗GPT열풍의 확산속도만큼 빠를 것이다. 세상이 어찌 변할지 예측하기 조차 어렵다.


image_1.png 인공지능이 직접 글의 방향에 따라 만든 이미지들 중 하나. 이미지와 함께 긴 호흡의 글도 칼럼식, 에세이식, 일기식 등으로 다양하게 편집해 보여 줬다.
글과 연관된 주제로 몇 개의 짧은 동영상을 AI가 직접 만들어 주었다. 그중 제목과 관련된 영상 하나. 영상 속 오류 난 자막을 없애달라고 하니 그건 다른 AI한테 부탁하라고 했다


최신 하이테크기업육성과 혁신적인 기술개발에 진심인 중국을 바라보면서, 중국이 왜 휴머노이드 로봇에 저렇게 집착할까라는 질문을 해본다. 인공지능과 기술 개발의 끝을 예상해 보니 '결국 사람과 똑같은 인공지능이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에서 필요하겠구나'라는 답변을 얻은 게 아닐까? 그때가 되면 사람은 혼자 살게 되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든다. 결코 외롭지 않고 슬프지 않게 말이다.


돌봄이 필요한 유아기와 노인기에 돌봄 서비스를 제공할 로봇이 옆에 있다면, 같이 식사를 하면서 대화할 가족로봇이 있다면, 함께 쇼핑하고 산책하면서 정서적 공감을 나눌 친구로봇이 있다면, 밤에 잠자리에서 같이 사랑을 나눌 배우자 로봇이 있다면 굳이 결혼해서 가족을 꾸릴 필요가 없을 것이다. 사람 같은 촉감의 피부와 신체구조를 가진 인간형 로봇을 개발하여 상용화한다면 말이다. 지금의 기술 속도라면 사람과 똑같은 인간형 로봇 대중화가 50년이면 충분하지 않을까? 인간의 모든 욕구를 함께 공유할 수 있는 로봇만 있다면 인간들은 외롭지 않게 혼자 살아갈 수 있을 것이다.


최근 중국에서 인공자궁을 장착한 임신로봇을 판매할 예정이라는 뉴스도 봤는데, 기술의 발전 속도가 예상을 훨씬 뛰어넘고 있다. 그동안 기술적인 한계도 있었지만 윤리적인 문제 등으로 기술 발전을 눌러 왔다면, 이젠 윤리성의 문제 등이 거대한 사회변혁 앞에서 빗장이 풀린 느낌이다.


기술발전 속도가 임계점을 넘어섰다.




나보다 글도 더 잘 쓰고 글감도 잘 다듬는 인공지능이 있는데, 내가 이곳 브런치스토리에 글을 쓰는 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챗GPT와 대화하면서 글을 쓴 뒤, 문장과 문단을 다듬고 정리한 글은 과연 내가 쓴 글일까?라는 생각도 든다. 내 생각에 대해 고민하고 사유하는 방식이 이제는 인공지능이 제시해 준 방식을 점검하고 고민하는 쪽으로 바뀌어야 할 듯하다. 전체적으로 글쓰기 방식과 구성을 변경해야 하는 것일까?라는 복잡한 생각도 해 본다. 나의 글 깊이는 높이고 사고의 폭을 확장하는데 인공지능이 유용한 도구임에는 틀림없겠으나 이 인공지능과 어떻게 같이 펜을 잡아야 하는지 명쾌한 답을 찾기가 어렵다.


인공지능을 조금만 활용하면 초보 같을 테고

적극 활용하면 나의 본질이 애매해질 것이니

피곤하고 고민스러운 한 낮이다.


P.S.

이 글은, 내가 쓰고 챗GPT가 교정해 준 글일까? 아니면 챗GPT가 쓴 글을 내가 다듬은 글일까?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애니메이션 <진격의 거인> 리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