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에는 '맞지 않겠다'는 결심을

다시 쓰는 칼럼 7

by 구르는 소

* 예전 언론사에 기고한 칼럼을 바탕으로 지면상 쓰지 못한 이야기들을 브런치에 새롭게 써보려고 합니다.


2020년 1월에 기고한 글의 제목이 '2020년에는 때리지 않겠다는 결심을'이다. 어디에선가 아동학대의 그늘에서 맞고 있을 아이들을 생각하며 써 내려간 글인데 벌써 3년의 시간이 흘렀다. 여전히 아동학대 신고건수가 많고 눈시울을 적시는 학대 관련 사건사고가 많은 게 현실이다. 아이들의 권리를 존중하고 아동학대를 예방하자는 주장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침이 없다.


예전 기고문의 내용 중에 '2020년 새해에는 맞고 싶지 않다는 소원을 쓰고 있는 사람이, 아이들이 우리 주위에는 없는가?'라는 문장이 있길래 천천히 이 문장을 곱씹어 읽어 봤다. 맞고 싶지 않다는 소원이라니... 이런 소원을 쓰면 새해 첫날부터 너무 우울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기억을 거슬러 올라가 보니 필자도 학창 시절에 '새해에는 맞지 않겠다'라는 결심을 한 적이 있는데 ('소원'이 아니라 '결심'이었다.) 중학생 시절 당시 학교의 영어선생님 교수법은 아주 폭력적이었다. 매 수업시간에 그날의 Dialogue chapter를 모든 학생이 외워와야 했다. 교과진도가 나가면서 Dialogue가 나오면 교실 맨 앞줄 왼쪽 학생부터 자연스럽게 일어나 외워야 했다. 영어선생님은 학생 앞에 서서 "Do you know?"라고 묻고 yes면 암기시작, no면 무조건 학생들은 뺨을 손바닥으로 맞아야 하는 식이었다.

작년 모백화점에서 열린 전시회 DIALOGUE. 사진을 들추다 보니 중학교 영어시간의 추억이 떠올랐다.

대부분의 학생들은 no였고 yes 한 학생도 암기하다가 머뭇거리거나 내용이 틀리면 바로 철썩 뺨을 맞았다. 공부 잘하는 학생들도 예외는 없어 반 1등 하는 학생들도 1년에 1~2회 정도는 뺨을 맞았다. 필자도 예닐곱 번 정도 뺨을 맞았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한 번은 너무 세게 맞아 안쪽 송곳니가 빠진 적이 있었다. 이 얘길 아버지한테 했더니 화를 내시기는커녕, 다음부터 100% 암기해서 절대 맞지 말라고 하신 기억이 난다. 그 영어선생님이 뺨을 때리면서까지 암기하게 해 줘서 영어성적을 잘 받았다며 서울대에 들어간 선배가 고마워했다는 얘기도 들었다.


그 시절은 이런 교수법도 당연하게 받아들여지는 시절이었다.


이런 폭력적인 교수법을 정말 당연하게 여기면서 중3이 되던 새해에 '올해는 더욱 열심히 공부해서 뺨을 맞지 말아야지'라고 결심을 한 것이다. 지금 생각해 보면 너무 어이가 없고 황당한 결심이지만, 맞아도 당연하게 생각하는 시대가 그리 멀지 않았던 과거라니 허탈한 웃음만 나온다.


가르치는 사람도 배우는 사람도 때리거나 맞을 권리와 의무가 없다. 시대가 바뀐 게 아니라 과거엔 우리 사회의 인식이 부족했고 폭력에 둔감했으며 인권에 무지했던 것이다. 누가 누굴 때리고 대체 왜 맞는다는 것인가? 때려서도 안되고 맞을 이유도 없다. 교육현장에서건 군대에서건 물론이고 직장에서도 마찬가지이다.


가족구성원에게도 이 원칙이 적용된다. 내가 낳은 자식이니 내 맘대로 하면 되고 훈육을 위해 때려도 된다는 것은 결코 옳지 않다. 지금의 폭력을 견디면 나중에 부와 명예가 너한테 주어질 것이다라며 자녀한테 폭력적 교육방식을 제공하는 것은 가스라이팅에 불과하다. 아직도 애는 때려야 올바르게 큰다는 생각을 갖고 있는 부모가 있다면 감옥에 갈 각오를 하길 바란다. 자녀는 부모의 소유물이 결코 아니다. 자녀 그 자체로 소중한 인격체로서 완전한 성인인격체로 성장할 때까지 부모가 돌 봐주어야 할 대상이다.


완전한 성인인격체라는 것은 스스로 옳고 그름을 판단/결정할 수 있고 사회에서 공식적으로 인정하는 법적연령대에 올라온 사람을 말하는 것이다. 아직 미성년자인 자녀들한테 '말 안 들으면 때려서라도 가르쳐야지'가 맞는 표현은 아니다. 왜 말을 안 듣는 거야라고 묻고 답을 줄 때까지 기다려줄게라고 얘기해 주는 것이 맞는 표현이자 올바른 부모의 자세이다. 또한 아이가 노력하고 성취할 수 있도록 방법을 가르쳐주고 응원해 주면서 실패도 극복할 수 있는 삶의 지혜를 알려주는 것이 부모의 역할이다.


