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 3 수험생들, 온 맘으로 응원합니다.
2025년 대입 수시전형의 결과가 거의 마무리되던 며칠 전, 학원에서 돌아온 딸아이는 언제나처럼 야식 바구니를 펼쳤다. 평소였으면 이러쿵저러쿵 말도 좀 하련만 화가 난 듯 얼굴표정이 굳어 있었다.
"밤 11시가 넘었어. 다이어트한다면서 또 그렇게 먹으면 다시 살찐다. 조금만 먹어"
강남에서 연기학원을 다니며 밤 11시가 넘어 집에 돌아오는 딸아이와의 의례적인 대화였다. 그런데 갑자기 야식을 먹던 아이에서 눈물이 뚝뚝 떨어졌다.
이런. 오늘이 마지막 수시전형 합격자 발표일이었나 보다.
나도 물 한잔 마시고 딸아이한테 다가가 어깨를 다독여주었다.
"괜찮아. 최선을 다했으면 됐지. 아직 정시모집도 남았잖아. 아직 끝이 아니야. 괜찮아."
중학생 때 오빠랑 잠시 모델학원을 다녔던 둘째 딸은 고 3이 되던 해, 갑자기 연기자가 되겠다며 연기학원을 다녔다. 강남의 한 연기입시학원에 1년여간 다니면서 학교와 입시학원을 오가는 나날을 보냈다. 연기를 얼마나 잘하는지 모르겠지만, 학원에서는 나름 선생님들한테 인정을 받았던 모양이다. 6개 대학교에 수시전형 지원서를 접수하면서 1개 학교 정도에는 합격을 하리라고 생각했었나 보다. 계속되는 불합격 공지에도 아무렇지 않게 극장으로, 학교로, 노래방으로, 학원으로 돌아다니던 딸아이였다. 항상 당찼던 둘째는 결국 마지막 합격자 발표일에 눈물을 떨구고야 말았다.
딸아이의 마음만큼 아빠의 마음도 속상하다. 괜찮다며 딸의 어깨를 다독여주고선 빨리 잠자리에 들라고 한 뒤 방으로 들어왔다. 이불을 뒤집어쓰고 나서 나도 눈물을 흘렸다.
"아빠! 다음번엔 호랑이 보러 가자!"
경기도 인근의 작은 동물원에서 토끼랑 양들을 보고 난 뒤, 당시 5살이던 둘째 딸아이가 외쳤다.
"그래. 다음번에는 우리 다 같이 호랑이랑 사자 보러 가자. 아빠가 엄청 큰 호랑이 보여줄게"
"아빠! 돌고래 태워 줘!"
물속에서 놀기를 좋아하던 둘째는 수영을 배우기 전 11살 무렵까지, 물속에서 내 등위에 올라타서 돌고래처럼 수영해 주는 것을 좋아했다. 숨이 차서 머리를 들어 올리면 내 머리를 물속에 다시 처박았다. 물 좀 먹으면 어쩌랴. 물안에서 등위의 딸아이 웃는 소리면 그걸로 충분했다.
"아빠! 20분만 더 놀면 안 돼?"
가족여행을 가서 숙소의 수영장이나 놀이터에서 오빠, 동생과 놀던 둘째 딸아이는 놀이의 재미발동이 늦게 걸리곤 했다. 되돌아가야 할 시간이 되면 꼭 혼자서라도 더 놀겠다며 고집을 피우기 일쑤였다. 충분히 놀지 못했다고 생각해서인지 삼 형제가 같이 놀더라도 혼자 삐치곤 했다. 중학생이 되어서도 종종 그래서 여행지에서의 사진 속 둘째 표정이 일그러진 것들이 있다. 그럴 때마다 5분에서 10분 정도씩 추가 시간을 주고 더 놀게 해 주었다. 다른 시간을 좀 줄여서 둘째한테 주면 되었다.