아직도 우리 아이들의 권리에 대한 인식이 많이 부족하다. 성공을 위해서라면 어린 학생들이 부모와 선생님한테 학대와 구타를 당해도 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여전하다. 내 애는 내 맘대로 키울 테니 때리든 말든 상관 말라는 이들이 아직도 많다. 매년 아동학대신고가 증가하는 상황을 어떻게 설명해야 하나? 현장에서 일을 하는 아동학대예방 상담원들이 열심히 일을 했기에 신고가 증가했다고 생각해야 하나? 그렇지 않다. 아이들을 존중하고 그 권리향상을 위해 더욱 가정과 이 사회가 노력해야 한다. 무엇이 우리 아이들을 행복하게 하는지 우리 사회가 성찰의 깊이를 깊게 가져가야 한다.


내가 지도하는 학생이, 내 가정의 자녀가 '올해는 맞지 말자'라고 결심하고 있는 것은 아닐는지? 폭력적인 교수법 뒤에 자녀가 성공과 부를 쌓았다고 모든 게 용서되지 않는다. 학대와 폭력의 상처는 절대 사라지지 않는다. 주변 아이들을 돌아보고 내 가족을 돌아보자. '새해엔 맞지 말자'라고 결심하는 아이들이 없는 사회를 소망한다.






인천일보에 2020년 1월 기고한 칼럼입니다.


2005년 겨울, 서울청계천광장에서 루미나리에축제(밝은 전구들로 예쁘게 꾸민 구조물을 설치한 야간조명행사)가 진행되었는데 굿네이버스가 현장에서 결식아동들을 돕기 위한 이벤트를 진행했었다. 청계천광장에 커다란 대형트리를 설치해 놓고 크리스마스 장식구에 소원을 적으면서 기부하는 이벤트였다. 처음엔 누가 자기 소원을 적기 위해 기부금을 내겠냐고 반신반의했는데, 너무 많은 사람들이 기부금을 내면서 소원을 적는 바람에 장식구를 매달 나무가 부족할 정도였다. 매일 오후에 행사를 준비하면서 전날 매달린 신년소원들을 읽어보곤 했는데, 사람들의 소원이 무척 다양하고 다르구나라는 생각을 했다. 가족의 건강과 행복을 염원하는 문구들은 기본이고 축 선거당선, 1년간 20개국 여행, 토익 900점 달성, 누구누구와의 연애·결혼 등 구체적인 소원들도 있었다. UFO에 탑승하고 싶다거나 외국 어느 대통령의 무병장수 기원, 싸이월드 미니홈피 일촌 5명 확보 등 재미났던 소원도 기억난다.


그중에 하나 아직도 기억에 남는 소원이 '새해에는 맞고 싶지 않다'라는 소원이다. 누가 썼는지, 누구한테 맞고 있는지 그 상황을 알 수 없지만, 소원종이를 적은 사람의 절박함과 괴로움이 느껴져서 가슴이 아팠다.

그 추운 날 청계천광장에 나와 좋은 추억을 만들어야 할 루미나리에 축제에 참여하면서 오죽했으면 맞는 것을 떠올렸을까. 아이이건 성인이건 누군가에게 폭력의 대상이 되고 있다는 사실은 견디기 어렵고 두려우며 치가 떨리는 일일 것이다. 특히나 아이들은 폭력에 노출되면 신체적, 정신적인 피해가 더 크며 폭력을 학습하게 되어 다음 세대로 전이되기에 더욱 그렇다. 2020년 새해에는 맞고 싶지 않다는 소원을 쓰고 있는 사람이, 아이들이 우리 주위에는 없는가?


연초부터 경기도 여주에서 9세 장애아동이 속옷만 입은 채 아파트 발코니에 놓인 찬물 가득한 욕조 속에 강제로 앉아 있다가 숨진 사건이 발생했다. 인천의 어느 병원 응급실에서는 부모와 함께 온 생후 8개월 된 남아의 몸에서 머리와 팔 등에 멍을 발견하고 아동학대의심으로 신고해 경찰이 수사에 나섰다고 한다. 때리고 방치하고 상대방을 비인격적으로 대하는 것들 모두 폭력이고 학대다. 아이들을 가족의 소유물로 여기고 훈육이라는 이름하에 때리고 비하하는 행위는 처벌받아 마땅한 범죄행위라는 것을 명심하자.


지난 1월 13일 여의도 국회에서 굿네이버스 등 아동인권향상을 위해 뛰고 있는 단체들이 친권자가 자녀를 징계할 수 있도록 규정한 '민법 제915조'를 삭제해서 아동학대를 근절시켜야 한다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기자회견에 아동 대표로 나온 어린 학생이 "어른 중에도 잘못을 하고, 노력을 해도 일이 잘 안 되는 경우가 있지만 그런 어른의 버릇을 고친다고 때리려는 사람은 없다"라며 "하지만 우리는 '맞을 만했다'라고 한다. 이 세상에 맞아도 되는 나이는 없다. 맞아도 되는 사람은 더욱 없다"라고 말했다고 한다. 훈육을 가장한 체벌, 아동방임, 욕설 등 아동학대가 사라지는 날은 언제일까?


꽃으로도 때리지 말라고 그랬다. 누구를 때려서는 안 되고 맞는 것을 두려워하는 아이들이 주변에 없는지 모두의 관심이 필요하다. 2020년을 시작하면서 올해에는 때리지 않겠다고 결심해 보자.


<칼럼 바로가기 : http://www.incheonilbo.com/news/articleView.html?idxno=1020859>