아이를 낳고 키우면서 내 경제적, 신체적 능력 범위 안에서 딸이 원하는 바를 모두 이루어 주려고 노력했다. 삼시세끼 굶기지 않고 사계절 제때 맞는 옷 입혀 키웠으니 기본적 욕구는 잘 해결해 주었다. 자전거를 타고 싶을 때 자전거도 사주어 자전거 타는 법을 알려 주었다. 동물들이 보고 싶을 땐 동물원과 수족관에 데려가 주었다. 피아노 학원에 다니고 싶다 하여 피아노를 배우게 해 주었고 태권도학원의 줄넘기대회에 나가고 싶다 하면 대회에 참가할 수 있게 해 주었다. 딸이 초등학교 육상대회에 나간다고 할 때는 같이 가서 응원도 해주었다. 아빠가, 아빠로서 할 수 있고 아이가 하고 싶은 일은 다 해주려고 노력했다.
내 의지로, 내 능력 범위 안에서 할 수 있는 것들은 다 해주려는 마음. 아빠들의 기본적 자세이지 않던가!
어릴 때는 아이가 원하면 모든 것을 해줄 수 있고, 모든 것을 이루어 줄 수 있는 사람이 바로 아빠였다. 먹고 싶은 떡볶이 마음껏 사주고 수영할 때 숨 한번 크게 참아주는 것은 아빠가 언제든 해줄 수 있었다. 모든 게 가능한 슈퍼맨 아빠였다. 그런데 나이가 들어가면서, 딸아이가 성장해 가면서, 내가 해줄 수 있는 게 점차 사라지기 시작했다. 육상대회 본선에 나가는 것은 내 힘으로 해줄 수 없었다. 딸이 좋아하는 인기연예인의 공연에 가서 5시간 동안 같이 기다렸다가 3시간 공연 관람에 동참해 줄 수가 없었다. 몇 만 원짜리 자전거는 사줄 수 있었지만 몇 백만 원짜리 교습권은 선뜻 끊어 줄 수 없었다. 집 근처 숲 유치원에는 입학시킬 수 있었지만, 딸이 가고 싶은 예술고등학교에 입학시켜 줄 수 없었다. 대입 수시전형의 합격선물도 해 줄 수가 없었다.
슈퍼맨 아빠의 능력은 아이가 성장하면서 사라져 버렸다. 산타클로스가 가상의 인물인 것을 아이가 성장하면서 알게 되듯이 딸아이는 커가면서 아빠의 능력이 그다지 크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딸아이의 눈물에서, 내 눈물에서 이 의미를 알았다.
딸아이를 포함한 세명의 자녀가 커가면서, 앞으로 더 많은 것들이 누군가 해결해 줄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내가 슈퍼맨이 아니라는 것을 아이들은 더욱 많이 알아가게 될 것이고 나도 강하게 느껴갈 터이다. 시간이 흐를수록 아이들은 아빠에 대한 기대를 줄여 나갈 것이다. 세상의 모든 문제와 어려움 속에서 아빠도 여전히 헤매고 있음을 아이들은 알게 될 것이다. 어렸을 적 모든 것을 해결해 주었던 아빠의 모습은 기억 속 작은 파편이 되었다가 녹아 없어질 것이다. 그렇게 아이들은 성장하고 나는 늙어갈 것이리라.
늙는다는 것은, 자녀들한테 해 줄 수 있는 나의 것들을 잃어가는 과정이다.
대학입학이라는 결과를 선물로 안겨 줄 순 없지만, 최선을 다하는 모습과 그 길을 알려 주고 응원해 줄 순 있다. 그 과정의 길에 같이 서있는 아빠의 모습을 딸아이가 지켜봐 주면서 격려받으면 좋겠다. 실망과 좌절의 순간에도 슈퍼맨처럼 강한 멘털로 서있을 아빠가 항상 옆에 있음을 알아주었으면 좋겠다. 나의 슈퍼맨 능력이 사라져 가지만, 나의 크립토는 아직 다 사라지지 않았다.
장하던 우리 딸,
눈물이 웬 말이냐! 항상 어디서든, 우리 딸 파이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